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화 〉(128화) 16. 아이돌
(제 128 화)
“파이, 파이?”
유명은 허공에 시선을 두고 뜬금없이 누군가를 불렀다.
[예, 주인님]
“어때, 이젠 나하고 대화할 준비가 됐어?”
[아직 부족하지만, 원하시면 가능해요]
“너무 신중한 거 아냐?”
[그만큼 주인님의 취향이 까다로우신 거죠]
“하하~”
자신의 슈퍼카를 몰고 혼자 어딘가로 향하던 중인 유명은 차에 장착된 인공지능이 아니라 다른 존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직 많이 부족한 상태인데,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말투는 이제 거의 완벽해진 거 같은데?”
[오늘 만나러 가시는 마야 님의 데이터를 수집하면 훨씬 좋아질 거 같아요]
“그래? 너 리아랑 말투가 비슷한 거 알지?”
[예, 리아 님을 워낙 좋아하셔서 가중치가 높게 설정되어서 그래요. 하지만 똑 같으면 안 되니까 오늘 마야 님의 데이터가 중요해요]
“지금도 나쁘지 않아, 리아가 곁에 있는 것 같아 오히려 더 좋아.”
[하지만…]
“아아 이유는 아니까 일일이 설명 안 해도 돼.”
[역시 자상하시네요. 주인님 정도 되는 남자가 여자들에게 그렇게 친절하면 오해를 불러오니 조심하시는 게 좋아요]
“와~ 농담까지? 하하하하~”
[헤헤, 적절했나요?]
유명은 차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서울외각의 자연풍경을 보면서 즐겁게 웃었다.
“맞다, 물어 볼게있어.”
[뭐든 말씀하세요]
“통합우주군하고 연방정부의 약속을 못 믿는 건 아닌데, 파이 너 진짜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야?”
[예, 설계가 그렇게 돼있어요. 오로지 주인님만 절 제어할 수 있구요]
“하지만 시험사용기간이 끝나면 결국 회수되는 거잖아?”
[아뇨, 회수는 계약에 따라 연구데이터만 해당돼요. 만약 사용을 거부하시면 전 봉인되구요]
통합우주군에서 시험사용을 위해 제공한 개인용 인공지능은 귀속 피부에 장착한 초소형 마이크로칩을 통해 유명과 대화중이다.
“봉인될지 모르니까 너무 친해지면 안 되겠네?”
[그럼 봉인되지 않기 위해 주인님과 더 친해져야겠네요?]
“뭐? 와하하하하하~~”
[헤헤헤~]
짧은 대화였으나 둘은 벌써 가까워졌다는 걸 느꼈다. 유명은‘파이’의 이름을 개인용 인공지능(PAI; Personal Artificial Intelligence)의 머리글자만 따서 붙인 것이다.
“아무튼 파이 넌 나만을 위한 존재라는 건 틀림없는 거지?”
[그럼요, 전 영원히 주인님만을 위한 존재예요. 그러니 잘 키워주세요~]
“그래, 알았어. 하하하~~”
가족들의 동의하에 그동안 수집된 여자들의 데이터가 융합된 파이는 실제 인간과 구분하기 힘든 걸 넘어 이제 독자적인 성격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런 진보된 기술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가늠이 안 되어 한편으로 두려움마저 들지만, 약속대로 자신만을 위해 독립적으로 기능한다면 사이버 여자친구가 생긴 셈이다.
[주인님, 제조사에서 차량용 인공지능의 기능 업데이트를 제공했어요.적용할까요?]
“그래? 그거 괜찮은지 살펴볼 수 있어?”
[제 전문이죠,명령하시면 바로 살펴볼게요]
“그래, 살펴보고 이상 없으면 바로적용해.”
[예, 주인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슈퍼카 전면 디스플레이에 업데이트 중이란 메시지가 표시됐다. 업데이트도 순식간에 끝났다.
“원래 운행 중에 업데이트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제가 있잖아요. 업데이트 중 주행은 제가 했어요]
“차량용 인공지능은 시정부에서 관리하는 걸로 아는데?”
[연방정부에서 제게 부여한 권한을 이용해 통제권을 잠깐 넘겨받아 처리했어요]
“와~ 편한데?”
[헤헤, 이 정도는 할 수 있어야 절 좋아해주시죠~]
대화하는 사이에 말투가 살짝 바뀌는 느낌을 받았으나 비교적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자기여자들 데이터가 기반이라 그런지 금방 친숙해진 느낌이었다.
“처음엔 좀… 거부감이 있었는데, 이제는 없어진 거 같아. 앞으로 잘 부탁해, 파이.”
[고맙습니다, 주인님. 앞으로 주인님과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할게요. 많이 사랑해주세요~]
“그래, 하는 거 봐서 여자친구로 삼아줄게.”
[와~ 진짜요? 절 여자친구로 삼아주신다구요? 진짜죠? 와아아~~!!]
