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81. 아기만들기 프로젝트 성유아
“그리고 팀장님... 아니, 성유아 씨. 당신도 제 아이를 임신했습니다.”
“...예?”
성유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저는 농담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성유아는 이미 한 달 전에 임신했었다.
그녀에게 지금까지 말해주지 않은 이유는, [김준영과의 섹스는 아기만들기 실전을 위한 연습일 뿐이다. 고로 임신하지 않는다.] 라는 관념을 지워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새겨넣은 지 한참이 지나 단단해진관념이었기에, 지우는 데 시간이 걸렸다.
“저와 김준영 씨는 임신할 짓을한 적이 없습니다.”
“수도 없이 저와 섹스했고, 제 정액을 자궁에 받으셨습니다.”
“그거야, 그런 걸로는 임신하지 않...”
말을 하던 성유아가 멈칫했다.
“어...?”
“그렇게나 질펀하게 싸댔는데, 임신하지 않는다고요?”
그녀는 지금까지 임신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저 마구 섹스해왔다.
왜냐면, 나와의 섹스로 임신할 리가 없으니까.
애초에 고려 대상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관념이 삭제된지금은 다르다.
지금까지, 그토록 무방비하게 정액을 받아온 자신의 과거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잠시...”
성유아가 고개를 숙이며, 제 이마에 손을 얹었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혼란스러운 모양이다.
“갑작스러운 졸음, 혹은 불면증. 미열. 빈뇨. 피로감. 한기, 오한. 그리고 입덧.”
“무슨...”
“임신 초기 증상입니다.”
성유아의 동공이 확장됐다.
“뭐,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아무런 증상도 느끼지 못했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
그녀가 슬며시, 자신의 팔꿈치를 감싸 안았다.
몸이 작게 떨리는 것이 보인다.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는 모습이다.
성유아가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인다.
나는 재빨리그녀를 잡아줬다.
“...”
손에닿은 그녀의 어깨가 적잖이 떨려온다.
“...지워야합니다.”
“그렇군요.”
예상했던 반응이다.
“왜죠?”
“왜냐니... 아기는... 이래서는 안 되는... 사안입니다.”
“저희는 지금까지 ‘아기 만들기 프로젝트’를 위해 달려왔습니다.”
“...그만.”
성유아의 목소리가 깊게 가라앉았다.
“아기 만들기 프로젝트의 목적은 저의 2세들을 만드는 것.”
“그만하십시오.”
성유아가 내 팔을 잡았다.
그녀의 손톱이 내 살갗을 파고든다.
“저희는 프로젝트의 완성을 위해 일해야합니다.”
“김준영 씨... 그만하시라고 말했습니다.”
섬뜩하게 떨리는 목소리.
늘 감정을 절제한 채 살아가는 그녀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믿기 힘든 목소리다.
“명령입니다. 낳으세요.”
“아아아아아아악!! 그마아아아안!!”
성유아가 갈갈이 찢어지는 목소리로 비명지르듯 소리쳤다.
내 부축을 뿌리치고, 손을 마구 휘둘러, 내 팔에 상처를 냈다.
깜짝 놀랐다.
내게서 떨어진 그녀가 후들거리는 다리로 위태롭게 서 있다.
“하악... 하악...!”
산발이 된 머리는 살짝 숙여진 얼굴을 어둡게 가렸다.
단추가 풀어진 셔츠는 한쪽이 반쯤 벗겨져, 팔에 걸쳐져 있다.
숨이 가빠졌는지, 그녀의 입에서 고양이 하악소리같은 소리가연신 새어나온다.
‘...와우.’
정말로,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성유아가 저토록 감정에 휩쓸릴 줄이야.
뚝.뚝.
머리카락에 가려진 그녀의 얼굴에서 바닥으로.
물방울 한두 개가 뚝뚝 떨어진다.
“저도...”
성유아가 살짝 쉰 목으로 입을 열었다.
“...사람입니다.”
물기가 가득 찬 채, 바들바들 떨리는.
연약하고,위태로운 목소리다.
