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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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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 박우리, 그리고 성현아 下

도와달라고? 뭘?

성현아의 말을 들은 박우리가 잠깐 머리를 굴렸다. 이 상황에서 도와달라고 말한 의미는... 아직 만족하지 못한 자신의 육체를 도와달라는 말인가?

그렇게 생각한 박우리는 다시 자라나 있던 자신의 물건을 성현아의 엉덩이 사이로 비집어 넣기 시작했다. 엎드린 성현아의 위에 포개어져 있던 박우리였으니 삽입하는 것은 쉬웠다. 성현아의 질 속을 가득 메우고 있던 박우리의 정액이 밀고 들어오는 물건의 압력에 못이겨 바깥으로 새어나왔다.

성현아의 엉덩이를 꾸욱 누르며 완전히 삽입한 박우리가 그 귓가에 대고 나즈막히 속삭였다.

"...좀 더 도와줄까?"

"......"

"움직인다?"

베개에 고개를 쳐박고 있던 성현아가 도리질을 했다.

"...잠깐 빼봐. 아니... 움직이지 말고... 하윽..."

어느새 펌프질을 하고 있던 박우리는 빼달라는 성현아의 말에 서서히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는 성현아의 옆으로 누우며 자연스레 기둥이 질 속에서 뽑혀 나왔다.

"방금 싸놓고 또 그렇게 커다래졌어?"

"너랑 같이 있으니까 그렇지. 보기만 해도 이게 지멋대로 쑥쑥 자라는데?"

"아우 변태."

살짝 웃는 성현아가 예쁘다고 생각했다. 

몸매가 착하다느니 꼴리게 생겼다느니 그런걸 다 떠나서, 저런 예쁜미소를 짓는 성현아에게 마음이 빼앗겼던 박우리였다. 그 미소를 처음 본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박우리의 마음 속에는 항상 성현아가 있었다.

옆으로 누운 박우리가 슬쩍 성현아의 목 언저리로 팔을 뻗었다. 그것을 본 성현아도 머리를 살짝 들어올려 팔을 베고 눕는다. 자연스럽게 박우리의 품에 안긴 성현아가 그 탄탄한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웅크린 모양새로 품에 안겨있는 성현아의 모습이 고양이같다고 생각했다.

성현아는 아무 말이 없다. 그저 그렇게 안긴 채 조용히 있을 뿐이다.

도와달라고 했던 그 말의 다음을 기다려 보던 박우리는 자신이 먼저 운을 띄워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우리야."

"응?"

"나 어떻게 생각해?"

"...글쎄. 무슨 말이 듣고 싶은건데?"

"그냥 니가 느끼는 그대로가 듣고 싶어."

느끼는 그대로의 말이라.

고민할 필요도 없다.

"넌 정말 예뻐. 조금은 자유분방하기도 해서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아무래도 좋을 정도로 니가 좋다. 처음 봤을때 부터 지금까지... 항상 그 생각만 있었어. 내 마음속엔."

"...내가 그렇게 좋아?"

"응. 더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푸훕. 왠지 기분 좋네. 날 이렇게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니..."

살짝 웃음지은 성현아가 더욱 박우리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 향긋한 살내음이 박우리의 정신을 아득하게 만든다. 지금 당장이라도 성현아를 눕혀놓고 아무 곳이나 빨아먹고 싶다는 욕망이 굴뚝처럼 솟아난다.

"정말로 내가 그렇게 좋다면... 도와달라고 하기가 미안해 지는데..."

"왜? 좋아하니까 더 스스럼없이 도와줄 수 있는거 아니야?"

"그렇게만 생각해 주면 고맙겠지만..."

품에서 슬쩍 고개를 빼낸 성현아가 박우리를 올려다 본다. 물기가 젖은 눈이 그 어떤 보석보다도 빛나고 있다.

"나... 을이랑 잘 되게 좀 도와줘."

* * *

성현아는 잠이 들었다.

얼마나 울은 건지, 두 눈이 팅팅 불어 보기 안쓰러울 정도다.

등을 돌리고 웅크린 자세로 잠이 든 성현아에게 이불을 끌어다 덮어 주었다.

"......"

담배 생각이 절실하다.

이렇게 담배의 유혹을 느낀 적이 있었던가. 

몇 번이고 침을 집어삼키며 참아보려 했지만, 아무래도 한 대 피지 않고서는 미쳐버릴 것 같다는 강박관념까지 들기 시작했다.

테이블에 놓여 있는 성현아의 담배갑에 손을 뻗는다.

살짝 열려있는 그 담배갑에는 몇 개의 담배가 남겨져 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하나를 집었다.

스윽 빼내려는 순간, 박우리의 뇌리에 성현아의 말이 떠올랐다.

......

결국 빼내려던 담배를 도로 담배갑에 집어 넣었다.

