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6. 초보 운전자의 실수 (1)
“티, 팀장님……?”
‘뽀뽀 사건’이 일어난 직후, 현재는 잠시간 패닉 상태에 빠졌다.
이 여자가 방금 나한테, 뽀뽀를 한 거야? 나한테?
심장이 터져나갈 듯 쿵쾅거렸다. 팀장이라고는 하지만 은수도 결국엔 여자였다. 그것도 평소 마음에 두었던 여자.
원래 같았으면 쾌재를 불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제 품에 가녀린 여체가 안겨 있다는 것을 실감하자마자, 누군가 뇌에 노크라도 한 것처럼 현실이 피부로 와 닿았다. 이런 자세는 누가 보면 오해하기 십상이었다. 혹시나 아직, 둘의 사이를 아는 사람이 주변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데.
예를 들면 서지훈 팀장 같은.
“……아이, 씨.”
뽀뽀를 한 건 그녀일지 몰라도, 술에 취한 사람이 뭘 알고 했겠는가. 오히려 자원해서 데리고 나온 건 저였는데.
그녀에게 민폐를 끼칠 순 없었다. 그 생각에 이르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잔뜩 설렜던 마음을 밀어 넣었다. 뽀뽀고 뭐고, 얼른 그녀를 귀가시키는 게 급선무였다.
그러나 상사, 게다가 술까지 취한 여자를 부축해서 나오는 건 난생 처음이었다.
패기 있게 데려다주겠노라고 선언하기는 했는데, 막상 나와서 보니 어찌해야 할지 감이 서지 않았다.
그녀의 손목에 걸린 핸드백을 뒤져 지갑이나 핸드폰 같은 걸 찾아볼까 생각도 했다. 그런데 감히 남의 물건에 허락 없이 손을 대는 것도 실례 같아서 또한 망설여졌다.
이렇게 난감할 데가.
그녀는 어느새 저에게 기대 새근새근 잠이 들어 있었다. 현재는 계속해서 쉽사리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굴렸다. 잠시 뒤, 결국 그는 제 기준에서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결론을 냈다.
‘이렇게 인사불성이라면, 차라리 어디 들어가서 술이 좀 깨길 기다린 뒤 그때 집을 여쭤 보고 데려다드리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래. 지금 상황에선 그것 말고는 다른 답이 없었다. 안 그럼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는 것을.
하는 수 없이, 잠에 빠져든 은수를 힘껏 고쳐 안은 현재는 일단 눈앞에 보이는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 * *
“어…….”
이걸 어떻게 여는 거더라.
잠시 고민한 현재가 어색하게 카드키를 문 앞 센서에 가져다 대자 문이 열리는 경쾌한 효과음이 흘러나왔다. 이어 안쪽 벽에 키를 꽂으니 전기가 통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며 어둑어둑한 방 안이 환해졌다.
은수를 부축해 낑낑거리며 방으로 들어온 현재는 그녀를 침대에 조심스럽게 뉘였다. 옆에 있던 의자에 털썩 앉은 그가 방 안을 황망히 둘러보았다.
깔끔하지만 모텔 티가 나는 벽지, 테이블에 가지런히 놓인 비품, 콘돔.
저걸 보니 더더욱 미쳐 버리겠다. 자신이 한 선택임에도 입성하자마자 후회가 들었다.
“하…… 진짜 돌아 버리겠네.”
사실 모텔은 전혀 생각지도 않은 곳이었다.
편의점에서 숙취 해소제와 물 등을 사 가지고 나온 뒤 어찌할지 몰라 거리를 방황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안 그래도 기온이 뚝 떨어진 겨울 날씨인데 밤까지 겹쳐서, 추위를 탄 은수가 자꾸만 현재의 품으로 파고들려 했다.
“으으음, 추어…….”
“……예? 이제 좀 정신이 드세요? 집에 모셔다 드릴까요?”
“…….”
“팀장님. 팀장님?”
그러고선 또 대답이 없다. 취해도 단단히 취했네.
난처해진 현재는 당장 은수가 좀 쉴 수 있는 곳, 조금이라도 따뜻한 곳이 없을까 떠올려 보려고 애를 썼다. 알코올로 인해 둔해진 머리가 답답했다.
그렇게 발을 동동 구르던 그의 눈에 들어왔던 게,
“케이…… 모텔.”
바로 휘황찬란한 모텔 간판이었다.
모텔은 대학 때 이후로 참 오랜만이었다. 호기심에 사방으로 널뛰던 눈길이 마지막에는 침대에 누워 곯아떨어진 팀장에게 가 닿았다.
