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22. 임신 클리닉 유시은
“어머, 성과장님?”
나른한 미성이 성유아를 불렀다.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니, 아기를 품에 안고 있는 한 쌍의 부부가 보인다.
“성과장님 맞으시죠? 오랜만이에요~”
전체적으로 성숙하고, 점잖은 분위기.
웃는 듯 안 웃는 듯 살짝 휘어진 눈꼬리가 요염하다는 인상을 준다.
원단이 얇은 드레스가 몸을 타고 흘러내리며 몸 선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옆에는... 김준영 씨? 어머...”
2:8로 가르마 앞머리로 인해 반쯤 드러난 이마가 참 예쁘다.
늘어뜨린 한쪽 옆머리가 눈꼬리를 살짝 가려 묘하게 우아하고, 색정적인 느낌을 풍긴다.
어깨를 타고 흐르는 옆머리 끝이 유두를 간지럽힐 듯한 위치에 있는 건, 의도한 걸까?
“정장 바꾸셨네요? 그리고... 운동... 하셨나요?”
무엇보다, 거대한 맘마통.
사내에 돌았던 소문에 의하면, G컵으로 추정된다.
“오랜만이네요. 그간 잘 시내셨어요?”
인사를건네며 그녀의 배를 힐끗 살폈다.
“민채슬 대리님.”
3달 전까지만 해도 크게 불러있던 배가, 지금은 홀쭉하다.
“그럼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죠.”
그리고 품에 안고 있는, 몇 개월도 채 못 되어 보이는 아기.
시사되는 바가 명확하다.
성유아가 인사한다.
“오랜만입니다, 민채슬 씨. 아기도, 민채슬 씨도 건강해 보이는군요.”
“후후, 축복이죠.”
“다행입니다.”
민채슬은 우리 부서는 아니지만, 우리와 왕래가 잦던 타 부서의 사람이다.
임신한 몸에도 불구하고 일하다가, 임신 8개월 차에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서로 안부 인사 몇 마디를 나눴다.
“5개월 휴직이었죠. 곧 복직인가요? 너무강행군이 아닌가 싶습니다.”
“후후, 저도 성과장님 만큼은 아니지만, 커리어가 상당하답니다? 강한 엄마예요.”
1년을 쓸 수 있는 육아휴직을 5개월밖에 쓰지 않았다.
둘째 계획을 위해 아껴둔 걸까?
아니면 단순, 커리어 단절을 우려해서?
“그런데...”
민채슬이 나와 성유아를 의아하게 바라본다.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왜 두 분이 여기에...?”
나는 아차 싶었지만, 성유아는 이미 머릿속에서 계산을 마친 모양인지 곧장 입을 열었다.
“최근, 생리가 미뤄져서요.”
“예?”
“네? 아... 어머...”
전자는 내가 낸 소리다.
민채슬이 썩 놀란 표정으로 나와 성유아를 번갈아 바라본다.
“어, 어머... 저는... 저, 전혀 몰랐네요. 두 분이 그런 관계였을 줄이야. 그것도, 다른 분도 아닌 성과장님이...”
나도 많이 놀랐다.
“알려져서 좋을 것이없으니까요. 지금도 비밀에 부치고 있습니다. 부디, 협조 부탁드립니다.”
“당연하죠! 이상한 반응 보여서 미안해요. 너무 놀라서 그만... 응원해요, 둘의 관계.”
그리고는 내 몸을 묘한 눈으로 훑더니.
“흐응...”
눈꼬리만 살며시 올려, 요망한 미소를 짓는다.
“...왜 그러시죠?”
“그런 말... 들어보셨나요? 사랑을 시작한 사람은 예뻐진다는.이게 여자한테만 통용되는 말이 아니거든요.”
“...글쎄요.”
“흐흥~”
민채슬이 어깨를 살짝 씰룩이며 교태를 부린다.
풍만한 젖가슴이 함께 출렁인다.
‘...이렇게 요망한 여자였나?’
역으로, 민채슬이 한 말은본인에게도 적용된 것 같다.
적당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응애앵~ 으앵~”
“어머, 우리 애기, 맘마 먹고 싶어요~”
‘맘마?’
민채슬의 가슴으로 시선이 내려간다.
“두 분께도 좋은 소식 있기를 바랄게요. 저흰 아기 우유 먹여야 해서, 이만.”
“네. 곧, 회사에서 뵙겠군요.”
“안녕히 가세요.”
부부가 멀어진다.
민채슬이 수유실로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우리 차례가왔다.
“108번 고객님~”
“예.”
진료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의사의 인사를 받으며 그녀를 살폈다.
“안녕하세요.”
의사는 여자였다.
그것도, 상당한 미인.
진한 갈색 머리에, 날개뼈를 조금 넘는 생머리.
하얀 가운과 회색 니트 속, 적당히 잘 빠진 몸.
목에 걸린 청진기. 메탈 안경테의 안경.
상당히 지적이고 똑부러진 모습의, 의사라는 직업에 굉장히 잘 어울리는 외형이다.
