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아, 아주머니, 뭐라고 하셨어요?”
“응. 준석이 선본다구.”
수현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준석의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선이라고? 선? 맞선? 남녀가 결혼을 전제로 소개받는 그 선?
수현이 충격에 빠진 것을 눈치채지 못한 준석의 어머니는 연신 싱글벙글하며 그녀에게 복숭아를 깎아 주었다.
“선을 본대요? 준석이가요?”
“응. 보겠대. 수현이 너도 지은이 유치원 선생님 알지?”
“네, 지은이 데려다주시는….”
“그 선생님이야. 둘이 잘 어울릴 거 같지?”
가끔 시간이 날 때 준석의 조카인 지은이를 데리러 가곤 했기 때문에 수현도 유치원 선생님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늘 상냥하게 인사를 건네주는 선생님은 특유의 밝은 분위기가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자신은 절대로 가질 수 없는 사랑스러움이라는 생각에 묘하게 기가 죽기도 했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엔 느낌이 좋아.”
준석의 어머니가 기대 어린 눈으로 준석의 방을 돌아보았다. 수현의 고개도 덩달아 돌아갔다. 한 시간쯤 전에 본가에 온 준석은 밀린 잠을 몰아 자는 중이라고 했다.
“이번엔 우리 막내도 연애란 걸 할 거 같아. 엄마의 촉이 와.”
입 안이 바짝바짝 마르고 심장이 불안하게 쿵쿵대는 것은, 수현 역시 그 비슷한 촉이 오기 때문이었다.
짧은 단발머리를 한 밝고 사랑스러운 선생님을 다정하게 바라보는 준석을 떠올리자 절로 울상이 지어졌다.
“참, 이모 준희랑 지은이랑 저녁 먹으러 갈 건데, 지금 나가야 해. 수현이도 갈래?”
“아니에요. 저 일이 남아서… 다음에요.”
“그래 그럼. 복숭아 마저 먹고 가.”
“다녀오세요, 아주머니.”
“이모~.”
이모라는 호칭을 요구하는 준석의 어머니에게 수현은 어색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예전엔 이모라고 잘만 하더니.”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수현과 준석의 어머니들 덕분에 두 집안의 인연은 꽤 길었다.
태어날 때부터 봐 온 준석의 어머니는 수현에게는 정말로 이모나 다름없는 존재이긴 했다. 어릴 때는 이모라고 부르며 졸졸 따랐다. 하지만 준석을 좋아하게 된 뒤로는 이모라고 부르지 않았다. 더 특별한 가족이 되고 싶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시어머니 같은….
“아줌마라고 하니까 멀어진 기분이야~.”
준석의 어머니가 장난스레 입을 삐죽이다 이내 현관을 나섰다. 배웅을 마친 수현은 한숨을 푹 뱉으며 거실로 돌아왔다.
갈색의 질 좋은 가죽 소파에 앉아 조각난 복숭아를 내려다보던 수현의 시선이 다시 준석의 방으로 향했다.
형사인 준석은 거의 경찰서에서 살다시피 하고, 가끔 쉬는 날이 있어도 경찰서 근처 자취방에서 모자란 잠을 채우기 일쑤였다.
오랜만에 그가 본가에 왔다는 말에 하던 일도 멈추고 달려왔다. 내일까지 일러스트 작업을 마무리해야 하지만, 이번에 못 보면 또 한동안 볼 수 없을 것 같아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준석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잠귀가 밝으니 그녀가 온 걸 알았을 텐데도 말이다.
그의 무심함에 속이 상해 애꿎은 복숭아만 포크로 쿡쿡 찔렀다.
그것도 모자라서 선을 보겠다고? 절대 그런 건 안 할 줄 알았는데.
자그마치 삼십 년이다. 삼십 년 동안 준석과 붙어 지낸 수현은 그가 여자에게 관심이 없다고 확신했다. 그도 그럴 게 여태 연애는커녕, 지나가는 여자에게도 눈길 한번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너무 관심이 없어 보여 그가 성 소수자가 아닌가 의심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준석에게 슬그머니 성적 성향을 물어봤는데, 돌아온 대답은 수현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는 눈빛뿐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맞선? 그럴 바엔 차라리 남자 애인이 낫다. 성별에서부터 아예 가능성이 없는 거라면 기꺼이 그를 포기하고 응원할 수 있었다.
하나, 지금까지 수현과 가족들을 제외한 여자는 곁에 두지 않았던 그가, 낯선 여자와 단둘이 만나려고 한다. 그것도 아주아주 괜찮은 여자와 결혼을 전제로.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이러려고 지금까지 조용히 좋아한 게 아닌데… 아끼다 똥 됐다.
거만하게 들릴진 모르겠지만, 수현은 여태껏 준석의 네 번째로 소중한 사람은 자신이라고 확신했다. 조카, 어머니, 누나, 그다음 정도는 된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문득, 수현의 자리를 유치원 선생님이 차지하고 그녀가 뒤로 밀려나는 상상을 하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만약 준석이 유치원 선생님과 잘되어서 결혼까지 하게 된다면 수현은 멀쩡하게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상사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작업 기한을 놓쳐서 업계에 소문이 나고, 아무도 그녈 찾지 않아 스스로 돈벌이도 못 한다며 부모님께 버림받고 혼자 쓸쓸히 늙어가겠지. 생각이 흘러가 비약으로 넘어갔다.
“안돼….”
포크를 쥔 손이 떨렸다.
이대론 안 된다. 눈뜨고 준석을 빼앗길 수 없다.
준석을 빼앗긴다는 것은 곧 수현의 인생 전부를 빼앗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와 평생을 함께했는데, 앞으로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니 세상에 홀로 버려진 것 같은 외로움마저 들었다.
수현은 마음을 먹고 포크를 내려놓았다. 어떻게 해서든 준석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앞뒤 재지 않고 일단 그의 방으로 향했다.
끼익-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자, 침대에 널브러져 자는 준석이 보였다.
정면으로 누워 오른쪽 팔을 이마에 걸친 자세였다. 상의를 벗고 있어 가슴이 훤히 보였지만, 소꿉친구로서 그 정도 노출은 가볍게 넘길 수 있었다. 물론 맨살을 힐끔대기는 했다.
“우준석… 자?”
불러도 대답이 없는 걸 보니, 어지간히 피곤한 모양이다. 보통 이렇게만 불러도 왜 깨우느냐고 투덜대며 일어나곤 했는데.
그녀가 온 걸 알고도 모른척한 게 아니라 정말 수마에 빠져서 기절한 거라고 생각하니 심술이 살짝 가라앉았다.
수현은 침대에 걸터앉아, 옅게 코를 고는 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은 피곤함에 찌들어 푸석푸석했지만, 오히려 특유의 굵은 선과 어우러져 거칠고 남성적인 매력을 가중시켰다.
짙은 눈썹과 높이 솟은 콧대, 붉은 입술까지 샅샅이 훑어가던 수현의 얼굴이 새삼 붉어졌다. 그가 강력팀으로 간 뒤로는 자주 못 본 탓에 괜스레 낯선 남자를 보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샤워하고 곧장 잠이 든 것인지 머리카락이 젖어 있었다. 앞머리가 이마에 덕지덕지 붙은 모습이 마치 화보 속 섹시한 모델 같다. 수현은 잠깐 속상한 것도 잊고 준석의 얼굴을 감상했다.
