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2화 〉62. 소꿉친구 조민지 (62/139)



〈 62화 〉62. 소꿉친구 조민지

“음, 흠, 크음... 에흠...!”

한참이 지난 뒤에야 조민지가 돌아왔다.
얼굴이 아직도 빨간 채 어울리지도 않는 헛기침을 하는 꼴이, 아직 많이 혼란스러운 모양이다.

“나, 나 왔어...”

“어, 어.”

얘가... 날 계속 좋아했다고?

‘...말도  돼.’

10년을 넘게 지내온 내가 안다. 조민지에게 있어 난 가장 친한 남사친.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마냥 그렇게단정 짓기엔... 짚이는 것들이...’

최근 들어, 내 주변에 여자들이 생긴 이후로 심해진 나에 대한 집착.
얼마 전에 술 마시면서 갑작스레 보여준 지나치게 가벼운 옷차림과 스킨십.
오늘 보여준 기이한 태도들.
게다가 박영민의 증언에 의하면... 나 빼고 사무실 사람 전부가 알고 있었다고.

‘...’

이거... 완전히 내가 둔하고 멍청한 남자 포지션이잖아.

“이, 이 둘 중에 고르면 된다고? 얘, 얘가 잘생겼네! 얘로 하자!”

조민지가 뻘쭘한지, 과한텐션으로 차를 가리킨다.

“...그래. 이거로 하자.”

박영민이 차를 끌어안으며 자식새끼 상경 보내는 엄마 같은 표정을 짓는다.

“우리 애기... 메르세데스... 저 돈만 많고 차는 눈곱만큼도 모르는 놈한테 가서도 잘 살아야 해...”

“뭔... 누가 보면 부모자식 강제로뜯어놓는 줄 알겠네. 종종 빌려줄게, 임마.”

유쾌하게 유난떠는 박영민에게 대꾸해주며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했다.
...그래, 조금만 더 지켜보자. 아직 어느 한 쪽으로도 단정할 수 없다.
당분간조민지와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다.
공략도 할 겸 말이다.

아마...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 같다.

핸드폰을 들었다.

[현금 400,000원] - 1point

[아이템 ‘현금 400,000원’ 1,000개를 구입하시겠습니까?]

‘예.’

1,000point의, 가벼운 지출.
곧바로 아이템을사용했다.

[입금] 400,000,000원
****-***-******계좌 01/31
11:42:50

‘...’

알고 있었음에도, 통장에 꽂힌 금액을 보자 숨이 턱 막힌다.
민채슬에게 주기 위해 2억 4천을 받았을 때와는 다르다. 그때는 8,000point를 소모했었다.
하지만 지금 소비한 대가는 고작 1,000point.
들어온 돈은... 4억.

“스읍... 후우...”

심호흡으로 마음을 추슬렀다.
낭비를 즐기는 성격은 아니지만... 오늘은 그냥 한 번, 3인분의 식사비용으로 100만 원을 넘겨버리자.
이제는 그 정도의 사치쯤, 정말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렸으니.

‘아니... 너무 소박할지도 모르지.’

앞으로 이러한 씀씀이에 익숙해져야 것이다.
우연인지, 내 여자들은 하나같이 심성이 참 곱다.
내가 돈 쓰는 것을 주저하면,그녀들도 덩달아 소비를 자제할 것이다.

그녀들을 통해 욕망을 원 없이 채우고 있는 만큼, 행복하게 해주자.

보험, 기타 셋팅 등의 자잘한 절차를 마치자, 직원이 계산기를 두드리며 공손하게 물어왔다.

“비용은... 이렇게 되겠습니다. 계산은어떻게...”

“일시불로요.”

차 가격은 2억 7천이지만, 이것저것 추후절차를 거치니 3억이 훌쩍 넘어갔다.
하지만 전혀 부담되지 않는 금액. 양아라 젖을 빨며 하룻밤 만에 벌  있는 금액이다.

카드를 내밀었다.
직원이 두 손으로 카드를 받아갔다.

“이야...”

“오옹...”

옆에서 박영민과 조민지가 작게 감탄했다.

“존나 멋지네... 민지 넌 좋겠다?”

“어, 어? 너,  그거 무슨 의미...”

“자, 밥 먹으러 가자!”

박영민의 놀림에, 조민지의 얼굴이 빨개졌다.
조민지가 무어라 되물으려 하니, 능청스레 말을 돌리며 매장을 걸어나간다.

조민지는 고개를 푹 숙이고, 하얗고 하늘하늘한원피스 치마를 양손으로 꾸욱 잡아눌렀다.

‘...확 껴안고 싶네.’

나를 힐끗거린 조민지가 살며시 내 옷깃을 잡았다.

“가, 가자...”

이전이라면 그냥 넘어갔겠지만... 지금은 다분히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반응이다.
옷깃을 잡은 조민지의 손을 떼어내, 손바닥을 마주 잡고, 깍지를 꼬옥 꼈다.

“...!”

녀석의 얼굴이 불타오를 듯이 붉어졌다.
덩달아... 내 심장도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좀 덥네.’

마주잡은 손바닥이 유난히 뜨겁게 느껴진다.
손바닥 사이에 차는 땀이 살결을 끈적하게만들어, 손바닥과 손바닥을 첩썩 들러붙게 만들었다.

친구 사이에서는 있을  없는 기류.
명백히, 우리 둘은 서로를 의식하고 있다.

“...뭐먹고 싶어?”

“...아, 아무거나. 너, 너 좋아하는 걸로.”

서로 이상하게 쭈뼛거리며, 박영민을 따라매장 밖으로 나갔다.

