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 ] 흥분과 충돌 (2/9)

[ 2 ] 흥분과 충돌

“사오토메 씨 말이야, 일도 잘하고 멋있긴 한데, 남자 친구나 결혼 상대로 생각하기에는 좀 못 미덥지 않아?”

“아아, 그 마음 알아! 왠지 우유부단하달까, 좀 더 따끔하게 말해줬으면 할 때가 있어.”

여사원들은 악의 없이 말했다. 더 남자다운 사람이 그녀들의 취향일 것이다.

나는 못 미덥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너무 다정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일로 혼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주의를 받은 적은 있지만, 그마저도 다정한 말로 타일렀을 뿐이다.

그는 올해로 33살이라고 하며, 일도 잘 하고 멋있으니 그만큼 인기가 많을 텐데도 뜬소문조차 하나 없는 건 다정함이 이유일까?

애인이 생겼다는 소문도 들리지 않을뿐더러, 결혼한다는 소문도 전혀 들은 적이 없다.

“카미야 씨. 이거 부탁할 수 있을까?”

“네.”

“그 일 끝나면 점심식사 하러 가도 돼.”

“알겠습니다.”

일을 부탁받을 때마다 다정하고 온화한 미소를 지어주며 반드시 ‘고마워’라고 감사 인사를 해준다.

나에게는 존경하는 상사였던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 맞부딪치기 전까지는.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렀다.

제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얼굴을 앞으로 돌렸지만 이미 늦었을 것이다. 그는 나의 얼굴을 또렷하게 보고 말았다. 그도 틀림없이 나를 ‘카미야 치사토’로 인식했을 것이다.

행사장에 비어 있는 자리는 이미 내 옆자리밖에 없었다.

즉, 그는 내 옆에 앉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어쩌지? 도망쳐야 할까? 손에 넣은 기회를 버리게 되지만 지금 이곳에서 일어나서 도망쳐야 할까?

하지만 모처럼 결박술을 볼 수 있는데. 이런 기회가 두 번 있을지 어떨지 모르는데.

상사에게 들켰다는 혼란과 이곳에서 도망치면 이제 결박을 실제로 볼 수 없을 것이라는 마음이 자리에서 일어서기를 주저하게 만들고 있었다.

“손님. 슬슬 시작하니 자리에 앉아주세요.”

“아, 네…….”

뒤에서 그런 대화가 들렸고, 나의 어깨가 작게 움찔했다.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나는 옆에서 기척이 느껴지자 얼굴을 들지 못하고 숨을 삼켰다. 옆에서도 당혹스러워하는 기척이 났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도망치고 싶지만 도망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서로 싸우고 있는 지금, 옆 사람의 얼굴을 볼 용기가 날 리가 없었다.

나는 무릎 위에 얹은 손을 꽉 쥐었다. 이제 끝났다는 마음이 치밀어 올랐다.

그때, 옆에 앉은 그가 어렴풋이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사오토메 씨가 나에게 말을 걸려고 한다는 사실을 본능으로 알 수 있었다.

잠깐만, 지금 말을 걸면 곤란하단 말이야. 그럴싸한 핑계가 떠오르지 않았다.

숨결마저 들린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입술을 꽉 깨문 순간, 정말로 갑자기 툭 소리가 나더니 조명이 일제히 꺼졌다.

새까만 어둠 속에서 흐릿하게 비치는 어슴푸레한 빛.

빛이 무대 중앙만을 비추고, 천장에 설치된 금속만이 빛나고 있었다.

이벤트 연출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지금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하얀빛이 색을 변화시키며 분홍색에서 빨간색으로 물들어 갔다.

그러는 사이에 무대 전체를 붉은 조명이 감쌌고, 붉은 색 쥬반(일본 옷 아래에 입는 속옷_옮긴이)을 입은 한 여자가 무대 중앙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그 순간, 나의 심장은 크게 쿵쾅거리며 그 여자에게 시선이 고정되었다. 이미 옆에 있는 사오토메 씨는 의식의 바깥으로 쫓아낸 상태였다.

