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6/6)

외전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준석의 직업 특성상 자주 만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달에 세 번 정도 얼굴을 보면 많이 보는 건데, 그 귀중한 시간이 냉랭해져 여러모로 속상했다.

하지만 수현은 도저히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잘못한 게 없는 얼굴로 뻔뻔하게 침대 헤드에 머리를 기댄 준석을 노려보았다.

“우준석.”

“응. 자기야.”

날카로운 부름에 준석이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는 종종 자기니, 여보니 하며 통상 연인들이 주고받는 호칭으로 그녀를 부르곤 했는데, 처음에는 수현도 낯선 호칭에 얼굴을 붉혔으나 본인이 불리한 상황에만 사용하는 패턴을 알고 나니 이젠 약만 올랐다.

“죽을래?”

“같이 죽는 거면 죽고. 너 혼자 이 거친 세상에 두고 내가 어떻게 죽어.”

“말장난하지 마.”

“진심인데.”

그가 침대 머리맡에 서 있는 수현을 올려다보며 윙크를 날렸다. 누군 이렇게 심각한데, 시종일관 장난스러운 태도가 얄미워 죽겠다.

마음 같아선 크게 나무라고 싶지만, 거실에 있을 준석의 어머니와 준희를 생각해 꾹 참았다. 지금쯤 준석이 터트려 놓은 폭탄으로 다들 혼돈에 빠져 있으리라.

“너 왜 멋대로 말해?”

“실수야, 실수. 어쩌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나온 걸 어떡하겠어.”

“웃기지 마. 그게 무슨 실수야!”

“이만하면 꽤 오래 숨기지 않았나?”

“너랑 나랑 사귄 지 반년도 안 됐어!”

“강수현.”

짐짓 준석이 부드럽게 그녀를 부르며 제 허벅지를 톡톡 두드렸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가족들 앞에서 두 사람이 사귄다는 폭탄선언을 멋대로 해놓고 감히 안기라니. 그러다가 누가 방에 들어오기라도 하면 진짜 서로 낯부끄러워진다.

수현의 속이 타들어 가든 말든, 준석은 그녀가 쉽사리 품에 들어오지 않는 게 마음에 안 드는 듯 쯧, 혀를 찼다.

“빨리. 우리 삼 주 만에 보는 거야. 가까이에서 얼굴 보고 싶어.”

“…….”

“자기야, 얼른 이리 와.”

사근사근 속삭이는 말에 수현은 마지못해 그의 품에 안겼다. 허벅지 위에 양다리를 모아 옆으로 기대앉자, 그가 수현의 허리를 끌어안고 목덜미에 코를 묻었다.

“단내난다. 넌 왜 살 냄새도 달지?”

“간지러워. 작작 해.”

“그래서 보지도 단가.”

“야!”

준석이 흐흐- 웃으며 그녀의 목덜미에 입을 맞춰댔다. 간지럽지만 마냥 싫진 않으면서, 또 짜증도 나고… 여러모로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수현은 그의 얼굴을 붙잡았다. 입술을 쭉 내민 채로 붙잡힌 준석이 “뽀뽀.” 하고 입맞춤을 종용하는 것을 무시하고 밀어냈다.

“나 오늘 새벽에 다시 들어가야 돼. 지금 뽀뽀 안 하면 후회하게 될 거야.”

그렇게 말하니 또 아쉬웠다. 잠깐 고민하다 마지 못해 쪽- 소리가 나게 입술을 붙였다가 뗐다. 준석의 입꼬리가 느슨하게 풀렸다.

어쨌든, 이건 이거고 그건 그거다. 수현은 다시 본론으로 넘어갔다.

“나랑 상의도 안 하고 그냥 사귄다고 말해버리면 어떡해.”

“언젠간 말할 거였잖아. 조금 당겨서 했다고 생각해. 어차피 너랑 나 평생이야.”

“…….”

“방금 설렜지.”

“뭐래….”

장난스럽게 볼을 쿡쿡 찌르는 손을 밀어냈다. 하지만 부정은 하지 않았다.

준석은 툭하면 두 사람의 관계를 영원한 것으로 단정 짓곤 했는데, 솔직히 그럴 때마다 견딜 수 없이 좋았다.

두 사람이 친구였을 때는 당연히 둘의 관계가 영원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연인이 되고 보니, 연인 사이라는 건 헤어지면 끝이라는 맹점이 있었다.

수현은 남몰래 그 점을 걱정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준석이 매번 이렇게 덤덤하게 영원을 단정해주었다. 그게 그렇게 설레고 안심될 수가 없었다.

“그치만 갑자기 이러면 가족들 보기 민망하잖아.”

“내가 창피해?”

“그런 말이 아니라….”

“나 상처받았어, 자기야.”

그가 전혀 상처받지 않은 얼굴로 장난스럽게 말했다. 정말 걱정이라곤 전혀 없어 보인다. 수현은 한숨을 푹 내뱉으며 아직 덜 마른 준석의 머리카락을 만지작댔다. 그녀의 손길이 마음에 드는 듯 준석이 기분 좋게 미소를 지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준석이 오랜만에 본가에 왔다. 약속이 있어 외출한 수현의 부모님을 제외하고 다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

식사 도중 그가 식탁 아래로 발등을 쓸어와 당황스럽긴 했어도, 나쁘지 않은 식사 자리였다.

특히 무관심하게 밥만 먹는 것 같다가도, 수현이 물을 마시려고 하면 컵을 밀어주거나, 그녀가 좋아하는 반찬을 은근슬쩍 밀어주는 것에 수현은 소소한 행복을 느꼈다.

그렇게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대뜸 준희가 꺼낸 이야기가 화근이 되었다.

“참, 우리 카페 알바생이 수현이한테 관심 있는 거 같아.”

준희의 카페 알바생이라면 수현도 몇 번 본 적 있었다. 인근 대학교에 다니는 반듯하고 예의 바른 학생이라 수현도 인간적인 호감을 느꼈다. 당연히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준석이 있기 때문에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당황한 수현이 눈을 크게 뜨자, 준희가 코를 찡그리며 웃었다.

“근데 나이가 너무 어려. 스물다섯.”

“어머. 스물다섯이면 한창이지. 우리 수현이는 동안이라 그 정돈 괜찮아. 네가 보기엔 어때? 괜찮은 애 같아?”

“착해. 성실하고. 공부도 잘하는 거 같던데…. 갑자기 나한테 수현이 연락처를 물어보더라고. 어때 수현아? 번호 알려줄까? 만나볼래?”

“아니, 난 괜찮아. 관심 없어.”

혹시라도 준석이 오해할까 봐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정작 준석은 입 안에 밥을 밀어 넣느라 관심 없어 보였다.

“그래? 알았어. 수현이가 싫다면 뭐….”

“왜. 만나보지. 수현이도 연애에는 통 관심이 없어?”

“네에… 좀….”

“수현이나 준석이나, 둘 다 어쩜 그렇게 연애라곤 안 하니.”

“하는데.”

아주머니의 타박에 대답한 건 준석이었다. 양 볼이 불룩해진 채 뭉그러진 발음으로 하는 말에 아주머니의 눈이 반짝 빛났다. 불안한 기운에 말을 막으려고 했지만, 아주머니가 더 빨랐다.

