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 시작된 관계
“카미야 씨, 이것 좀 부탁해도 될까?”
“네.”
일하는 중에도 여태까지와 마찬가지로 변한 점은 하나도 없었다. 이런저런 업무를 맡느라 나름대로 바빴다. 단지 다른 점이 하나 있다고 한다면, 상사와 부하 직원 관계 말고 또 하나의 비밀스러운 관계가 더해졌다는 점이다.
두 사람의 비밀스러운 관계는 주말만으로 약속했다. 사복으로 근무하는 회사에서 옷을 벗는 일은 별로 없지만 만약을 위해서였다. 밧줄로 몸을 묶이면 흔적이 남는다. 이상한 소문이 퍼져도 곤란했다.
주말의 예정을 정하는 건 전적으로 문자, 전화는 별로 하지 않았다.
만나서 식사를 하거나 쇼핑을 하거나, 때때로 영화를 볼 때도 있었다. 바로 사오토메 씨의 방으로 이동하는 경우는 없었다.
‘평범한 연인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을 보며 항상 웃고 말았다.
사오토메 씨는 결박을 할 때를 제외하고 불필요하게 나를 만지거나 하지 않았다. 내 몸을 원한 적 따윈 한 번도 없었다.
사오토메 씨가 원하는 것은 묶을 상대. 결박 파트너. 나와 연인이 되고 싶은 게 아니다. 연인 취급을 받아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나도 모를 테니 그건 그것대로 다행이었다.
사오토메 씨는 항상 온화하고 자상하며 차분한 분위기가 감도는 사람이었다. 언젠가 반드시 멋진 애인이 생길 것이다. 그때는 역시 이 관계를 해소해야 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조금 쓸쓸했다.
사오토메 씨는 나의 소중한 파트너.
나의 소원을 들어준 그의 존재는 지금 내 마음 속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 ◇ ◇ ◇ ◇
“카미야 씨!”
“아, 안녕하세요.”
휴일에 만나서까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것도 뭔가 어색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것 말고 달리 어떤 인사를 하면 좋을지 몰라서 결국 항상 그 말을 입에 담고 말았다.
사오토메 씨도 딱히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으니 그렇게 인사해도 괜찮겠지.
“갈까?”
“네.”
이 관계가 시작된 지 이제 2개월 정도 될까? 주말뿐이니까 횟수로 말하면 열 번에도 못 미친다.
결박의 내용은 횟수를 거듭할수록 조금씩 과격해졌다.
예를 들어 손을 뒤로 묶인 채 상반신 전체에 밧줄을 두르거나, 다리를 접은 채 구속되거나. 묶일 때는 항상 옷을 입은 상태였지만 아무것도 입지 않은 피부로 밧줄을 느끼면 어떻게 될지 생각하고 말았다.
알몸으로 묶이고 싶다는 망상이 부풀어 갔지만, 두 사람의 관계를 망가뜨릴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서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묶여 있는 동안에 더 만져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 생각을 입에 담는 건 무서웠다.
“오늘은 말이지, 사진전이 있어. 거기 보러 가도 될까?”
“좋아요. 무슨 사진전이에요?”
“……그게 말이지, 결박 사진. 좀 보고 싶어서.”
나도 밧줄 모양을 생각하는 데 자극이 되니까──라고 말을 잇는 그를 보며 그런가 생각했다. 사오토메 씨 왈, 밧줄에 정답은 없다고 한다.
중요한 점은 파트너를 가장 소중히 다루는 것, 존중하는 것. 상대를 다치게 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인가 보다. 생명의 위험이 있을 법한 행위는 절대 하지 않는다. 그 점을 지키면 어떤 모양을 만들지는 묶는 사람의 자유.
“카미야 씨를 소중하게 생각하니까 카미야 씨가 싫어하는 짓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아.”
어딘가 쑥스러운 듯이 말하는 그를 보며 나까지 쑥스러워지고 만 건 처음 결박했을 때의 일이었다.
소중하다는 건 파트너로서 하는 말임을 알고 있지만, 그 말에 아주 살짝 설레고 만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광고하지 않았으니 사람도 별로 없을 거야. 여기 근처거든. 카미야 씨만 괜찮으면 말이지만.”
“네. 괜찮아요. 저도 보고 싶어요.”
미소로 대답하자, 그는 안심한 것처럼 기쁜 듯이 웃었다. 나는 그 표정을 귀엽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나보다 연상의 남자인데도 묶고 있을 때 이외의 얼굴은 굉장히 귀여웠다. 곤란하게도.
이렇게 귀엽다고 생각한 적이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업무 중에는 유능하고, 평소의 그는 귀엽고, 나를 묶고 있을 때는 멋지고 섹시했다.
그런 변화에 농락당하고 있는 사람은 나뿐일까? 혹시 나 말고도 본 적이 있는 여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주 살짝 답답해지고 말았다.
나는 가급적 생각하지 않도록 바로 잊으려고 했다.
사진전 회장은 그의 말과는 반대로 성황리에 사람들이 넘쳐서 놀라고 말았다. 그 점은 그도 마찬가지였는지, 놀라면서도 곧바로 나에게 ‘괜찮아?’라고 물어보면서 신경을 써주었다.