반대쪽 무대 끝에서 검은 옷을 몸에 걸친 남자가 걸어왔다. 팸플릿 사진에서 본 결박사였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삼노끈을 바닥에 떨어뜨리더니, 여자의 손을 잡고 자기 쪽으로 바싹 당겼다. 여자는 반항하지 않고 그에게 다가섰다.

어깨를 어루만지는 결박사의 손이 여자가 입고 있는 쥬반에 살짝 주름을 만들고 있었다. 여자는 눈을 굳게 감고 있다. 희미하게 벌어진 입술이 지독하게 선정적으로 보였다.

결박사가 밧줄을 하나 손에 집더니, 구부려서 두 겹으로 만들었다.

밧줄이 여자의 몸에 닿았고, 그 몸에 쓰윽 감겼다.

밧줄은 가슴 위를 한 바퀴 돌아 뒤로 넘어갔다. 아마 뒤에서 묶었을 것이다. 금세 앞으로 넘어온 밧줄을 가슴 사이에 끼듯이 둘리더니, 또다시 뒤로 돌아갔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강조된 유방의 모양을 보며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고 있었다.

손을 뒤로 넘긴 채 구속된 여자의 표정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괴로움에 일그러진 표정에 관능의 색이 섞였다. 토해 내는 뜨거운 숨결이 쥐죽은 듯 조용한 행사장 안에 울려 퍼졌다. 내 심장 소리가 귀 뒤쪽까지 울리면서 어딘가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결박사는 등을 쭉 뻗은 채 묶여 가는 여자의 몸을 조이며 뒤에서 손을 묶은 밧줄 끝을 둥그렇게 만들더니, 천장에 설치된 금속 몸체에 달았다.

그 순간 여자의 몸은 위에서 당긴 것처럼 들려 올라갔고, 발꿈치가 살짝 떴다.

입술에서 새어 나온 목소리는 요염함을 머금고 있었다.

여자의 몸이 쥬반의 자락을 올리는 남자의 손으로 인해 떨렸다. 매달린 몸은 조금씩, 조금씩 손가락을 종아리에서부터 위로 향해 미끄러뜨리고 있는 남자의 손으로 인해 흔들렸다.

들춰진 쥬반 위에서 삼노끈을 감자 그녀의 아름다운 다리가 드러났고, 접힌 무릎과 붙이듯이 발목까지 밧줄로 고정하자 그녀의 한쪽 다리가 공중에 떴다.

“하, 아앗…….”

이벤트 회장에 울려 퍼지는 관능적인 음색. 한숨 같은 목소리. 어딘지 기품마저 느껴졌다.

만들어진 목소리가 아님을 본능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정말로 묶여서 쾌락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심장이 아플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고, 그 광경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리고 동시에 나의 마음은 ‘부럽다’라는 솔직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응…….”

남자가 나머지 한쪽 다리를 들어 올리더니, 웅크려 앉은 자신의 허벅지 위에 얹었다.

발목에 몇 겹이나 감긴 삼노끈. 하얀 피부가 두드러져 보였다.

고정된 발목에서 이어진 밧줄은 그대로 두고, 이번에는 허벅지에 다른 밧줄을 하나 감았다.

그 밧줄은 발목에 고정된 밧줄과 이어지며 그대로 천장에 달린 쇠 장식에 고정되었다.

여자의 몸은 공중에 떠서 흔들리고 있었다.

밧줄이 중력에 의한 무게 때문에 여자의 몸을 파고들었다. 쥬반 밑에 속옷을 입고 있지 않았는지, 묶여서 밖으로 튀어나온 봉긋한 가슴 한가운데에 젖꼭지가 서 있는 모습을 알 수 있었다.

몇 번이나 침이 목을 타고 떨어졌다. 입안이 바짝 말라서 혀로 마른 입술을 가만히 핥고 있었다.

나도 이런 식으로.

이런 식으로 묶여보고 싶어.

다정한 손놀림으로 밧줄 위에서 훑어주었으면 좋겠어.

자신을 묶고 구속한 결박사와 눈을 마주친 여자는 그에게 녹아내릴 듯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미간에는 깊은 주름이 졌고, 입가는 희미하게 벌린 채 괴로운 목소리를 흘리고 있는데도, 그 눈동자에는 황홀한 정열이 깃들어 있었다.

