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화 〉(123화) 15. 길들이기
(제 123 화)
“안녕하세요, 전 아시아연방 정부소속 시민복지부 직원이에요.”
“안녕하세요, 전 서울시청 가족부소속입니다.”
수지, 아이샤와 함께 퇴근해 집에 막 도착했을 때 낯선 여자 두 명이 찾아왔다. 유명은 오후 늦은 시간에 가정을 직접 방문한 것보다 두 공무원이 2차 성징한 8등신의 늘씬한 미녀라는 사실에 더 관심이 갔다.
세아가 학교에서 즐겨 입는 초미니스커트 정장의 오피스 룩이라 더 눈길을 끄는 두 미녀를 메이드 루비가 거실로 안내했다. 차 대접을 하는 사이 유명이 엄마들에게 물었다.
“내가 뭐 잘못했나? 공무원이 이 시간에 왜 찾아온 거지?”
“후후, 아기가 태어나면 복지혜택 같은 거 안내해주려고 연방정부랑 시정부에서 저렇게 찾아와.”
세아의 대답에 혜리가 거들었다.
“별 일 아니니까 걱정할 거 없어.”
“근데 난… 안 찾아왔던 거 같은데…?”
수지가 고개를 갸웃하는 걸 보고 아이샤가 엄마의 엉덩이를 툭 치면서 말했다.
“엄마야 저런 일들은 주변에서 다 알아서 처리해줬으니 기억날 리가 없지.”
딸의 지적에 수지와 식구들 모두 가볍게 웃었다. 그러던 중에 마야가 딸을 안고 서둘러 내려오자 혜리가 얼른다가가 아기를 받았다.
“무슨 일인데?”
같은 공무원이지만 하는 일이 다르니 마야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안내 e메일 정도면 충분할 일을 사람이 직접 찾아온 것에 좋은 인상을 받은 유명은 마야의 손을 꼭 잡고 소파로 향했다.
“먼저 아시아연방정부를 대신해 출산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서울정부에서도 예쁜 아기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활짝 웃으며 악수까지 청하는 두 공무원의 표정과 태도는 말 그대로 진심인 것처럼 보였다. 축하인사 중 가장 낯설었으나 반대로 아빠가된 실감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들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직접 찾아와 주실 줄 몰랐어요.”
16살 중학교 5학년이 이런 예의바른 대응을 할 줄 예상 못했는지 두 공무원은 적잖이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둘의 반응을 지켜보느라 마야의 인사가 한 박자 늦었다.
“직접 찾아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별 말씀을요, 출산만큼 경사스럽고 축하받을 일이 또 있나요.”
연방정부 공무원의 예의바르고 살가운 대답에 시정부 공무원도 따라서 환한 미소를 지었다. 출산 축하인사와 복지혜택 안내 정도의 임무를 담당하기 지나칠 정도의 미모와 몸매지만 덕분에 유명의 긴장은 이미사라지고 없었다.
말려 올라간 초미니스커트 사이로 대놓고 드러내놓은 새하얀 팬티와 그 위를 감싼 검정색 스타킹을 보고 군침을 삼키려는데 두 공무원이 태블릿을 꺼냈다.
“병원에서 안내 받으셨다시피 아기출산일을 기준으로 연방정부에서 아빠엄마에게 출산연금이 각각 지급될 겁니다.”
“시정부에서 따로 지급되는 연금은 없지만 출산축하금이 나와요.”
태블릿으로 보여준 연금과 보상금의 액수가 상당했다. 엄청난 부자인 수지와 한 식구가 되지 않았어도 세 가족이 살기에 부족함이 없는 수준이었다.
“현재 유명님 앞으로 등록된 동거인이 혜리, 유리, 세아, 리아, 린, 수지, 아이샤, 주디 그리고 여기 애기엄마이신 마야님 맞나요?”
시정부 공무원이 태블릿을 보고 묻자유명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소피아, 비비안 두 분은 동거인으로 등록은 돼있지만 현재 통합우주군으로 복무 중이군요.”
“그렇습니다.”
유명의 시원시원한 대답에 대견하다는 듯이 다정한 미소를 지은 시정부 공무원이 다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유명님께선 앞으로 계속 마야님과 아기랑 동거할 계획이신가요?”
“네, 그럴 겁니다.”
“아, 그러시다면 연방정부와 시정부가 공동출자로 조성한 가족기금을 신청하실 수 있어요.”
자기 일처럼 기뻐한 시정부 공무원이 태블릿에 새로운 정보를 띄워 내밀었다. 내용을 살펴보던 마야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여기 계약기간이란 게 있는데, 만약… 지키지 않으면 불이익이 있나요?”
“지키면 되잖아?”
유명의 말에 두 미녀공무원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여자가 달래고 남자가 선뜻 받아들이는 낯선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시정부 공무원이 먼저 상냥한 말투로 설명했다.
“계약기간이 의무를 말하는 게 아니구요. 각 단계별 기간을 채우시면 보상금 형태로 지급되는 방식이에요.”
“아…….”
마야의 얼굴에 기대감이 서리는 걸 보고 유명은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보상 때문이 아니라 자기여자가 이런 혜택을 기대할 수 있는 게 자신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리고… 이번에 연방정부에서 통합우주군과 함께 새롭게 시행하는 정책인데요. 아빠께서 여기에 동의하시면 바로 신청자격이 생겨요.”
“……?!”
연방정부 공무원이 내민 태블릿을 본 유명의 표정이 뭘 의미하는지 마야는 정확하게 알아볼 수 없었다.
*****
“개인용 인공지능…?”
