색기발랄 > 그 후의 이야기 2 그 후의 이야기 2
다음날.
어김없이 초인종이 울렸고 정소연이 모습을 드러냈다.
"......"
잠시 정소연을 내려다보던 하나는 말없이 몸을 비켜섰다. 들어오라는 뜻이다.
살짝 고개를 숙여보인 정소연은 하나를 지나쳐 내가 앉아있는 거실의 쇼파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어제와는 다른 당찬 몸짓이다. 이젠 거리낄 것이 없다는 건가?
"오빠. 저 왔어요."
"...어. 그래."
마지못해 대답을 하면서 정소연의 옷차림을 힐끗 쳐다봤다. 타이트한 짧은 스커트에 가디건을 걸친 정소연의 모습이 눈에 각인된다. 예전에 주로 즐겨입던 발랄하고 귀여운 스타일에 비하면 다분히 도발적인 옷차림이다. 외모만 보면 마냥 동글동글하게 생겨서 귀엽기 그지없는 정소연이다만... 흠. 옷차림 때문인지 몇개월만에 봐서인지 예전의 분위기와는 조금 틀려진것 같다. 그냥 한마디로 색기발랄 그 자체랄까? 마치 예전의 성현아처럼 말이다.
내 시선을 의식한 것인지, 정소연이 살짝 몸을 비튼다. 왠지 '그렇게 빤히 쳐다보면 부끄럽잖아요' 하고 말할것 같다.
"그렇게 빤히 쳐다보면 부끄럽잖아요."
"......"
"역시 오빠도 이런 차림이 맘에 들죠? 하여튼 남자들이란. 뭐 그래도 오빠가 원한다면 이거보다 더한 옷도 입을 수 있어요."
이년 봐라? 지가 이렇게 입고 와놓구선 남자탓을 하고 있네? 솔직히 뭐 나야 눈요기도 하고 좋긴 하다만...
"...그런거 입고다니면 팬티보이잖냐. 다른 사람들이 보면..."
"다른 사람이요? 흐응... 좀 보면 어때요. 닳는것도 아닌데. 들키지만 않으면 뭐, 훔쳐보던 말던 신경 안써요."
맞다. 정소연은 저런 성격이었지.
걸리적거리는 아다를 떼버리겠다고 쌩판 모르는 남자한테 안겨 따먹혔던게 정소연이다. 그 이후로도 누구든 가리지 않고 몸을 대줬다고 했지. 오로지 '나에게 어울리는 여자'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지금의 정소연은 과연 나에게 어울리는 여자인가?
"...올라가자."
잠시 생각을 접어두고 정소연을 이끌었다. 왠지 뒤에서 쳐다보는 하나의 시선이 껄끄럽기도 하고. 정확히 말하자면 나를 쳐다보고 있는게 아니라 정소연을 쳐다보고 있다. 그 표정은... 모르겠다. 저게 무슨 표정인지.
* * *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정소연은 대뜸 내 침대 위로 털푸덕 앉았다. 푹신한 침대에 체중이 실려 순간적으로 기우뚱거린 정소연이 팔을 허우적거리며 자빠지지 않으려 발버둥을 친다. 귀엽네.
"...으읏."
발버둥을 치는 와중에도 벌어진 다리 사이를 가리려 두 팔을 뻗는 모습이 보인다. 말은 그렇게 해도 결국 팬티 보이는건 신경쓰인다는 거네.
다리를 갈무리한 정소연이 새침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 본다. 왠지 꼴릿한 표정이다.
"오빠."
"어?"
"아직도 현아언니 생각나요?"
"......"
기습적으로 튀어나온 말에 잠시 할 말을 잊었다. 그렇게 물어본 정소연도 더는 말을 하지 않고 내 얼굴을 주시하고 있다.
생각이 안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길다면 긴 시간이었고 짧다면 짧은 시간동안, 난 성현아라는 여자를 대함에 있어서 여러번의 태도 변화가 있었다. 확실히 첫 만남부터 시작해서 한동안은 좋아하는 감정따위 없이 그저 쌔끈한 섹파를 데리고 노는 기분이었지. 그리고 나중엔 그 장난스런 기분이 진심이 되어 성현아를 좋아하게 됐다. 모든걸 다 버리고 단 둘이서 도망치고 싶었을 정도로.