체온이 너무 뜨거워, 차가워야  겨울바람이 적당히시원하게 느껴진다.
아마 녀석도... 그렇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목도리. 제대로 매.”

“어? 어, 어.”

녀석의 목도리를 여며주고, 다시 손을 잡고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응?”

핑크색 단발머리의 여자가 벤츠 매장 유리창 안의 차를 아련하게 보고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

‘누구지?’

가까이 걸어가, 자세히 뜯어봤다.
여자는 벤츠에 정신이 홀딱 팔려, 나를 알아채지 못했다.

가슴 크기가 상당한지, 위에패딩을 걸쳤음에도 가슴부가  부풀어있다.
얇게 잘빠져 매끈하고 기다란 다리에는, 3개의 흰 줄이 그어진 검정 츄리닝이 아주  어울렸다.

핑크색 염색과 잘 노는 고등학생 느낌의 화장은 어딘가 강렬한 인상을 풍겼고.
손을 집어넣은 패딩 주머니에서는 가지각색의 핸드폰 걸이들이 튀어나와, 주렁주렁 매달려있었다.

양아라와는 다른 의미로, 교복이... 아니, 빡세게 줄인 교복이 잘 어울릴 것 같은 여자.
백수 룩임에도 빼어난 옷핏을 지닌 여자.

그 모습에서, 입에 담은 지 오래된 이름이 떠올랐다.

“신...지예?”

여자가 핑크색 단발머리를 찰랑이며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네? 누구...”

“...어?”

조민지도 여자를 알아봤는지, 작게신음성을 냈다.

“어? 조, 조민지?”

신지예는 나와는 달리 조민지를 한 번에 알아보고,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어... 오, 오랜... 만... 이네.”

조민지도 썩 달갑지 못한 얼굴로 대답해줬다.
아니... 살짝 겁먹은 듯한 표정이다.

“자, 잘 지냈니?”

“......응.”

숨 막힐 듯한 어색함.
명백하게, 양쪽에서 서로를 불편해하고 있다.

잠깐의 침묵이 이어지고, 신지예가 나를 바라봤다.

“근데... 이쪽은 누구... 저를 아세요?”

“...얘 김준영이야.”

“김준영? 김준영... 어, 어!? 김준영? 이게!?”

‘이게’라니. 너무하네.

‘수정어플로 많이 역변하긴 했지.’

“와... 너... 엄청 잘생겨졌구나? 아니, 얼굴은 그대로인가? 키랑 몸이... 와우.”

짝다리를 짚고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꼴이, 건방져 보이면서도 쾌활하다.
신지예가 대뜸, 내 몸으로 손을 뻗었다.

“이야...! 이거 진짜... 장난 아닌데? 복근 쩍쩍 갈라진 거 봐! 가슴도... 와, 씨... 완전 크고... 딱딱해! 이거 B컵은 되는 거 아니야? 킥킥.”

 배와 가슴을 서슴없이, 마음대로 더듬거린다.
무례하다면 무례하지만, 뭐... 예쁜여자 손길은 나도 환영이지.
자지에 힘이 들어가려 한다.

그런데 그 때.

“응?”

“어?”

조민지가 내 앞을 가로막고 서, 신지예의 손을 막았다.

“그, 그만...”

살짝 겁을 먹은 얼굴로, 힘겹게 내뱉는다.
신지예는 민망해진 손을 들고 어리둥절했다.

“어... 이거 지금 무슨 상황... 아...? 아하...!”

신지예의 눈에 김준영의 큼직한 손을 꼭 잡은  떨고 있는 작은 손이 보였다.

“헐. 대박. 너희 결국 그렇게 됐구나?”

김준영과 조민지의 사이는 중학교 시절에 살짝 유명했다.
단연코 전교 최고 미인인 조민지와,남사친 포지션에서 그녀만을 일편단심 호위하는 김준영.

예나 지금이나, 신지예는 남자들을 싫어한다.
아이돌 연습생이었던 자신을 성욕 담긴 좆같은 눈으로만 바라보니까.

‘근데 김준영 얘는... 진짜 괜찮았지.’

하지만 그렇기에, 중학교 시절, 김준영에게는 약간의 호감이 있었다.
그는 정말이지, 조민지만을 일편단심 바라봤으니까.

과격한 대시가 아닌, 남사친 역할을 하며 풋풋하게 그녀를 지켜주는 김준영.
김준영의 마음은 전혀 모른 채, 피폐한 인간관계 속에서 유일한 친구로서 그에게 의지하는 조민지.
그 그림은 정말이지,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 절로 미소짓게만드는, 참 보기 좋은 그림이었다.

 키 크고 잘생기지는 않아도, 모든 여학생들이 원하는, 상상속의 ‘남친 이하, 친구 이상’의 낭만적인 포지션.
그게 김준영이었다.

‘근데 지금은... 이야... 옴므파탈이 돼버렸네?’

쩍 벌어진 어깨, 탄탄한 가슴, 스웨터 위로도 울긋불긋한 복근, 튼실한 허벅지.
중학교 때는 김준영이 조민지에게 많이 부족했지만, 지금은 영락없는 선남선녀 커플이다.
둘이 손을 꼬옥 잡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지려한다.

“미안, 미안! 내가 둘 사이에서 괜한 추태를 부렸네. 그럴 의도는 없었어. 진짜 미안!”

신지예가 걸음 물러났다.
인상이  조민지가 무서워할 상이긴 해도, 악의가 없음이 여실히 느껴진다.
조민지도 그걸 느꼈는지, 작게 떨리던 손이 진정됐다.

신지예를 쫓아낼까 하다가, 너무 과민반응인 것 같아 그만뒀다.

‘쟤는... 조민지를 괴롭힌 쪽이 아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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