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66. 아기만들기 프로젝트 성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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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영 씨라고 했지요?”
“네, 네...”
불편함에 자꾸 꼼지락거리려는 몸을 강제로 빳빳이 붙들어둔다.
나와 성유아는 졸지에 그녀의 어머니와 삼자대면을 하게 됐다.
성유아의 어머니는 그녀의 딸과는 다르게, 푸근하고 착한 인상의, 전형적인 어머니상이었다.
“흠, 흠. 일단... 미안해요, 김서방. 지금까지는 우리 유아가 집에 누굴 데려오는 일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저도 편하게 비밀번호 누르고 다녔죠.”
김서방...?
“아, 아니요! 신경 쓰지 마십시오! 오히려, 저희가 추한 꼴을 보여드려 죄송하죠!”
“아이구, 추하긴요. 우리 유아가 뭔가를 하면서 그렇게 즐거워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요. 이런 말 정말 주책스럽지만, 기왕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둘의 속궁합이 참 좋은 것 같아 마음이 놓여요.”
“예, 예... 속궁합...”
눈앞에서 딸이 그렇게 따먹히는 모습을 보고 대노할까 걱정됐는데.
분위기를 보아하니,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기뻐하는 눈치다.
“어, 엄마...! 김서방이라니!”
“스읍! 조용히 있어! 이런 분위기는 첫만남부터 깔고 가야 하는 거야! 어떻게 생긴 남잔데, 확 잡아버려야지!”
“아, 진짜아...!”
“기집애, 하도 남자를 안사겨서 걱정했는데... 이제 보니, 일 때문이 아니라 눈이 높은 거였구나?”
...제 딴에는 소곤거린다고 하시는 것 같지만... 다 들립니다, 어머니.
‘팀장님한테 저런 면도 있었구나...’
눈앞의 성유아가 여타의 딸들처럼 어머니를 엄마라 부르고, 어머니와 티격태격한다.
평소의 이미지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
다른 사람이었으면 모를까, 그녀 정도의 미인이 저러니... 그 갭과 의외성이귀여운 매력으로 와 닿는다.
제 딸에게 눈을 부라린 어머니가 나를 인자하게 바라봤다.
“우리 김서방은 좋아하는 반찬 있어요? 내가 평소에 딸한테 반찬을 가져다주러 종종 오거든요. 오늘도 그것 때문에 왔고.”
“아, 아니요, 괜찮습니다. 마음만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해주십시오.”
“호호! 예의도 바르지. 알았어요. 그럼 편하게 반존대로 할게요. 김서방도, 편하게 장모님이라고 불러요!”
“예, 예? 자, 장모는...”
“아이구, 얘기가 샛길로 샜네! 괜찮으니까, 좋아하는 반찬 뭐든 말 해봐요!”
장모님이 손뼉을 치며 내 말을 끊었다.
덕분에, 서로 간의 칭호는 자연스레 김서방과 장모님으로 굳어졌다.
아무리 내가 긴장했다지만, 나도 [언변]스킬이 있는데... 수완이 제법이다.
“우리가 이제 남도 아닌데, 부담 갖지 말고. 응?”
“하아...”
성유아가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김준영 씨, 그냥 얘기하세요. 저희 어머니, 아마 김준영 씨가 수락할 때까지 계속 물어보실 겁니다.”
“얘는! 애인한테 딱딱하게 씨가 뭐야, 씨가! 여자가 좀 사근사근 굴면서 남자 애간장도 녹이고 그래야지!”
“어, 엄마 진짜...!”
“자, 장조림을 좋아합니다!”
둘이 또 티격태격할 기세인지라, 서둘러 입을 열었다.
딸을 구박하던 장모님께서, 내 말에 눈꼬리를 부드럽게 내리며 활짝 웃었다.
“어머! 어쩜, 우리 유아랑 입맛도 똑같네! 우리 유아도 장조림 좋아해서, 내가 항상 채끝살로 담그거든요. 맛있을 거예요! 조만간 가져다줄게요.”
