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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3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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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 정소연, 그리고 윤소정 下

이상하게도 양심의 가책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남자친구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만나는 또 다른 사람.

미안하다거나 이래서는 안된다거나 하는 도덕적인 통념따위는 깨끗하게 잊어버릴 정도로, 나는 점점 박을이라는 남자에게 매료되고 있었다.

전혀 다른 두근거림을 가져다 주는 이 사람을 만나는 것에 후회라는 감정은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애를 만나는 것이 소홀한 것도 아니었다.

오빠를 만나지 못하는 날에는 자연스레 그 애와 어울렸고, 여전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있어주는 그 애는 변함없는 내 남자친구로 남아 있었다. 단 하나, 은밀한 손길을 바라는 내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는 것만 빼면, 이 애 역시 을이오빠와 비교해서 빠지는 것은 없었다.

그럼 오빠는 나를 잘 만져주냐고? 유감스럽게도 그것도 아니다.

여전히 이 남자는 내 몸을 노리고 있을 터였다. 그것을 경계하던 내 마음은 어느새 바뀌어 '빨리 만져주었으면' '얼른 내 몸을 노려줬으면' 하고 바라게 됐다. 하지만 이 남자 역시 나를 적극적으로 리드하지는 않았다.

분명 그 애와 비교하면 스킨쉽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의도적인지 은근슬쩍인지, 이따금씩 오빠의 손이 내 가슴에 닿기도 했고, 데이트가 끝나고 헤어질 때면 차 안에서 키스를 하기도 했다. 그 야속할 정도의 짧은 시간에 나는 언제나 그 다음을 바랬지만, 오빠는 빙긋 웃기만 할 뿐, 내가 원하는 그 다음은 해주지 않았다. 뭐, 시간은 많고 우리가 알아가야 할 시간 또한 많다던가? 그런 요상한 말이나 하면서 슬쩍 빠져나가는 오빠가 정말 밉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

가만 생각해 보면, 어쩌면 오빠는 나를 배려해주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내가 처녀라는 건 이제 오빠도 알고 있고, 그것을 알게 된 이후 오빠가 나를 만져주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었다. 아무래도 내가 남자경험이 전무한 꼬맹이라는 생각에 더욱 조심스러워 하고 있을 지도 모르지. 

아무튼 속상하다. 지금까지 남자랑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게 이런 걸림돌로 작용할 줄이야. 만약 내가 경험이 있는 여자였다면... 오빠도 나를 만지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을 텐데.

가끔씩 오빠는 내 처녀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정말로 한 번도 안해봤냐, 어떻게 하는지는 알고 있냐 등. 하는거야 뭐... 나도 야동같은 건 몰래 보기도 했으니까 어떤 식으로 하는지는 얼추 알고 있다. 누워서 다리 벌리고 있으면 남자가 알아서 해주는거 아니야? 가끔 자세를 바꾸기도 하던데, 계속 보다보니 그 자세가 그 자세더라. 어떤 자세는 도대체 왜 저럴까 싶을 정도로 이상한 것도 있지만... 오빠는 그런 자세로 안하겠지?

그렇게 무난한 듯 뭔가 모자르는 연애가 계속 이어졌다.

퉁명스러운 척 하면서도 상냥함이 묻어 있는 오빠의 목소리는 어느덧 내 삶의 활력소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점점 불안에 빠졌다.

저 목소리가 언제까지 나를 향해 있을까.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닐까.

이미 오빠가 없는 나날은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커다래진 지금, 그런 생각을 하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 쉬는 것도 힘들어졌다. 하지만 묻어버리려고 하면 할 수록 마음 한 켠에서는 계속해서 그것에 대한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어, 나는 예전처럼 마냥 즐거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불안이 현실로 닥쳐온 것은,

오빠랑 만나게 된 지 3개월 쯤 됐을 때였다.

* * *

그 날은 먹구름이 잔뜩 낀 흐린 날씨였다.

비를 쏟을랑 말랑 하는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작은 우산을 하나 챙겼다. 오빠라면 차 안에 우산 정도는 가지고 있겠지만, 그 우산을 꺼낼 일은 없을 것이다. 이걸로 둘이 딱 달라붙어서 쓰고 다니면 되니까.

평소보다도 조금 더 신경쓰려는 마음에 이것저것 준비하다 보니 어느새 약속시간이 간당간당했다. 뭘 그렇게 신경쓰냐고? 난 오늘을 결전의 날로 정했거든. 오빠한테 나를 주기로 말이야.