문득 젖은 머리카락을 만져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생각을 갈무리하기도 전에 손이 뻗어 나갔다.
천천히 다가간 손끝이 머리카락에 닿으려는 찰나, 손이 덥석 잡혔다. 그리고 몸이 휙 돌아 한순간에 침대에 눕혀졌다.
“뭐야.”
신경질적인 저음이 낮게 깔렸다.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수현은 멍청하게 눈만 깜빡거렸다. 어느 순간 준석이 그녀의 팔을 머리 위로 결박하고 위에 올라타 있었다.
“뭐냐, 강수현.”
수현을 알아본 준석이 팔을 놓아 주었다.
“도둑인 줄 알았네.”
“놀랐잖아!”
“그러게 누가 경찰 아저씨 자는 거 훔쳐보래?”
“후, 훔쳐보긴 누가 훔쳐봐?”
수현은 그의 가슴팍을 밀어내며 눈을 흘겼다. 그러다 잠깐 그의 오른쪽 어깨 상처에 시선이 멎자, 준석이 씁- 하고 주의를 끌었다.
“여기서 뭐 하냐.”
“얼굴 안 본 지 오래돼서 그냥 보러 온 거거든?”
“훔쳐본 거 맞네.”
억울하지만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자, 준석이 장난스럽게 “오빠 보고 싶었어?” 하며 수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빠는 무슨. 내가 너보다 생일 두 달이나 빨라.”
“그러세요, 누나?”
수현은 가볍게 비꼬는 그를 노려보며 침대 헤드 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잠깐 준석의 눈빛이 묘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본론부터 꺼냈다.
“너 선봐?”
“어머니가 말했어?”
준석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좋아 죽네? 선보는 게 그렇게 좋은가?
“진짜 선보려고?”
“아마도.”
“너 연애 안 하잖아.”
“그랬지.”
“그랬지?”
불안한 대답이었다.
“과거엔 안 했지만, 앞으로는 해보겠다는 의지가 담긴 대답이야. 알아들었어?”
충분히 알아들었다. 수현은 초조한 심정으로 입 안 여린 살을 씹었다. 왜? 왜 갑자기? 여태 멀쩡히 혼자 잘 살아 놓고!
“그거 물어보려고 내 침대 위에 올라온 거야?”
“내가 올라온 게 아니라 네가 끌어들인 거잖아.”
“네가 먼저 앉던데.”
“깨어 있었어?”
그가 대답 대신 빙글빙글 웃었다. 연애하겠다는 것도 모자라, 정말로 그녀가 온 걸 알고도 코빼기도 안 비친 거였다. 그동안 보고 싶었던 건 자신뿐이라는 확인 사살에 서운함이 밀려왔다.
“근데 너 그렇게 있으니까,”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준석이 운을 뗐다.
“독 안에 든 쥐 같다.”
“무슨 소리야.”
“잡아먹히기 직전 같다고.”
가뜩이나 낮은 목소리에 미묘한 숨소리가 섞였다. 왠지 섹시하게 들리는 건 착각인가. 수현은 귀가 뜨거워지는 걸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문득, 그가 유치원 선생님에게 이런 목소리로 사랑 고백을 하는 상상을 하니 마음이 싸늘하게 식었다.
“복숭아 먹었어? 단내나.”
킁킁, 그가 먹이를 살피는 늑대처럼 고개를 가까이해 냄새를 맡았다. 갑자기 코앞까지 다가온 얼굴에 화들짝 놀라서 몸을 뒤로 물리자, 쿵- 하고 침대 헤드에 등이 부딪혔다.
준석이 혀를 내밀어 자신의 입술을 살짝 핥았다. 입맛을 다시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내가 맞선을 보는 게 불만인 거야?”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수현은 조금 당황했지만, 다년간의 짝사랑을 통해 다져온 연기력으로 표정 관리를 할 수 있었다.
“그, 그래. 불만이다.”
“그래?”
그가 가볍게 반문하며 좀 더 거리를 좁혔다. 왜 자꾸 오는 거야. 더는 물러날 공간이 없는데, 자꾸 다가오니 얼굴이 가까워져 괜히 긴장되었다.
입술이 마르는 거 같아 혀로 입술을 핥자, 준석의 시선이 기민하게 움직임을 포착해 따라붙었다.
“뭐가 불만인데?”
침으로 젖은 입술부터 천천히 훑고 올라온 준석의 눈동자와 다시 마주쳤다. 그는 더 이상 웃고 있지 않았다.
“그 여자분은 무슨 죄야.”
이어지는 수현의 말에 준석이 허탈하다는 듯 숨을 내뱉으며 몸을 뒤로 물렸다. “그럼 그렇지.” 하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뭐가 그럼 그렇다는 거야. 수현은 신경질적으로 그의 팔을 붙잡았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살이 유난히 뜨겁다. 그가 그녀에게 잡힌 팔을 내려다보았다.
“괜히 좋은 사람 상처 주지 마. 넌 연애하기에는 너무 바쁘고, 무신경하고, 싸가지도 없고, 배려도 없고….”
연이은 비난에도 그는 수현의 손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두꺼운 팔뚝을 좀 더 힘주어 꼬집듯이 잡자, 그제야 준석이 고개를 들었다.
“너 연애 경험 없어서 제대로 리드도 못 할걸.”
“그런가.”
“데이트도 엄청 재미 없을 거고, 스킨십도….”
말이 뚝 멈췄다. 다른 여자와 스킨십을 하는 준석이 떠오르기 전에 생각을 차단했다.
준석을 좋아하게 된 이후로 종종 그와 스킨십을 나누는 상상을 하곤 했다. 가끔 성욕이 무르익는 기간에는 섹스하는 상상까지 하며 자위를 한 적도 있었다.
죽어도 어디 가서 말 못 할 파렴치한 짓이긴 하지만, 인간의 욕구는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이미 수도 없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범해졌다.
정작 그녀가 준석과 나눈 최대의 스킨십은 사 년 전, 준석의 매형의 장례식에서 위로차 포옹을 한 게 전부였다.
그런데 준석이 다른 여자와 이런 짓 저런 짓 다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질투심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절대 안 돼. 그 꼴은 절대 못 본다.
“그럼 도와주든가.”
준석이 어딘가 조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생각에 잠겨 있던 수현이 뒤늦게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뭘 도와주냐고 묻기도 전에, 대뜸 입술이 먹혀들었다. 준석의 입술에.
“으읍…!”
놀란 수현이 급하게 그를 밀어내자 준석이 잠깐 입술을 떼었다. 코가 스치는 거리에서 준석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뭐, 뭐 하는 거야?”
“아아, 네가 걱정하는 거 같아서.”
“뭐가 걱정,”
“도와줄 거지?”
그가 말을 끊어내며 다시 수현의 입술을 빨아들였다. 쭙쭙 소리를 내며 입술을 빨아 대는 것에, 수현은 영혼이 빨려 나가는 기분이었다.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너무 당황해 사고회로가 정지했다. 멍하게 벌어진 입술 사이로 준석의 혀가 들어올 때도 그랬다.
뜨겁고 물컹한 혀가 치열을 훑으며 입 안으로 들어왔다. 혓바닥이 입천장을 진득하게 핥아내며 수현의 혀를 건드렸다.