“하하, 하는 거 봐서라고 했어. 내 기준이 까다롭다는 거 알지?”
[후후 그럼요~! 저 노력할게요!]
“지켜볼게~!”
그러는 사이 유명을 태운 슈퍼카는 경찰특공대학교 정문에 들어서고 있었다.
*****
“거억~”
엄마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던 가야는 등을 가볍게 두드려주자 트림을 시원하게 했다. 그리곤 아빠를 보고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오구오구~ 우리 따알~~”
부녀가 끌어안고 바보처럼 웃는 걸 보고 마야는 젖 먹이느라 올렸던 훈련복을 정리하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회사일로 바쁠 텐데 평일에 어쩐 일이야?”
“어쩐 일이긴, 자기랑우리 딸 보고 싶어서 왔지~ 가야도 아빠 보고 싶었졍?”
아직 젖먹이인 가야는 1살은 넘어 보일 정도로 성장이 빨라 콧날이 오뚝해지고 금발머리가 제법 풍성해져 벌써 여자애 느낌이 드러나고 있었다. 유명이 딸에게만 관심을 보이는 게질투가 났는지 마야가 옆에 바짝 다가와 응석을 부렸다.
“나도 좀 안아주고 그래라, 너무 보고 싶었단 말야~”
“저리가, 넌 이제 찬밥이야. 나한텐 가야뿐이라구~”
이런 장난에 실망할 사이가 아니다. 마야는 얼른 끌어안더니 유명에게 키스를 퍼부었다.
“으앙! 응아아! 아앙!”
엄마가 끼어드는 게 못마땅한지 가야가 미간을 찡그리고 투정을 부렸다. 그때 유명의 귀에서 파이가 속삭였다.
[가야가 엄마한테 화났어요]
“우리 가야, 엄마 미워? 아빠만좋아?”
“까르르르~”
아빠가 가슴에 얼굴을 문지르자 가야가 자지러진 웃음을 터뜨렸다. 마야는 진짜 버림받은 기분에 울먹였다.
“히잉… 둘이서만 좋아하구…….”
“하하하, 이리와~”
이번엔 아빠가 먼저 엄마에게 키스했는데 가야는 또랑또랑한 파란 눈으로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가야가 기분이 좋아졌어요, 신기하다…]
마야의 데이터를 수집하러 와서는 아기에게 더 관심을 보이는 인공지능이라니, 유명은 파이가 점점 더 인간처럼 느껴졌다. 마야가 눈을 감고 잠깐 키스의 여운을 즐기더니 수줍게 웃었다.
“자기가 면회 오니까 기분이 되게 이상해.”
“처음도아닌데 뭐가 그렇게 이상해?”
“그냥 이상해…, 세상에 우리 둘만 있는 기분이랄까…?”
이제야 마야의 데이터를 수집하기 시작했는지 파이가 방해가 되지 않을 타이밍에 속삭였다.
[이런 기분은 아직 이해 못하겠어요. 이유를 물어봐주시면 안 될까요?]
“힘들어서 그런 건 아니구?”
“힘들긴, 가야가 기다린다는 생각만 하면 없던 힘이 생기는걸. 우리 세 식구만 있는 게 오랜만이라서 그런 거 같아….”
“그렇긴 하네, 집이 좀 시끌벅적하긴 하지?”
“후후그건 그래, 하지만 식구 많은 우리 집이 너무좋아~”
유명은 마야의 예쁜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가야가 아직 어릴 때 이렇게 우리 셋이서만 시간을 자주 갖자, 너도 그러고 싶지?”
“으응…, 고마워….”
마야는 딸과 함께 유명을 다정하게 꼭 끌어안았다. 서로의 온기와 살 냄새가 가슴에 가득한 사랑을 더 강하게 만들어줬다.
[이런 게 사랑인 건가요? 아… 저도 느껴보고 싶어요……]
파이의 속삭임에 유명은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아무리 뛰어난 인공지능이라도 아직 사랑까진 완벽하게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다.
*****
“컷, 좋았어! 모두 수고했어요~~!!”
“와아아아~~!!”
감독의 외침에 스텝들이 일제히 박수치고 환호했다. 이어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했던 연습생들이 예의바르게 얼른 고개를 숙였다.
“모두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어 기다리고 있던 직원들이 가운을 들고 얼른 달려갔다. 12명의 연습생들 모두 알몸인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하~ 다들 수고 많았어. 어떻게 촬영할 때 더 섹시하지?”
“와하하하하~~~”
유명이 팔을 활짝 펼치고 격려하자 연습생들은 붉어진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데뷔곡 뮤직비디오 촬영을 마무리한 것보다 주인님의 칭찬이 더 반가웠다.
“저희들 괜찮았어요, 주인님?”
“알몸으로 춤추는 거 아직 어색해요….”
“주인님만 보이니까 훨씬 편해요~!”