얼마 남지 않은 그 담배들이 마치 텅 비어버린 성현아처럼 느껴져서, 차마 빼낼 수가 없다.

"...후우."

저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온 박우리가 잠들어 있는 성현아를 돌아보았다.

그저 예쁜 미소를 가진 잘 노는 여자애 정도로 생각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인기를 받고 있는 성현아는 연모의 대상이자 질투의 대상이기도 했다. 자신에게는 없는 남들을 끌어모으는 그 용모와 성격이 부럽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하늘 위의 구름같은 존재로 여겨지던 성현아의 뒷편에는,

너무나도 많은 상처와 멍에를 짊어진 한 명의 여자만이 있을 뿐이었다.

......

박을과 잘 되는 것을 도와달라고 했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만 본다면 박우리에게 할 만한 부탁이 아니었다.

박우리 자신도 성현아를 그렇게나 좋아하는데, 그 본인에게 다른 사람과의 연애를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다니. 모욕감이 들 정도로 굴욕적인 부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박우리는 화를 내지 않았다.

저것이 뜻하는 바가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기 때문에.

성현아는 자신을 옳아매는 그 '덫'을 역이용해 돌파구를 만들려고 한다.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이런 삶을 이제는 성현아도 원치 않게 되었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성현아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도움을 청했다.

'...왜 하필 나일까.'

모든 것을 들은 박우리가 한 생각이었다.

성현아가 왜 자신에게 부탁을 했는지, 그리고 자신은 왜 그런 부탁을 거절할 수 없는지, 모든 것이 의문이고 불명확하다.

박을과 잘 되게 도와달라는 그 말은 다른 의미를 내포한 말이었지만, 계획대로 끝까지 진행된다면 성현아는 박을과 잘 먹고 잘 살게 된다. 결국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돼버린다.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성현아를, 박을을 도와야 하는가?

사랑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잘 되는 것을 도와야 하는가?

......

몇 번을 생각해도 답은 똑같다.

도와줄 수 밖에 없다.

어쩌면, 성현아는 자신이 거절하지 못할 것을 알고 있기에 이런 부탁을 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맞다고 해도 박우리는 거절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박우리는 너무나도 유감스러운 남자이기 때문이다.

* * *

성현아와 방에서 나온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다가 의외의 인물을 만났다.

박을. 그리고 처음 보는 꼬맹이 하나.

둘의 분위기는 아무리 봐도 이제 막 떡치러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분명 박을은 성현아의 남자친구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을텐데. 어째서 이렇게 서슴없이 다른 여자와 모텔을 드나들 수 있는 거지? 성현아는 저런 정신나간 녀석에게 기대고 싶은 건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하지만 박우리는 내색하지 않았다.

저런 녀석이라도 일단은 성현아의 남친이니까. 그리고 성현아는 저 녀석에게 의지해서 어떻게든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니까. 내키는 대로 터치할 수는 없다.

박우리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지금 자신과 나온 성현아에 대해 설명했다.

어제의 그 추태를 해명하고 서먹함을 풀기 위해 자신이 불렀다, 맹세컨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등의 말을 늘어 놓았다.

박을이라면 지금 박우리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 얼추 짐작할 수 있다. 나름 오랫동안 알아온 친구니까. 그 말버릇이나 얼굴표정 등으로 현재의 심리를 유추할 레벨은 된다. 하지만 박우리는 그런 박을까지도 속여넘길 정도로 철저하게 연기했다.

아니, 박우리는 지금 자신이 연기를 한다고도 생각치 않았다. 정말로 이것이 사실인 마냥 자기 자신을 마인드컨트롤했다. 자신은 정말로 성현아와 이야기만 했다. 그 아픔과 상처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성현아와 섹스한 것 역시 '몸으로 이야기 한 것'에 불과하다. 박우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

박을과 꼬맹이까지 가세해서 네 명이 돌아다니게 됐다. 사과머리를 하고 있는 꼬맹이의 이름은 정소연이라고 했다. 박을의 옆에 달라붙어 있는 그 모습에서 박우리는 평소에 박을이 달고 다니던 섹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라는 생각을 했다.

술집에 들어서고, 자연스레 두 명씩 짝지어서 앉게 됐다.

성현아는 박을의 옆자리를 꿰찼고, 박우리의 옆에는 정소연이 앉았다.

지금이야말로 연기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성현아의 말대로 박을과 잘 되기를 도와야 하니까. 자신은 방관자의 입장에서 그 둘을 지켜보고 지원해야 하는 처지다.

그래서 박우리는 오버스럽다는 표현이 딱 좋을 정도로 정소연에게 달라붙었다. 