여자 친구와도 몇 번 와 본 적 없는 곳인데, 하필이면 팀장님과 함께 여길 오게 되다니. 아까 괜히 자원했었나 하는 후회조차 밀려오려고 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데려갔을 상황을 생각하면 솔직히 그게 더 싫었다. 아무 흑심 없는 저도 이렇게 힘든데,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왕 이렇게 된 거, 이미 물은 엎질러졌어. 이제 기다리는 수밖에.
현재는 힘껏 조여 놓았던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이제야 자신을 옥죄던 긴장이 조금은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현재는 이후 자신이 해야 할 행동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늦어 대실이 안 된다는 말에 숙박비를 냈으니, 어느 정도는 맘 놓고 자게 놔둬도 될 것 같긴 했다.
그래도 최대한 일찍 깨워 드린 다음, 편의점에서 사 온 숙취 해소제를 드리고, 취기가 좀 가시면 택시를 태워 보내 드려야지. 깔끔하게. 왜 이곳으로 오게 된 건지 충분히 해명도 하고.
“…….”
그래, 그럼 될 것이다.
생각을 마친 그가 홀가분하게 외투를 걸어 놓고는 테이블에 딸린 의자에 앉았다.
은수는 한결 밝은 표정으로 침대 위에 곤히 잠들어 있었다. 주목적이야 어떻든 간에, 이곳도 그냥 사람 자고 가라고 만들어진 곳 아닌가. 나름 괜찮은 판단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추운 곳에 있다 따뜻한 곳에 들어와서일까. 그도 덩달아 몸이 노곤해지며 잠기운이 몰려왔다. 꾹꾹 눌렀던 취기가 이제야 올라오는 모양이었다.
눈앞의 커다란 침대는 은수뿐만 아니라 그에게도 너무나 유혹적인 것이 분명했지만,
“…….”
현재는 그것을 애써 무시하며 의자에 몸을 삐딱하게 뉘였다.
이대로 조금만 참자. 조금만.
거의 도를 닦는 심정이 된 그는 잠을 쫓기 위해 억지로 폰을 손에 들었다.
* * *
얼마쯤 지났을까. 불편한 잠자리임에도 꿀맛 같은 잠에 솔솔 빠져들려던 때였다.
“으음…….”
침대에서 들려오는 신음 소리에 퍼뜩 잠이 깬 현재는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잠에서 깬 은수가 머리를 벅벅 긁어 대고 있었다.
그는 얼른 용수철처럼 의자에서 튕겨 나와 은수에게 다가갔다.
“팀장님, 정신이 좀 드세요?”
“…….”
“팀장님?”
“……물. 물…….”
여자가 목이 탄 듯 쉰 목소리로 물을 찾아 댔다.
아, 물.
현재는 편의점 로고가 그려진 비닐봉지에서 얼른 생수를 꺼내 은수에게 건네주었다.
은수는 그걸 받아 들자마자 꼴깍꼴깍 하는 소리를 내며 단숨에 한 병을 비웠다.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지 갈증이 엄청났던 모양이었다.
이제 좀 술이 깬 것일까?
아까 전 뽀뽀는 너무나 강렬한 것이었다. 그녀가 아직 술이 완전히 깨지 않은 이상, 언제 또 그런 일이 발생할지 몰랐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다시 긴장 상태에 돌입한 현재는 은수의 눈치를 살피며 그 모양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하아…….”
빈 생수병을 침대 위에 대충 탁, 하고 내려놓은 은수가 그제야 저를 쳐다보고 있는 남자를 의식했다.
‘이게…… 누구지?’
게슴츠레하게 뜬 눈을 통해 희미한 남자의 인영이 들어왔지만, 술기운 탓에 그가 누군지 분간이 안 되었다.
그녀는 한참 전에 연결이 끊어져 버린 머릿속 하이퍼링크를 억지로 연결시키는 중이었다.
가만 있자, 저렇게 머리를 올린 남자가 누가 있더라……. 어…….
혼자 중얼거리며 생각하던 은수가 어떤 생각에 이르자 별안간 눈을 홉떴다.
잠깐, 잠깐만.
설마, 서지훈?
‘적당히 마시고 가요.’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남자의 얼굴 위로, 요주의 인물 서지훈의 얼굴이 덧입혀졌다. 정신도 제대로 못 붙잡은 주제에 의심은 곧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 외에는 없었다. 자신을 이렇게 쳐다볼 만한 사람은.
저건 서지훈이야. 확실해. 틀림없어.
그런데, 서지훈이 여긴 왜? 그렇게 매몰차게 가 버리더니.
그 생각을 하자마자 곧바로 분노가 일었다. 낌새가 이상해 바투 다가오는 현재에게, 은수가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오지 마.”
