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83. 최면 연기 신지예
‘습... 와이어가 자꾸 튀어나오네.’
다 헤진 브라에서 삐져나온 와이어가 자꾸만 살을 찌른다.
속옷을 새로 살 때는 한참이 지났다. 문제는...
‘속옷은왜 죄다 더럽게 비싼 거야...’
한때 나름 유망한 아이돌 준비생이었으나, 이제는 누구도 못 알아볼 이름 석 자 신지예.
중졸에 이렇다 할 기술도 없는 편의점 알바생.
그런 내게 속옷값은 절대 만만한 가격이 아니다.
와이어에 찔려 쓰라린 부분을 매만지며 장바구니를 집어들었다.
‘오늘 세일하는 게...’
츄리닝의허벅지 안쪽에서 일어난 보풀들이 자꾸만 바스락거린다.
츄리닝 정도는... 살 수 있으려나?
‘...안 돼. 싸구려는 핏이 이상하잖아.’
후드티에 츄리닝 차림이라도, 핏은 포기할 수 없지.
내가 이래 봬도 아이돌 연습생이었는데, 후줄근하게 다닐 수는 없다.
백수 룩이라도, 핏이랑 옷걸이만 잘 받쳐주면 꾸안꾸 케쥬얼 룩으로 보일 수 있는 법이다.
오늘은 정육 코너에서 세일하는날.
진열대 앞에 서자마자, -60%라고 크게 적힌 딱지가 눈에 들어왔다.
‘...60% 세일해도 저 가격이야? 씨발, 돼지고기에 돼짓값을 받아야지 금값을 쳐 받고 있네.’
그렇다곤 해도, 60% 세일은 정말 잡기 힘든 기회다.
나는 투덜거리면서도 기분 좋게 돼지고기 팩을 집어들었다.
‘...오랜만에 고기 먹을 수 있겠다.’
기분이 썩 좋아졌다.
싱그럽게 흥얼거리며, 야채 코너로 향했다.
“...꿀꺽.”
싱싱한 꽃상추 한 봉지.
돼지고기에 없어서는 안 될, 쌈 채소.
‘씨발... 저 한 봉지 가격이 방금 산 고깃값이야...’
진짜 금값은 돼지가 아니라 야채였다.
대체 왜 이렇게 뭉텅이로만 파는 거야? 좆같게.
누가 한 끼에 상추를 저만큼 먹는다고.
‘근데 오랜만의 돼지고기인데... 쌈 채소가 없으면...’
침이 절로 넘어간다.
열악한 생활을 하고 있자니, 고기보다도 저런 싱그러운 채소가 더 귀하게 느껴진다.
‘...’
한참을 서서 고민하다, 결국 걸음을 돌렸다.
‘...씨발.’
좋아졌던 기분이 다시 좆같아졌다.
상추 한 봉지에 몇 분이나 서서 고민하는 내 꼴에,갑자기 울컥하고 설움이 북받친다.
눈가가 뜨거워진다.
걸음을 멈췄다.
‘그냥 사올까?’
내가 초라하긴 해도, 씨발 상추 한 봉지에 질질 짜는 건 아니잖아.
‘...’
하지만 다시 걸음을 되돌리지는 않았다.
와이어가 겨드랑이 아래를 아프게 찔러왔으니까.
‘돈 아껴서... 속옷... 사야지...’
찡해지는 코를 훌쩍이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래, 상추 한 봉지면 라면이 몇 개야.’
잘 생각했다.
고기에는 야채가 아니라, 라면이지.
애써 밝게 생각하며, 무거운 걸음을 옮겨, 라면 진열대로 향했다.
자꾸만 눈에 밟히는 야채 코너를 되돌아보면서.
그런데.
‘...와.’
듬직한 떡대 하나가 시선을 휘어잡으며, 가득 찬 장바구니를 들고 야채 코너로 향했다.
‘와... 등빨, 씨... 돌았네.’
여자라면 시선이 갈 수밖에 없는, 너무도 이상적인 뒤태다.
나만 그리 느낀 게아니었는지, 근처에 널린 유부녀들의 시선이 저 남자에게로 집중되어 있다.
‘엉덩이 존나 빵실하네. 스읍... 연습생 때 그 트레이너 오빠도 저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급락했던 텐션이 절로 되살아난다.
오빠, 앞으로 돌아서 가슴근육 한 번만 보여줘요!
나도 주위의 여성들처럼, 우두커니 서서 그를 지켜봤다.
그런데, 그의 옆으로 익숙한 얼굴의 여자가 달라붙었다.
‘...젖소 언니?’
이 근방에서는 유명한 여자, 젖소녀다.
정신 나간 가슴크기와 사근사근한 분위기로, 남녀 가리지 않고 시선을 앗아가는 매력적인 존재.
‘이야, 되게 보기 좋네.’