정소연이 떠먹여 주는 안주도 넙죽넙죽 잘 받아먹고, 그 특유의 유감스러움도 십분 발휘하여 방정맞은 이미지를 연출했다. 테이블 밑으로 손을 뻗어 정소연의 다리 사이를 매만지기도 하는 등, 박우리는 그야말로 '연기'를 했다. 정소연조차도 그런 박우리의 스킨쉽에 자신을 마음에 들어하고 있는 거라 생각할 정도로 모두를 속였다.

남우주연상을 받을만한 그 연기에 차질이 온 것은 성현아가 다른 테이블로 넘어간 직후였다. 자기 여친을 저렇게 넘겨버리는 박을에게 다시 한 번 화가 났고, 저런 행동을 하는 성현아에게도 씁쓸함을 느꼈다. 

처음보는 남자의 위에 올라타 딥키스를 하는 성현아는... 정말로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박우리의 눈에는 마냥 즐기는 것으로만 보이지가 않는다. 저렇게 즐기는 몸이 돼버린 성현아에 대한 안타까움만이 존재할 뿐이다.

아직까지도 박을은 그런 성현아를 끌어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화장실에 가려던 자세 그대로 멈춰 재미난 구경인 듯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다. 결국 참다 못한 박우리가 일어섰고, 성현아는 원래의 테이블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나도 화장실 다녀올께요."

성현아를 데리고 돌아오자, 정소연이 짧은 말을 던지고 홀랑 사라졌다. 덕분에 자리가 비어 박우리는 성현아를 자신의 옆자리에 앉힐 수 있었다.

"...흑."

성현아가 훌쩍이고 있다. 조금 전만 해도 다른 남자의 위에 올라타 떡치는 기분을 내던 성현아였는데? 하지만 박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데리고 와줘서 고마워. 하마터면 걔네들이랑 바깥으로 나갈 뻔 했어."

"도와주겠다고 했잖아. 넌 박을의 여친이어야 하니까."

지독하게도 씁쓸한 목소리. 

자신의 마음을 속이고 두 사람을 잘 되게 도와줘야 하는 자기 자신이 병신같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 자조적으로 들리는 박우리의 목소리에 성현아가 손을 뻗어왔다. 따뜻하고 보드라운 손바닥이 박우리의 뺨에 닿는다.

"...미안. 많이 힘들지."

"......"

"나 되게 나쁜년이지? 나 하나 편하자고 너 이렇게 힘들게 하고... ...그냥 없던 일로 할까...? 하기 싫다고 해도 난 아무 말도 안할꺼야..."

울먹이는 성현아의 목소리가 박우리의 정신을 되돌아오게 만들었다. 

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싶지 않아 도와주겠다고 한 박우리였다. 그렇게 다짐해놓고 이제와서 혼자 우울하게 궁상이나 떤다면, 도와주는 의미도 없을 뿐더러 성현아는 여전히 힘들어할 것이다.

뺨을 타고 흐르는 성현아의 눈물을 엄지손가락으로 스윽 닦아낸 박우리가 그것을 자신의 입술에 묻혔다. 그 작은 이슬마저도 성현아의 아픔처럼 느껴져 마음이 아련해졌다.

"...이렇게 너를 보는 것 만으로도 힘든게 싹 사라진다. 난 그런 단순한 놈이니까. 하하."

"......"

평소처럼 너스레를 떨려고 했다. 미안해하는 성현아의 부담을 덜어주려 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무언가였다.

......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기분좋은 감촉이다.

절대로 떼고 싶지 않은 성현아의 입술. 그리고 그것을 탐할 수 있는 자신 또한 억세게 운이 좋은 남자라 생각해 버린다. 바라보기만 했던, 말 한번 섞는 것도 힘들던 성현아의 입술을 가질 수 있으니까. 

"하아..."

슬쩍 입술을 뗀 성현아가 수줍게 미소를 짓는다.

그 웃음마저도 오로지 자신을 향해 있다는 것에 박우리는 또 한번 자신의 처지따위는 돌보지 않게 됐다. 저 미소라면, 저 입술이라면... 아무리 힘들어도 견뎌낼 수 있다고 다짐한다.

......

박을과 정소연이 돌아왔다.

성현아는 여전히 박우리의 옆에 있었기 때문에, 그 둘도 자연스레 반대편에 앉게 됐다. 둘이 무엇을 하고 왔을지 내심 신경쓰이는 박우리였지만, 지금이라면 잠시 관심을 꺼도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자신을 만져주고 있는 성현아의 손길에 온 신경이 쏠려있기 때문이다.

성현아는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 그것도 박을을 맞은편에 앉혀두고 말이다.

혹시라도 이것을 박을에게 들키게 된다면, 성현아 스스로 말했던 '박을과 잘 되는 것'은 물건너 갈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박우리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의 이 감촉이 너무나도 좋으니까.