준석이 고개를 모로 꺾으며 엄지로 턱을 눌러 입을 더 벌리게 했다. 깊게 맞닿은 입술 사이에서 타액이 섞이는 질척한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수현은 간신히 그의 가슴팍에 손을 올렸다. 준석이 입술을 떼고 낮게 속삭였다.
“애무하는 거야?”
멍청하게 바라보자, 준석이 고개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그걸 따라간 수현은 자신의 검지와 중지 사이에 그의 유두가 끼워져 있는 걸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 손을 뒤로 물렸다.
“너 뭐야…! 갑자기 왜,”
“그러게 왜 도발해.”
“내가 언제!”
“아, 몰라. 네가 먼저 시작했어. 불가항력이었다고.”
키스… 키스했어. 우준석이랑.
상상만 하던 일이 실제로 벌어진 것이었다. 왜? 왜 갑자기 키스한 거지? 왜? 우준석이 왜? 내가 무슨 도발을 했다고? 혼란스러운 머리는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멍하니 벌어진 입술을 손등으로 훔치며 그를 바라보았다. 충격에 빠진 수현과 달리, 준석은 덤덤해 보였다. 그가 침대 헤드를 손으로 짚고 그녀를 가둔 채 경고하듯 말했다.
“이제 나가는 게 좋을걸.”
준석이 턱짓으로 자신의 어딘가를 가리켰다. 따라 시선을 내리자 어느새 이불이 걷어져 있었다. 그리고 보이는 그의 하반신.
검은 드로어즈 하나만 걸친 다리 사이를 본 수현은 순간 기겁하며 입을 틀어막았다. 그의 성기가 왼쪽 허벅지를 타고 두툼하게 부풀어 있었다. 말도 안 돼. 정말로?
“안 나가면 확 잡아먹는다?”
너무 놀라면 할 말을 잃는다. 수현이 지금 딱 그랬다.
수현은 가끔 그의 팔뚝이나, 손등의 힘줄, 허벅지 같은 것들을 훔쳐보면 아래가 젖을 때도 있었지만, 준석은 단 한 번도 성적인 반응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런 준석이 그녀를 상대로 발기를 한 것이었다. 여태 붙어 다녔지만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갑자기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순간 이것이 기회라는 생각이 스쳤다.
수현은 빨리 나가라며 투덜대는 준석의 손을 붙잡았다. 그가 눈썹을 찌푸렸다.
“지금 여기서 나를 잡으면 안 되지.”
꿀꺽, 침이 무겁게 넘어갔다. 잠깐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에라 모르겠다, 미친 척하고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준석의 움직임이 뚝 멎었다.
“너 지금 뭐 하냐? 나 농담하는 거 아니야.”
돌처럼 굳어버린 그를 끌어안고 무릎 위에 올라타자, 다리 사이에 성난 앞섶이 가득 메워졌다.
“강수현, 내려와. 잡아먹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몰라서 이래?”
“아, 알아.”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렸다. 수현은 질끈 눈을 감고 준석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솔직히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라 겁이 났지만, 준석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그녀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준석의 어깨가 크게 들썩였다.
“알고도 이러면 내가 참아 줄 이유가 없는데.”
준석은 드로즈어만 입고 있었고, 그녀는 집에서 작업하다 온 거라 가벼운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얇은 옷감 위로 그의 성기가 점점 더 부푸는 게 느껴졌다.
“난 분명히 경고했어. 기회도 줬고.”
순간 눈앞이 확 뒤집혔다. 준석이 다시 그녀를 밑에 깔아 눕힌 탓이었다. 놀란 시야에 무서운 얼굴을 한 준석이 들어왔다.
“앗…!”
준석이 순식간에 그녀의 상의를 찢어 버렸다. 깜짝 놀라서 손을 뻗었지만, 이미 천 쪼가리가 된 티셔츠는 바닥에 던져진 후였다. 아무리 여름용이라 얇다고 해도 이렇게 쉽게 찢어질 줄은 몰랐다.
“무슨…!”
“입 다물어.”
멋대로 옷을 찢어버린 그에게 항변하려고 했지만, 가볍게 무시당했다. 그녀가 입고 있는 브래지어를 위로 밀어 올리는 준석의 손길에 여유가 없었다.
“야…!”
순식간에 그의 눈앞에 가슴이 훤히 드러났다. 아무리 준석과 섹스하는 상상을 수없이 했다고 한들, 먼저 그에게 안겼다고 한들, 몸을 보이는 건 부끄러웠다.
급히 손을 들어 가슴을 가리자, 준석이 한 손으로 수현의 양팔을 잡아 머리 위로 결박했다.
“하, 씨발.”
그가 수현의 가슴을 빤히 내려다보며 욕설을 내뱉었다. 지나치게 흥분한 것 같아 조금 무서웠다. 특히 가슴을 대뜸 움켜쥐는 손아귀가 우악스러웠다. 이성을 잃은 것 같았다.
“아, 아파…!”
가슴이 공이라도 되는 것처럼 주물럭대던 준석이 아프다는 말에 어쩌라고? 라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곤 유두를 엄지와 검지로 쥐고 비틀어댔다.
“너 이거 왜 이렇게 맛있게 생겼어?”
“아, 아프다니까, 흐읏…!”
“이러면 내가 감히 상상하게 되잖아.”
“읏…!”
“보지는 얼마나 맛있을까.”
준석이 흥분한 듯 숨을 크게 뱉어냈다. 난생처음 듣는 음담패설에 수현은 당황을 금치 못하고 버둥거렸다. 하지만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아….”
준석이 혀를 내어 반대쪽 유두를 핥아 올렸다. 움찔, 허리가 비틀렸다. 이내 그가 가슴 한쪽을 한가득 입에 물고 쭉쭉 빨기 시작했다. 혀로 유두를 살살 긁기도 하고, 유룬 전체를 둥글리며 핥아댔다.
반대쪽은 여전히 유두를 비틀고 있어서 아프다고 울먹이자, 그제야 그가 꼬집던 걸 관두고 반대쪽 가슴을 입에 물었다. 얼핏 달다고 중얼거리는 것도 들렸다.
“아…!”
유두 가운데 파인 부분에 그의 혀끝이 파고들었을 때, 수현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간지러움에 한껏 몸을 비틀었다. 준석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준석이 혀를 뾰족하게 세우고 유두를 집중적으로 튕겨대기 시작했다.
“아, 주, 준석아, 응, 으응…!”
혀 놀림이 빨라질수록 수현은 더 잘게 바르작댔다. 등이 위로 높이 떠올랐다가 푹, 아래로 가라앉는 것이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그 와중에도 준석이 세게 잡고 있는 손목이 저릿했다.
“파, 팔 아파… 응…!”
“풀어줘?”
“으응… 읏, 응,”
“풀어 달라는 말인지, 좋아서 앙앙대는 건지 구분을 못 하겠네.”
안 풀어 줄 것처럼 중얼대면서도, 그는 순순히 수현의 팔을 놓아 주었다. 어찌나 세게 잡았는지 붉게 손자국이 나 있었다.
두 손목을 한 번에 잡은 커다란 손을 보니 그가 남자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준석은 고등학생이 될 무렵부터 키가 쑥쑥 자라더니 덩치까지 산만 해졌다. 그래서 같이 붙어 다니면, 그녀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가족들이 웃곤 했다.
“왜?”
“손 커서….”
준석이 피식 웃으며 그녀의 가슴 한쪽을 움켜쥐었다.
“그러니까 한 손에 다 들어오지.”
