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5화 〉(124화) 15. 길들이기 (125/130)



〈 125화 〉(124화) 15. 길들이기

(제 124 화)

“개인용 인공지능? 처음 들어보는데…?”

바구스는 고개를 저었으나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오랜만에 남자들끼리만 점심식사 하는 자리라 이야기를 꺼냈는데 기대에 못 미치는 대답이라 유명은 적잖이 실망했다.

“하긴… 검색으로  나오는  너라고 어떻게 알겠냐….”

오랜만에 절친끼리 대화중인데 도움이 못되는  마음이 쓰였다. 바구스는 빠르게 머리를 돌렸다.

“이럴 땐 키워드를 조합해보면 대충 짐작할 수 있어.”

“키워드?”

“응. 통합우주군, 연방정부,  정책, 개인용, 인공지능, 시험사용, 안드로이드 등등. 이런 키워드들은 평소에 접할 수 없는 것들이잖아?”

듣고 보니 모두 맞는 말이다. 유명이 이 세상에 와서 별의  일을 다 겪었으나 바구스가 정리한 키워드들 중 통합우주군과 인공지능을 제외하면 지금껏 자신과 아무 관련이 없는 것들이다.

“그럼… 통합우주군이 연방정부의 도움을 받아 날 이용해 개인용 인공지능을 시험해본다는 건가…?”

“음… 그렇게 해석하는  가장 일반적인 생각이겠지만, 나처럼 삐딱한 놈들은 다르게 해석할 수 있지.”

“어떻게?”

“통합우주군에서 새롭게 개발한 안드로이드를 유명이 너 같은 사람을 상대할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개인용 인공지능을 연방정부를 통해 시험사용이란 방법으로 제공한다.”

제법 그럴 듯하고 이 해석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생각이 통하는 친구가 있으니 식구들이 불안해할 정도로 의심스런 일까지 흥미롭게 여길 수 있게 된다.

“흠… 그거면 진짜 좋겠는데….”

“그렇지? 물론 매우 작위적인 해석이지만, 이게 아니면 다른 의문이 해소가 안 돼.”

“어떤 의문?”

“출산복지정책을 설명하러 온 공무원이 왜 뜬금없이 이런 제안을 했냐는 거.”

“아…!”

역시 평범한 생각만으로 해석이  되니 여자들이 불안했던 것이다. 점심식사는 이미 끝난 후라 둘은 식당 2층에 있는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웨이트리스의 탐스런 엉덩이를 친구와 사이좋게 훔쳐보고 군침까지 흘린 뒤 다시 대화가 이어졌다. 바구스가 휴대폰으로 검색한 내용을 내밀었다.

“저번 연방의회 대정부질문에서 국방장관이 한 답변에 이런 게 있었어.”

“통합우주군에서… 차세대 인공지능 개발 중인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중력기술과 마찬가지로 민간에 곧장 적용되지 않을 것이고 안 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명이 천천히 읽어 내리는 걸 기다린 뒤 바구스가 특유의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속삭였다.

“이게 너한테 제안한 그 인공지능이라는 거에 내 여자들을 건다.”

“미안하지만 네 여자들은 내 취향이 아니라 받기가 좀 그런데…?”

“이 새끼가…,  여자들도 예쁘고 섹시하거든! 그래서 나랑 생각이 다르다는 거야?”

“아 하하 그건 아니고, 네 짐작대로라면 민간인인 나한테 이런 제안하면 안 되는 거 아냐?”

유명의 지적에 바구스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문제야, 인공지능 기술은 여러 문제 때문에 민간에서는 사용이 제한되어 있거든.”

“집이나 휴대폰에서는 다 쓰잖아?”

“그거 전부 시정부에서 관리하는 거야. 독립적으로 돌아가는 인공지능은 없어.”

“아… 그래?”

친구가 어떤 이유로 이런 상식적인 사실을 모르는지 잘 아는 바구스가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개인정보보호는 연방법이라 인공지능을 시정부에서 관리해도 문제가 없어. 진짜 문제는 개인용 인공지능을 연방정부에서 어떻게 허가했냐는 거지.”

“근데 우리 가야가 태어난  무슨 큰일이라고 이런 제안을 한 거야?”

“……….”

바구스는 대답 없이 고개만 슬쩍 저었다. 유명으로선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험사용을 신청했는데 이런 짐작이 사실이라면 어딘가 꺼림칙하다.

“찝찝한데 취소할까?”

생각에 잠겨있던 바구스는 유명의 말에 깜짝 놀라더니 화난 목소리로 따졌다.

“미쳤냐? 이런 좋은 기회를  날려?!”

“야야 지금 우리 식구들은  문제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 아냐.”

“걱정을 왜 해? 딸 낳은 보상으로 이런 신기술을 사용해볼 수 있게 해준다는데 걱정할 일이  있어?”