“어머, 준석이 너 연애하니?”

“엉.”

준희의 표정이 새파랗게 질렸다.

“야, 우준석 너 설마 여기서 커밍….”

“지은이 머리 신기하게 묶었네.”

“언니가 해줬어.”

“그랬어?”

“준석아, 누군데?”

준석이 옆에 앉아 있는 지은이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장난을 치자, 아주머니가 답답하다는 듯 그를 재촉했다. 잠깐 준희가 ‘엄마, 더 묻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하고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수현은 어떻게든 대화를 막아 보려고 어정쩡하게 일어나 지은이에게 손을 뻗었다.

“지은아, 언니랑 거실 가서,”

“강수현이랑.”

“놀… 자….”

“나 강수현이랑 연애해.”

“…….”

“결혼도 할걸? 얘만 허락해주면.”

그 뒤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밥 먹는 자세 그대로 굳어버린 아주머니와 경악하는 준희.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지은이에게 ‘지은아, 삼촌이 해냈어. 강수현 가족 만들어 줄게.’ 하며 으스대는 준석까지.

그대로 수현은 도망치듯 준석의 방으로 숨었고, 준석이 뒤따라온 상황이었다.

“그전에 나한테 설명할 거 있지 않나?”

문득 준석이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너 왜 껄떡대는 새끼 있다고 말 안 했어?”

수현은 그의 머리카락에서 손을 떼며 민망한 얼굴을 했다.

“껄떡은 무슨… 그런 거 아니야. 들었잖아, 어린애인 거.”

“그러니까. 어린놈이 껄떡댔다며 너한테.”

“아니라니까.”

“누나한테 네 번호 물을 정도의 용기면, 티가 안 났을 리가 없는데.”

“…….”

“하긴 내가 좋아하는 것도 몰랐지, 너.”

지난 이야기를 굳이 들춰내는 그를 흘겨보다 시선을 떨궜다.

솔직히 말하면, 아주 몰랐던 건 아니었다. 그녀가 갈 때마다 상기되어 말을 거는 표정이나, 주문하지도 않은 케이크를 연신 가져다주며 말을 붙인다든가. 특히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이 준석과 비슷해서 자연스럽게 알았다.

준석의 마음을 알기 전까진 몰랐는데, 좋아하는 상대를 바라보는 눈빛은 대개 비슷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준석이 그녀에게 호감을 느낀 사람들을 기가 막히게 집어냈나 싶었다. 대학 선배나, 박기우 같은….

잠깐 나쁜 기억이 떠올라 움찔 몸을 떠는데, 준석이 그녀의 턱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그와 눈을 마주치니 불안함이 금세 사그라들었다.

“뭐야, 알았네?”

준석의 표정이 예리해졌다.

“알고도 모른 척한 얼굴인데, 딱?”

“… 그렇게 티나?”

“당연하지. 넌 내가 누구보다 잘 알아.”

멋쩍은 기분에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그러자 준석이 음험하게 속삭였다.

“그 자식 한번 조지러 가야겠네.”

“뭐? 미쳤어? 언니네 카페 알바생이야!”

“감히 누굴 넘봐.”

“오버 좀 하지 마. 너보다 한참 어린 애한테 그러고 싶어?”

“스물다섯이 어리냐? 난 그 나이 때 밤마다 너랑 섹스하는 상상 했어. 그게 뭐가 어려.”

“야!”

갑자기 털어놓는 스물다섯 살 때의 진실에 수현의 얼굴이 붉어졌다. 누가 들을까 봐 겁나 입을 틀어막자 준석이 날름 혀를 내밀어 손바닥을 핥았다.

축축한 감촉에 질색하며 손을 떼어내던 수현의 얼굴에 순간 의문이 떠올랐다. 어? 그런데 잠깐. 스물다섯 살 때 섹스하는 상상을 했다고? 그땐 날 좋아하지 않았을 텐데….

그녀가 머뭇대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준석의 손이 옷 안으로 파고들어 왔다.

“왜? 너도 그랬을 거잖아.”

“… 아니거든? 손 치워.”

“맞을 텐데.”

“웃기지 마. 네가 나에 대해 뭘 알아.”

“다 알지. 여기저기, 구석구석.”

“하지 마…!”

“특히 되게 밝힌다는 점까지.”

등을 타고 올라가려는 손을 잽싸게 떼어내자, 그가 문 쪽을 바라보며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앞으론 본가에서 만나지 말자. 피 말려 죽겠네.”

“어차피 그러고 싶어도 못 그래. 다 알게 됐는데, 민망해서 내가 여길 어떻게 와.”

“그럼 다들 지금 무슨 생각 할까?”

“어?”

“너랑 나랑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밝혔는데, 둘이 한 방에 들어가서 이렇게 안 나오잖아? 밖에서 이상하게 생각하겠다. 안 그래?”

아차 하는 생각에 서둘러 내려가려 하자, 준석이 소리 내 웃으며 그녀를 침대에 눕혀주고 제가 내려갔다.

“여기 있어.”

“나가려고?”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 올려준 뒤 이마에 가벼운 입맞춤을 하고 떨어져 나간 준석이 자기 가슴을 툭툭 두드렸다.

“내가 알아서 해결할게.”

“괜히 일만 더 키울 거 같은데….”

“이런 건 남자 친구한테 맡겨.”

“뭐래.”

“쉬고 있어, 여보.”

“쫌!”

준석이 여유로운 얼굴로 방을 나섰다.

찰싹-.

“아!”

“미친놈아! 네가 뭔데 수현이를…!”

그리고 나가자마자 준희에게 등짝을 얻어맞았다. 쏟아지는 준희의 폭언에 수현은 눈을 질끈 감고 이불 속에 얼굴을 파묻었다.

* * *

수현의 부모님까지 두 사람의 연애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뭘 어떻게 해보기도 전에, 준석이 따로 부모님을 찾아뵈었다고 한다. 덕분에 두 사람은 양 집안의 공식 커플이 되었는데, 분위기는 썩 나쁘지 않았다.

준석이 부모님께 뭐라고 말씀드렸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그동안 내숭을 잘 떨어 놓은 효과를 톡톡히 봤다.

수현의 부모님은 “준석이처럼 든든한 남자 친구면 안심이지.”라는 반응이었고, 준석의 어머니는 “수현아, 아줌마는 수현이가 너무 아까운 거 같은데… 우리 준석이랑 만나줘서 고마워.”라는 반응이었다.

“말도 안 돼. 난 우준석 게이인 줄 알았어.”

준희만 두 사람의 연애를 반대했다.

“우리 수현이, 내가 얼마나 소중하게 키웠는데.”

“누나가 언제 쟬 키웠어.”

태연하게 중얼거리는 준석의 등짝으로 준희의 손바닥이 날아갔다. 허리를 비틀며 아프다고 짜증을 내는 준석과 그러든지 말든지 흘겨보기 바쁜 준희 사이에서 수현은 난감한 얼굴로 빨대를 쪽 빨았다. 준희의 카페에 있다는 그녀의 메시지에 준석이 곧장 찾아온 참이었다.