“그렇게 잡으면 아파…!”
아프다고 말해도 그는 무시하고 가슴을 주물럭대며 반대쪽 손을 수현의 바지 안으로 밀어 넣었다.
예고 없이 다리 사이로 파고드는 손가락에 수현이 펄떡대며 그의 팔뚝을 붙잡았다. 하지만 힘으로는 이길 수가 없었다. 준석의 손가락이 팬티 위를 지그시 눌렀다.
“젖었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야 그렇게 물고 빠는데 젖지 않을 리가 만무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입만 뻐금거리자, 그가 웃으며 입술을 삼켜왔다.
동시에 팬티 위로 준석의 엄지가 천천히 움직였다. 음부 주변을 원을 그리듯 돌리는 손가락이 그녀의 것보다 훨씬 굵어서 기분이 이상했다.
벌어진 입 안을 가볍게 훑은 준석이 고개를 들었다. 수현은 흥분감에 붉어진 준석의 얼굴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그가 그녀를 몸을 만지고 있다. 그녀 자신 말고는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은 곳을, 아주 야하게.
우리 진짜 하는 건가…?
깊게 숨을 들이 내쉬던 준석이 눈을 치켜떴다. 눈이 마주치자, 씨익 웃는 얼굴에 장난기가 스쳤다.
“여유로워 보인다?”
그가 대뜸 바지와 속옷을 한 번에 벗겨 내는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제 영락없이 알몸이 되어 버렸다.
“잠깐…!”
저지하기도 전에 다리가 양옆으로 넓게 벌어졌다. 순식간에 그에게 음부를 드러내게 된 수현이 다급히 다리를 모으려고 했지만, 준석이 양 발목을 잡고 있어 소용없었다.
“씨발.”
“보, 보지 마.”
성기를 보이는 건 상상 이상으로 수치스러웠다. 수현은 다급히 손으로 아래를 가렸다. 창피함에 현실감이 확 들었다.
미쳤어, 미쳤어. 우준석이랑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뒤늦은 후회를 하며 그에게 잡힌 발을 빼내려고 버둥댔지만, 준석이 잽싸게 다리 사이로 파고들어 아래를 가린 손을 치워냈다.
“비켜…! 보지 마!”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다. 응? 내가 강수현 보지도 다 보고.”
“야!”
“미치겠네….”
그가 취한 사람처럼 중얼거리더니 그녀의 다리 사이에 코를 박았다. 당황한 수현은 버둥대며 그의 머리를 붙잡았지만, 물컹한 혀가 음부를 길게 핥아 올리는 순간 손에 힘이 탁, 풀렸다.
“아…! 하지, 하지 마…. 아읏,”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은 준석이라니.
그는 갈증이 난 사람처럼 그녀의 다리 사이에서 흐르는 애액을 핥고 마셔댔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쾌감에 수현의 몸이 사정없이 비틀렸다.
손가락으로 음핵을 자극하거나, 이불을 돌돌 말아 압박 자위를 한 게 여태 그녀의 성행위의 전부였기에 막연히 섹스도 비슷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의 혀가 기어코 음핵 위에 닿았을 때, 그녀는 여태 한 자위는 새 발의 피였음을 깨달았다.
“아응, 읏, 으응,”
뜨겁고 축축하고, 뾰족하게 세워진 준석의 혀가 음핵 위를 지그시 눌렀다가 양옆으로 빠르게 움직이며 쾌락을 고조시켰다. 수현의 허리가 사정없이 들썩였다.
절정의 입구까지 갔을 때, 그는 음핵에서 혀를 떼고 대음순과 소음순을 샅샅이 핥으며 그녀를 안달 나게 했다. 울컥울컥, 질구에서 쉬지 않고 애액이 흘러나왔다.
“흐응… 으, 흐읏, 거, 거기 말고….”
구멍 안으로 혀를 살짝 밀어 넣었다가 빼는 것을 반복하는 준석의 머리를 붙잡았다. 물기 때문인지 땀 때문인지 축축한 머리카락이 손가락에 달라붙었다. 준석이 고개를 들었다. 코와 입술이 그녀의 애액으로 번들번들하게 젖어있어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어디 빨아 줄까.”
“…….”
“말해. 원하는 대로 해줄 테니까.”
원하는 부위를 말로 하는 게 부끄러워서 수현은 대신 손을 내려 검지로 예의 그 부위를 가리켰다. 준석이 손가락을 따라 음핵에 시선을 두더니 이내 짓궂은 얼굴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여기가 좋구나?”
좋은 건 사실이지만 못 견디게 창피해서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클리토리스 빨아 달라고 말해봐.”
“싫어….”
“말 안 하면 나도 안 해.”
멋대로 빨 때는 언제고, 해달라니 안 해주는 저의는 뭐란 말인가.
수현은 준석이 유난히 고집스러운 청개구리인 걸 아는 터라 속이 탔다. 그는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정말로 아무것도 안 하고도 남을 놈이었다.
하지만 차마 시킨 말은 도저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 차선책을 택했다.
“야.”
그녀가 직접 손을 내려 음핵을 문지르자, 준석의 얼굴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강수현. 너 진짜.”
“흐으….”
이게 옳은 선택인지는 모르겠지만, 가기 전에 멈춰 달아오른 몸이 이성적인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다.
야한 말을 하든, 자위를 하든 둘 다 수치스러운 건 마찬가지지만, 후자는 욕구라도 채울 수 있으니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며 검지로 음핵 위를 살살 비볐다.
“으응, 응,”
“많이 해봤나 봐? 익숙하네.”
기간으로만 따지면 자위 경력은 어언 십 년이다. 수현은 어떻게 하면 음핵을 자극해 절정을 느끼는지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위아래로 비벼대면….
“보기 좋긴 한데, 지금은 내 차례야.”
잠깐 지켜보던 준석이 그녀의 손을 잡아 옆으로 물렸다. 그리고 혀로 음핵을 길게 핥아 올렸다.
“흐으응….”
그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그녀가 문지르던 방식대로 음핵을 위아래로 핥기 시작했다. 수현이 가장 절정을 빨리 느끼는 방식이었다. 혀가 빠르게 움직일수록 질척대는 소리가 커졌다.
“아흐응, 아, 읏,”
동시에 질구를 꾹꾹 문지르는 손가락이 느껴졌다. 굵고 단단한 그의 검지가 구멍 주변을 꾹꾹 누르다 이내 천천히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아… 아아…!”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다. 구멍이 빠듯하게 벌어지며 겨우 그의 손가락을 허용했다. 너무 아파서 다리가 덜덜 떨렸다.
그런 그녀를 알아차린 듯 음핵을 애무하는 준석의 혀 놀림이 더 빨라졌다. 손가락이 들어온 곳은 아픈데, 동시에 쾌감이 느껴지니 어느 게 진짜인지 혼란스러웠다.
“아, 아응, 읏… 아…!”
손가락이 천천히 빠져나갔다가 다시 안으로 밀려들어 가기를 반복했다. 의외로 조심스러운 동작이었다.
침대 시트를 한껏 움켜쥐고 낑낑대자, 그가 진정하라는 듯 “쉬이-.” 하고 속삭였다.
“아, 아파….”
“아픈 거 맞아? 맛있게 먹는데. 구멍 오물대는 거 느껴지지?”
“아프다고… 흐읏,”
“손가락 빠질 때마다 물이 줄줄 새.”
“마, 말 좀 그만해.”