◇  ◇  ◇  ◇  ◇

회장에 조명이 켜지며 밝아졌는데도 나는 좀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정도로 결박 쇼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눈으로 본 광경의 인상이 너무나도 강렬했고, 격렬하게 울리는 심장 소리가 너무나도 컸던 나머지 주위 사람들이 회장에서 나간 것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심장은 끊임없이 두방망이질 쳤고, 숨 쉬기가 조금 힘들었다.

머릿속에는 방금 전까지 눈앞에서 펼쳐졌던 광경이 남아 있었다.

꽁꽁 결박된 여자의 몸. 상대를 향한 시선.

쥬반과 함께 피부를 파고든 붉은 밧줄. 괴로운 듯한 한숨에는 쾌락의 색이 섞여 있었다.

양쪽 유방을 강조하는 듯이 얽어맨 밧줄은 오뚝 선 그녀의 유두를 쥬반 너머로도 확연하게 알 수 있도록 쥐어짜 내고 있었다.

다리를 구속하는 밧줄은 붉게 물들었고, 파고드는 밧줄은 하얀 피부를 한층 더 요염하게 보이게 했다. 그 모습은 꽃으로 장식된 것 같았다.

내가, 만약 내가 그 사람이었다면.

묶여 있던 그 여자였다면 그런 식으로 황홀한 표정을 지었을까?

그런 식으로 묶이면 쾌락을 느낄까? 몸이 떨릴 만큼,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흘려버릴 만큼 심연에 떨어져 갈까?

시험해보고 싶다. 묶여보고 싶다. 그런 식으로 느껴보고 싶다.

나는 묶인 모습을 보는 시선에 뺨을 붉게 물들이며 괴로움에 떨면서도 열기가 깃든 눈빛을 띠게 될까?

상상한 순간, 몸에 커다란 떨림이 스치며 확 뜨거워졌다.

“카미야 씨.”

“……읏. ……아.”

누가 말을 걸자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와 동시에 사오토메 씨의 존재를 떠올렸다.

“……괘, 괜찮아? 철수하는 것 같으니 슬슬 나가야 돼.”

“……윽!”

나는 걱정하는 듯한 목소리를 듣고는 수치심으로 뺨이 뜨거워졌다. 옆에 상사가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니. 하필이면 결박당하는 여자에게 넋을 잃고 흥분한 모습을 그대로 내보이고 말았다.

또다시 돌아온 거북한 마음은 아까보다 몇 배나 커졌다. 나는 그가 재촉하는 대로 함께 행사장을 나가고 말았지만, 어떻게 해야 좋을지 전혀 몰랐다.

빌딩 밖으로 나간 사오토메 씨와 나는 둘이서 멍하니 서 있었다.

아니, 어떻게 할 게 아니라 입을 막아야 해. 결박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동료들한테 얘기라도 하면 회사에 가지 못하게 된다.

내가 사오토메 씨를 힐끔 올려다보자, 그도 곤란한 듯이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사오토메 씨는 멋있는 데다 일도 잘한다. 게다가 다정한 사람이다. 너무 다정한 탓에 여사원들로부터 ‘못 미덥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사람.

갑자기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친 나는 침을 삼켰다.

거꾸로 말하면 지나치게 다정한 사람이니까 ‘아무 말 하지 마세요’라고 절박하게 부탁하면 말하지 않고 있어주지 않을까?

내가 애원하면 이 사람은 분명히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민감하게 헤아리고 배려해주는 사람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적으로 만난 적은 오늘이 처음이지만, 지금 눈앞에서 망설이며 곤란해하고 있는 사오토메 씨는 분명히 사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오늘 일을 말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부탁해야 좋을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다가 깨달았다. 그도 그 쇼를 보러 온 것이다.

혹시 나와 마찬가지로 결박 세계에 흥미가 있다고 한다면? 나와 마찬가지로 빨려 들었다고 한다면?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

“……저기, 사오토메 씨!”

“……아, 음, ……무, 무슨 일이지……?”

“지금 시간 되세요?”

내가 시간이 있냐고 묻자, 그는 살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