“근데 그 알바생인지 뭔지는 어디 갔어? 족치러 왔더니.”

“걘 주말에만 하는 애야. 그리고 네가 뭔데 우리 알바를 족쳐? 죽을래?”

“강수현을 넘봤는데, 그럼 그냥 둬?”

준석이 껄렁하게 의자 등받이에 팔을 걸었다. 양아치가 따로 없는 모습에 준희가 혀를 찼다.

“다시 생각해봐 수현아. 우준석은 아니야. 얜 연애하기 최악이야.”

“그럴 리가.”

“바쁘지, 무신경하지, 싸가지 없지, 무드 없지… 보나 마나 수현이 속 여러 번 썩일 거야.”

틀린 말은 아니라 수현은 묵묵히 있었다. 그녀가 딱히 반발하지 않자, 준석이 눈썹을 찌푸리며 수현의 커피를 빼앗아 쪼옥 빨아 마셨다.

“왜 내 편 안 들어줘?”

“왜겠냐? 수현이도 동의하니까 그렇겠지. 그렇지?”

“뭐….”

은근히 긍정하는 반응을 보이자, 준희가 그럴 줄 알았다며 준석에게서 커피를 빼앗아 다시 수현에게 쥐여주었다. 준석이 기가 막힌다는 듯 웃었다. 수현은 그의 팔을 살짝 밀어냈다.

“이제 가봐. 바쁘잖아.”

“세상에 이젠 쫓아내기까지. 변했어, 강수현.”

“뭐래.”

“서운해. 경찰차에서 울어야지. 사이렌 켜놓고 엉엉.”

준석이 장난스럽게 투덜대며 몸을 일으켰다. 그를 흘겨보던 준희가 덩달아 일어나 동료들과 먹으라며 커피를 뽑아 주는 걸 물끄러미 구경했다.

누나와 쉴새 없이 투닥대던 준석이 문득 그녀를 돌아봤다. 가볍게 윙크를 날리는 걸 발견한 준희가 징그럽게 굴지 말라며 질색했다.

“나 갈게, 자기야.”

“으… 왜 저래.”

준석이 카페를 빠져나가고, 준희가 소름 돋는다며 팔을 문질렀다.

“너 괜히 쟤한테 협박당해서 사귀는 거 아니지?”

“그런 거 아니야.”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언니.”

“응?”

“나 준석이 정말 좋아해.”

“… 진짜 속상하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어.”

“도대체 왜?”

준희가 한숨을 뱉으며 케이크를 가지고 그녀의 앞에 앉았다. 수현은 준석이 누나에게 그만 시달리기를 바라며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준희는 그녀의 의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이해해주리라 믿었다.

“내가 먼저 좋아해서 고백한 거야. 그러니까….”

“저 미친 새끼, 심지어 고백도 먼저 안 했어?”

“…….”

이해를… 해주겠지? 언젠가는.

“우준석은 너 언제부터 좋아했다는데?”

수현의 입이 합 다물렸다. 언제부터인지 시기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아마 최근이리라. 그녀가 섹스를 제안한 이후일 테니까.

“좋아진 계기는 뭐래? 그렇게 오래 친구 사이였는데, 감정이 바뀐 거면 특별한 계기가 있을 거 아니야.”

아마 몸정….

“우준석이 그런 것도 말 안 해줬어?”

“그게 뭐가 중요해. 그냥, 서로 좋아하는 게 중요하지….”

문득 그녀와 준석의 감정의 무게가 다르게 느껴져 목소리가 시무룩해졌다.

수현은 요즘 진심으로 행복했다. 준석도 그녀를 좋아한다니까,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마냥 좋았다. 꿈만 꾸던 준석과의 연애다. 자주 못 봐도 하루하루가 두근거리고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탓일까.

“아니. 언니는 무조건 수현이가 더 사랑받아야 해.”

“…….”

“알았지?”

그녀가 좋아하는 만큼, 준석도 그녀를 좋아할까?

그랬으면 좋겠는데.

욕심이 생겼다.

* * *

연이은 잠복으로 바쁜 준석을 보기 위해 서부 경찰서로 향했다. 마침 준석의 어머니가 옷가지와 반찬을 가져다줄 참이라고 해서 대신 가겠다고 했다. 이렇게 좋은 명분을 놓칠 수 없었다.

준석의 자취방에 물건을 내려두고 나와 경찰서 주변을 한참 알짱거렸다. 혹시 얼굴이라도 볼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좀처럼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근처에 있다고 메시지도 남겨뒀지만 답이 없었다.

많이 바쁜 모양이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돌아가려는 찰나, 경찰서 건물에서 익숙한 얼굴이 걸어 나왔다. 언젠가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준 적 있는 순경이었다.

“어?”

눈이 마주치자, 그도 수현을 알아본 건지 눈을 크게 뜨더니 냉큼 달려왔다.

“맞으시죠? 우 형사님 여자 친구분!”

여자 친구인 건 어떻게 알았지. 준석이가 말했나. 민망하게 웃으며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했다.

“우 형사님 보러 오셨어요?”

“그냥 지나가다 잠깐 들렸어요.”

“우 형사님 안에 계세요. 불러 드릴까요?”

“아니에요. 바쁜 거 같아서 그냥 가려구요. 신경 쓰지 마세요.”

“들어가 보실래요?”

“네?”

순경이 살갑게 웃으며 경찰서를 가리켰다.

“우 형사님이 여자 친구분 오신 거 알면 좋아하실 거예요.”

“아뇨. 전 그냥 나중에….”

“요즘 일이 안 풀리는지 종일 인상만 쓰고 다녀서, 무서워 죽겠어요. 눈만 마주쳐도 시비 거시는데 저 좀 잘 봐달라고 말씀해 주시면 안 될까요.”

친화력이 좋은 편인지 고작 얼굴 몇 번 본 게 다인데도 애교스럽게 울상을 짓는 게 귀여워서 수현이 피식 웃었다.

동생은 없지만 만약에 있으면 이런 느낌일까. 어쩐지 준희가 그녀에게 유독 다정다감한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도저히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을 수가 없어 수현은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순경이 “앗싸!” 하며 천진하게 웃었다.

“참, 그때 많이 놀라셨죠. 이제 괜찮으세요?”

처음 들어가 보는 경찰서 내부를 구경하는 수현에게 순경이 물었다. 무슨 말인가 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정말.”

“고마워요.”

“그날 우 형사님 진짜… 진짜 무서웠어요….”

“네?”

순경이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평소에도 무섭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때는 진짜 누구 하나 죽일까 봐 다들 긴장 많이 하셨어요.”

“준석이가 화나면 많이 무서워요?”

심술궂거나, 장난스럽거나, 어린애같이 굴 때는 있어도 그녀 앞에서 화를 낸 적이 없으니 상상이 되지 않았다. 수현의 말에 순경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설마 우 형사님 연애할 땐 엄청 다정하세요?”

“그렇게 막, 무섭거나 하진 않은데….”

“으, 상상이 안 돼요. 연애도 협박해서 할 것 같은 이미진데.”

“준석이 안 그래요. 착해요.”

“그러시구나. 연애할 땐 다른 사람이 되시구나….”