차라리 고개를 떼고 말하면 모를까, 음부에 입술을 대고 말을 하니 죽을 맛이었다.
손가락이 안을 찌를 때마다 내벽이 손가락에 달라붙는 게, 꼭 부정하려고 해도 준석에게 마음이 가는 자신 같아서 기분이 이상했다.
“빨리 박아 달라는 거야?”
“아앙…!”
순간, 그가 어느 한 지점을 문지를 때 수현의 고개가 한껏 뒤로 젖혀졌다.
준석이 기다렸다는 듯 같은 지점에 빠르게 손가락을 박아 넣었다. 푹푹 찔러댈 때마다 수현은 새된 신음을 내뱉었다.
“아앙, 응, 아…!”
절정의 순간, 허리가 높이 솟아오르고 고개가 양옆으로 마구 저어졌다. 침대 시트를 움켜쥐고 자지러지는 신음을 내뱉었다.
그때까지 수현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고 있던 준석이 손가락을 빼내고 소리 내며 애액을 빨아들였다.
“그, 그만해….”
절정의 여운을 느낄 새도 없이 이어지는 자극에 수현은 떨리는 팔로 겨우 그의 머리를 밀어냈다.
고개를 든 준석의 동공이 반쯤 풀려 있었다. 그녀의 애액이 술이라도 되는 것처럼 취한 얼굴이었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에서 명확한 욕정이 읽혔다.
넋이 나간 준석을 바라보던 수현의 머릿속에 문득 생각이 스쳤다.
준석은 연애 경험이 없다. 그러니 당연히 섹스 경험도 없으리라.
그렇다면 이걸로 길들일 수 있지 않을까?
오리는 태어나자마자 처음 보는 존재를 어미로 여기고 따라다닌다고 했다. 준석은 오리보다 더 단순하니까, 처음 느낀 쾌락을 잊지 못하고 좇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몸으로 길들여서, 자신만 쫓아다닐 수 있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나쁘지 않은 생각인 것 같다.
준석을 길들이는 것과 동시에 그와 스킨십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힐끔 시선을 내려보니, 드로어즈 위로 성기가 삐져나와 있었다. 선단에선 액이 흘러 속옷까지 축축해진 상태였다. 수현은 침을 꿀꺽 삼키며 그를 올려다 보았다.
“너, 너도 젖었네….”
“하.”
준석이 못 참겠다는 듯이 신음하며 드로어즈를 벗어던졌다. 성기가 퉁, 튕겨 아랫배에 바짝 올라붙었다.
상상했던 것보다 지나치게 커서 수현은 조금 아연해졌다. 준석이 핏줄이 불거진 손으로 좆을 죽죽 훑어 올렸다. 커다란 손과 성기를 보고 있으니 그가 그녀와 다른 종족인 것 같다는 착각마저 일었다.
사람 성기가 저렇게 클 수 있나? 저렇게 큰 게 들어갈까?
조금 겁이 났지만, 이렇게까지 된 이상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콘돔은…?”
긴장한 목소리로 묻자, 준석이 다소 거친 동작으로 침대 옆 협탁을 열었다. 그 안에서 등장하는 콘돔 상자에 순간 수현은 충격받았다
“그게 왜 거기 있어?”
“섹스할 때 써야 하니까.”
“…….”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방에 보관할 정도라면, 그간 섹스 상대가 있었다는 건가. 연애를 안 해서 당연히 동정일 줄 알았는데, 설마 닳고 닳은 놈인 건가. 엔조이로 섹스만 즐기는 타입? 그것도 본가에서?
수현의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름과 동시에 준석에 대한 환상이 와르르 무너졌다.
만약 그가 섹스 경험이 많다면, 일명 새끼 오리 수법은 먹히지 않을 텐데….
수현이 충격을 받든지 말든지, 다소 급하게 콘돔을 낀 준석이 다시금 그녀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고무가 씌워진 좆이 허벅지에 문질러졌다.
“잠깐만.”
“또 왜.”
다시 한번 저지당하자 그가 진심으로 짜증을 냈다. 수현도 덩달아 짜증이 났다. 이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였다.
“나… 나 한 번도 안 해봤어.”
“당연하지. 어떤 새끼가 너랑 이 짓을 하겠어. 내가 버젓이 눈 뜨고 살아 있는데.”
무슨 권리로 그런 말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짚고 넘어가야 한다. 꼼지락대며 품에서 벗어나자, 준석이 초조한 기색으로 제 머리를 쓸어 넘겼다.
“뭐냐, 강수현.”
“너 섹스 많이 해봤어?”
“뭐?”
그가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며 몇 번을 되물어서, 수현은 협탁을 가리켰다.
“콘돔을 왜 그렇게 많이 가지고 있는데?”
“아아-.”
그제야 준석이 구겨진 얼굴을 폈다. 그리곤 대뜸 그녀의 발목을 잡아당겼다.
“야…!”
다리가 밑으로 딸려 내려가며 몸이 뒤로 휙 눕혀졌다. 단숨에 수현의 위를 차지한 그가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왜인지는 두고 보면 알 거야.”
“무슨, 읍,”
되묻기도 전에 입술이 먹혔다. 더 이상의 지체는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그가 질척하게 혀를 놀렸다.
그러고 보면, 첫 키스일 텐데도 유난히 혀 놀림이 능숙하다. 정말 상대가 있었던 건가. 착잡한 심정으로 준석을 밀어냈지만, 이내 그가 혀를 섞어 오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팔에 힘이 풀렸다.
타액이 한데 섞여들어 서로의 목구멍으로 흘러 들어갔다. 꿀꺽- 크게 침을 삼키는 소리에 준석이 입술 틈으로 피식 웃었다.
“으응….”
준석의 좆이 음부 위에 맞물렸다. 갈라진 틈 사이로 자리한 길고 굵은 기둥이 위아래로 뭉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푼 음핵을 스칠 때마다 몸 안에서 열락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아응, 읍, 흡,”
몸은 달아오르는데 쉬지 않고 혀를 빨아대니 숨쉬기가 힘들었다. 가슴을 팡팡 때려도, 그는 놓아줄 생각이 없는 듯 더 깊게 파고들 뿐이었다.
한참을 성기끼리 맞비비던 준석이 질구에 귀두를 가져다 댔다. 딱딱한 귀두가 구멍 위를 지그시 눌렀다.
꿀꺽, 누군가 무거운 침을 삼켰다. 수현은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무섭다. 손가락도 겨우 들어간 곳에 저 큰 게 들어가면 얼마나 아플까. 초조하게 준석의 팔을 붙잡았다. 드디어 그가 입술을 떼어 주었다.
“강수현.”
“…….”
“넣을 거야.”
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준석이 성기를 밀어 넣었다.
“아…!”
두꺼운 귀두가 구멍을 파고드는 순간, 눈앞이 아찔할 만큼 아파서 왈칵 눈물이 터졌다. 덜덜 떨며 우는 그녀를 준석이 품에 꽉 끌어안았다. 천천히 좆이 안으로 밀려드는 게 느껴졌다.
“아, 아파… 아파, 준석아, 나….”
“강수현. 나 봐.”
“흐윽… 아파….”
“나 봐, 강수현.”
겨우 고개를 들자, 마찬가지로 인상을 쓰고 있는 준석과 마주쳤다. 그가 형용할 수 없는 눈으로 그녀의 얼굴을 훑더니 어느 순간 허리를 쾅, 찧어 넣었다.