얼핏 보기만 해도 아는 사람은 없을 것 같으니 문제는 없을 것이다. 접수처에서 이름을 적고 회장에 발을 들여놓았다.
모든 사진이 선정적이고 배덕했다. 사진에 찍힌 여자 모델은 매우 예쁘고, 황홀해하고 있었다.
그 표정에 시선을 빼앗긴 사람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야기도 하지 않고 가만히 사진을 보고 있던 그도 마찬가지였을 터.
그렇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회장을 나왔을 때 나는 지금까지 그런 적이 없을 정도로 흥분한 상태였고, 그도 마찬가지로 어딘가 꿈결에 빠진 듯 달아오른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 ◇ ◇ ◇ ◇
“아프면 바로 말해줘.”
“네.”
나의 몸에 신경을 써주는 점은 평소와 마찬가지였다. 나를 향한 눈동자만이 평소와 달랐다.
깃든 불이 뜨겁고 강렬해서 마음까지 묶이는 듯한 그런 느낌마저 들었다.
얇은 셔츠 위에 붉은 밧줄이 둘러쳐지기 시작했다.
마름모꼴로 묶는 형태로 부푼 가슴을 강조하는 듯 묶는 방법은 음탕하였으며, 내 몸을 외설적으로 보이게 했다.
시야로 들어오는 광경에 숨이 차올랐고, 몸에 휘감기는 밧줄의 감촉으로 열이 올랐다.
상반신을 다 묶은 그는 스커트에서 뻗어 나온 나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무릎을 세웠다.
“……평소와는 다른 자세로 할 건데, 괜찮을까?”
뺨에 닿은 숨이 뜨거웠다.
양쪽 무릎을 세운 단계에서 어떤 모습이 될지 나도 모르게 상상이 갔지만, 나는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양 무릎이 벌어진 채로 발목이 고정되더니, 밧줄이 허벅지와 종아리를 한꺼번에 감았다. 스커트가 젖혀졌으니 아마도 속옷이 그에게 보이고 말았을 것이다.
그게 부끄러워서 뺨이 더 뜨거워졌다.
시선을 마주치고 있을 수가 없어서 눈을 딴 데로 돌리자, 그가 한숨만 내쉬며 웃었다.
“……귀여워.”
“……시, 싫어요…….”
평소와는 달리 갈라진 목소리가 달콤하게 귀에 떨어졌다. 그것만으로도 내몰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날 너무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치로 물들어 있는 내 얼굴을 보이다니, 부끄러워서 견딜 수 없었다.
그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나의 몸을 순식간에 밧줄로 꾸몄다.
소파에 앉은 상태에서 양팔을 뒤로 묶인 나의 가슴을 강조하듯이 밧줄이 상체를 한 바퀴 돌았다.
두 다리는 벌어진 상태로 움직일 수 없었다.
중요한 곳은 속옷으로 가려져 있지만, 그의 눈앞에 드러난 상태였다.
뜨거운 시선이 나의 몸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 놓이자, 몸속에서 뭔가가 넘쳐흐르는 듯한 느낌을 자각했다.
“카미야 씨…….”
“응…….”
“힘들어?”
그의 손바닥이 뺨을 누르기만 했는데도 육체가 움찔 반응해버렸다. 몸이 뜨겁고 어떻게 되어버릴 것만 같아서 호흡이 가빠졌다.
만져달라고, 그 입술에 닿고 싶다고, 그저 그렇게 생각했다.
고개를 젓고 사오토메 씨를 바라보자, 그의 목이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사, 사오토메 씨.”
“무척, 예뻐…….”
“부탁이에요……, 사오토메 씨. 만져주세요…….”
“뭐……?”
“부탁, 이에요, ……키스, 하고 싶어요…….”
낮에 보러 갔던 사진전이 뇌리에 떠올랐다. 사진 속 여자의 표정. 닿은 손끝에 어리광 부리듯이 몸을 바짝 가져다 대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모습.
나도 그런 식으로 만져주길 원했다.
원하듯이 몸을 들썩인 순간, 놀라서 얼굴이 빨개진 채 굳어 있던 그가 나의 어깨를 만졌다.
“……괜찮, 아?”
망설이듯 묻는 질문. 나는 필사적으로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까이 다가온 그의 뺨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해주세요, 사오토메 씨……. 부탁이에요.”
“……윽.”
거친 숨결을 느꼈다고 생각한 순간, 나의 입술은 막혔다.
그저 포개기만 하는 키스를 나눈 후, 입술의 위아래를 번갈아 가며 콕콕 쪼듯이 물더니 벌어진 입술 사이로 뜨거운 혀가 침입했다.
얽히고, 빨리고, 서로의 입술을 세게 문질렀다. 그리고 그가 잇몸 뒤쪽까지 정성스럽게 핥더니 혀를 빨아올리다 깨물자 온몸에 선정적인 느낌이 감돌았다.
입안에 고인 침을 삼키지 못해서 입가에 떨어져버렸다. 그 타액을 그가 손가락으로 살며시 닦았다.
“……카미야 씨.”
“응, 응, ……읏, 흐……읏.”
“……미안해. 이제 못 참겠어.”
어딘가 숨을 죽인 듯한 그의 목소리.
나는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정도로 어린애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