그렇게 진심이었던 여자가 다른남자의 품으로 떨어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것은 성현아의 안에다 질척하게 싸넣는 박우리의 영상을 두 눈으로 보고있을 때에도 그랬다. 원래 좀 까진 계집이니까, 다시 데리고 오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나는 현실을 믿지 않으려 했다. 이 생각은 내가 병원에 입원해있을 당시에도 여전해서, 얼른 퇴원해서 성현아에게 가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런데 전에도 말했지만, 시간이란 참 고마우면서도 무섭더라. 성현아가 다른남자에게 가버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한밤중에 실려갈 정도였는데, 어느순간 그 일에 대한 건 기억 너머의 편린이 돼버렸다. 불과 3개월 남짓한 시간에 말이다. 더이상 그것에 대해 괴롭지 않아도 되니 고마워해야 겠지만... 당시에는 그 무엇보다 심각했던 일도 시간이 흐르면 이렇게 무뎌지는 것이 무섭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은 성현아에 대해 이렇다할 감정이 들지 않는다. 물론 날 엿먹이고 딴 놈이랑 붙어먹은 천하의 개쌍년이라는 생각은 들지. 근데 그 당시처럼 감정이 폭발하고 활화산이 되어 넘쳐흐르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지금은 오히려... 성현아보다 이 정소연에 대한 감정이 확실치가 않다.
나한테 한 짓을 생각하면 성현아만큼은 아니어도 이 계집 역시 못되쳐먹은 이기주의적인 년인데,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내가 얘한테 한 짓거리를 생각해보면 내가 또 그런 말 할 입장은 아닌 것 같고. 나와 성현아를 갈라지게 한 주범이 바로 정소연이라고 생각하다가도, 정소연이 잘못한 거라면 오로지 나만을 생각했을 뿐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서 갈팡질팡하게 된다. 더군다나 이제는 볼 수 없는 성현아와는 달리 정소연은 지금까지도 나한테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으니... 판단이 흐려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지금의 난 성현아보다 정소연이 더 신경쓰인다는 거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흐응."
내 대답을 기다리다 지친 것일까, 정소연이 알 수 없는 콧소리를 낸다. 그 귀여운 얼굴은 살짝 찡그려져 불만이 표출되고 있다.
"오빠는 너무 답답해요. 예전에는 안그랬는데... 지금의 오빠는 마치 내 남친보는 기분이에요."
"......"
"오빠도 모르겠죠? 지금 자기 마음이 어떤지."
정소연의 목소리가 유난히 달콤하다고 생각했다. 어느덧 그 조그마한 손은 내 옷자락을 꼭 쥐고 있다.
"잘 모르겠다면... 내가 조금 도와줄께요."
그렇게 말한 정소연은 옷자락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그 작은 힘에도 내 몸뚱이는 스르르 움직이며 정소연이 원하는 대로 끌려가고 있었다.
"내가 불만 붙혀주면 나머진 오빠가 알아서 할 수 있을거에요. 오빠는 똑똑하니까요. 그렇죠...?"
* * *
"헉, 허억... 헉..."
숨이 차오른다. 허리를 움직이는게 이렇게나 힘든 일이었나?
몇 번이나 쳐대고 있는거냐 생각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번이 첫 번째다.
"...으흑... 윽! 흐읍...!"
숨을 몰아쉬면서 내 물건을 받아내고 있는 정소연이 눈에 들어온다. 잠시 눈이 마주쳤다가도 내 물건이 깊숙히 박히면 찔끔 떨면서 몸서리를 친다. 그렇게 부들부들 떨면서도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신음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아마도 옆방에 있을 하나를 신경쓰는것 같다.
"아, 아... 읍, 오빠, 오빠아..."
정소연의 몸짓에 이끌려 움직이다보니 어느새 난 떡을 치고 있었다. 옷도 벗기지 않은 채로, 그저 스커트만 위로 걷어올리고 팬티도 벗기는둥 마는둥 걸쳐놓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삽입한 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벌써부터 위험신호가 오고 있었다. 넣은지 채 3분도 안된 것 같은데?
내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소연은 간만에 맛보는 내 물건이 만족스러운듯 연신 허리를 튕겨대며 즐기고 있다. 저 색기어린 표정을 보니 아까보다도 더 큰 흥분이 허리를 타고 몰려와 내 물건을 단단하게 만든다. 이건... 쌀 수 밖에 없다.
"큭...!"
이를 콱 물고 정소연의 몸 위로 무너졌다. 그 조그마한 몸을 있는 힘껏 끌어안으며, 그렇게 나는 정소연의 질 속을 허연 액체로 가득 메워냈다. 그리고는 정소연의 몸 위로 힘없이 축 늘어졌다.
"......오빠?"
살짝 떨리는 듯한 정소연의 목소리. 그 목소리가 아득해지려던 내 정신을 다시 돌아오게 한다. 그리고 정신이 돌아오자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 수 없는 이 위화감의 정체가 도대체 뭐지?
"저... 끝난 거에요?"
정소연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듣자 나는 이 정체모를 위화감이 뭔지 알 수 있었다.
물건이 서질 않는다. 겨우 한 번밖에 안했는데...?
예전에도 정소연과 관계를 가지려다가 얼마 못버티고 싸버린 적은 있다. 하지만 그렇게 싸고 나서도 내 물건은 멀쩡했기에, 부들부들 떨고 있던 정소연을 안아다 침대로 던져버리곤 몇 차례나 더 따버렸었다. 근데 지금은... 한 번밖에 안쌌는데 물건이 죽어서 일어나질 않는다. 어떻게 된 일이지?
