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86. 소꿉친구 조민지
“...그게 무슨 말이야?”
날카로운 기세에 털이 쭈뼛 선다.
저번에 몸에서 양아라 냄새난다고 추궁당할 때 이후로 처음 보여주는 살벌한 태세다.
“어... 그, 그게...”
“...”
말이 절로 더듬어진다.
“너, 너도 알다시피, 아라누나가...”
“아라누나?”
“아, 아라 씨가 아프시잖냐...”
“...”
계속 말해보라는 듯, 내 눈을 응시한다.
“그래서... 내가 간호를 해드려야하는데... 마, 마침 아라 씨가 살림실력이 기가 막히거든. 그래서, 병간호해주면서 겸사겸사 가정부로 고용도 해서, 그쪽 집안 사정도 좀 도와주면... 서로 좋고 하니까...”
“...병간호.”
“...응, 병간호.”
어디가아픈지, 왜 하필 간병인이 나인지 등은 물어보지 않는다.
수정으로 인해, 이미 당연한 사실이 되었으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어.”
“정말?”
“우리 신혼집에, 예쁘고 가슴 큰 여자가 들어온단 말이지.”
“...”
“마침 넌 일부다처제가 허가된 사람이고 말이야.”
“...”
변명을 하려했다.
그 누나 유부녀고, 나 그 누나한테 관심 없다고.
근데, 생각해보니 그건 너무 안일한 수일 것 같다.
양아라와 나는 이미 몇 번이나 몸을 섞었고, 그녀를 집으로 들이려는 목적에도 흑심이 포함되어 있다.
게다가 그녀는 이미 내 애를 임신했다.
언젠간 들킬 수밖에 없는 사실.
지금 거짓말로 넘어가면, 그때에는 반드시 조민지에게 배신감을 주게 되고 말 것이다.
무엇보다, 양아라는 시작에 불과하다.
수많은 여자들이 조민지와 공존해야 한다.
그때마다 한 명 한 명 구차한 변명으로 일관할 수는 없다.
‘여기서 담판을 지어야 해.’
무어라 말을 할까 고민하던 찰나.
조민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 사랑해?”
“어?”
“나를, 제일 많이 사랑해?”
조민지는 애써 덤덤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이전과 달리 일부러라도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것은, 내 사랑에 대한확신이 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이런 물음을 던져야 하는 작금의 상황 자체가 적잖이 괴로운지,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다.
“...응. 너를 제일 사랑해.”
나는 그런 녀석의 믿음과 인내에 보답할 의무가 있다.
모든 여자들 중, 유일하게 수정어플 없이도 나를 사랑해준 여자.
나는 조민지를 사랑한다.
“...그럼 됐어.”
녀석이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자지를 잘라버릴 듯 살벌하게 조여오던 보지도, 그제야 원래의 뭉근 쫄깃한 조임으로 돌아왔다.
“맘대로 해. 집안에 여자 들여놔도 돼. 이것저것 다 해도 돼. 대신... 나랑 제일 많이 있어. 나랑 제일 많이 자. 나를 제일 사랑해.”
“...응. 매일 너랑 있을게. 매일 너 따먹어줄게. 매일... 사랑한다고 해줄게.”
“...치. 바람둥이 새끼...”
말은 그리하면서도, 망설임 없는 내 대답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녀석의 귓가가 빨개지고, 보지가 파르르 떨리며 조여온다.
‘...역시, [상식 역전 세계]를 그렇게 쓰길 잘했어.’
[상식 역전 세계]로 인해.
사람들은 ‘김준영은 일부다처제를 이용할 수 있다.’ 가 아닌,‘김준영이 일부다처제로 살아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라고 생각한다.
아마 전자였다면, 조민지는 자신만 바라봐달라고 매달려왔을 것이다.
역시, 수정어플의 시스템은 정말이지 사용자 편의적이다.
“그냥 운동같은 거 하지 말지 그랬어... 다른 여자들 안 꼬이게.”
“킥킥. 이리 와.”
녀석이 꼼지락거리며 위쪽으로 기어올라왔다.
말 잘 듣는 고양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고, 입술에 쪽 소리나게 입맞췄다.
“고마워. 이해해줘서.”
“...혼인신고서에 도장 찍은 여자는 아직 없지?”
“응.”
“그것도 내가 제일 먼저야.”
“그래, 그래.”
“신혼집에도 내가 제일 먼저 들어갈 거야.”
“그래. 너, 나, 아라누나. 이 순서로 줄 서서 들어가자.”
“아니야. 너는 나랑 같이 들어가.”
“킥킥.”
녀석의 입술에 혀를 집어넣으며, 허리를 말아올렸다.
조민지가 작게 신음하며, 내 침을 받아먹었다.
“쭈릅, 후아아...♡ 빨리... 말해줘...”
“사랑해. 민지야.”
“나도... 사랑해...♡”
우리는 잠들 때까지 이불속에서 사랑을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