쌓이고 쌓이는 욕구가 배출이 안되니 내 속은 항상 야하고 음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오빠는 언제나처럼 가벼운 입맞춤과 은근한 터치만을 해올 뿐, 그 이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기다리기만 하는 건 이제 지쳤다 이거야. 계속 그럴 생각이라면, 이쪽에서 먼저 대시하는 수 밖에 없잖아? 

하지만 그것 뿐만은 아니다. 갑자기 훌쩍 떠나버릴 지도 모른다는 그 불안감도 내 마음을 독하게 하는 데에 한 몫 했다. 오빠에게 나를 준다면... 그래서 완전히 오빠의 여자가 된다면... 그럼 오빠는 어디 가지 않고 계속 나만 바라봐 주겠지?

저런 생각을 하면서 옷도 계속 갈아입고 속옷도 신경쓰고 하다 보니 어느새 약속시간은 5분 전으로 다가왔다. 아직 맘에 드는 옷은 못골랐지만... 오빠를 기다리게 할 수도 없으니 적당히 타협을 하고 집을 나섰다.

"을이오빠아~!!"

멀뚱히 서있는 오빠를 부르며 달려갔다. 늦었다고 화내는거 아닐까? 지금까지의 오빠라면 이런 걸로 화를 내지는 않겠지만...

"헥, 헥.... 오빠 미안해요. 많이 기다렸어요?"

"응? 아니야. 나도 조금 전에 도착했어."

"진짜요? 휴... 다행이다."

......

거짓말.

오빠는 약속이 잡히면 항상 일찍온다. 내가 아무리 일찍 나가도 나보다도 더 먼저 도착해 있는게 을이오빠다. 그러니 오늘도 분명 굉장히 일찍 와서 나를 기다렸을 꺼다. 그런데도 연락 하나 없이 이렇게 기다리기만 한 건가? 이 오빠도 참 미련한 구석이 있다.

...역시, 이런 오빠라면 날 줘도 전혀 아깝지 않다. 아니, 오히려 처음인 날 상대해 줘야 하니까 이쪽에서 미안해야 하는 걸까?

"자 그럼... 어느거 먼저 할까? 저녁? 영화? 아니면... 모텔?"

"......"

내가 지금 잘못 들었나? 오빠 입에서 모텔 소리가 나오다니.

3개월동안 한 번도 저런 비슷한 소리도 하지 않던 오빠였는데...

......

이거, 분명 마음이 통한거지?

나도 오늘은 오빠한테 날 주기로 작정하고 나왔고, 오빠도 날 모텔로 데려가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천생연분인 거네?

그치만 대놓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지.

살짝 망설이는 척 하면서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연기해야 한다. 연기라면 내 주특기잖아?

"어, 우웅... 갈까요? ...모텔."

잘 대답 했나? 어색하지 않았으려나?

잠깐 내 얼굴을 바라보던 오빠가 슬쩍 미소를 띄운다.

"그 전에 먼저... 오빠 배고픈데. 밥부터 먹으러 갈까? 기운이 있어야 우리 꼬맹이 기분좋게 해주지."

"에..."

......

밥 먹고 기운차려서 해주겠다는 뜻이구나?

기분좋게 해준다고? 정말로 그거 하면 기분 좋은걸까?

모르긴 몰라도, 오빠랑 하는 거니까 기분이 안좋을 수가 없겠지?

...그치만, 막상 진짜로 오빠랑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 조금 무섭기도 하다. 역시 내가 경험이 없으니 이런 생각이 드는 거겠지? 나도 오빠처럼 충분히 경험이 있는 여자였다면 조금 더 여유를 가질 수 있었을 텐데.

"...술도 한 잔 마셔요. 맨정신으로는 쪼끔 무서운데. 헤헤."

아무래도 술이 한 잔 들어가면 무서운 기분도 가라앉겠지. 그렇다고 너무 마셔서 퍼지는 것도 곤란하니까, 적당히 기분 좋아질 만큼만 마시고 나면 내 몸도 완전히 오빠를 받아들일 준비가 될 꺼다.

좋아, 이제 오빠의 여자가 되는 일만 남은거지?

그리고... 이렇게 오빠랑 맺어지면, 계속 함께 하는거지?

"...오빠, 오늘 계속 같이 있어주세요. 내일도, 모레도... 계속 옆에 있어주세요. 네...?"

그래도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나보다.

아무리 내가 속으로 끙끙대봐야 오빠의 마음은 알 수 없으니까. 이렇게라도 확답을 듣는다면, 나도 조금은 더 안심할 수 있겠지? 그리고 내 옆에 있어주겠다는 오빠의 목소리가 듣고 싶기도 하다.