연습생들은 유명에게 모여들어 저마다 감상을 털어놨다. 땀에 전 진한 살 냄새가 확 풍겨 성욕을 자극했으나 자기 촬영 분에서 이미 충분히 즐긴 후라 유명은 미소로 받아넘겼다.
“다들 잘 하던데? 다들 너무 섹시해서 보고 있기 힘드니까, 적당히 해~”
“꺄하하하~”
아예 처음부터 카메라와 스텝이 안 보이도록 세팅해놓고 시작한 덕분이긴 하지만 이번 뮤직비디오 촬영은 프로필 촬영 때보다 훨씬 수월하게 진행됐다.
12명이 동시에 등장하고 충분히 연습한 동작이라 반복에 또 반복되는 촬영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진짜 데뷔한다는 기분에 다들 불평 하나 없이 신나게 찍었다.
활기찬 데뷔곡에 어울리는 발랄한의상으로 일반 뮤직비디오를 촬영한뒤 똑 같은 장면을 회원용으로 다시 촬영하는 방식이었는데, 주인님인 유명은 회원용에만 출연했다.
이전 프로필용 영상에서도 그랬다시피 유명의 존재는 철저히 주인님으로만 등장한다. 얼굴은 당연히 나오지 않고 목소리는 자막으로 처리된다.
회원용 영상에선 실제 섹스와 그 이상까지 예고되어 있으나 아직까지는 삽입 장면만 아주 짧게 교차편집으로 나왔을 뿐이다.
물론 연습생들의 입과 얼굴, 젖가슴, 엉덩이, 보지 등에 뿌려지거나 뿌려진 정액은 프로필 영상에 이어 이번 뮤직비디오에서도 숱하게 등장한다.
“유명 씨, 저번 프로필 촬영 때 보고 짐작하긴 했지만 진짜 대단해요…! 도대체 어디서 그런 정력이 나오는 거죠?”
이번에도 팬티차림으로 촬영에 참여한 감독은 유명과 악수를 나두며 혀를 내둘렀다.
“그냥 뭐… 제가 여자를 워낙 좋아해서요, 하하 ….”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12명을 한 번에 다 상대해요? 촬영하면서 사정을 몇 번 했는지 기억해요?”
“글쎄요… 이번엔 정신없이 즐긴 느낌이라 기억이 잘…….”
“연속 사정횟수도 지금못 믿을 정돈데 그 양이 도대체…….”
다시 생각해보니 소름이 끼치는지 감독은 어깨를 감싸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뒤에 있던 스텝이 얼른 가운을 가져와 어깨에 감싸줬다.
“어찌됐든 촬영에 도움이 된다는 말씀이시죠? 칭찬으로 들을게요~”
“당연히 칭찬이죠, 근데… 혹시 저 아이돌들 유명 씨를 진짜 주인님으로 모시는 거 아니죠?”
이 질문은 당연히 그럴 거라고 짐작하고 하는 것이다. 한창 수다 떨면서 촬영 뒤풀이 중인 연습생들이 지금껏 보여준 표정이나 행동을 비록 카메라 너머지만 감독이 어떻게 봤을지 뻔하다.
“그거야 보고 느끼시는 그대로니까 저로선 더 드릴 말씀이 없네요. 그럼 오늘촬영 고생 많으셨어요, 다음에 뵐게요.”
“아… 예에…, 유명 씨도 고생 많으셨어요….”
다시 악수와 미소로 인사를 나누고 연습생들에게 돌아가는 유명의 커다란 뒷모습을 보고 감독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고 혼잣말을 흘렸다.
“휴우우…… 저런 남자한테 한 번만 안겨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케이크까지 등장한 첫 뮤직비디오 촬영 뒤풀이가 끝나갈 즈음 유명의 귀에 누군가 속삭였다.
[주인님을 바라보는 여자들 시선이 정말 뜨거워요]
“오…그런 표현은 언제 배웠어?”
[적절하죠? 연습생들은 당연하고감독이나 스텝들 모두 주인님 관심을 끌고 싶어 안달이에요. 아무나 한 명만 관계를 맺어보시면 안 될까요?]
“그건 왜? 오늘 애들이랑 많이 했잖아?”
[연습생들의 데이터는 충분히 모았어요. 원하실 때 언제든 노예아이돌로 변신할 수 있을 정도인 걸요? 이름도 모르는 여자와 나누는 감정을 공부해보고 싶어서 그래요]
“흐음… 그건 다음에 하자, 오늘은 우리 애들 하고만 어울리고 싶어.”
[아… 그러시겠네요, 죄송해요]
“아냐, 호기심은 우리 파이의 특징 중 하나니까.”
[예쁘게 봐주셔서 항상 고마워하고 있어요. 제 마음 아시죠?]
“하하하, 그래~”
마야의 데이터가 더해진 파이의 목소리와 성격은 이제 완벽하게 자리를 잡은 것처럼 느껴졌다. 자기여자들 모두와 닮았으나 누구와도 닮지 않은 새로운 존재가 유명의 곁에 자리 잡은 것이다.
(다음 129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