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6화 (116/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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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하니까 너무 좋다. 그치?”

“...응.”

“흐히. 우리 다시는 싸우지 말자! 준혁아, 사랑해~”

“...”

나도 사랑한다고 말해줘야 할 타이밍이다. 하지만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설이와 눈을 마주치지도 못했다.

모니터를 창밖으로 던지기 전, 영상 속의 마지막 속삭임. 모니터를 다시 사 온 후에도 결국 건너뛰어버린 그 부분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재생된다.

[아, 아아... 아앗...♡]

[빨리.]

[사, 랑...]

바들거리는 입꼬리를 숨기기 위해, 커피를 홀짝였다.

그때, 설이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김준영이 설이의 옆구리를 툭툭 건드리며 소곤거렸다.

‘야, 그거 해야지.’

‘아, 맞다.’

‘아 맞다? 준비 안 해왔어?’

‘해왔지! 그냥 잠깐 까먹은 거야.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데, 그걸 놓고 왔겠... 야아! 귀 핥지 말라고!’

설이가 김준영 새끼와 키득거리며 귓속말을 나눈다. 심지어 김준영은 설이의 귓불을 물어, 오물거리기까지 한다.

커피잔을 잡은 손이 절로 부들부들 떨려온다.

그때, 설이가 가방에서 곽티슈 절반 정도 크기의 상자를 꺼냈다. 반지 케이스처럼, 위로 깔끔하게 열리는 보관용 케이스다.

“자, 준혁아! 화해 기념 선물!”

“어?”

설이가 환한 미소와 함께, 내게 상자를 내밀었다.

“서, 선물?”

어느새 질투심에 떨려오던 손이 멈추고, 입꼬리와 광대가 바들거리며 위로 올라가려 한다.

연애 중, 처음으로 받는 선물.

내겐 과분할 정도로 예쁜 여자친구가 환한 미소와 함께 건네주는 작은 상자란... 이토록 마음을 녹이는 것이었구나.

‘...그래. 설이는 내 여자친구야.’

정말 별거 아닌 작은 상자지만,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스럽다.

상자의 잠금장치를 달칵 풀었다. 천천히, 뚜껑을 잡아 위로 올린다.

바로 이거야. 이게, 내가 바라 마지않았던 싱그러운 연애라...

“...어?”

물풍선?

“짜잔! 선물이 아니라, 콘돔이지롱!”

상자를 잡은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설이의 말대로, 상자 안에 든 것은 선물같은 것이 아니다. 콘돔이었다.

그냥 콘돔도 아닌, 물풍선마냥 정액이 빵빵하게 들어 있는. 게다가 겉은 알 수 없는 액체로 번들거리는. 겉표면에서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사용한 콘돔이었다.

“...”

안에 든 정액이 누구의 것인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흐히! 놀랐지!”

설이가 장난기 가득한, 사랑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나를 얄궂게 놀린다.

놀라지 않았다. 처음 이것을 본 순간, 뇌에서 콘돔이 아닌 물풍선이라고 인식했다. 여자친구가 다 쓴 콘돔을 선물로 줄 리가 없으니까. 일어날 리 없는 일이니까.

“우리가 그거 짜내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우리’가.

“준영이, 그거 싸려고 3일이나 정액 참았다니까? 거기다, 사정하려고 할 때마다 힘 빡주고 참아서, 3시간 동안이나 불알에서 끌어올렸어! 막판에는 준영이 진짜 침 질질 흘리면서 죽으려 했다니까? 내가 쪼일 때마다 ‘어우... 어우...’ 신음 내면서! 안 그래도 큰 귀두가 막, 터질 것처럼 부풀어서는...”

정말이다. 이 콘돔은 직접 듣기 전까지는 콘돔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빵빵했다. 내 주먹 세 개는 뭉쳐놓은 것 같은, 콘돔이 아니라 물풍선 수준이다.

“나도 진짜 엄청 세게 쪼였어! 오죽하면, 준영이가 자지 끊어질 것 같다고 하더라! 흐히!”

개처럼 엎드린 설이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바들바들 떨며 구멍은 쪼이는 장면이 머릿속에 재생된다. 상상 속에서조차, 그 구멍을 억지로 벌리고 들어간 물건은 내 것이 아니었다.

“뺄 때는 또 어땠는지 알아? 나, 그거 짜낼 때 너무 세게 쪼여서, 마지막에 구멍에 경련 왔잖아. 근육을 너무 세게 쓰면 쥐나는 것처럼! 그래서, 준영이가 자지 빼낼 때 자지 너무 꽉 물고 있어서, 콘돔은 안에 남은 채로 자지만 빠져나갔어. 콘돔에서 귀두 빠질 때, 쭉 늘어난 콘돔이 타악! 하고, 내 구멍 때리더라! 흐히, 웃기지!”

“너 경련 와서 짐승처럼 울어대는 게 진짜 레전드였는데. 그 와중에도 구멍은 꽉꽉 쪼이고.”

“아, 그 얘긴 하지 말라고오!”

“진짜 개꼴리더, 아악!”

“씨이, 근육밖에 없어서 꼬집기도 힘드네. 아, 그리고 그 콘돔, 입구가 많이 늘어졌지? 준영이가 하도 많이 싸서, 배 안에 들어 있는 콘돔 안쪽이 내 구멍보다 커져버렸거든. 그래서 빼낼 때, 하도 세게 잡아당겨서 늘어진 거야!”