동료들 사이에서 이미지 관리를 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 나름대로 변호를 했지만 큰 효과는 없어 보였다. 그래 보여도 여린 구석이 있는데…. 수현은 맘속으로 준석을 두둔하며 계단을 올랐다.

“똑바로 걸어.”

“아, 씨발.”

그러다 문득, 경찰관에게 팔을 붙잡힌 채 내려오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삼십 대쯤 되는 키가 큰 남자의 모습에서 납치범이 떠올라 걸음이 뚝 멈췄다. 그가 험악하게 눈을 떴다.

“뭘 봐.”

움찔, 수현의 어깨가 크게 떨렸다.

“조용히 안 해? 죄송합니다.”

옆에 있던 경찰관이 수현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곤 남자를 끌고 갔다. 앞서가던 순경이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수현을 돌아보곤 당황해 내려왔다.

“괜찮으세요?”

“아….”

괜찮지 않았다. 심장이 불안하게 쿵쿵대고 손도 떨렸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데, 계단 아래쪽에서 딱-! 하고 강한 타격음이 들렸다.

“아! 씨발, 뭐야!”

“이 씹새끼가 얻다 대고 눈을 부라려? 죽고 싶어서 환장했지?”

익숙한 목소리였다. 그제야 굳어 있던 수현이 몸을 돌렸다. 준석이 얼굴을 험악하게 구기고 들고 있던 서류철로 수현에게 시비를 걸었던 남자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지나가던 사람들의 시선이 그리로 모였다. 남자를 잡고 있던 경찰이 난감한 얼굴로 준석에게 말했다.

“우 형사님, 일단 데려가겠습니다.”

“야야, 빨리 데리고 꺼져.”

마지막까지 서류로 남자의 머리를 내리친 준석이 시선을 들었다. 구겨져 있던 얼굴을 조금 풀어낸 그가 두 계단씩 성큼성큼 올라왔다. 그리곤 겁에 질려 있는 수현을 보고, 옆에 서 있는 순경의 머리를 후려쳤다.

“네가 데려왔어? 제정신이야?”

“주, 준석아!”

놀란 수현이 급하게 팔을 붙잡자, 준석이 순경의 정강이를 발로 걷어찼다.

“죄송합니다. 우 형사님 뵈러 온 거 같아서….”

“그렇다고 얘를 경찰서로 끌고 들어와? 이 개새끼들 천국으로?”

“준석아. 내가 들어가고 싶다고 한 거야.”

준석이 시선을 내리깔고 그녀를 돌아봤다.

“겁도 많은 게 퍽이나.”

“진짜야. 너 보고 싶어서 온 건데….”

“…….”

굳어 있던 준석의 표정이 일순 풀어졌다. 진정한 틈을 타 수현은 그의 팔을 당겼다.

“잠깐 나가서 이야기해.”

“너 이따 보자.”

준석이 순경에게 삿대질을 하며 그녀에게 끌려왔다. 순경이 절 좀 도와달라는 듯 바라봤다. 난감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자, 준석이 다짜고짜 그녀의 얼굴을 제 쪽으로 돌렸다.

“너 왜 인사해?”

“그냥 갈 순 없잖아.”

“저 새끼가 감히 강수현을 넘봐?”

“… 넘보긴 뭘 넘봐. 오버 좀 하지 마.”

“야야, 눈깔 안 돌려?”

순경에게 괜히 시비를 거는 준석의 팔을 찰싹 내리쳤다. 사람이 없는 곳까지 오고 나서야 수현은 아직도 씩씩대는 준석을 노려보았다.

“너….”

“괜찮아?”

왜 이렇게 과민반응이냐고 타박하려는 찰나, 예상치 못하게 치고 들어 오는 걱정스러운 물음에 수현이 입이 꾹 다물렸다. 준석이 허리를 굽히고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무서웠어?”

“…….”

“그러게 뭐하러 여기까지 들어와. 여기 좆같은 새끼들이 얼마나 많은데. 앞으론 들어오지 말고 날 불러.”

“메시지 보냈는데….”

“그래?”

재킷 안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을 꺼낸 준석이 쯧, 혀를 찼다.

“미안. 못 봤다. 많이 기다렸어?”

부드럽게 구는 게, 아무래도 납치 트라우마가 재발할까 봐 걱정하는 눈치였다. 물끄러미 표정을 살피는 얼굴에서 준석만의 투박한 애정이 묻어났다. 순간 가슴이 벅차올라, 수현은 참지 못하고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무서웠구나. 씨발새끼들 죽여 버릴,”

“오늘도 잠복이야?”

“아니. 이번 주는 끝났는데. 왜?”

“나 오늘 네 방에서 자고 갈래.”

“…….”

준석이 잠깐 말을 멈췄다. 가슴팍에 얼굴을 깊게 묻은 수현이 문득 배 쪽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에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아, 이게 내 맘대로 제어가 되는 게 아니라서.”

그가 뻔뻔하게 발기한 아래를 그녀의 배에 문지르며 속삭였다.

“네가 꼬시면 자동으로 서. 자판기 같은 거지.”

“…….”

“강수현 꼬심을 투입하면 자동으로 좆이 섭니다.”

“미쳤어?”

질색하며 밀어내자 순순히 밀려난 준석이 손목시계를 들여다봤다. 입술을 혀로 축이는 게 조금 초조해 보였다.

“끝나려면 아직 멀었어. 가 있을래?”

“그럴게.”

“그래. 씻고 있어.”

그가 유혹하듯 속삭였다.

“구석구석. 응?”

“응….”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씨발, 어떡하지? 좆이 더 커지는데.” 하고 투덜대며 손을 휘휘 저었다.

“얼른 도망가. 폭발한다.”

“진짜 변태 같아.”

“변태 맞아. 여기서 꺼내 볼까?”

“… 가 있을게.”

진짜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아서 후다닥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잠깐 고개를 돌리자, 벽에 등을 기댄 채로 담배를 물고 있던 준석과 눈이 마주쳤다.

불을 붙이려다 말고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이는 그에게 문득 꼬심을 투입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준석아, 빨리 와야 돼.”

“… 야, 너 거기 서.”

준석이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퉤, 뱉어내곤 보폭을 크게 해 다가왔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그가 당황한 수현의 손을 붙잡고 끌다시피 제 차로 향했다.

“가자.”

“뭐? 아직 끝나려면 멀었다며.”

“네가 보챘잖아.”

“끝나고 오라는 말이었는….”

그녀를 조수석에 밀어 넣은 준석이 곧장 운전석에 올라탔다.

“이렇게 가도 돼?”

준석은 대답 없이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켰다. 급하게 차가 출발해 그 반동으로 수현의 몸이 뒤로 훅 밀리자, 준석이 재빨리 그녀의 뒤통수에 손바닥을 밀어 넣었다.

“부딪혔어?”

“아니.”

상냥한 걱정이 좋아 슬그머니 입꼬리를 올리자, 준석이 힐끔 그녀의 얼굴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러더니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어, 박 형사. 난데. 잠깐 확인할 게 있어서 현장 간… 씨발, 이 순경 그 새끼 주둥이 좀 꿰매. 아니, 내가 가서 다 찢어 놓을 테니까 각오하라고 전해.”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은 준석이 뒷좌석으로 핸드폰을 던졌다.