"그럴 필요는 없어."

"...네?"

......

오빠의 목소리가 아니다.

반사적으로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어떤 여자가 서 있었다.

"거기 있는 박을이는 나한테만 박을 수 있는 남자거든. 안 그래?"

...뭐지, 이 여자.

모든게 나보다 우월해 보이는 여자가 당당한 자세로 나와 오빠를 바라보고 있다. 혹시 연예인인가?

"누, 누구세요? 을이오빠 아는 분... 이세요?"

조심스레 말을 꺼내자, 여자의 입에서 험한 말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방금 못들었어? 이새끼 내 전용 자지라니까? 쪼끄만게 어디서 남에꺼 따먹을 생각이나 하고 있어? 앙? 한 번 죽어볼래? 머리끄댕이 잡혀서 니 엄마아빠한테 끌려가고 싶어?"

"어... 네? 저... 오, 오빠...?"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을이오빠가 자기꺼라고? 여자친구라는 소린가?

그럴리가... 오빠는 한 번도 여자친구같은 소리는 안했는데...

"...미안하다."

오빠의 목소리.

뭔가 허무하게 들린다.

이 상황을 부정해주기를 바라던 내 마음은 그런 오빠의 대답에 산산히 부서져 버렸다.

......

어느덧 나는 입을 틀어막고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다.

시야가 흐려져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와 부딪치고 넘어지면서도, 계속 달렸다. 오빠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쏴아아아.

비가 내린다.

이럴 줄 알고 준비했던 우산인데...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게 됐다.

같이 써야 할 사람이 사라졌으니까.

......

이런 거였구나.

역시 오빠는... 날 노리고 작업을 건 늑대 중 한 명에 불과했구나.

그런데도 그렇게 본심을 숨기고 날 만난 걸까? 오늘을 기다리면서 3개월동안 참아온 건가?

가슴이 뻥 뚫린 것 같다.

내 마음을 가득히 채웠던 누군가가 마치 하수구 물이 빠지듯 사라져 간다.

어쩌면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일이 일어날 줄. 

그리고 그것이 불안감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오빠는 내 옆에 있을 수 없다고... 

그렇게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

가만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봤다.

떨어져 내리는 빗방울들이 얼굴을 세차게 때린다. 정신 차리라는 듯이 야단을 치는 것 같다. 멀쩡한 남자친구를 두고 다른 남자와 놀아나던 나를 비웃는 것 같아, 다시금 고개를 떨궜다.

......

이상한 일이다.

이렇게 날 엿먹인 오빠인데, 신기하게도 오빠가 밉지 않다.

오히려 오빠의 얼굴이 보고 싶다. 

지금 이것도 헤어진게 아니라 잠깐 떨어져 있는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미운 건... 그 여자다.

그 여자만 나타나지 않았어도... 오빠랑 나는 맛있게 밥을 먹고 모텔에 갔겠지. 걸어가는 도중 이렇게 비가 와서, 미리 준비해둔 우산을 펼쳐 오빠를 가려줬을 꺼다.

그 여자만 없었다면... 우린 아무 문제도 없는 거였는데.

그치? 그 여자가 잘못한 거잖아?

......

먹구름 낀 하늘처럼 잔뜩 흐려졌던 내 머릿속이 환하게 밝아졌다.

잠시 패닉에 빠져 있었지만, 이내 해야 할 일을 알게 됐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떨어졌지만, 그리 길지는 않을 꺼다.

그런 여자에 지지 않을 만큼의 여자가 되어서 다시 나타날 테니까.

그리고 그때쯤 되면 오빠도 알게 되겠지.

누가 더 오빠에게 어울리는 여자인지 말이야.

그렇다면 역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나는... 다시 인형이 되는 거야.

* * *

모든 걸 버렸다.

이름도, 전화도. 모두.

가발을 쓰고, 화장도 했다.

이름은 뒤집어 버렸다. 윤소정을 거꾸로 해서 정소연으로. 

정소윤이라고 하면 너무 티가 나니까, 윤을 살짝 고쳐서 연으로 바꿨다. 

그래도 티가 나는 건 마찬가지지만... 상관없다. 예전의 날 알아봐 준다고 하면, 그건 그거대로 기쁠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단 하나 버리지 않은 것이 있다.

그 애 만큼은 버릴 수 없었다.