“풀렁, 하고 나오는 게, 꼭 땅에서 감자 끄집어내는 것 같더라.”

“아, 자꾸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고오!”

“뭐야, 자기 입으로 자랑하듯 말해놓고. 창피해하는 포인트가 대체 어딘지 모르겠네.”

“으유! 맨날 여자애들한테 장난만 치니까 그렇게 여자 맘을 모르지! 좀 섬세해져봐!”

눈앞의 정액 물풍선과 끔찍한 제조 과정 이야기에 정신없는 와중에도, 한 가지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영상에서는... 콘돔 안 썼잖아. 그냥 후장에 쌌잖아.’

어차피 임신위험 없는 구멍이니까.

그런데, 이건 왜 쓴 거지? 단순히 나를 놀리려고? 정말 그 목적 하나 때문일까?

‘아까 말할 때... 한 번도 항문이라고 언급 안 했어. 계속, 구멍이라고 했어.’

콘돔의 목적은 명백하게, 피임에 있다. 항문으로 할 때는 콘돔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콘돔은... 다른 구멍에 쓰는 물건이다.

집에서 봤던 영상들이 다시 떠오른다. 수십 시간이 넘도록 시청했던 기억들이 재생된다.

다양한 체위가 있었고, 그 때문에 항상 앞구멍이 보이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카메라를 등진 채 후배위를 하면... 김준영의 두꺼운 골격과 근육에 가려, 설이의 가랑이는 보이지 않았다.

너무 많은 상상이 떠오른다. 물론, 정말로 나를 골리기 위한 목적만으로 콘돔을 사용했을지도 모르지만... 자꾸만, 사고가 최악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목구멍과 입이 바들바들 떨린다. 물어봐야 한다.

왜 장난에 정색하냐며 또 화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물어봐야 한다.

“이, 이거... 어느 구멍에... 쓴 거야...?”

그 말에, 설이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내 쪽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흐히.”

장난기 서린 미소를 짓는다.

“글쎄... 어디일까...? 히.”

“...”

끔찍한 대답이다.

속이 울렁거리며 사고를 방해해, 저게 장난인지 진담인지 판별되지 않는다.

윤설은 수정으로 인해, 고준혁의 이러한 반응이 그저 ‘장난에 즐거워하는 모습’으로만 보였다. 남자친구와의 재밌는 장난에, 자꾸만 히죽히죽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김준영은 고준혁의 상태가 한없이 위태로움을 알아챘다.

‘저거 진짜 위험해 보이는데.’

정말로, 표정이 심상치 않다. 어딘가 무너지려는 모습이다.

‘벌써 망가지면 곤란하지.’

브레이크를 살짝 걸어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윤설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

“야. 나 팬티 줘.”

“응? 아, 또 뭔 소리야아~ 브라도 아니고 팬티?”

옷 위로, 녀석의 유륜을 약하게 꼬집었다.

“흐히익!?”

“줄 때까지 이러고 있을 거야.”

G컵 젖가슴을 찹쌀떡처럼 주욱 잡아당겼다.

“아, 알았어, 알았어! 화장실 가서 벗어올게! 놔! 놔아!”

유륜을 놔주자, 늘어졌던 G컵 젖가슴이 풀렁! 되돌아갔다.

“씨이, 진짜! 너 집에 가서 두고 봐! 나도 자지 잡아당길 거야!”

윤설이 양팔로 가슴을 가린 채, 화장실로 뛰어갔다.

위태로운 얼굴로 바들바들 떨고 있는 고준혁에게 말해줬다.

“앞구멍 안 건드렸으니까, 걱정 마라.”

“...진짜?”

“진짜.”

그제야 새하얘졌던 고준혁의 안색이 조금이나마 되돌아왔다. 말뿐인 장담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안도가 되는 모양이다. 그만큼 정신이 오락가락 하고 있다는 거겠지.

아직 놈을 망가뜨리기엔 아깝다. 충분히 포인트를 더 뽑아먹을 수 있다.

‘이번 100일 이벤트에서는 버텨줄 수 있으려나?’

곧 윤설 고준혁 커플의 100일 기념일이다. 아주 짓궂은 기획을 준비해뒀는데, 버텨줬으면 좋겠다.

“에잇!”

뒤에서 날아온 팬티가 뒤통수를 탁! 가격했다.

“먹고 떨어져라! 변태!”

흘러내리려는 팬티를 낚아채, 코에 가져다댔다. 이렇다 할 냄새는 없다. 집에서 나오기 전에 뒷구멍 쑤셔준 다음, 같이 씻고 새 걸로 갈아입었으니까.

윤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내 어깨를 찰싹 때렸다.

“또 냄새 맡지!”

“보지 좀 씻고 다녀라. 냄새 좆되네.”

“뭐래~ 여기 오기 전에 속까지 씻겨준 사람, 너거든요? 냄새 안 나는 거 다 알거든요?”

그 말에, 고준혁은 또 움찔했다.

이건 이따 헤어질 때, 고준혁한테 줘야겠다. 이걸로 딸이나 치면서 멘탈 케어 좀 하라지.

그 뒤로 고준혁은 썩 괜찮은 안색으로, 윤설과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100일 이벤트 때에는 저 표정이 또 와장창 깨져버리겠지. 내 통장 잔고는 늘어나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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