“왜 그래?”

“별거 아니야.”

그리곤 곧장 속도를 높였다. 자동차는 금방 준석의 자취방에 도착했다. 주차도 거칠어서 좀 당황스러웠지만, 한껏 부풀어 있는 앞섶을 보니 영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라 가만히 있었다.

조급한 그의 보폭에 맞춰 겨우 집 안으로 발을 들이기가 무섭게 준석이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

“자, 잠깐만….”

수현의 다리를 허리에 감게 하고 다짜고짜 입술부터 맞대는 준석에게서 희미한 담배 냄새가 났다. 수현이 고개를 뒤로 물리자, 그가 미간을 구겼다.

“뭐하냐. 다시 붙여.”

“담배 냄새 나….”

“피 말려 죽이려고 작정했지, 아주.”

그가 끙, 앓는 소리를 내며 수현을 안아 들고 욕실로 향했다. 그녀가 말리기도 전에 샤워부스에 들어간 준석이 샤워기를 틀어 옷을 쫄딱 젖게 했다.

“차가워!”

“저런, 그럼 같이 씻어야겠네.”

“야아…!”

“앙탈은.”

준석이 능숙하게 그녀의 옷을 벗겨냈다. 대체 왜 이렇게 손이 빠른 거야. 어느새 속옷 차림이 된 수현이 바닥에 떨어져 물에 쫄딱 젖은 셔츠와 바지를 허망하게 바라보았다.

준석이 제 티셔츠를 거칠게 벗어 던졌다. 툭, 옷이 떨어지는 소리에 수현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

그새 더 좋아진 것 같은 준석의 몸에 눈길이 가는 건 그녀의 의지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시선을 느낀 건지 준석이 입꼬리를 올리며 그녀의 손을 잡아 제 배에 가져다 댔다.

“만져도 돼.”

“만지겠다고 한 적 없는데….”

“마음에 들어?”

수현은 저도 모르게 준석의 탄탄한 복근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 운동해?”

“가끔.”

올록볼록한 부분을 더듬대다, 탄탄해 보이는 가슴으로 손을 올리자 준석이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려 손을 뒤로 감췄다.

“나도 만질래.”

준석이 그녀의 몸을 잡아 빙글 돌렸다. 등 뒤로 복근이 닿았다. 그 아래로는 부푼 사타구니가 느껴졌다.

준석이 그녀의 배를 만지작대다 천천히 손을 위로 올렸다. 살갗을 가볍게 쓸며 올라가는 손길이 간지러워 몸을 비틀자, 엉덩이 쪽에서 준석의 좆이 문질러졌다.

“보채지 마.”

“으흣, 보채는 게 아니라….”

서서히 위로 올라온 준석의 손이 브래지어 안으로 파고들었다.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수현은 몸을 비틀었다.

벗길 거면 다 벗기지, 속옷만 남겨둔 탓에 축축하게 젖은 옷감이 몸에 달라붙어 괜히 더 민망했다. 준석은 브래지어를 걷어내지 않고 그 안으로 느긋하게 가슴을 주물렀다.

“으응….”

그가 수현의 귀를 이로 잘근대며 유두를 비틀었다. 상체를 비틀던 수현은 저도 모르게 브래지어를 위로 밀어 올렸다. 가슴이 아래로 쏟아지자, 귓가로 준석의 낮은 신음이 흩어졌다.

“노출증이야? 왜 자꾸 벗어?”

“네가 벗겼잖아….”

“속옷은 스스로 벗었잖아. 변태.”

놀리듯 말하면서도 준석은 브래지어 훅을 풀어 벗겨주었다. 그리곤 곧장 반대쪽 가슴도 움켜쥐었다. 양손으로 가슴을 크게 주무르다 유룬 주변으로 손끝을 살살 굴리며 간지럽히는 손길에 수현은 그의 등에 기대 신음만 뱉어냈다.

“으응… 흐….”

가슴만 만지지 말고 아래도 만져줬으면 좋겠는데, 좀처럼 그는 가슴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유두를 가지고 노는데 재미가 들린 건지 손가락으로 튕기며 아슬아슬한 자극만 줘서 애가 탔다.

한껏 비틀어지는 엉덩이에 준석의 바지 천이 까끌까끌하게 스쳤다. 그의 허벅지를 타고 두툼하게 자리한 좆을 의도적으로 문질렀지만, 준석은 아무 반응 없이 그녀의 가슴만 만져댈 뿐이었다.

“흣, 준석… 아….”

“왜.”

“응… 읏….”

“할 말 있으면 해.”

“흐….”

애타는 얼굴로 돌아보자, 준석의 왼쪽 허벅지가 다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천 아래로 선명하게 느껴지는 성기의 형태가 사타구니에 닿았다. 수현의 얼굴이 화르륵 달아올랐다.

“아으… 읏….”

끊임없이 유두를 튕겨내는 통에 가슴이 앞으로 내밀어지며 허리가 휘었다. 그 탓에 수현은 저도 모르게 무게를 실어 그의 다리 위에 앉았다. 단단한 기둥에 음부가 짓눌려 고개가 저절로 젖혀졌다.

“내 다리로 자위하는 거야?”

“아… 읏, 그런 거 아니야….”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힘이 빠져 그럴 수가 없었다. 낑낑대며 앞에 있는 벽을 붙잡자 준석이 다리를 좀 더 밀어 넣었다. 머리 위로 물이 쉴새 없이 쏟아졌다.

“허리도 움직여 봐. 그럼 더 기분 좋을걸.”

준석이 은근하게 종용했다. 고개를 젓자, 그가 유두를 가볍게 꼬집었다. 야릇한 쾌감에 허리가 비틀리면서 자연히 음부가 짓눌렸다.

“흣….”

“응. 그렇게.”

준석이 가슴을 만지던 손을 내려 수현의 허리를 감쌌다. 커다란 손바닥이 그녀를 옴짝달싹 못 하게 붙잡고 천천히 원을 그리며 움직이게 만들었다.

“아… 읏….”

갈라진 틈이 벌어지며 숨어 있던 음핵이 준석의 좆 위에 뭉개졌다. 수현은 흠칫 놀라며 그의 팔을 붙잡았다.

“이거 놔….”

축축해진 속옷이 물 때문인지 그녀가 흘린 액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가 허리를 움직이게 할 때마다 찌걱대는 소리가 다리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수현은 열락에 젖어 더운 숨을 뱉어내며 그의 손에 휘둘렸다.

“흐읏… 응, 아…”

조금 아쉬운 것도 같다. 팬티를 입고 있는 데다가, 준석도 바지를 입고 있어서 자극이 조금 부족했다. 저도 모르게 허리를 움찔대던 수현은 간신히 그를 돌아봤다.

“알았어, 알았어.”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어떻게 속마음을 읽은 건지 준석이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버클을 풀었다. 속옷과 바지를 벗어내는 그를 힐끔 보며 수현도 제 팬티를 벗으려고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그러다 문득 준석의 그림자가 느껴져 동작이 멈췄다.

“왜… 왜?”