세심한 듯 하면서도 격정적으로 만져오는 그 작은 손이

마치 자신을 향한 성현아의 마음같이 느껴져 박우리는 가슴이 뭉클해 졌다.

* * *

철컥,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 맞춰 박우리의 눈꺼풀이 슬쩍 열렸다.

방금 박을은 자신의 옆에 성현아를 올려두고 밖으로 나갔다.

성현아는 술에 취해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다.

"......"

박을의 속셈은 안봐도 뻔했다.

자신과 성현아가 뒤섞여 섹스하는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왜? 어째서?

성현아를 이렇게 굴리는 이유가 뭐지?

아무리 성현아에게 애정이 없다고 해도 다른 남자한테 던져버릴 정도로 싫은 건가?

그렇다면 왜 진작에 헤어지지 않고 달고 사는 거지?

박우리의 머릿속에 다시 한 번 자괴감이 들기 시작했다.

저렇게 정신나간 녀석이 성현아와 잘 되기를 바래야 하다니. 

"우응..."

안좋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성현아가 인상을 찌푸리며 웅얼거린다.

자리에서 일어난 박우리가 성현아의 목 언저리까지 이불을 덮어 주었다. 그리고는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는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줬다.

"...을아..."

잠꼬대처럼 들려온 성현아의 목소리.

애처롭게 들리는 그 목소리가 박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

역시 움직일 수 밖에 없다.

도와주겠다고 했으니까.

* * *

박을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지금 박을과 정소연이 넘어가 있는 방에서는 간간히 신음섞인 목소리가 튀어나오고 있다.

......

정소연인가.

박을을 쥐고 흔드는 여자가.

...저 여자만 없다면...

박을은 성현아에게 충실한 남자친구가 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박우리는 저도 모르게 풋 하고 웃고 말았다.

무슨 살인청부업자라도 된 마냥 누구만 제거하면 된다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밤새 기다려도 열릴 것 같지 않았던 문이 조심스레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박을의 모습이 보였다.

"...얘기 좀 하자."

성현아가 있는 방으로 건너가려던 박을을 불러 세웠다.

녀석의 얼굴이 엉망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라고 써 있다.

......

담배 두 개피를 연달아 피운 박우리는 조금 어지러운 기분을 느꼈다.

얼마만에 펴 본 담배던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어지럽던 마음 속이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는 기분이다. 이래서 애연가들이 담배를 못끊나 보다.

어느정도 마음을 가라앉힌 박우리는 차분힌 어조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박을이 저 방에서 정소연과 섹스하고 있는 동안, 자신도 성현아와 쾌락의 끝을 달린 것처럼 말했다. 그 밖에 여러가지, 사실을 과장하고 없던 것을 있는 것처럼 꾸며 말한다. 오로지 박을의 질투심을 유발하기 위한 발언이었고, 박을은 보기좋게 걸려들었다.

주먹을 날리는 박을의 모습에 박우리는 살짝 놀랐다.

어느정도 열 좀 받으라고 던진 말이었지만, 자신에게 주먹을 날릴 정도로 박을이 화를 낼 줄은 몰랐다. 박을이라면 박우리의 주먹이 어느정도인지 모를리가 없었고, 다른 건 몰라도 싸움에서라면 몇 수는 접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을 터다. 그런 것을 싸그리 무시하고 주먹질을 할 만큼 화가 난다는 소리렸다? 박우리는 실소를 머금었다.

박을이 바닥을 뒹굴었다. 제대로 카운터를 먹였으니 뇌진탕이 났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을은 일어났다. 비틀거리는 몸짓이 도로 주저앉을 것처럼 위태위태하게 보이는 데도, 다시금 주먹을 쥐고 달려든다.

......

박을의 주먹이 박우리를 맞추는 일은 없었다.

가만히 서 있을 뿐인데도, 박을은 어디가 잘못된 것인지 엉뚱한 방향으로 팔을 휘두르다 제 풀에 넘어지곤 했다.

박을의 움직임이 멈추고, 그 머리 위로 박우리의 말이 흘러나왔다.

"지금 나한테 달려든 그거, 잊지 마라. 그리고 니가 스스로 지켜내는 거야. 빼앗기기 싫으면."

......

박을에게 정신차리라는 투로 말한 것이지만, 이것은 박우리 자신에게 말하는 것이기도 했다.

성현아를 지켜낸다. 그리고 두 번 다시 빼앗기지 않는다.

박을이든, 윤성현이든.

"현아를 노리는 건... 아니다. 이건 나중에 얘기하자. 난 간다."

박을을 뒤로 하고 걸음을 옮긴다.

그 걸음은 이제껏 느꼈던 그 어떤 것보다 무겁게만 느껴진다.

성현아를 노리는 건... 윤성현이 아니다.

윤성현에게 성현아를 노린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현아는 이미 윤성현의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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