어쩌면 예전부터 버려져 있었을 지도 모를 그 애였지만, 차마 완전히 털어내지는 못했다. 예전의 나로 되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연결점이니까. 그 애의 앞에 있을 때 만큼은, 예전의 내가 될 수 있다.

모든 준비를 마쳤다.

난 이제 윤소정이 아니라 정소연이다.

잊고 있었던 인형을 뒤집어 쓰고, 나는 내가 됐다.

...아. 아직 하나 준비하지 못한게 있구나.

이 걸리적거리는 아다를 떼버려야지.

오빠에게 어울리는 여자가 되려면, 역시 이런 처녀따위는 하나도 도움이 안된다.

내 몸을 쑤셔줄 남자를 구하는 건 식은 죽 먹는 거나 다름없다.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들 나한테 접근해 오니까.

바로 저 남자처럼.

* * *

......

후우.

이제야 끝났구나.

내 몸을 가득 메우고 있던 것이 뽑혀 나갔는데도, 아직도 아래에 뭔가 있는 것처럼 낯선 감촉이 느껴진다. 익숙해 지려면 조금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당연히 좋은 기분이 아니다.

섹스하면 기분 좋다고 하더니, 누가 이런 말을 한 거야? 그저 불쾌하기만 하다.

아마 을이오빠였으면 기분 좋았을까? 다른 사람한테 뚫려서 기분이 나쁜 걸까?

잘은 모르겠다. 그치만... 내 배를 깔고 뭉개는 남자는 오빠였으면 좋겠다.

섹스라는 거, 생각보다 별 거 아니었다.

몸 안에서 흘러나오는 이상한 액이 쉴새없이 남자의 물건을 적시고, 그것이 같이 밀려들어가 내 끝에 닿을 때마다 움찔거리게 된다. 그것이 계속 반복되고, 야동에서도 봤던 몇 번의 자세를 답습한 끝에 이 행위는 끝이 났다. 이상하게 허리가 저려오면서 숨이 가빠지고 알 수 없는 신음이 튀어나오기도 했지만, 말한대로 좋은 기분은 아니다. 그냥... 동물적이라는 생각만 든다.

이 남자는 내가 굉장히 맘에 들었나 보다.

한 번을 끝내고 또 한 번을 하더니, 다음에도 만나자면서 내 연락처를 따갔다.

뭐, 나쁠 건 없다. 이런 짓에 익숙해 지려면 누구든 만나서 쳐대야 하니까. 이 남자뿐만 아니라 다른 남자도 닥치는대로 만나야 한다. 그래야 오빠에게 어울리는 여자가 되니까.

......

그렇게 나는 만나는 남자마다 다리를 벌리고 몸을 대줬다.

나를 거부하는 남자는 없었다. 친구의 남친이든 친척 오빠든, 누구 하나 나를 거절하지 못하고 내키는 대로 따먹었다.

그런 생활을 지속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오빠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전전했다.

오빠랑 자주 갔던 술집 하며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오빠와 마주치기를 바랬다. 대놓고 연락을 할 수는 없으니까. 이렇게 우연을 가장한 만남이 제일 좋잖아?

닥치는 대로 남자한테 따이면서 오빠를 찾기 시작한지 한달 쯤,

나는 드디어 오빠를 만날 수 있었다.

역시 술집같은데 돌아다니고 있을 줄 알았지.

화장실에 들어가려는 오빠를 불러 세웠다.

전혀 나라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조금은 기대했는데. 어째서 알아보지 못하는 걸까? 그만큼 나한테 애정이 없었다는 소린가?

뭐, 아무래도 상관없다.

우리는 다시 만났으니까. 이제 전에 못다한 것을 마저 해야 할 차례다.

윤소정이 아닌, 정소연으로.

......

오빠에게서 연락이 왔다.

알려준 연락처대로 나에게 먼저 연락을 해왔다. 예전과는 반대의 상황이 됐다.

...변함없는 잘생긴 얼굴이다.

내가 없는 시간에 무엇을 하고 지냈을까? 그 여자는 아직도 옆에 있는 건가?

역시 이것도 상관없겠지. 

오빠 옆에 누가 있다고 해도, 그것은 한순간일 뿐이다. 

이제 앞으로는 그런 기회는 없을 테니까.

......

내 인형이 되어 주겠다고 말한 시점부터,

오빠에게 선택권같은 건 없는 거였잖아?

스스로 원해서 내 인형이 됐으니, 내가 놓아줘야 할 이유는 없다.

나 없이는 숨조차도 쉬지 못하는 인형으로 만들어 주겠어. 

오로지 나만을 위한 인형으로.

그것이, 오빠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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