“벗는 거 구경하려고.”

“…….”

“뭐해? 얼른 안 벗고.”

“… 관음증이야?”

중얼거리며 머뭇대자, 준석이 그녀 대신 속옷을 단번에 벗겨 내렸다. 그리곤 마주 본 자세로 그녀의 다리 사이에 허벅지와 좆을 밀어 넣었다.

음부에 준석의 성기가 두껍게 자리했다. 성기끼리 비벼본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부끄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이자 그가 턱을 들어 올렸다.

“네가 달라고 보채던 좆이야.”

“내… 내가 언제….”

그가 씨익 웃으며 수현의 허리를 앞뒤로 살살 움직이게 했다. 음부에 준석의 좆이 미끄럽게 문질러졌다. 젖은 머리를 거칠게 넘긴 준석이 벽을 짚고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움직여 봐.”

“… 읏….”

수현 역시 흥분한 상태라 더 이상 망설일 수가 없었다. 기분 좋은 쾌락을 더 느끼고 싶은 충동에 준석의 가슴에 손을 짚고 천천히 허리를 앞뒤로 흔들었다.

“아… 응… 흐읏, 응….”

“씨발….”

귀두부터 안쪽까지 느리게 좆을 훑을 때마다 준석과 아랫배가 맞닿았다. 움직일 때마다 수현은 본능적으로 음핵을 기둥에 문질렀다. 부푼 음핵을 건드릴 때마다 몸이 움찔움찔 떨렸다.

준석은 그녀가 움직이는 걸 가만히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머리 위로 드리워진 그림자에서 집요한 시선이 느껴졌다. 창피하면서 동시에 흥분되었다.

저도 모르게 허리가 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질척대는 마찰 소리가 그에 맞춰 빨라졌다.

“내 좆이 그렇게 좋아?”

“흣, 아응….”

허리가 수현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였다. 점점 차오르는 쾌감에 수현은 허공에 맴돌던 팔을 준석의 목에 둘렀다.

“아… 아앙…!”

한껏 흥분해 허리를 흔들다, 불시에 절정이 찾아왔다. 온몸의 털이 삐죽 솟는 것 같은 쾌감에 수현은 준석의 허벅지를 제 다리로 꽉 조이며 고개를 마구 저었다.

“흐으… 응, 아….”

“자위 기구가 된 기분이네.”

눈을 질끈 감고 달달 떨다 순간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번쩍 들자, 준석이 즐거워 죽겠다는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네가 하라고 했잖아….”

“칭찬이야.”

그가 낮게 웃으며 얼굴 곳곳에 입을 맞췄다. 쪽쪽 대는 소리가 샤워 부스 안에 울렸다.

한참 입을 맞춰대던 준석이 씻겨 주겠다며 그녀에게 샤워볼을 들이밀었다. 예전에 그의 손에 씻겨지며 농락당했던 기억이 있어서 뒷걸음질을 치다, 흉흉하게 솟아있는 성기에 시선이 닿았다. 준석이 스읍, 소리를 내며 그녀의 시선을 분산시켰다.

“여기서 안 할 테니까 쫄지 마.”

그가 장난스레 말하며 샤워볼에 거품을 냈다. 그래도 의심을 거두지 않자, 준석이 제 좆을 손으로 한번 훑었다. 성기가 크게 꺼떡이는 모습이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그리고 야했다.

“자꾸 보면 안 참아.”

“… 만져줄까?”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풀어 있는 게 신경 쓰여 하는 말에 준석이 미간을 구겼다.

“상당히 꼴리는데, 나중에.”

“…….”

“네 손보다 보지로 싸고 싶거든.”

“제발 말 좀….”

질색하며 나무라자 그가 웃으며 수현의 몸에 샤워볼을 문질러댔다. 정말로 여기선 더 건드리지 않을 작정인지 담백하게 몸을 씻겨주는 준석을 힐끔대다, 한 번 더 용기를 내 봤다.

“입… 입은?”

“…….”

준석의 손이 뚝 멎었다. 성기가 한번 꿈틀댔다.

“입 다물어.”

하도 무섭게 말해서 수현은 저도 모르게 입을 꾹 다물었다. 아무래도 그는 입으로 애무받는 게 싫은 모양이다. 해주는 건 좋아하면서. 이제 펠라는 이야기도 꺼내지 말아야겠다.

시무룩하게 씻겨주는 대로 가만히 있자, 이내 샤워기로 거품을 씻어낸 준석이 그녀를 돌려세웠다.

“이러면 곤란해.”

“… 뭐가.”

“내 좆 못 빨게 했다고 속상해하잖아.”

“그런 거 아니야….”

“하여튼 우리 자기는 야해 빠졌다니까.”

놀리는 어투에 더 민망해졌다. 진짜 다시는 말도 안 꺼낼 거야.

“아무리 빨고 싶어도 안 돼. 네가 내 좆 무는 꼴은 못 보겠으니까 이건 네가 이해해.”

“… 왜?”

진짜 궁금해서 물었다. 솔직히 수현은 그가 제 몸을 물고 빠는 게 부끄럽긴 해도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손가락이나 성기로 박는 것보다는 혀로 애무해주는 쪽이 부드러워서 더 좋았다. 그러니 당연히 준석도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렇게까지 싫어하니까 이유가 궁금했다.

“그건 좀… 씨발, 아무튼 안돼.”

준석은 다시 생각해도 용납이 안 되는 듯 거칠게 고개를 저었다. 어쩔 수 없지. 수현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그가 들고 있는 샤워볼을 빼앗았다.

“나도 씻겨줄래.”

“… 그러던지.”

그가 순순히 그녀의 손에 몸을 맡겼다. 구석구석을 문지르며 거품을 내자, 순순히 팔을 들어주고 몸을 돌려주는 게 퍽 재미있었다.

다리도 씻겨주려고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발등까지 샤워볼을 문질러 주다가 고개를 든 수현은 문득, 눈앞에 흉흉하게 서 있는 좆을 발견하곤 놀란 얼굴을 했다.

조금만 다가가면 입술에 닿을 위치였다. 볼이 화끈 달아올랐다. 고개를 더 들자 난감하다는 듯 입술을 깨문 준석과 눈이 마주쳤다.

“야야, 그만해.”

준석이 급히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나 쓰레기로 만들지 마.”

이미 쓰레기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곤란해 보여서 잠자코 있었다.

그 뒤로도 준석은 머리를 감고, 양치를 하고, 수현에게 샤워가운을 입혀주면서도 연신 혼자 욕을 중얼거렸다.

먼저 욕실에서 나온 수현은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씻은 데다가 한차례 절정까지 느껴 나른한 기운이 감돌았다.

“나도 물 줘.”

준석에게 생수병을 내밀자, 그가 고개를 저으며 수현을 냉장고 앞에 가두듯 다가왔다. 가운을 입은 그녀와 달리 그는 알몸이라 시각적인 자극이 상당했다.

“입으로 먹여줘.”

준석이 병 입구를 그녀의 입술에 가져다 댔다.

“더럽게 그게 뭐야… 그냥 먹어.”

“싫어. 수현이 침이랑 같이 마실래.”

“…….”

“빨리. 목말라.”

