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129화) 16. 아이돌
(제 129 화)
“준비됐어, 오빠.”
커다란스포츠가방을 짊어진 유리는 현관에서 기다리는 오빠를 보고 활짝 웃었다. 매일 아침 함께 등교하던 길이 이제 출근길이 됐다.
“우리 유리 어딘가 신선한데?”
“뭐? 뭐…가…?”
교복에서 소속팀 로고가 부착된 체육복으로 바뀌었으나 발랄한 포니테일 머리나 상큼한 미소는평소 모습 그대로다. 유명은 사랑스런 여동생에게 가볍게 입맞춤을 해준 뒤 탐스런 엉덩이를 있는 힘껏 쳐올렸다.
“가자~!”
“아양! 이게…!”
사이좋게 다투면서 현관 밖에 주차된 슈퍼카에 걸어가는 남매에게 혜리가 손을 흔들고 큰소리로 외쳤다.
“잘 다녀와~~!!”
유명, 유리는 활짝 웃으며 엄마에게 합창으로 소리쳤다.
“다녀오겠습니다!!”
초여름에 접어든 서울의 하늘은 맑고 화창했다. 날씨마저 오빠와 함께 하는 첫 출근을 축하해주는 것 같아 유리의 기분은 더없이 좋았다.
“우리 바보오빠는 리아 언니가 곁에 없어서 조금 아쉽겠네요~옹?”
“오빠랑 둘이서만 출근해서 기분이 너무 좋아~용이라고 솔직하게 말해.”
“피이~ 아니다 모~”
“그럼 내일부터 버스타고 출근해, 너희 훈련장에 들렀다 가는 거귀찮았는데 잘 됐네~”
“흥, 그러든지 말든지~”
유리는 살짝 당황한 눈빛을 보이더니 금세 새침하게 콧방귀를 끼고 고개를 휙 돌렸다. 여동생의 이런 귀여운 반응이야말로 활기찬 아침을 열어주는 맛이라 유명은 씽긋 웃었다.
“파이, 이런 건 우리 유리 전문이니까 따라하면 안 돼.”
[예, 주인님~]
그러자 유리가 새침한 표정에서 순식간에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바뀌더니 얼른 다가왔다.
“인공지능 벌써 활성화시켰어?시간 좀 걸릴 거라더니?”
“응, 좀 됐어. 너도 이야기 나눠볼래?”
“아니, 됐어….”
다시 자리로 돌아가 고개를 돌려버리는 여동생을 보고 유명은 다정한 목소리로 달랬다.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 없어, 그냥 새 친구생겼다고 여기면 되잖아. 동생이라 생각해도 되고.”
“솔직히 오빠가 인공지능 쓰는 거 자체가 싫어. 데이터 수집하는 것도 다른 식구들이 하자고 하니까 마지못해 허락한 거야.”
자신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절실한지 몰랐다면 여동생의 거부반응이 지나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질투가 많은 성격 탓이기도 해 오빠로서 감싸줘야 할 일이다.
“혹시나 이 인공지능 때문에 유리 너나 식구들을 소홀하게 대하면 오빠 바로 혼내줘, 그건 할 수 있지?”
“……….”
쀼루퉁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모습까지 귀엽다. 처음엔 부담스러울 때가 있었지만 이젠 가볍게 웃어넘긴다. 애정과 관심이 없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유명은 다시 다정한 미소로 물었다.
“어쨌든 오빠 사랑하지?”
“몰라!”
“하하하하~~”
차안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는 걸 확인한 파이가 살짝 속삭였다.
[유리 님의 반응은 귀여운 건가요, 사랑스러운 건가요?]
“둘 다야, 내 여동생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거든~”
그러자 유리가 웃음기 머금은 표정으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파인지 바본지 너! 우리 둘이 있을 땐 오빠한테 말 걸지 마! 알았어?”
[이…이 반응은 뭐죠…? 화난 거 맞죠?]
“하하하~ 이 반응도 귀여운 거야~ 와하하하~”
파이는 유리의 반응과 유명의 대응이 바로 이해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새로운 걸 배울 수 있었다.
*****
“데뷔날짜 나왔어.”
루시는 오전회의에 참석한 유명에게 태블릿을 내밀었다.
“어? 이 날은…?”
“왜? 의미 있는 날이야?”
“그건 아닌데…, 다음 날이 내 생일이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표정을 짓던 루시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피식 웃었다.
“어쩐지… 회장님이 꼭 이 날로 하자고 하신 이유가 너 때문이었구나?”
“어? 수지가 이 날로 우긴 거야?”
“우기신 건 아니고 한 주 앞당겨졌을 뿐이야.”
“그게 그거지, 내 이 아줌마를 그냥….”
진짜 혼내주러 갈 것처럼 벌떡 일어나는 유명을 루시가 얼른 붙잡았다.