바구스의 반응이 너무 예상했던 그대로라 유명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하 우리 식구들은 내가 이런 거 관심가지다 군대 지원해 버릴까봐 걱정하는 거야.”

“그래? 흐음… 마음이라면 이해가 간다. 너희 식구들이 사이가 좀 좋아야지, 안 그래?”

“크크크, 그건 그렇지~”

“하지만 너도 군대에 가긴 갈 거잖아? 아예 생각이 없어? 통합우주군기초군사훈련소에서 펄펄 날아다녔다면서?”

“……….”

이번엔 유명이 대답을 못했다.생각이 전혀 없는 건 아닌데,지금 생활이 너무 재미있고 흥미롭고 만족스러워 굳이 사서 고생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모병제인데 지원  한다고 문제될 일이 없지 않은가.

“이 인공지능이 얼마나 대단할지 나로서도 짐작이 잘 안 되지만, 최소한 너희 식구들을 대신할 일은 없지 않겠냐?”

“거야 그렇지….”

바구스의 지적대로 인공지능이 좋아봤자 매일 엄청난 쾌락을 안겨주는자기여자들을 대신할 수준일 리가 없다.

“그리고  요즘 아이돌까지 직접 키우잖아? 12명이라고 했지? 그럼 12인조 걸그룹으로 데뷔하는 거야?”

“회사에서는 8인조로 먼저 데뷔시킬 계획인데 내가 12명으로 하자고 우기는중이야.”

10대 남자애들답게 화제가 바로 넘어갔다. 유명은 남자들끼리 이런 대화를 나눌  있는 것만으로 즐겁다.

“너 도대체 회사에서 어떤 위친데 그런 권한까지있어? 아… 거기 회장님이 네 여자였지….”

“내 말은 그냥 의견이지만 수지의 말은 명령이거든. 크크크~”

자기여자를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 같아  꺼림칙하지만 그러지 못해 안달이 난 사회라 그냥 감수하면 그만이다. 역시 바구스가 엉큼한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크크큭 넌 진짜 운을 타고난 놈이야, 진짜 부럽다~”

“말만 해, 내가 친구 일자리 하나 못 만들어 주겠냐?”

이런 잘난 척을 지금 아니면 언제 해보겠는가, 진짜 해줄  있는 능력이 있으니 자신감이 확 치솟았다.

“흐흐 말만이라도 고맙다, 그쪽으로 관심이 있었으면 내가 먼저 바지잡고 부탁했을 거야.”

“박스 넌 역시 취향이 확실하구나. 참 은하는 너랑 같은 대학 지원하기로 결심했대?”

“지가 안 하면 어쩔 건데? 낭군님이 하라면 하는 거지.”

“하하하하~~”

못 보던 자신만만한 모습이라 신선했다. 확실히 이 세상 남자들의 자신감은 여자들에게서 비롯되는 것 같아 유명은 자기여자들이 새삼 고맙게 여겨졌다.

“그래…! 안드로이드!”

원래 주제로 갑자기 돌아왔다. 바구스는 잊었던 중요한 사실인  마냥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유명도 인공지능보다 안드로이드에 더 관심이 많았다.

“안드로이드가 왜? 인공지능처럼 민간에선 사용이 안 된다며?”

“그러니까, 그런 안드로이드를 왜 들먹였냐는 거야. 당장 쓰지도 못하잖아?”

“연방정부가 인공지능 사용을 허가했다면 안드로이드도 허가한  아닐까?”

유명의 주장에 바구스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아닐 거야. 안드로이드는 인공지능보다 사회에 끼칠 영향이 더 커.”

“어떤 영향… 아…!”

피임, 낙태와 함께 자위기구의 생산, 유통,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그렇다면 통합우주군에서 왜 안드로이드를 인공지능과 함께 제시한 것일까. 바구스가 엉큼한 미소를 씨익 지으면서 말했다.

“통합우주군  자식들엄청난 일을 꾸미고 있는 거 같은데?”

“엄청난 일? 뭐? 설마  같은  만족시켜주려고 섹스돌이라도 만든다는 거야?”

유명의 지레짐작에 바구스가 천진난만하게 웃으면서고개를 끄덕였다.

“큭큭바로 그거지! 그게 아니면 딸 낳은 너한테 인공지능 사용을 제안하면서 안드로이드 이야길 왜 꺼냈겠냐?”

“뭐…뭐야? 그럼 우리 식구들 걱정이 사실이란 거잖아?!”

친구의 반응이 재미있는지 킥킥거린 바구스가 다시 엉큼한 표정으로 넌지시 말했다.

“널 만족시킬 정도로 뛰어난 안드로이드라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지 않냐?”

“……….”

물론 궁금하다. 취향에 완벽하게 대응되는 섹시한 안드로이드는 남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존재가 틀림없다.

“나처럼 취향에  맞는 여자만 사귈 수밖에 없는 남자에게 최고의 선물일 것 같지 않냐?”