“정자 검사를 하러 오셨다고요?”
“예. 임신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아서요.”
성유아가 옆에서 사족을 덧붙인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었지만, 그녀는 프로젝트 보안을 아주 소중히 여기니까. 그러려니 했다.
명찰을 바라봤다.
‘유시은.’
검사에 앞서,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자는 난임원인의 40%에 불과하고요, 더 정확한···”
나는 처음 듣는 얘기들이었지만, 성유아는 아마 이미 알아두고 왔을 것이다.
“검사에 앞서 3일 동안 금욕···”
‘그래서 수요일부터 싸지 말라고 했구나.’
물론, 성유아 대신 공지윤으로 꾸준히 사정했다.
[정력 강화] 스킬이 있으니, 이 정도는 정상참작 될 것이다.
의사, 유시은이 내게 작은 통을 건넸다.
“여기에 정액을 담아 오시면 돼요. 밖에 간호사를 따라가시면 비디오 방으로 안내해 줄 겁니다. 거기서 영상 매체를 보며, 정액을 채취하시면 돼요.”
성유아가 유시은의 말을 듣고 물었다.
“더 큰 통은 없나요?”
“네? 큰 통이요?”
나도 성유아와 같은 생각이다.
기껏해야 요구르트 하나 용량 정도 될까?
일반 남성이라면 이 정도로도 충분하겠지만, 내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음... 아닙니다. 이리 주시죠.”
하지만 성유아는 잠시 생각하더니, 그냥 받아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시죠.”
“예.”
우리 부부 행세 하고 있는 거 아니었나?
‘어느 부부끼리 이렇게 딱딱하게 말해.’
진료실을 나가자, 간호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비디오 방은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아내 분은 잠시 여기서 대기해주시겠어요?”
“아니요, 같이 가겠습니다.”
“네?”
“안내해주시죠.”
간호사는 잠깐 당황하더니, 이내 상황 파악이 끝났는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이, 이쪽입니다. 좋은 시간 되십... 아, 아니, 실례했습니다...!”
방은 상당히 좁았고, 소파, TV, 티슈 등이 구비돼있었다.
“앉으시죠.”
성유아가 나를 소파에 앉히고,내 앞에 꿇어앉았다.
그리고는 바지를 내린다.
소파 옆에 리모컨이 잡혔지만, 우리에게는 필요 없을것 같다.
“통이 작지 않을까요?”
“조금만 뱉어내고, 나머지는 제가 삼키면 됩니다.”
“그렇군요.”
“하움...”
아랫도리에 말캉한 감촉이 전해졌다.
+++
채취를 끝내고, 진료실로 돌아왔다.
아까 그 간호사가 유시은에게 귓속말하다, 우리가 들어오자 허둥지둥 시치미를 뗀다.
유시은이 우리를 묘한 눈으로 바라본다.
“여깄습니다.”
“네, 주말만 시간이 난다고 하셨죠? 밖으로 나가시면 예약 잡아드리... 응?”
정액이 가득 찬 통을 건네받은 유시은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음...”
그리고는 통을 유심히 바라본다.
“정액 검사는 아주 소량의 샘플만 있어도 가능합니다. 샘플이 적다고 물을 타시면 안 돼요.”
“네?”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이러면... 다음 주에 오셔서 다시 정액을 채취하셔야겠네요. 이거로는 검사가 불가능합니다.”
“잠깐만요, 제가 정액에 물을 탔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그러시면 안 돼요. 검사가 불가능합니다.”
“물 안 탔는데요.”
“네?”
유시은이 놀란 듯, 다시 병을 살핀다.
간호사도 얼굴을 붉히는 와중, 통을 힐끗거리며 함께 살핀다.
“그럴 리가요. 60ml 들이 통이 꽉 찼는데...? 온도도 이렇게 뜨겁고. 아무리 봐도 뜨거운 물을 타신게...”
“선생님, 이리... 뚜껑 열어봐요, 뚜껑.”
“뚜껑? 어디... 응? 농도가... 엄청 짙네? 사람 것이 이렇게 진할 수도 있나? 젤리도 아니... 읏...! 무, 무슨 냄새가...!”
유시은이 코를 잡고 뒤로 물러났다.
간호사와 성유아도 동시에 킁킁거린다.
간호사는 오히려 흥미를 보이며 더욱 접근한다.
“후, 하아... 내, 냄새가 엄청 진하네요. 확실히, 물을 탄 건 아닌 것 같아요. 어... 근데 냄새가... 킁킁... 말 정자로 실습할 때...”
“가, 간호사, 닫아요!”
“읏, 넷!”
뚜껑이 닫히고, 유시은과 간호사가 헛기침을 한다.
“간호사, 창문 좀... 열어줘요.”
“으... 그 잠깐새에 방 전체에...”
굳이 창문까지?
난아무 냄새 안 나는데.
“큼, 흠... 정말로 물을 타지 않은 게 맞네요.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적당히 대답하며, 핸드폰을 들었다.
만난 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사이에 좋은 영감이 떠올랐다.