“……?”
“오지 말라고!”
“네? 아!!”
그리고 이어진 것은 뽀뽀 못지않은 충격을 불러왔다.
왜냐하면 그가 대답을 하기 무섭게, 그녀가 자신의 옆에 있던 베개로 악감정이 듬뿍 담긴 어퍼컷을 날렸으니까.
아니, 이건 또 갑자기 웬!
졸지에 이유도 모른 채 얻어맞게 된 현재는 삽시간에 토끼 눈이 되었다.
“티, 팀장님……? 왜, 왜 이러십니까!”
“그렇게 가 놓고! 네가 왜 여깄어! 왜! 왜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여자가 힘껏 악다구니를 질러 댄다.
“아니, 저, 그게!”
“빨리 안 꺼져? 가! 가라고!”
얼떨결에 여자를 피해서 방을 빙빙 돌았지만, 은수는 피하는 족족 그를 뒤따랐다. 현재는 뜬금없이 발휘된 여자의 괴력에 놀라며, 방어할 정신도 없이 얻어맞을 수밖에 없었다.
하는 말을 봐서는 자신을 누군가로 착각하는 것 같은데, 그래도 이 상황이 100퍼센트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잠시 뒤, 결국 현재의 머리를 거지꼴로 만들고 나서야 펀치는 끝이 났고, 힘이 빠진 은수는 씩씩거리며 베개를 옆으로 집어 던졌다. 마침내 휴전이 찾아온 듯했다.
이제는 피하지 않아도 되겠지?
현재는 여전히 화가 나 있는 듯한 은수의 눈치를 살살 보며 천천히 그녀의 옆에 앉았다.
“팀장님, 저 도현재입니다. 알아보시겠어요?”
“…….”
흐느적거리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씩씩. 아직 착각 중인가 보다. 술 깨신 뒤에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하실지 볼 만하겠네.
얻어맞은 부위가 생각보다 꽤 아팠지만, 답지 않게 멍청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 때문에 현재는 웃음이 나왔다.
대강 연애 문제인 것 같긴 한데, 실연을 하셨나?
여러모로 여자의 새로운 면을 많이 발견한 하루였다. 그러나 그 모든 게 연애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입술 끝이 썼다. 위로 같은 걸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가 퍽 다정하게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신지는 몰라도…… 그렇게 나쁜 놈이라면 잊어버리세요.”
“…….”
“세상에 널린 게 남잡니다. 뭐, 물론 저도 그런 남자들 중 하나지만.”
“…….”
“팀장님 같은 분은 훨씬 더 좋은 남자분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
“멋진 여자시잖아요, 팀장님.”
실은 이건 위로가 아니라, 속에서부터 우러나온 진심이었다. 좋아할 가치가 있는 여자, 존경할 이유가 있는 여자. 현재가 보기에 민은수는 충분히 사랑 받아 마땅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현재는 문득, 잔뜩 희미해져 있던 여자의 표정이 뭔가 또렷해졌다고 느꼈다. 뭐랄까. 꼭, 감동한 듯한 얼굴.
이젠 좀 정신이 드세요? 하고 물어보려던 그때, 은수의 손이 현재의 느슨한 넥타이를 휙 잡아챘다. 그리고,
‘……!’
갑자기 말랑한 무언가가 현재의 입술에 와 닿았다. 이게 뭔가, 하고 생각하자마자 깨달았다.
뭐긴 뭐야. 입술이지! 그의 눈이 순식간에 두 배로 커졌다.
뽀뽀 따위는 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건 도저히 수습도 불가능한 접촉 사곤데!
현재는 당황한 나머지 은수를 밀어내 보려고 했지만, 술에 취한 여자의 힘은 생각보다 완강했다.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은수에게선 강한 술 냄새가 났지만, 믿을 수 없게도 그게 역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유를 알 수 없는, 기분 좋은 향기가 풍겼다. 그러면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정말로…….
달콤했다.
여자를 제지하는 현재의 팔에 슬슬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은수의 리드로 시작된 기나긴 입맞춤이 이어지고, 넥타이를 꼭 쥐고 있던 손은 어느새 현재의 목덜미를 감싸 부드럽게 잡아당겼다. 팔팔 뛰는 그의 동맥 위로 차갑고 조그만 손의 감촉이 느껴졌다.
지옥 불에 빨려 들어간 것처럼 아찔했다. 힘이 풀린 팔이 저도 모르게 여자의 허리를 당겨 안았다. 이미 통제받기를 거부한 몸은 고장 난 로봇처럼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은수의 부드러운 머리칼을 헝클인 그는 그녀를 안은 채 서서히 침대로 쓰러졌다.
항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