준석의 재촉에 수현은 마지못해 생수병을 입에 대고 살짝 기울였다.

입 안에 차가운 물이 들어오기가 무섭게 그가 입을 맞춰왔다. 입술 사이로 물이 흘러 가운이 축축하게 젖어 들어갔다. 절반쯤은 새어 나갔음에도 준석은 쪽쪽 소리를 내며 입 안을 빨아댔다.

“더 마실래.”

키스가 하고 싶으면 그냥 하면 될걸, 굳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와 입을 맞추는 건 좋으니까 수현은 순순히 다시 물을 머금었다.

이번에는 그가 그녀의 고개를 위로 한껏 젖히게 만들고 입술을 붙였다. 그래서 흐르는 건 적었지만, 침이 섞인 물을 마시는 건 수현의 몫이었다. 꿀꺽, 물이 넘어가자 준석이 입술을 떼고 장난스레 나무랐다.

“네가 다 먹으면 어떡해?”

“… 그냥 평범하게 마셔.”

수현은 그의 손에 물병을 쥐여주고 도망치듯 품 안에서 빠져나왔다. 준석이 웃으며 손을 뻗었다.

“어허. 이리와, 자기야.”

“징그럽게 굴지 마.”

“내가 징그러워?”

“응.”

“그럴 리가. 섹시하겠지.”

탄탄한 알몸을 보니 틀린 말은 아니다. 수현은 잘난 얼굴로 뻔뻔하게 웃는 그를 밉지 않게 흘겨보다 슬그머니 침대에 걸터앉았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섹스나 하자는 거야?”

놀리듯 다가오는 그를 나무라는 대신 양팔을 뻗었다. 안아달라는 의미를 알아차린 듯 준석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꼬시네?”

순식간에 다가온 준석이 그녀를 침대 위에 눕히고 덮치듯 올라탔다. 무게를 싣지 않고 가볍게 내리누른 그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자, 준석이 제 입술을 혀로 핥았다. 꼬시는 건 본인이면서. 수현도 덩달아 제 입술을 핥았다. 그러자 준석의 시선이 예민하게 그녀의 혀끝을 쫓았다.

“자꾸 꼬시지 마.”

“왜?”

“뭐?”

준석이 그답지 않게 멍하니 되물었다. 수현은 살짝 고개를 들어 그의 입술 위에 쪽- 소리 나게 입을 맞췄다.

준석의 동공이 느슨하게 풀어졌다. 넋이 나간 것 같은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좀 더 대담하게 혀로 핥아보았다.

“남자 친구 꼬시는 게 뭐 어때서.”

“…….”

준석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찰나, 그가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턱을 눌러 입을 벌리게 만들곤, 혀를 밀어 넣는 행동에 여유가 없었다.

조급하게 입 안을 헤집는 속도에 맞춰 나름대로 열심히 혀를 굴렸지만, 아직 따라가기는 벅찼다. 정말 그녀가 처음이 맞는 건지는 여전히 의심하는 중이었지만, 일단은 키스에 집중했다.

“으응….”

준석의 혀가 입천장을 가볍게 긁으며 입 안을 유린했다. 수현은 머리맡을 짚고 있는 그의 팔을 기둥처럼 붙잡고 낑낑대며 혀를 맡겼다. 입 안에서 침이 섞이는 소리가 자극적이었다.

“흐… 나, 숨… 막혀….”

잠깐잠깐 입술이 떨어질 때, 겨우 붙잡았다. 금방이라도 다시 혀를 밀어 넣을 것처럼 내려다보는 얼굴이 유독 섹시해서 잠깐 홀린 듯 바라보았다. 코가 닿을 거리에서 준석의 입술이 느리게 열렸다.

“안 꼬셔도 진작 넘어갔어.”

흥분한 건지 목소리가 탁했다. 멍하니 준석을 바라보던 수현은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그의 볼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언제부터?”

준석이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다는 듯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나 언제부터 좋아했어?”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닌데.”

벌어진 가운 틈으로 준석의 좆이 들어와 허벅지를 문질러댔다. 축축하게 젖은 선단이 허벅지 위를 짓누르는 것에 몸이 동하긴 했지만, 그래도 궁금한 게 먼저였다.

“처음 섹스하고 좋아진 거야?”

“뭐?”

준석이 황당하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아, 그건 좀 너무 빠른가….

“두 번째…?”

“얼씨구.”

“아니면 중간에 그냥… 야한 짓 할 때?”

“넌 날 짐승 새끼로 보는구나.”

그가 짐승처럼 목구멍을 긁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자, 피식 웃으며 다시 키스하려고 해서 손으로 준석의 입을 막았다.

준석이 답답하다는 듯 끙,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젖혀 수현의 손바닥에서 벗어났다.

“또 뭐에 꽂혀서 이래.”

“궁금하단 말이야. 언제 나 좋아진 건지.”

“시작이 뭐가 중요해.”

“난 너 되게 오래전부터 좋아했는데….”

“알아.”

“… 뭐?”

놀란 시야에 준석의 덤덤한 얼굴이 들어왔다.

“알고 있다고.”

당황한 수현이 가운을 여미며 몸을 일으켰다.

“언제, 언제부터…? 어떻게?”

“강수현, 나 고문해?”

준석이 신음하며 도로 그녀를 눕혔다.

“옛날부터 알았어.”

“… 거짓말….”

“진짜야. 그리고 난 그 전부터 너 좋아했고. 아마.”

“뭐?”

수현은 충격받은 얼굴로 입을 벌렸다. 준석이 피식 웃으며 벌어진 입술 사이를 혀로 핥았다. 맛을 보듯 할짝대는 그를 밀어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준석의 눈이 찌푸려졌다.

“그럼 좋아하지도 않는데 섹스를 했겠어?”

“…….”

“이제 됐지? 하던 거 마저 하,”

“너무해….”

그녀의 어깨에서 가운을 걷어 내려던 준석이 동작을 뚝 멈췄다. 그리곤 수현의 얼굴에 떠오른 원망을 읽은 듯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너 좋아했다니까.”

“알면서 모른척한 거야…?”

“그런 거 아니야.”

“그럼 왜 말 안 했어!”

준석이 그녀의 귓불을 만지작거렸다.

“네가 하도 필사적으로 숨겨서 그냥 장단 맞춰 준 거야.”

“그게 말이 돼?”

“안 될 건 뭐야.”

“네가 먼저 고백할 수도 있었잖아…!”

그간 짝사랑을 하며 서러웠던 기억이 한 번에 밀려왔다.

옛날부터 준석은 이성에게 인기가 많았었기 때문에, 언제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할지 몰라 밤마다 속앓이를 했었다. 티를 낼 수도 없으니 친구인 척 주변만 맴돌며 안절부절못하다, 기어이 선을 본다는 말에 섹파 제안까지 했는데.

알고 있었으면서도 모르는 척, 그 제안을 받아들인 거라니. 충격이었다.

“너… 나 가지고 논 거야?”

준석의 눈이 찌푸려졌다.

“무슨 말이 그래. 그런 거 아니야.”

준석이 그녀를 품에 안고 몸을 빙글 돌려, 제 배 위로 도망치지 못하게 꼭 끌어안았다.