“가, 감사합니다.”
“부부끼리 입맛 겹치는 게 그렇게 축복받은 일인데, 좋겠다 얘!”
“...”
성유아가 제 이마를 잡고, 미간을 찌푸렸다.
‘킥킥.’
성유아가 저리 골치를 썩이는 꼴을 보니,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보기 좋네.’
얼핏 보면 그저 주책 부리는 엄마와 신경질 내는 딸이지만... 그냥, 보기 좋은 것 같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화목한 광경이다.
장모님이 특유의 푸근한 인상으로 나를 바라봤다.
“있잖아요, 김서방.”
“예, 말씀하십시오.”
“첫 만남부터 이런 말 꺼내는 거, 예의 아닌 줄 알아요. 하지만 아까... 본의 아니게 봐버렸잖아요? 둘이 피임도없이 동침하는 거.”
“어, 엄마! 피임은 내 쪽에서 하고 있...”
“알지. 네 앞길, 네가 잘 처신 하는 거. 너 똑 부러진 딸내미인 거.”
장모님의 기세가 바뀌었다.
푸근한 눈웃음은 유지하면서도, 뭔가... 진중함과 연륜이 느껴지는, 어머니다운 모습이다.
“딸이 루프시술 같은 거로 자기 몸 망칠 애는 아니고... 아마 화학적 피임이겠지요. 하지만, 화학적인 피임 방법은 온전치 못해요.”
약을 말하는 것이다.
사실 약도 안 먹고 있는데...
“둘의 방법이 잘못됐다고 꾸짖는 게 아니에요. 우리 딸이 그 정도 앞가림 못 할 아이는 아니죠. 김서방도, 얼굴 본 시간이 얼마 되진 않았지만, 책임감 없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아요.”
아까 계획도 없이, 실수로 따님 임신시켰는데...
“제게는 둘 사이에 아이가 생겨도 괜찮다는, 둘이 책임질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돼요. 제 생각이 맞을까요?”
“...맞습니다.”
“...응. 맞아.”
나와 성유아가 대답했다.
계획에는 없었으나, 책임은 질 것이다.
장모님이 생각하는 책임과는 조금 거리가 있겠지만... 어쨌든, 우려하시는, 사고로 인해 둘의 인생이 파멸로 치닫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 둘은 결혼을 전제로 사귀고 있는 건가요?”
첫 만남에 묻기에는 유난일 수 있는 질문이지만, 전혀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성유아가 누굴 닮아 저렇게 똑 부러졌는지 알 것 같다.
“예.”
“...!”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고, 그걸 들은 성유아는 살짝 놀랐다.
내가 실제로 성유아와 혼인신고하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나, 지금 이 자리에서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수습이야, 나중에 어플을 사용하면 된다.
내게 있어 방금의 대답은 그냥, 성유아의 평생을 데리고 갈 수 있다는, 그녀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다는 의지표명이다.
내 결연한 대답에, 장모님이 인자하게 미소지었다.
“고마워요. 그렇게 대답해줘서.”
“...”
“우리 딸 나이가 스물일곱이에요. 요즘 애들에게 있어서는 전혀 늦은 나이가 아니지만... 얘가 일에 여간 열성이어야 말이죠. 일 때문에 남자 한 번을 안 만나보고... 앞으로도 쭉 저러면 어쩌나 싶어, 걱정했죠.”
옆에서 듣던 성유아가 작게 툴툴댔다.
“내가 다 알아서 한다니까...”
“그래, 그래. 우리 딸만큼 똑 부러지고 믿음직한 여자가 세상에 또 어딨겠니? 하지만엄마 마음이라는 게 그렇잖니.”
“...”
“근데 이렇게늠름하고 훤칠한 남자를 데리고 오니, 아주 그냥 좋아서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예.”
“흠흠, 너무 진지한 얘기만 했나요? 아무튼, 우리 딸 잘 부탁해요. 김서방.”