그래, 저 정도 되는 남자면 저런 언니 정도는 만나줘야지.
보기 좋은 그림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가만. 저 언니 유부녀 아니었나...?’
저녁 시간대나 주말에 저 언니를 마주칠 때는, 항상 옆에 나이 좀 있는남자가 있었는데.
분위기가 알콩달콩하니 좋길래, 당연히 남편이겠거니 했었다.
떡대 오빠 엉덩이에 시선을 고정한 채, 기억을 더듬던 도중.
남자가 뒤를 돌았다.
그런데.
‘...어?’
얼굴이 상당히 익숙하다.
‘...기, 김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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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진열대 사이로 몸을 숨겼다.
‘씨, 씨발, 쟤가 왜 여깄어!?’
이 근방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왜 갑자기?
‘...오늘도 비싼 옷이네.’
저번에 만났을 때가 떠오른다.
벤츠 매장에서 쇼핑을 즐기고 여유롭게 나오는 모습.
그리고 매장 유리창 안쪽을 헤벌레 들여다보고 있던 나.
‘...’
속이 울렁거린다.
좆같은 자격지심에, 기분이 질척해진다.
‘난... 씨발...’
같은 출발선에 서 있던 중학교 동창.
아니, 내가 한참 앞쪽에 서 있었다. 그때 나는 장래가 유망한 아이돌 연습생이었으니.
하지만 지금은...
까득.
절로 이가악물려, 살벌한 소리를 자아냈다.
애꿎은 김준영을 노려보다가, 스스로 눈을 깔았다.
‘그래, 쟤가 무슨 죄냐. 내가... 병신이지.’
초라하게 살아도 좋다. 쪽팔리게 살지는 말자.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다시 둘을 바라봤다.
젖소 언니가 그와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며, 그의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는다.
‘...둘이 무슨 관계지?’
이상하게, 둘에게서 눈이 떨어지지 않는다.
기분 좆같은 거랑은 별개로.
여자의 본능같은, 어떠한 감각이 자꾸만 저들을 주시한다.
‘되게 사이좋아 보이네.’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와 함께할 때보다도, 훨씬 알콩달콩하다.
‘좀... 음... 너무 가깝지 않나...?’
서로 다정하고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건 예삿일이다.
젖소 언니가 김준영에게 팔짱을 낀다거나, 김준영이 언니를 뒤에서 와락 껴안는다.
가슴이 완전히 부벼지거나 해도, 둘 중 누구도 그것에 반응하지 않는다.
‘연인 같기도 하고, 친남매 사이 같기도 하고...’
정말로 남매 관계인 거 아닐까?
‘그런 거라면 좋겠는데.’
진짜 세상 참 좁다고 감탄하며 내 쇼핑이나 마저 할, 그럴 상황이면좋겠다.
김준영이 젖소 언니와 얘기하다 말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는 언니 뒤에 서, 다른 이들의 시선을 가린다.
넓은 등이 그녀를 완전히 가렸지만, 내 쪽 방향에서는 둘의 옆모습이 보였다.
김준영은 진열대 뒤에 숨은 나를 알아채지 못한 모양이다.
김준영이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그리고.
“...!”
젖소 언니의 가슴을 콱! 움켜쥐었다.
‘미,미친!’
젖소 언니가화들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리고는 붉게 물들인 얼굴로 가슴을 출렁이며, 김준영의 가슴팍을 퍽퍽 때린다.
김준영은 그런 언니의 반응이 귀여운지, 킥킥대며 언니를 내려다봤다.
‘내, 내가 뭘 본 거지?’
젖소 언니... 유부녀잖아.
일부다처제면 저래도 되는 건가?
‘내, 내가 과민반응 하는걸지도몰...’
그럴 리가 없잖아!
일부다처제랑, 유부녀랑 불륜하는 거는 별개지!
‘저, 저 개새끼...!’
저 새끼가 여러 여자랑 사귀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불륜은 선을 넘었다. 넘어도 한참 넘었다.
민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게 겁먹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얇고 작은 몸으로 내게서 김준영을 감싸던.
‘순애보인 줄 알았더니... 돈 벌었다고 사람이 그렇게 달라지냐? 이 씨발새끼...!’
잠시나마 녀석에게 가졌던 자격지심이 씻은 듯 사라진다.
돈 많으면 뭐해. 사람새끼가 사람같이 살아야지!
잠시 젖소 언니와 꽁냥이던 저 새끼가 언니의 손목을 끌고 어디론가 이동한다.
나도 모르게, 그들의 뒤를 밟았다.
그 새끼와 젖소 언니가 인기척이 드문, 직원용 통로 쪽으로 들어갔다.
후다닥 따라들어가려던 나는 내 행동에 놀라 잠시 걸음을 멈췄다.
‘나, 나 지금뭐 하는 거야?’
이거... 미행인가? 스토킹?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다시 발을 움직였다.