“내가 미쳤어? 널 왜 가지고 놀아.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잠깐 머뭇대던 준석이 서러움에 구겨진 수현의 미간에 입술을 붙였다.

“어차피 난 평생 네 옆에 붙어 있을 작정이었으니까, 천천히 가도 되겠다고 생각했어.”

“…….”

“너만 준비되면 그때부터 시작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서 고백 안 한 거야. 언제든 네가 고백하면 무조건 받았어, 난.”

수현은 준석의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그녀를 좋아하고 있었고, 그녀도 그를 좋아한다는 걸 알았으면 먼저 이야기를 꺼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럼 쓸데없는 시간 낭비를 안 해도 되었다. 섹파니 뭐니 하는 멍청한 제안도 할 필요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 좋아하는 티 날 때마다 귀엽기도 했고.”

“… 이것 봐. 가지고 논 거잖아….”

울먹이며 품에서 벗어나려고 하자, 준석이 그녀를 꽉 끌어안고 “미안, 미안.” 하며 성의 없는 사과를 내보였다.

“그래서 내가 싫어졌어?”

뻔뻔하게 물어보기까지 한다. 수현은 허송세월로 보낸 시간이 아깝고, 모른 척한 그가 밉고, 짝사랑했던 시간들이 억울한데 그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심지어 이 와중에도 다리 사이에 좆을 문지르는 건 진짜 너무한 거 아닌가.

“나 안 할 거야.”

“뭘?”

그가 알면서 모르는 척 가운 아래로 그녀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진짜 짐승이 따로 없다. 어떻게 이 와중에도 섹스할 생각을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엉덩이를 주무르는 커다란 손아귀를 떨쳐내려고 허리를 비틀자, 준석이 낮은 신음을 뱉었다.

“좆 뭉개는 거 좋다. 더 해봐.”

“놔…!”

“싫어. 안 놔. 지금 놓으면 너 도망갈 거잖아.”

그가 다 안다는 듯 속삭이며 수현의 가운 밑단을 들어 올렸다. 엉덩이를 쥐고 있던 손이 아래로 미끄러지듯 내려가 질구를 문질렀다.

“삐진 줄 알았는데, 젖어 있네. 무슨 취향인 거야?”

준석이 젖은 구멍에 손가락을 문지르며 찌걱대는 소리를 만들어냈다.

“하지… 마… 흣….”

피하려고 엉덩이를 이리저리 흔들자, 오히려 그의 손에 음부를 문지르는 꼴이 되었다. 준석이 재밌다는 듯 웃었다.

“너무해….”

“알았어, 손가락 넣어 줄게.”

“너 진짜… 최악이야.”

“뭐?”

구멍에 검지를 밀어 넣던 준석이 시선을 들었다. 수현은 그를 노려보며 원망을 토해냈다.

“준희 언니 말이 맞았어.”

수현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린 듯, 준석의 표정이 굳어졌다.

“너 연애하기 최악이야….”

“뭐? 야,”

“짜증 나, 우준석.”

준석의 팔에 힘이 풀린 틈을 타 품에서 벗어났다. 침대에서 내려오자, 준석이 곧장 몸을 일으켜 그녀를 쫓았다.

“그래서?”

무서운 기세로 다가오는 준석을 피하다 보니 등에 벽이 닿았다. 그가 마른세수를 하며 한 손으로 벽을 짚었다.

“그래서 나랑 연애 안 하겠다는 거야?”

“… 그런 말 안 했어.”

“그럼 방금 그게 무슨 뜻인데.”

준석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가 무섭다던 순경의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준석의 험악한 기운에 주눅이 들어 울먹이며 고개를 숙였다.

“강수현, 고개 들어.”

“…….”

“너 진짜 나랑 관둘 거 아니면, 고개 들라고.”

울컥, 눈물이 새어왔다. 입술을 꾹 깨물고 바닥만 내려다보자, 거칠게 그녀의 턱을 들어 올린 준석이 울고 있는 걸 발견하곤 잠깐 손을 내렸다.

“왜 울어?”

“…….”

“너 설마 진짜 나랑,”

“누가 너랑 헤어진대?”

수현은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뱉어냈다. 맹세코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한 적 없다. 연애하기 최악인 건 맞지만, 그래서 서운하지만, 그렇다고 그와 헤어지고 싶다는 생각은 잠깐이라도 든 적 없었다.

“난 죽어도 너 안 놔줘. 평생.”

“나도 너 안 놓아 줄 거야, 바보야….”

울면서 하는 말에 그제야 준석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그리곤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왜 이러는데.”

“난… 난 서운하단 말이야….”

“뭐가. 좋아하는 거 알면서 모른 척한 거?”

고개를 끄덕였다. 준석이 그녀의 손을 살짝 내렸다. 서럽게 구겨진 얼굴에 준석의 눈썹도 덩달아 구겨졌다.

“짝사랑하게 만들어서 서운했어?”

수현은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며 손등으로 눈가를 훔쳤다.

“시간 낭비했잖아. 괜히 마음고생 하고…. 네가 조금만, 조금만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안 그래도 됐는데.”

“응.”

“너 맞선 본다고 해서… 다른 사람한테 빼앗길까 봐, 섹… 섹스까지 하자고 했는데….”

“응.”

“근데도 계속 모른 척했다고 하니까, 섭섭하고… 미운데….”

흐느끼며 간신히 말을 이었다.

“넌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니까… 나만, 나만 애타는 거 같잖아.”

“미안.”

준석이 그녀의 볼을 감싸고 자신을 보게 했다. 커다란 엄지가 볼을 가볍게 문지르며 눈물 자국을 지워냈다.

“살면서 좋아해 본 여자라곤 너밖에 없어서 좀 서투른가 봐, 내가.”

“…….”

“더 솔직하게 사과했어야 한 거지?”

준석이 그녀를 품에 안았다. 가볍게 등을 쓸어 내리는 손길이 퍽 조심스러웠다.

“모른 척해서 미안해.”

“…….”

“솔직히 말하면. 고백하려고 한 적도 있었는데….”

그 말에 조금 놀란 눈을 들자, 준석이 “쪽팔리네.” 하고 작게 중얼거리며 말을 이었다.

“대학 때 너 쫓아다니던 새끼 있잖아.”

대학 때라면… 그녀에게 고백했던 선배를 말하는 듯했다. 같이 영화를 봤던. 그가 다시 생각해도 짜증 난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그 새끼한테 너 빼앗길까 봐, 고백해 버릴까 했는데….”

“했는데?”

“도저히 입이 안 떨어지더라.”

“왜?”

“좀… 닭살 돋잖아.”

“뭐가….”

“몰라. 좀 그래. 내가 널 좋아하는 건 맞는데, 입 밖으로 내는 게 좀….”

톡톡, 그가 등을 토닥였다.

“미안해. 네가 이렇게 울 줄 알았으면, 그때 용기 냈어야 했는데.”

“…….”

“타임머신 출시되면 옛날로 돌아가서 내가 먼저 고백할게. 그러니까 용서해줘. 어?”

“그게 뭐야….”

어처구니없는 말에 수현은 저도 모르게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제야 준석이 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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