진중한 모습이 사라지고, 다시 예의 푸근하고 친숙한 어머니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장모님이 히죽거리며, 성유아의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근데 사실, 엄마는 너네 피임 안 해도 좋은데.”
“무, 뭐!? 무슨...!”
“우리 옆집 김여사 알지? 걔가 벌써 손주를 봤다잖니, 얘!”
“아, 엄마아! 그 집 딸 언니는 나이가 서른다섯이야!”
“나이가 중요하니? 우리 이쁜 딸내미가 엄마 품에 손주손녀 냉큼 안겨주면, 엄마가 얼마나 행복하겠니?”
“아, 진짜아아!”
“호호, 반은 농담이었다, 얘.”
...성유아가집에서는저렇게 감정표현이 풍부한 사람이었구나.
결혼하면, 내 품이 곧 집이 되면. 나한테도 저런 모습을 보여줄까?
“...”
그녀가 양아라나 민채슬처럼살갑게 구는 모습을 상상해봤다.
문득, 성유아가 참 매력적으로 보인다.
장모님과 더 이야기를 나눈 후, 그녀가 떠날 채비를 한다.
“그럼, 나는 이만 가볼게요!”
“오늘은 왜 안 자고가?”
“얘는, 내가 그렇게 눈치 없는 사람은 아니거든!”
장모님이 나를 바라보며 허리를 꾸벅 숙였다.
“우리 부족한 딸내미, 잘 부탁드릴게요.”
“아, 아니요! 제가 잘 부탁드려야죠!”
나는 화들짝 놀라, 이상한 소리를 하며 허리를 넙죽 숙였다.
정말이다. 성유아같은 미인과 함께 살 수 있다면... 내가 세 걸음마다 절을 해도 모자라다.
“난 이만 갈게요. 만나서 즐거웠어요.”
“예, 살펴가십시오, 장모님.”
“엄마 잘 가. 도착하면 연락해.”
장모님은 연신 우리를 향해 미소지으며,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철컥-
“...”
“...”
몸에 진이 빠진다.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기분이다.
“후우...”
“...죄송합니다, 김준영 씨. 저희 어머니가 워낙 에너지와 장난기가 많으신 분이라...”
“...아니요. 처음 보여드린 모습이 조금 그랬다뿐이지... 즐거운 만남이었습니다.”
내 여자들의 어머니를 만난 것은, 조민지와 박서윤을 제외하고는 처음이다.
그나마도, 조민지의 어머니와는 조민지와 요상한 관계가 되기 전에만 봤었고, 박서윤의 어머니는 수정당했으니.
굉장히 신선하고...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경험이었다.
‘결혼이라...’
결혼대상이라고 하면, 조민지 외에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우리나라는 일부일처제이니, 혼인신고가 가능한 사람은 한 명뿐이다.
민채슬과 양아라는 탁란이니 그렇다 쳐도.
공지윤의 경우는... 지금까지는 단순히, 공지윤의 가족을 수정하면 되겠지 하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 여자들의 처우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될 것 같다.
‘팀장님, 임신하겠지.’
성유아를 바라봤다.
예쁜 얼굴, 잘빠진 몸매. 그럼에도, 임신시키고자하는 충동이 들지 않는다.
공지윤 때와 같다. 이미 임신이 확정된 것이다.
나름 조심한다고 조심했는데... 또 산부인과에 갈 일이 생겨버렸다.
‘유시은이 좋아하겠네.’
차를 사두길 잘한 것 같다.
“...점심, 드시고 가시겠어요?”
성유아가 내게 물었다.
장모님이 싸준 반찬을 말하는 거겠지.
“예. 그러죠.”
“앉아계십시오. 차려드리겠습니다.”
성유아가냉장고를 열어, 빼곡히 담긴반찬통을 꺼냈다.
‘...예쁘네.’
접시에 반찬을 옮겨담는 그녀를 바라보는 마음이, 이상하게 싱숭생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