“아아…!”
“윽.”
뿌리 끝까지 박혔다는 것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무자비하게 밀어 넣을 줄은 몰랐다. 수현은 엉엉 울며 그의 팔뚝을 쥐어뜯었다.
“너… 너무해…. 그렇게, 흑, 큰 걸… 막….”
신음과 울음이 앞다투어 튀어 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준석은 수현을 품에 안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아랫배에 묵직한 이물감이 들어찼다. 말도 안 되는 크기를 집어삼켰으니, 보지 않아도 불룩하게 솟았을 게 분명했다.
“하, 끊어지겠네.”
그가 한숨을 토해내며 음핵을 검지로 문질렀다. 움찔, 수현의 허리가 튀어 오르며 내벽이 꿈틀거리자, 그제야 아주 조금 여유가 생긴 것 같았다.
“강수현, 네 보지가 내 좆 물고 있어.”
문득 그가 황홀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귀를 틀어막고 싶었지만 그럴 힘도 없었다. 수현은 그의 품에 안긴 채 겨우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준석이 그녀를 침대에 눕히곤 베개를 허리 밑에 받쳐주었다. 그런다고 아프고 서러운 감정이 사라질 리는 없었다. 울면서 노려보자 그가 낮은 숨을 뱉었다.
“흐윽…! 왜, 왜 더 커져!”
“네가 꼴리게 보잖아.”
“내가 뭘!”
그녀의 반박 따위 들어줄 생각이 없다는 듯 그가 허리를 천천히 뒤로 뺐다. 빠져나가는 좆을 따라 내벽이 같이 쓸려 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놀란 수현이 허공에 팔을 휘젓자, 그가 두 손을 잡아 수현의 배 위로 모아 쥐었다. 팔뚝 사이로 가슴이 모이고, 손바닥에는 그의 좆이 빠져나가 납작해진 아랫배가 닿았다.
준석이 다시 허리를 치올리자, 빠져나갔던 성기가 순식간에 안을 가득 채웠다. 동시에 배가 불룩해졌다.
“내 좆 들어간 거 만져지지.”
“아, 흐윽… 읏,”
몇 번 느리게 허리를 움직이던 준석이 못 참겠다고 중얼거리더니 이내 속도를 높였다.
“아, 악, 준석, 준석아… 잠깐…! 읏, 아파… 흐윽!”
“조금만, 참아. 금방, 익숙해, 질 거야.”
준석도 흥분한 듯 목소리가 뚝뚝 끊겼다. 아니, 절대 익숙해질 수 없는 크기다. 다리 사이에 불이 붙은 듯 홧홧했다. 그나마 그의 성기가 왕복운동을 할 때마다 음핵을 건드리는 것이 자극이 되어 조금 견딜만한 수준이었다.
만져주면 좀 나을 거 같은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이번에도 스스로 손을 내리다, 문득 준석과 눈이 마주쳤다.
그가 악문 잇새로 뭔가 중얼거리더니 수현의 양손을 머리 위로 결박시키고 쾅쾅 좆을 박아 넣었다.
“아으, 흑!”
“왜 날 두고 널 써?”
“흐으읏,”
“원하는 게 있으면 말로 해. 네 좆대로 굴지 말고.”
원래도 싸가지 없는 놈이긴 했지만, 섹스할 때도 이럴 줄은 몰랐다. 순 제멋대로 구는 준석이 원망스러웠지만, 또 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해주고 이대로 박기만 할 것 같아서 수현은 울면서 애원했다.
“마, 만져줘….”
“어딜.”
“클리… 토리스….”
“어떻게?”
“으읏, 응, 아… 준석아….”
“대답해, 어떻게 만져줘?”
말할 틈도 제대로 주지 않고 박아 대면서 그가 대답을 종용했다. 수현은 낑낑대며 그의 허리에 다리를 감았다.
“너 손가락… 응, 손가락으로,”
“손가락으로.”
“비벼줘… 흐윽….”
쪽,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가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잘했다고 상이라도 주는 듯해, 얼굴이 화악 달아올랐다.
“알았어. 내 손가락으로 클리토리스 비벼줄게.”
그의 엄지가 음핵에 닿았다. 축축하게 젖어 있는 살점을 지그시 누른 준석이 이내 빠르게 위아래로 비벼대기 시작했다. 그에 느릿느릿 퍼져가던 쾌감이 박차를 가했다.
수현은 어느새 준석의 한쪽 팔을 동아줄처럼 끌어안고 사정없이 몸을 비틀고 있었다.
“좋아?”
“응, 으응, 흐읏,”
“대답인지, 발정인지.”
중얼거리던 준석이 대뜸 그녀의 몸을 잡아 획 돌렸다. 성기가 박혀 있는 상태에서 몸이 돌아가며 내부에 자극을 주었다.
졸지에 엎드리게 된 수현이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돌리자 그가 그녀를 내려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엉덩이 들고 엎드려.”
왠지 거부할 수 없는 분위기라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매트리스를 짚었다. 준석이 뒤에서 허리를 치올렸다. 까끌까끌한 음모가 둔부에 닿았다. 살끼리 마찰하는 소리에 애액이 섞여 찌걱대는 야릇한 소리가 났다.
“아으, 힘들, 힘들어… 읏.”
쉬지 않고 몰아붙이는 허리 짓을 겨우 버티던 수현이 앞으로 풀썩 엎어졌다. 다시 일어나기도 전에 준석이 그녀의 골반을 잡아 고정했다. 그 탓에 수현은 엎드린 채 엉덩이를 훤히 내보인 수치스러운 자세가 되어야 했다.
“아, 아아… 읏…!”
준석은 한 손으론 그녀의 음핵을 애무했고, 반대쪽 손으론 엉덩이를 세게 움켜쥐었다. 가슴을 쥘 때처럼 강한 악력이었지만, 박히느라 정신이 없어 아픈 줄도 몰랐다. 수현은 침대 시트에 얼굴을 묻고 까마득해지는 정신을 잡으려고 애썼다.
“처, 천천, 히….”
천천히 해달라는 말을 그는 청개구리답게 반대로 받아들이고 허리를 더 빠르게 움직였다.
음핵이 비벼질 때마다 반사적으로 애액이 분비되며 준석의 좆을 받아들이는 데 약간의 도움을 주긴 했으나, 여전히 벅찬 크기와 속도였다.
“흐읏, 아응,”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서, 수현은 시트를 붙잡고 낑낑대며 앞으로 도망쳤다. 조금이라도 그의 움직임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였지만, 어림없다는 듯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움찔, 어깨를 떨며 고개를 돌렸다. 이 와중에도 그의 어깨에 있는 상처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어딜 내빼.”
준석이 수현의 어깨를 잡아 몸을 일으켜 세웠다. 여전히 아래는 삽입된 채로 품에 안긴 수현이 놀라 그의 팔을 붙잡았다.
준석이 그녀의 다리를 제 다리 위로 올려 더 벌리게 했다. 그의 가슴팍에 등을 기댄 채로 다리가 벌어진 자세였다. 수치심에 눈이 질끈 감겼다. 아무도 없는 걸 알지만, 맞은편에 누가 있는 것처럼 창피했다.
“이거 싫어, 읏, 내려줘….”
퉁퉁, 그가 허리 짓을 할 때마다 몸이 튀어 올랐다가 아래로 추락하며 좆을 더 깊이 삼켰다.