“저 또한... 회사원이기 이전에... 한 명의 여자입니다.”
“...”
“일 때문에 임신이라는 큰일을... 이렇게... 어이없게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군요.”
바지가 답답하다.
자지가 아플 정도로, 빳빳하게 발기한다.
‘...왜 이러지?’
그녀가 저렇게 무너진 모습이, 배에 내아기를 품고 절규하는 모습이.
너무도 꼴린다.
어딘가 비틀린 성욕이다.
무언가 결여된 반응이다.
의문이 마음속에 파문을 일으킨다.
하지만 곧, 강제적으로 진압됐다.
‘알 게 뭐야.’
꼴리면 그만이지.
임신시켰으면 된 거지.
성유아가눈물을 닦고, 깊게 심호흡했다. 머리카락을 정돈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바로하고, 허리와 어깨를 펴,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평소의 무감정한 표정, 도도한 자세다.
그녀는 놀라운 자기 통제력으로, 제정신을 되찾았다.
하지만 그녀로서는 정말 불행하게도.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수정 모드를 시작하시겠습니까?]
[대상: 성유아]
“이번 일은 사고입니다. 수습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김준영 씨는...”
“아니요.”
손으로 핸드폰을 들어, ‘예’ 버튼을 눌렀다.
“당신은 제 아기를 낳아야합니다.”
[대상 성유아의 내면을 수정합니다.]
[프로젝트를 위해, 김준영이 최대한 많은 여성을 임신시켜야 한다.]
[나 스스로도 아기를 낳아, 프로젝트 완성에 일조해야 한다.]
[배에 아기를 품고 있을 때, 프로젝트에 일조하고 있다는 충만감을 느낀다.]
[수정모드를 종료합니다.]
“...”
“...성유아 씨?”
“예.”
성유아가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대답했다.
아까는 감정의 폭풍을 억눌러 가장된 의연함이었다면.
지금은 그저 평소와 똑같은 그녀다.
“기분이 어떠십니까?”
“...갑자기 무슨 말씀이시죠?”
“아기를 품게 된 기분이요.”
“아.”
성유아가 제 배에 손을 올렸다.
내가 만지느라 옷을 걷어올려 진작 드러나 있던 그녀의 배는, 아직 임산부임을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매끈하고, 탄탄했다.
“...좋군요.”
표정에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어딘가, 만족스러워하는 기색이다.
“저는 보조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김준영 씨에게 이렇다 할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그럼에도 김준영 씨는 5명의 여자들을 임신시키셨죠.”
“음...”
“이제는 조금... 저 스스로, 프로젝트에 기여했다는 기분이 드는군요.”
“자부심을 가지셔도 좋습니다. 임신이라는 것은, 아무나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니까요.”
“예.감사합니다.”
그녀가 제 배를 쓰다듬는다.
“앞으로도 프로젝트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김준영 씨가 주신 생명. 잘 키우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놀란 눈으로 성유아를 바라봤다.
‘마지막 말은 의외인데.’
강제로 성사된 임신, 강제로 이루어진 자기합리화였다.
그럼에도, 벌써 모성애라도 느끼는 걸까?
‘...’
어쩐지... 스스로의 탄탄한 배를 쓰다듬고 있는 그녀가, 전보다 더욱 여성스러워 보인다.
시선을 느꼈는지,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왜 그러시죠?”
“...아닙니다.”
나는 고개를 젓고, 그녀에게 전하려던 말을 마저꺼냈다.
“성유아 씨. 회사에서 나와, 제 밑으로 들어오십시오.”
“퇴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퇴사에 대한 합리화는 내가 퇴사했을 때 이미 해두었다.
그녀는 퇴사해도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제가 온전히 프로젝트에만 집중할 수있도록, 제 비서로서 여러 업무를 담당해주십시오. 아, 물론 연봉은 넉넉히 드리겠습니다. 지금 회사에서 받으시는 것의 두 배 이상을 약속하죠.”
“...과분한 대우입니다.”
“성유아 씨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인재입니다. 본인 뱃속의, 본인이 이뤄낸 과업을 생각해보시죠.”