내 얼굴에 물든 당혹감이 정소연의 눈에도 보였나 보다. 어느새 정소연은 아쉬워하던 표정을 지우고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띄운 채 가만히 나를 안아 왔다.
"오빠... 오랜만에 해서 힘든가 봐요. 그 때 이후로 지금까지 여자랑 한 적 없죠? 그러니까 그런 걸꺼에요. 너무 신경쓰지 말아요."
"......"
"난 그래도... 오빠랑 해서 좋은데. 오빠가 나 안아줘서 너무 좋아요. 헤헤."
"......"
이럴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 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이런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 딴에는 나를 위로해주려 저런 말을 하는것 같은데, 고맙기도 하면서 자존심이 상하기도 한다. 정소연따위 내 좆질 몇 번이면 숨이 멎을 정도로 헐떡거리다가 기절하던 계집이었잖아?
말없이 가만히 있으려니, 내 말을 기다리던 정소연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후우... 뭐 아무튼... 어때요, 오빠? 이젠 좀 알겠어요?"
"...뭘?"
"오빠 마음. 이젠 어떤지 좀 알겠냐구요."
......
무슨 말을 하는건지 모르겠다. 떡 한번 쳤다고 내 마음을 알 수 있는게 무슨 말이야?
"오빠는요. 지금 나랑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갈팡질팡하고 있을꺼에요. 내가 밉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싫지도 않겠죠. 그렇죠?"
"......"
"솔직히 내가 오빠 입장이라면... 내가 맘에 든다고 해도 대놓고 좋아하는 척도 못하겠죠? 현아언니한테 데인지 얼마나 지났다고 또 다른 여자한테 빠지는건 좀 그럴테니까요. 더군다나 그 다른 여자가 바로 나인데. 그러니까 지금 오빠는 좋지도 싫지도 않은 애매하고 답답한 태도로 날 대하고 있는 거에요. 바보같이."
...그런가? 듣고보니 그런것 같기도 하고...
정소연이 꺼림칙한건 여전하지만, 그렇다고 내치지도 않고 집으로 들였다는것 자체가 이미 정소연에게 마음이 있다는 증거다. 예전의 그 나쁜 기억보다도 정소연을 가까이 하고 싶다는 욕망이 더 큰 것이겠지. 하지만 대놓고 정소연에게 호감을 보인다거나 애인으로 삼는다거나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왜냐고? 정소연은 나와 성현아의 일을 모조리 알고 있으니까.
내가 성현아와 사귀던 시절, 정소연은 그렇게 나를 쫒아다니면서 매달려왔다. 사귀는게 안되면 섹파라도 좋으니 같이 있어달라고 말할 정도로. 하지만 난 그런 정소연을 외면한 채 오히려 이용해먹기만 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한테서 다른 남자랑 자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던게 정소연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내가 정소연을 거둬들인다? 성현아가 없으니까?
솔직히 말도 안되잖아? 내가 아무리 막되먹은 새끼라고 해도 말이다. 딱히 정소연을 위해서라기 보다도,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최저한의 양심이란 녀석이 저걸 반대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정소연을 내치지도, 반기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태가 된 거겠지.
그래, 그렇구나.
이제서야 내 마음을 알 것 같다. 결론은 난 정소연을 받아들일 자격이 없다는 거네.
여기까지 생각했을 무렵, 조용히 나를 올려다보던 정소연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하지만 오빠... 나를 생각해 봐요. 오빠만 바라보기 위해서 모든걸 버리고 정소연이 된 나를... 난, 나는 말이에요. 오빠가 어떤 일을 당했든, 어떤 생각을 하든, 오로지 오빠만 생각해요. 내 눈에는 이미... 오빠밖에 보이지 않아요..."
"......"
어느새 정소연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조용히 흐르는 그 눈물이 어두운 방 안에서 홀로 아름답게 반짝인다. 이것이 바로... 한 사람을 사랑하는 여자의 얼굴인 걸까.
......
사실 다른 생각을 할 필요도 없었다. 이렇게 눈 앞에 '증거'가 있는데.
애초에 정소연은 내가 그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을 품더라도 내 옆에 있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집으로 찾아오는 것이 아닌가. 오로지 나를 보기 위해서 말이다.
"이렇게 나를 안아준 것처럼... 진심 그대로 나를 대해주면 돼요. 이게 오빠의 마음이잖아요?"
목이 메여와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대답대신 겨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니 말이 맞다, 이게 내 마음이다, 하고 말이다.
그리고 정소연은, 그런 내 대답에 더없이 환하게 웃어주었다.
지금의 정소연은 나에게 어울리는 여자인 걸까?
아니, 이제부턴 내가 정소연에게 어울리는 남자가 되어야 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