이러다 자궁까지 꿰뚫릴 것 같다는 막막한 두려움에, 수현은 나름대로 피해 보려 허리를 이리저리 비틀었다. 준석이 그녀의 귀를 깨물며 낮은 신음을 뱉어냈다.
“벌써 허리 돌릴 줄도 아네. 쌀 뻔했잖아.”
이쯤 되면 그냥 빨리 싸고 끝냈으면 좋겠다. 내내 벌리고 있는 다리는 저릿하고, 골반도 뻐근했다. 팔뚝만 한 좆을 연신 받아내는 아래는 감각도 없었다.
그나마 준석이 쉬지 않고 음핵을 건드려주어 고통과 쾌감이 번갈아 가며 그녀를 괴롭혔다가 달래줬기에 버틸 수 있었다.
수현은 그의 사정을 재촉하기 위해 다시 허리를 빙글 돌렸다.
“아응, 읏, 아… 흥,”
준석이 허리 짓에 반응했으니 똑같이 움직인 건데, 신음은 되려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허리를 돌릴 때마다 구멍 안쪽 어딘가가 닿으며 발끝이 찌릿한 감각마저 느껴졌다. 수현의 몸을 주물럭대던 준석이 대뜸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아, 젠장.”
“으읏, 놔아…!”
꼼짝없이 팔 안에 갇힌 수현이 답답한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지만 그럴수록 그의 팔 힘은 세졌다.
그녀를 터트리기라도 할 작정인지 있는 힘껏 끌어안은 준석이 한순간 허리를 강하게 위로 치올렸다. 동시에 그녀가 허리를 돌리며 자극을 주던 곳에 그의 좆이 단번에 꽂혔다.
“아앙!”
“하…!”
절정의 순간, 두 사람이 동시에 숨을 내뱉었다. 수현은 그의 팔에 매달려 허리를 펄떡대며 절정을 맞이했다. 동시에 아래를 가득 메우고 있던 준석의 좆이 정액을 싸지르는 게 느껴졌다.
그는 꽤 오래 사정을 했다. 콘돔을 안 했으면 그녀의 안을 메우고도 정액이 흘러넘쳤을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흐으… 응….”
더운 숨을 내뱉던 준석이 팔에 힘을 풀었다. 벗어나려고 하는 순간 그가 그녀를 안은 채로 침대에 몸을 눕혔다. 여전히 성기는 삽입된 채였다.
그렇게 사정하고도 아직 부족한지 잠깐 줄었던 좆이 또 부푸는 게 느껴져 수현의 얼굴이 파리해졌다.
“또… 할 거야?”
“…….”
“나 모, 못하겠는데….”
온몸에 힘이 풀려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고개만 바르작대자, 그가 순순히 그녀의 안에서 성기를 빼냈다.
그새 단단해진 기둥이 내벽을 천천히 쓸며 빠져나가자, 구멍이 움찔댔다. 준석도 눈치챘는지 그녀의 목덜미를 혀로 핥으며 웃었다.
“네 보지는 아쉬운 모양인데.”
“…말 좀 지저분하게 하지 마.”
수현은 바닥에 굴러떨어진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감싸고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최대한 침대 구석으로 도망치자, 그가 느긋하게 누워 팔로 머리를 받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젖꼭지 보인다.”
고개를 내려보니 그의 말마따나 아무렇게나 두른 이불 틈으로 왼쪽 유두가 빼꼼 나와 있었다. 서둘러 이불을 끌어 내렸다.
“…….”
할 땐 흥분해서 몰랐는데, 끝나고 나니 막상 숨 막힐 듯 어색한 공기가 맴돌았다. 아니, 준석은 내내 빙글대며 웃고 있으니 그녀만 느끼는 어색함일지도 모르겠다.
빨개진 얼굴로 몸을 웅크리는데, 갑자기 얼굴 앞에 마이크를 든 것처럼 말아 쥔 준석의 주먹이 들이 밀어졌다.
“자, 그래서 첫 섹스 소감은 어떻습니까?”
“뭐라는 거야….”
“대답해주시죠, 강수현 씨.”
준석이 인터뷰를 하듯 장난을 쳤다. 몸을 섞자마자 장난질이라니. 수현은 신경질적으로 그의 손을 밀어냈다.
남들은 후희도 즐긴다던데, 준석에게 그런 로맨틱함을 바라는 건 사치라는 걸 알면서도 괜히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혹시나, 정말 혹시나 준석도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준석이 먼저 입을 맞췄고 그렇게 짐승처럼 흥분하기까지 했으니, 어쩌면 짝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잠깐 기대했다.
하지만 언제 진득하게 혀를 섞었냐는 듯이 짓궂게 웃고 있는 준석에게선 그녀를 좋아하는 것 같은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얘는 그냥 이 상황이 재밌는 거다. 삼십 년 지기 소꿉친구의 첫 경험 소감을 듣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대답이나 종용하고 있지 않나.
그래. 우준석이잖아. 뭘 바라. 천천히 가자.
“강수현 씨, 첫 섹스를 마친 소감을 들려주세요.”
“그만해.”
“시민들이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말해 주세요!”
“… 너 나 책임져.”
그녀의 말에 그가 다시 제 쪽으로 주먹을 가져갔다.
“첫 섹스의 소감이 책임져라, 무슨 뜻일까요?”
그리곤 다시 수현의 앞에 주먹을 내밀었다. 진짜 얄밉다. 수현은 약이 바짝 올라 그를 노려보았다.
“네가 내 처음 가져갔으니까, 책임지라고.”
“그렇다고 하는데요. 어떻게 책임지면 될지 물어보겠습니다.”
“이…!”
결국 수현은 참지 못하고 준석의 주먹을 붙잡아 이로 콱 깨물었다. 감정을 실어 물었지만, 그는 아파하는 대신 주먹을 펴 수현의 입 안에 손가락을 쑤셔 넣었다.
“우웁!”
“어떻게 책임질까? 응?”
굵직한 엄지와 중지가 수현의 혀를 마구잡이로 짓눌렀다. 턱이 빠듯하게 벌어지는 바람에 침이 흐를 것 같았다. 급히 혀를 당겨 빨아들이자, 입 안이 좁아지며 그의 손가락을 빠는 행상이 되었다.
그제야 준석이 손가락을 뺐다. 여전히 장난기가 섞인 표정이었지만 눈빛은 살벌했다. 빤히 바라보는 얼굴에서 또 한 번 욕정을 읽은 수현은 침이 흐른 입가를 손등으로 훔치며 더듬더듬 말했다.
“선보지 마. 나랑 이런… 짓까지 해놓고 다른 사람 만나면 너 진짜 나쁜 놈이야.”
“그게 다야?”
그가 더 할 말이 있지 않냐는 듯이 수현의 침으로 젖은 손가락을 바짝 선 제 좆에 문질렀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말대로 할 말은 더 있었다. 하지만 준석이 인터뷰 장난을 치는 바람에 분위기가 깨졌다. 아직 둘 사이에 야릇한 공기가 남이 있을 때 제안했어야 했는데.
수현은 대답 대신 준석을 노려보며 침대 밑으로 내려왔다.
“뭐냐, 강수현. 나 따먹고 그냥 가?”
“나중에 이야기해.”
“나중에 할 말이 아닐 텐데. 너 이리 와.”