“얘, 너 어디 가려구?”
“어디가긴, 수지 엉덩이 때려주러 가지.”
“얜…, 회사에서 그런 말 하면 어떡해?”
“우리 둘 뿐인데 뭐 어때? 나도 그 정도 눈치는 있거든요?”
유명이 슬그머니 다시 앉자루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회장님 같은 분을 막 다루는 남자는 세상에 유명이 너 뿐일 거야…, 휴우… 깜짝 놀랐네.”
“흐흐, 당연히 나 뿐이지~”
자신만만한 미소를 머금고 가슴을 펴는 유명을 보고 루시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켰다.
“어쨌든 회장님이 준비한 생일선물인 거 같으니까 군소리 말고 받아, 알았지?”
“알았습니다, 루시이사님~”
“옳지, 착해~ 그럼 걸그룹 이름 지어야지?”
“아… 이름…….”
유명은 자신이 이름 짓는데 별로 소질이 없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 바로 딱 나와야하는데 머리가 멈춰버렸다.
“생각해둔 거 없어?”
“없어…….”
“그럼 회사에서 미리 준비한 이름들살펴봐.”
“오… 좋지!”
유명은반가운 마음으로 태블릿 화면을 튕겨 회의실 전면 디스플레이에 내용을 띄웠다. 루시가 탁자에 탐스런 엉덩이를 걸치고 팔짱을 끼면서 고민스레 말했다.
“솔직히… 내 마음에 드는 건 없어.”
“음…… 나도 그러네…….”
이번 사업에 조금이나마관련이 있는 직원들이 하나 이상씩 내놓은 이름이지만 딱 와 닿는 게 없었다. 유명은 예전에 살던 세상에서 좋아하던 걸그룹 이름을 떠올렸으나 그냥 포기했다.
“저 열심히 일하는 소녀들이 그나마 낫지 않아?”
“풉! 아니 저런 촌스러운 걸 어떻게 걸그룹 이름으로 써?”
걸그룹이름이 ‘열심히 일하는 소녀들’이라니, 절대 안 될 말이다. 그런데 루시의 표정이 이상했다.
“촌스럽다니? 요즘은 다 저렇게 지어. 우리 회사 소속 애들도 다 저런 식인데?”
루시가 새 창으로 올린 회사소속 걸그룹들 명단을 보고 유명은 어안이 벙벙했다.
“진짜네……, 요즘 저런 게 유행이야?”
“유행이라기보다 각 분야마다 고유의 작명 방식이 있어. 프로스포츠는 주로 영문이고, 대중문화 쪽은 한글인데 아이돌그룹은 이런 조합으로 많이 해.”
세련되게 보이려고 영어와 머리글자를 조합하던 풍토에 적응되어서 그런지 촌스런 느낌을 지울 수 없었으나 거부감은 훨씬 적었다. 유명은 잠깐 생각하다 떠오른 이름을 하나 내놓았다.
“아침햇살 품은 이슬… 어때?”
루시는 놀란 표정으로 잠깐 생각하더니 손가락을 딱 튕기고 활짝 웃었다.
“너무 좋은데? 난 어두운 느낌을 주는 이름이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반대로 밝은 느낌이 더 좋은 거 같아.”
“그렇지? 나도 우리 애들 활동을 암시하는 이름보다 아예 상관없는 이름이 더 좋을 거 같아서 생각해본 거야.”
해석은 갖다 붙인 거고 유명한 노래제목 사이에 음료수와 술 이름을 조합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모두 일상적인 단어들이라 문제될 건 없었다.
“다른 고민할 필요 없겠네, 그냥 이 걸로 정하자. 유명이네가 지은 거라고 하면 회장님도 바로 승인하실 거야.”
“아니… 그래도 내부 회의는 거치고 정해야….”
“됐어, 이런 건 느낌이 딱 오는 게 좋은 거야.”
그렇게유명의 노예아이돌 활동할 걸그룹이름이 ‘아침햇살 품은 이슬’로 결정됐다.
*****
“와~ 이름 너무 예쁘다아~~!!”
“아침햇살 품은 이슬! 너무 좋아요!!”
“이제 이슬이라고 불러 주는 건가요?”
“꺄아~ 우리이름 완전 좋아아~~!!”
연습생들은 주인님이 말해준 이름을 듣고 방방 뛰어다닐 정도로 좋아했다. 생각 없이 지은 이름을 이렇게 좋아해주니 내심 미안했으나 얻어 걸리는데 제법 익숙해진 유명은 아무렇지 않게 웃어넘겼다.
“마음에 들어?”
“예에에에~~~!!!”
기운찬 대답이 바로 터져 나왔다. 12명의 아름다운 소녀들의 합창은 언제 들어도 신나고 즐겁다. 유명은 이 즐거움을 더키우는 선물을 하나 더 꺼냈다.