멈출 수 없었다.
‘...민지한테 알려줘야 해.’
오지랖이다.
평생 민지랑 말도 별로 섞어보지 않았다.
민지는 오히려 내 껄렁한 모습을 무서워한다.
‘그래도... 어떻게 넘어가.’
초라하게 살아도 좋다. 쪽팔리게 살지 말자. 외면하지 말자.
그 작고 착한 아이가 더 이상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통로로 들어가, 벽 뒤에 몸을 숨겼다.
꺾여서 보이지 않는 통로 안쪽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찌걱,찌걱,찌걱,찌걱...
“하, 후아앗...♡ 지, 진짜아...!누가 보면 어쩌려고 이래!”
“그래서 외진 곳으로 왔잖아요.”
“흐웅, 하앗...♡”
무슨 슬라임같은 끈적한 물소리와 둘의 대화가 흐릿하게 들린다.
언니의 목소리는 이상하리만치 허덕이고 있다.
‘뭐 하는 거지...?’
이것만으로는 상황을 파악할 수 없어, 조심스레 고개를 슬쩍 내밀었다.
‘...!’
하지만 나는 곧바로 다시 고개를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다.
‘미, 미, 미, 미친! 미친! 씨바아알!’
심장이 마구 콩닥거리고, 몸이 급격하게 더워진다.
‘지, 진짜 미친 거 아니야!? 어떻게 세상에, 바, 밖에서...!’
거대한 가슴 한쪽을 덜렁 내놓고 있는 젖소 언니.
언니의 청바지 안으로 손을 넣어, 가랑이를 마구 휘적이고 있는 김준영.
그러한 광경은, 내게는 너무도 충격적이고 자극적이었다.
17살 즈음 연습생 숙소에서, 언니들은 취침시간을 어기고 꺅꺅대며 몰래 야동을 보곤 했다.
하늘같았던 연습소 규칙을 어기는 것은 내게 있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하지만 생리가 오기 전 즈음, 이불 너머로 희미하게 들려오는 음란한 스피커 소리를 들을 때에는, 참을 수 없이 가랑이가 간지러워지곤 했다.
허벅지를 비비적거리며 두 달에 한 번 꼴로 언니들 어깨너머로 훔쳐보던, 그나마도 너무나 작았던살색 화면.
그게 내 인생에 있어 야동의 전부였다.
‘미쳤어! 진짜 미쳤어! 완전 더러워! 변태새끼! 변태새끼!’
지진이라도 난 듯 콩닥거리는 심장소리가 머릿속을 울린다.
급격히올라오는 열기에, 목덜미에 땀이 찬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나는 이미 고개를 빼꼼 내민 뒤였다.
찌걱,찌걱,찌걱,찌걱,찌걱...
“쪼옵, 쫍... 하아... 우리 애기 태어나면 어떡해요? 이렇게 맛있는 누나 가슴, 내 건데...”
“흐우으...♡ 어차피 애기 혼자서는 이거 다 못 먹어... 오른쪽은 우리 준영이 걸로 항상 남겨둘 테니까, 걱정 마. 응?”
“그래요? 그럼 이쪽도 마저 벗어봐요. 애기 꺼 훔쳐먹어야지.”
“그, 그러지 마아...!”
‘애, 애기...? 애기!? 지, 진짜 애기!?“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드라마야... 진짜... 완전 드라마야...!’
틀렸다. 이건... 더 이상 내가 개입할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들키기 전에 빠져나가는 게 맞지만... 이상하게,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눈이 떼어지지 않는다.
찌걱,찌걱,찌걱,찌걱,찌걱...
“쭈웁... 파아. 하아... 바닥에 모유를 이렇게 질질 짜놓으면 어떡해요? 청소하시는 분 힘들게.”
“후, 하앗♡ 후아앗...♡ 주녕아아... 소, 손가락... 너무, 깊어어...♡ 아기방 닿으면 안 돼애애...♡”
“걱정 마요. 손가락으로 안 닿으니까. 자지 정도는 돼야...”
김준영의 말에, 녀석의 바지춤으로 시선이 향했다.
터질 듯이 부분 바지춤은... 안쪽에 몽둥이라도 품어놓은 듯한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꿀꺽...”
침이... 절로 넘어갔다.
내 침이 원래 이렇게 뜨거웠나...?
“하아... 누나, 안 되겠어요. 저 자지 꺼내줘요.”
“뭐, 뭐어!?”
젖소 언니와 함께, 나도 화들짝 놀랐다.
“누나 허벅지에 쌀래요.”
“아, 안 돼, 준영아... 그러지 마아...”
하지만 젖소 언니는 김준영의 손가락 공세에 버티지 못했고.
결국, 녀석의 바지 지퍼를 내렸다.
지이익-
나는 홀린 듯, 핸드폰을 꺼내 동영상 촬영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