2차 성징한 여동생 유리와 여자친구 리아에게 들이댄 경력만 보더라도 바구스의 취향은 명확하다. 그리고 자기 취향에 맞는 여자를 사귈 수 있는 남자가 소수에 불과하다는 건 누구보다 유명 스스로 잘 아는사실이다.

물론 이 세상 남자들은 예전에 살던 세상에 비해 연애가 훨씬 수월한 편이지만, 유명이 무려 23+1명의 여자를 거느리고 있는 것처럼 누군가는 1명의 여자조차 사귀기 힘들지 모른다.

“어… 그거… 진짜 그럴 듯한데…? 통합우주군에 지원하는 남자들이모두 여자를  사귀는 건 아닐 테니까….”

“것도 그렇고, 전장이라는 특수성을 생각해보면 개인용 인공지능이나 그 걸 탑재한 고성능 안드로이드가 얼마나 위안을 될지 대충 짐작이 되지 않아?”

“…………….”

바구스의 의견은 키워드를 조합한 상상력의 산물이 뿐이지만 유명에겐 굉장히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이 인공지능이 널 위한 게 아니라 널 통해서 너희 식구들을 연구할 목적일  있어.”

“…………!!!!”

유명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놀랐다. 물론 앞의 상상들이 모두 사실이라는 가정 하에 가능한 일이지만 너무 그럴 듯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바구스가 쐐기를 박는 상상을 내놓는다.

“너희 식구들의 장점만 전부 모은 맞춤형 인공지능이 외모까지 유명이  취향에 맞춘 안드로이드에 탑재되어 곁에서 널 지켜준다고 생각해봐, 얼마나 위안이 되겠어?”

*****

“뭐야, 그럼 오빠를 꼬드기려는 게 아니라 우릴 조사하려고 그랬단 말야?”

널찍한 소파에 편안하게 기대어 있던 유리가 빨딱 일어나 앉으면서 화가  듯 따져 물었다. 그러자 세아가 신중한 목소리로 막내를 진정시켰다.

“현재로선 그저짐작일 뿐이잖아, 섣불리 판단할 문제가 아냐.”

“하지만 유명이 말대로 설득력이 있는 짐작인  사실이잖아?”

수지는  짐작이 사실이길 바라는 표정이었다. 아이샤가 나서서 엄마를 거들었다.

“복지혜택 설명하러 와서 꺼낼 이야기가 아닌 건 분명해, 안 그랬으면 우리가 그렇게 걱정할 일이 없었지.”

“나도 그 박스란 친구의주장에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해. 통합우주군이 연방정부와 함께 한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아닐까?”

주디의 합리적인 의심은 식구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이 문제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던 혜리가 아들을 꼭 끌어안았다.

“난 그러기만 바랄 뿐이야, 내가 몸담고 있는 통합우주군이 우리 식구에게 해가 된다는 생각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아….”

“엄마도 참…, 설사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사랑하는 우리 식구를 내가  버려? 그딴 안드로이드 100대를 줘도 난  여자가 더 좋아!”

23+1명이나 되는 여자를 거느리고 있어서 내세울 수 있는 자신감이지만 그게 여자들의 마음을 단번에 휘어잡았다. 수지가 혜리의등을 다독여주면서 유명을 바라보고 자랑스레 말했다.

“이제 17살이 되는 어린 아빠지만 우리 유명이만큼 믿음직스런 남자는 없지?”

“믿음직스러운 건 어릴 때부터 지켜봐온 내 입장에서  닿진 않지만,  나이에 아빠가 된 게 진짜 너무 놀랍고 대견해~”

세아의 추억에 찬 감상에 식구들 모두 즐겁게 웃었다. 분위기가 한결 좋아진 걸 느낀 유리가 대뜸 오빠에게 물었다.

“오빠, 그럼 군대에 지원  할 거야?”

대답하려던 유명은 식구들의 안색부터 살폈다. 기대와 우려가섞인 표정이 뭘 원하는지 바로 알아봤다.

“내 신념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군대 문제만큼은 모두와 의논해서 결정할 거니까 걱정하지마. 그리고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말하지만,   식구들과  시도 떨어져있고 싶지 않아…!”

듣고 싶고 믿고 싶은 말을  해주는데 어떤 여자가 넘어가지 않을까, 그 마음을 대변하듯이 유리가 뒤에서 오빠를 와락 끌어안았다.

“와… 수지 말대로 진짜 믿음직스럽다…!”

“와하하하하~~”

세아가 감탄을 흘리자 식구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넘어갔으면 됐을 분위기를 유명이 대뜸 초를 쳐버린다.

“우와아아… 가야랑 마야 보고 싶다아아!!”

“바보야, 내일 오후에 오잖앙!”

뒤에서 껴안고 있던 유리가 구박과 함께 얄미운 오빠의 귀를 깨물어버렸다.

“아야…!”

(다음 125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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