배에 올려진 성유아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녀가 입술을 조금 짓씹었다. 입꼬리가올라가려는 것을 참는 모양이다.
“...감사합니다.”
“최대한 잡음 없이 퇴사절차를 밟도록 하세요. 아, 박영민 사원도 퇴사할 겁니다. 그를 성유아 씨의 직속으로 배정해, 잡다한 실무를 맡기도록 하세요. 홑몸이 아니시니... 무리하시면 안 되니까요. 그리고, 조민지 사원이 임신했으니, 그녀의 퇴사 절차도 밟아주십시오.”
“팀이 와해 수준에 이르겠군요.”
나, 민채슬, 공지윤의 퇴사는 이미 다른 인력으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조민지, 박영민이 퇴사해도 어떻게든 될 것이다. 타격은 있겠지만, 대기업의 입장에서는 별거 아닌 일이다.
하지만 거기에 성유아까지 퇴사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우리 팀의 중심이며, 회사에서 손꼽히는 에이스.
그녀가 없으면 팀은 돌아가지 않는다.
한 팀에서 에이스 팀장인 성유아와, 5명의 사원이 연달아 퇴사했다.
누가 봐도 수상한 냄새가 나는일이다.
“아마제 힘이 필요할 겁니다. 누군가와의 대화가 필요한 일이 생긴다면, 제게 말씀하세요. 누구든지요.”
성유아는 내 능력에 대해 일부나마 알고 있다.
‘사람과의 관계를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능력’ 정도로 두루뭉술하게 퉁쳐두긴 했지만.
아마 그녀는 이것을 초월적인능력이 아니라, 내 고유의 인간관계 관리 능력 정도로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괜찮습니다. 김준영 씨의 도움이 필요할 일은 없을 겁니다.”
“...무리하려 하지 마세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성유아 씨의 몸은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걱정 마십시오. 김준영 씨는 몰랐겠지만, 뒤쪽에서 만들어둔, 회사 내의 제 나름의 힘이 있습니다. 충분히 해결할수 있는 일입니다.”
담담하고, 자신만만하다.
저게 회사에서 봐왔던 언제나의 성유아다.
그녀에게 주어진 일은 늘 기대 이상의 성과로 돌아왔었다.
“음... 알겠습니다. 믿고 맡기도록 하죠.”
그녀가 성공을 장담했다면, 이미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핸드폰을 조작했다.
우웅-
성유아의 핸드폰이 울렸다.
“비밀번호를 포함한 계좌 정보를 보냈으니,확인해보십시오. 다음 지시와 경비로 쓰일 돈입니다. 그리고...”
성유아의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핸드폰을 꺼내들어 내용을 확인한 그녀의 동공이 살짝 커졌다.
“계약금과 첫 월급을 입금했습니다. 천천히 협상을 통해 정할 금액이지만... 그 정도면 아마 불만이 없으실 겁니다.”
안 그래도 대기업에 입사해 초고속 승진을 해온 데다가, 인센티브도 쓸어가던 그녀다.
그 두 배 이상의 금액을 받았으니, 그녀 나이대에서는 월급으로 절대 만져볼 수 없는 거금이다.
아마 경비로 받은 통장까지 확인하면, 그녀라고 할지라도 정말 놀라 까무러질 것이다.
“이제 전달할 사항은 끝입니다. 좋은 성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오늘은 양아라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벽에 걸어둔 외투를 집어들었다.
요즘 들어 더욱 무거워진 듯한 양아라의 젖가슴을 아른거리며, 문손잡이를 잡았다.
“잠시, 질문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유아가 나를 불러세웠다.
뒤를 돌아 그녀를 바라봤다.
“통장에 든 돈을 사용할 다음 지시라 하심은, 무엇이죠?”
“음.”
그러고 보니, 저 지시가 완료되면 나도 이제 사장님이 되는 건가?
법인이라도 하나 설립해야 하려나.
“적당한 산후조리원을 인수하려 합니다. 일단은, 그렇게만 알아두십시오.”
신발을 고쳐신고, 문을 열고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