“카운터로 나가시면, 다음 주 예약을 도와줄 겁니다.”
[수정 모드를 시작하시겠습니까?]
[대상: 유시은]
“네, 다음에 뵙겠습니다.”
뒤 돌아 진료실을 나가며, 어플을 조작했다.
[수정 모드를 시작합니다.]
풍경이 암흑으로 뒤덮인다.
+++
거대한 3D 마인드맵과 나만이 존재하는 칠흑의공간.
“어디 보자... 뭐라고 검색하지? 접촉?”
[키워드 ‘접촉’을 검색합니다.]
마인드맵이 회전하고, 내 몸이 어디론가 흘러간다.
애매하게 검색해도 어플이 떡처럼 알아들으니 참 편하다.
[나는 의사다. 성적인 접촉을 꺼려서는 안 된다.]
[성적 접촉을 꺼리는 환자분들을 안심시켜줘야 한다.]
원래 존재했던 관념들이다.
직업정신이 투철한지, 크기가 상당히 크다. 10m는 족히 넘을 것이다.
이것들을 강화했다.
“키워드 검색. 김준영.”
보잘것없는 크기의 [김준영] 구체로 이동했다.
바로 옆에 [성유아] 구체도 붙어 있다.
[김준영과 성유아는 난임 문제를 겪는 부부다.]
[김준영의 정액은 무언가 비정상적이다.]
[성유아가 직접 김준영의 정액을 채취했을 것이다.]
근처 다른 환자들의 구체에 비하면 크기가 상당하다.
본의 아니게, 첫 만남부터 선명한 인상을 세긴 모양이다.
‘잠재관념 생성.’
[산부인과 의사로서, 김준영과성유아의임신을도와줘야 한다.]
[김준영과 성유아의 진료에 유독 신경이 쓰인다.]
[다른 손님들보다 김준영과 성유아의 진단을 우선시한다.]
[둘의 임신을 돕기 위해서라면 다소 성적인 접촉이 필수 불가결하다.]
‘수정이 잘 먹히네?’
원래 가지고 있던 직업을 베이스로 수정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박서윤처럼, 수정이 먹히는정도에 개인차가 있는 걸까.
‘크기를 좀 더 크게 해도 되겠어.’
생성한 관념들의 크기를 조금 더 키웠다.
유시은은 빠르게 진도를 나가도 될 것 같다.
수정 모드를 종료했다.
+++
병원을 나와, 성유아의 차 조수석에 탔다.
‘그러고 보니...’
다음 방문 때도 성유아가 함께할 것이다.
그때 작업을 하는 데에, 성유아가 방해될 가능성이 높다.
둘은 수정 내용이 다르니까.
“팀장님.”
성유아를 지금 손을 좀 봐야겠다.
“프로젝트에 관해서 말인데요.”
“예.”
안전벨트를매던 성유아의손이 정지했다.
성유아가 내 눈을 바라보고, 나도 그녀의 눈을 마주 바라본다.
“저는 현재 공지윤 사원과 자주 육체관계를 맺고 있으며, 박영민 사원의 친누나와도 몸을 섞고 있습니다.”
움찔.
성유아가 상당히 놀란 듯, 동공이 살짝 커졌다.
그녀로서는 보기 드문 감정표현이다.
성유아가 앞을 바라보고,생각에 잠긴다.
“...저는 아직 프로젝트가 시작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상당한 장기 프로젝트가 되리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다시 나를 바라본다.
상당한 비장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프로젝트는 이미 궤도에 오른 지 오래였군요. 김준영 씨의 지휘 하에요. 수뇌부에서 김준영 씨를 채택한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그녀에게서 복잡한 감정이 느껴진다.
자신이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자책, 허무.
프로젝트가 수월하게 진행된다는 기쁨, 안심.
나를 향한 놀라움, 존경.
“김준영 씨는 굉장한 능력자였군요.”
“제 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앞으로 팀장님의 도움이 더 많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제가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기꺼이.”
어플을 조작했다.
[수정 모드를 시작합니다.]
[김준영은 다른 여자와의 관계를 원하는 대로 풀어나가는 신비한 능력이 있다.]
[김준영과 여자 사이에 비정상적인 일이 일어나도 의심하지 않는다.]
[김준영이 어떤 방법으로 어떤 여자를 범하든, 나는 그것을 적극 권장하고, 도와야 한다.]
[나는 김준영이 지닌 신비한 능력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산부인과의 유시은에 그칠 일이 아니다.
성유아의 도움은 회사 내의 여자를 공략할 때 아주 유용할 것이다.
‘수정 어플을 공개할 필요도 없지. 이 정도면 충분해.’
수정 모드를 종료하고.
주변 풍경이 되돌아왔다.
“아까 만난 산부인과 의사 이름. 기억하십니까?”
“유시은 선생님이었습니다.”
“유시은 씨를 범하려합니다.”
“협조하겠습니다.”
성유아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제가 만드는 상황을 따라오기만 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성유아는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차를 출발시켰다.
나는 어플을 켜, 유시은 공략을 대비하여 스킬을 정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