“데뷔 날짜도 나왔어~!”
“꺄아아아아아~~~~!!!!”
서로 부둥켜안고 폴짝폴짝 뛰고 소리를 지르고 만세를 부르는 등 각자 할 수 있는 최고의 반응으로 기쁨을 표현했다. 그리고 곧바로 주인님 품에 몰려들었다.
“사랑해요, 주인니이이임~~!!”
“와하하하하~~”
아이돌 데뷔 치고 굉장히 빠른 편이지만 제각각 걸어온 길이 다르고 노력 또한 달라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문제다. 보미와 같이 울음을 터뜨린 애들은 4년 넘게 기다려온 데뷔라 감회가 남달라 보였다.
유명은 이제 곧 아이돌이 될 연습생들을 키스와 포옹으로 일일이 격려해줬다. 이렇게 기쁘고 의미 있는 날에 섹스가 빠지면 곤란하다. 격려와 감사의 섹스는 그날 저녁 늦게까지 이어졌다.
“휴우우… 오늘 좀 심하게 했지…?”
이제 주인님이 된 남자친구가 흘리는 소감에 리아는 오르가슴이 아직 가라앉지 않은 떨리는 손길로 가슴을 쓰다듬었다.
“하아아… 그만큼 기쁜 날이니까… 후으으으응…….”
둘만 누워있기엔 원형침대가 너무 넓었으나 적당히 어두워진 조명과 조금 전 끝난 격렬한 섹스의 열기로 분위기는 오붓했다. 유명은 자신만의 아이돌이 된 여자친구의 머리에 입을 맞췄다.
“리아도 진짜 기쁜 거야? 후회 안 해?”
“당연히 기쁘고 후회 안 해. 난 널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간절한 눈길로 바라보는 리아의 조그만 얼굴이 오늘따라 더 애처롭게 아름답다. 둘은 조용하지만 뜨거운 키스를 주고받았다.
“그래서 더 걱정이야…, 날 위해네가좋아하는 걸 다 포기하는 것만 같아서 말야….”
조금씩 가라앉고 있는방안 분위기에 걸맞은 조용한 걱정에 리아는 따뜻한 미소를한껏 짓더니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난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어, 어릴 적부터 내 꿈은 유명이 너만을 위한 여자가 되는 거였으니까.”
“종합격투기는? 나보다 더 좋아하는 거 아녔어?”
“무슨 말이야, 너 보다 좋은 게 세상에 어딨어. 그냥 그쪽으로 재능이 있는 거 같아서 잠깐 해봤던 것뿐이야.”
가만 생각해보면 굉장히 무시무시한 말이다. 잠깐해본 게 그 정도면 본격적으로 덤벼들면 어떻게 된단 말인가, 직접 주먹을 섞어봐서 잘 아는 유명은 자기 욕심에 지상 최강의 여자를 노예아이돌로만들어버린 게 아닌가싶어 마음이 아팠다.
“그냥 보여주기 말고, 격투기 제대로 해볼 생각은 없어?”
“걸그룹활동은 어쩌고…?”
“거야 조정하면 돼. 데뷔하더라도 당분간 불러주는 데도 없을 거고, 넌 개인직업으로 특화된 멤버로 활동하면 되잖아.”
“하지만…….”
말을 삼키는 걸 보니 마음이 전혀 없는 건 아닌 모양이다. 유명은 내친김에 적극적으로 리아를 설득했다.
“어차피 회원전용 콘텐츠가 주 수익모델이라서 멤버들마다 활동이 다양할수록 좋아, 각자 직업을 굳이 만든 이유가 뭐겠어? 진짜배기 격투가가 노예아이돌이란 사실만으로 인기 끌 테니까 두고 봐…!”
“……….”
지금껏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온 주인님의 호언장담을 그저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할 뿐인 노예아이돌 따위가 왈가왈부할 이유가 없다. 얼굴에 기대에 찬 미소가 서리는 걸 보고 유명이 씨익 웃었다.
“그럼 내 말대로 하는 거지?”
“으응… 해볼게, 그게 널 더 기쁘게 한다면 난 뭐든 좋아~”
“당연히 날 기쁘게 해주지, 이 나긋나긋한 몸으로 케이지 위에서 승리를 거둬가는 모습을 상상하면 이거 봐…!”
어느새 대가리를 벌떡 쳐들고 있는 거대한 자지를 보고 리아는 흥분에 겨운 탄성을 흘렸다.
“세상에…….”
“수지한테 부탁해서 실력있는 트레이너들 데려올 테니까, 어디 제대로 한 번 즐겨보자~!”
“예, 주인님~”
리아는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짜릿한 소름을 만끽하면서 주인님의 늠름한 자지를 입에 물었다. 차분히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다음 130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