그가 좆을 주물럭대던 것도 멈추고 몸을 일으켰다. 수현은 위협적으로 손을 뻗는 준석을 피해 바닥에 나뒹구는 속옷과 옷걸이에 걸려 있는 준석의 옷을 대충 챙겼다.
옷을 찢어 버렸으니 방도가 없었다. 준석의 옷은 그녀의 것과 다름없었으니, 입고 가도 부모님이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거다.
“나 갈게.”
“야! 강수현!”
그대로 도망치듯 방에서 나오자, 닫힌 문틈으로 준석의 고함이 들렸다. 수현은 못 들은 척 거실 구석에서 옷을 챙겨 입었다. 너무 커서 헐렁거리는 옷을 간신히 부여잡고 그의 집에서 급히 빠져나왔다.
“강수현.”
간발의 차이로 쫓아 나온 준석이 현관문을 벌컥 열었다. 옷을 대충 꿰입었는데도 몸이 좋아서인지 그럭저럭 볼만했다.
조금 전 그와 했던 짓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준석이 땀에 젖은 제 머리를 쓸어 넘기며 수현을 노려보았다.
“너 두고 보자?”
다행히 쫓아 오지는 않았다.
* * *
수현은 밤새도록 섹스의 여운을 느껴야 했다. 처음 열린 몸이 고통을 호소하는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 정신적인 여진이 더 오래갔다.
준석과 섹스했다.
친구라는 이름 아래 손잡는 것조차 별스러웠던 두 사람이 연인 사이에서나 할 법한 섹스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믿어지지 않았다.
현실감이 사라질 때마다 수현은 이불 속으로 아래를 더듬었다.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한참 있다 나왔는데도, 사정없이 박혔던 성기는 퉁퉁 부어있었다.
문득 준석이 혀로 애무했던 게 떠올랐다. 반사적으로 아래가 촉촉해졌다. 자위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아파서 관뒀다.
다리 사이의 습기를 모르는 척하며 잠을 청한 다음 날, 그녀는 앓아누웠다. 열이 올라 끙끙대는 수현을 발견한 건 그녀의 어머니를 만나러 온 준석의 어머니였다.
준석의 어머니가 땀을 뻘뻘 흘리는 수현의 몸을 닦고, 물수건을 이마에 올려주자, 뒤이어 수현의 어머니가 참치 죽을 만들어 왔다.
두 어머니의 극진한 보살핌 끝에 편안함을 되찾은 수현은 잠을 청하려 눈을 감았다가, 오늘이 마감일인 것을 깨닫고 놀라서 몸을 일으켰다.
어른들은 외출을 한 건지, 집안이 조용했다. 다행이다. 아픈 몸을 이끌고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면 두 분 다 한 소리 하실 게 뻔했다.
기듯이 겨우 책상 앞에 자리를 잡아 컴퓨터를 실행시켰다. 아까보단 낫지만, 아직도 물에 젖은 솜처럼 몸이 축축 처졌다. 뼈마디는 얻어맞은 듯 욱신대고, 다리 사이는 아직도 아릿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작업을 거의 끝냈다는 것이었다. 느리게 마우스를 달칵거리며 마무리를 하고 작업물을 넘기자마자 그녀는 책상 위에 철퍼덕 엎어졌다.
급한 불은 껐으니까 당분간 쉬어도 될 거다. 물론 프리랜서의 특성상 언제 일이 들어올지 모르지만, 당장은 잡혀있는 일정이 없었다.
좀 쉬면서 몸도 마음도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우준석에게….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렸다. 놀랄 기운도 없어서 팔에 얼굴을 묻은 채로 끙, 앓는 소리를 냈다.
“엄마…?”
“이럴 줄 알았지.”
들리는 목소리는 익숙한 저음이었다. 짜증이 난 듯 목구멍을 긁는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의 솜털이 삐죽 섰다. 겨우 고개를 든 수현의 시야에 미간을 구기고 있는 준석이 들어왔다.
“그러게 왜 그냥 가?”
“뭐가….”
아파서인지 그런 일이 있고 난 뒤에 그를 봐서인지, 얼굴이 홧홧해졌다. 빨개졌을 게 분명한 얼굴을 감추기 위해 좀 더 깊게 얼굴을 묻는데, 저벅저벅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왜 왔어?”
“밖에서 아주머니랑 어머니 만났어. 많이 아프냐?”
“많이는 아닌데….”
쯧, 그가 혀를 찼다. 그러더니 갑자기 수현의 몸이 공중에 붕 떠올랐다. 준석이 그녀를 품에 안아 든 탓이었다. 앉은 자세 그대로 안긴 수현이 깜짝 놀라 그의 셔츠 자락을 붙잡았다.
“아픈데 왜 이러고 있어? 잠이나 잘 것이지.”
퉁명한 말투였지만, 침대에 내려주는 동작은 퍽 조심스러웠다. 자연스럽게 베개를 머리에 받쳐주고, 이불을 끌어 올려 가슴 위까지 올려준 준석이 머리맡에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얼굴을 보려니 영 부담스러워서 몸을 반대로 돌리자, 그가 “어쭈?” 하더니 침대로 올라와 그녀의 위에 올라탔다.
“피하지 마. 실컷 따먹어 놓고 이런 식이면 나도 상처받아.”
그는 하나도 상처받지 않은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무거워… 비켜.”
“오후에 복귀해. 다음 주는 되어야 얼굴 볼 수 있을 거야.”
그건 상당히 아쉽다. 이번에도 몇 주 만에 만난 건데. 그제야 고개를 이리저리 피하던 수현이 정면으로 마주 보자, 그가 입꼬리를 올렸다. 내려다보는 얼굴에 그늘이 져 섹시한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이렇게 있으니, 어제 그의 아래에서 박혔던 게 떠올라 심장이 쿵쿵대기 시작했다. 문득 준석이 혀를 내어 자신의 입술을 핥으며 노골적으로 유혹하듯 굴었다. 수현은 반사적으로 그것에 반응했다. 다리 사이가 음습해지기 시작했다.
“취한 김에 솔직하게 말해봐.”
“취하긴 누가 취했다는 거야.”
“약에 취하고, 잠에 취하고,”
그가 다시 혀로 입술을 핥았다.
“나한테 취했잖아.”
“… 뭐래.”
어떻게 알았지.
“자, 이제 말해봐. 어제 하려다 만 거. 책임지라며.”
그가 엄지로 수현의 달아오른 귓바퀴를 둥글렸다.
“해달라는 대로 해줄게. 어떻게 책임져 줄까?”
준석의 손이 귀를 타고 올라와 볼을 감쌌다. 시원한 체온에 열이 식는 것 같아 잠깐 눈이 감겼다. 손바닥 안으로 얼굴을 기울이자, 그가 “강수현.” 하고 재촉하듯 불렀다.
이렇게까지 말해 달라니 어쩔 수 없었다. 수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랑,”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아니었으니 준석이리라. 뭐가 그렇게 긴장되는지 내려다보는 준석의 얼굴이 퍽 심각했다.
그래, 어제 그런 일도 있었는데 이까짓게 뭐라고. 그녀는 굳게 마음을 먹고 말했다.
“나랑 딱 네 번만 더 섹스해.”
“… 뭐?”
순간 준석의 얼굴이 사정없이 찌푸려졌다. 잘못 들었다고 생각한 건지, 볼을 감싸고 있던 손을 거둬 귀를 후비는 그에게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