깜짝 놀라 반문하는 세아의 반응은 다른 식구들을 대변하는 것이다. 두 미녀공무원이 돌아가고 난 뒤 거실에 모인 식구들은 유명의 설명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복무할 땐 개인용 인공지능 도입한다는 말 자체가 없었는데….”
혜리의 혼잣말에 다들 생각이 더 많아졌다. 유리가 얼른 오빠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 인공지능이 나중에 오빠를 위한 안드로이드가 된다는 말이야?”
“정확하게는 필요할 경우 안드로이드의 머리에도 탑재가 가능하다는 거지.”
“그게 그 말이잖아?”
유명이 덧붙이기전에 마야가 먼저 설명했다.
“안드로이드는 여러 조건을 갖춰야만 신청할 수 있는 거라 신경 안 써도 돼.”
“근데 개인용 인공지능이 꼭 필요한가?”
수지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지적하자 혜리와 더불어 군경험이 풍부한 주디가 나섰다.
“일상생활에선 필요 없지만 전장에선 굉장히 유용할 거 같아. 저번 타이완 섬에 갔을 때도 지원이 없어서 힘들었거든.”
“맞아, 그런 위급상황이라면 인공지능이 있는 것과 없는 차이가 엄청 날 것 같아.”
유명이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나서자 다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마야가 귀에 손을 갖다 대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아기 깼다.”
“아빠가 간다아아아아~~~~”
집에 설치된 가정용 인공지능이 아기 방에 있는카메라로 수집한 정보를 분석해 마야가 귀속에 끼고 있는 커널형 이어폰으로 신호를 보낸 것이다.
“하하하, 유명이 쟤 아빠노릇 잘 하는데?”
아이샤의 지적에 식구들 모두 즐겁게 웃었다. 마야가 얼른 뒤따라가는 걸 보고 세아가 한마디 했다.
“이럴 때보면 인공지능이 참 편하긴 한데, 인공지능 사용을 축소시킬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다시 확대하려는 이유가 뭐지?”
“통합우주군과 함께 하는 정책이라잖아, 유명이를 군으로 끌어드리려는 속셈이지 뭐겠어?”
혜리의 주장에 주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혜리 말이 맞아, 다른 아빠들에게는 권하지않았을 게 분명해.”
“기초군사훈련소에 괜히 간거 아냐? 사업도 이제 본격적인 시작인데…, 이러다 졸업하고 군대가버리면 우린 어떡해?”
걱정이 많이 되는지 수지의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아이샤가 얼른 엄마를 달랬다.
“지원해야 가는 군대인데뭐 하러 걱정해?”
“오빠가 그 개인용 인공지능에 관심을 가지면 어떻게 되는 건데? 그거 사용하면 나중에 군대 가야되는 거 아냐?”
오빠에 대한 걱정으로 미간을 잔뜩 찌푸린 유리의 말에 아이샤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시험사용기간이 있으니까 미리 걱정할 필요 없어.”
“그래 유리야, 오빠가 그런 거에 관심 없을 수도 있잖아?”
세아가 거들고 나서자 유리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그러나 수지는 여전히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냐…, 통합우주군 이 자식들이 연방정부랑 짜고 인공지능을 미끼로 어린 남자애들 꼬드기는 게 분명해. 유명이가 딸을 낳기 무섭게 달려든 이유가 뭐겠어?”
“설마… 애 하나 낳았으니 전쟁터 가서 죽으라는…?”
유리의 입을 세아가 얼른 막았으나 이미 할 말은 다 나온 후였다. 혜리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아냐… 그럴 리 없어…, 그…그럼 안 돼…. 오빠만으로 충분해… 내 아들… 우리 유명이는 절대 안 돼…….”
자신의 괜한 걱정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 같아 수지는 혜리를 끌어안고 머리를 감쌌다. 엄마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처음 보는 유리는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분위기가 너무 어두워지는 걸 의식한 주디가 애써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군에서 만든 인공지능이 좋아봤자 얼마나 좋겠어? 죄다 전투와 관련된 기능일 게 뻔해.”
“그래 그럴 거야, 군인들 생각이야 뻔하잖아?”
아이샤가 거들고 나섰으나 혜리는 수지의 품에서 두려움에찬 목소리로 말했다.
“통합우주군을 우습게보면 안 돼…,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기술을 갖고 있단 말야. 그 개인용 인공지능이란 것도… 유명이를 유혹할 정도로 엄청날 게 분명해…….”
“그…그런 엄청난 걸 왜 우리오빠한테 주겠다는 거야? 그리구 오빠가 뭐가 아쉬워서 그런 걸 써? 우리가 있는데 인공지능이 왜 필요해?”
유리는 항의는 억지에 가까웠으나 식구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다. 중요한 사실은 유명이 개인용 인공지능이 궁금하다고 시험사용을 신청했다는 것이다.
“유명이 쟨 왜 그런 걸 신청해가지구….”
수지의 원망 섞인 한탄에 식구들은 아무 대꾸 없이 한숨만 쉬었다. 합숙소에 있는 리아와 수사관학교에 있는 린의 빈자리가 오늘따라 유독 크게 느껴졌다.
*****
식구들을 큰 걱정에 빠뜨렸던 개인용 인공지능 문제는 통합우주군에서 한동안 연락이 없어 수면 아래로 조용히 가라앉았다.
유명은 별 기대를 안 하고 있었는지 공무원이 돌아간 이후 전혀 언급이 없었고, 마야는 다른 식구들의 걱정을 듣고는 인공지능의 인자도 꺼내지 않았다.
문제는 마야의 출산휴가가 끝날 때 터졌다. 젖을 물려야하니 아기를 엄마가 데리고 갈 수밖에 없어 생이별을 하게 생긴 것이다.
“우리 딸 하루라도 못 보면 내가 죽는다니까!”
유명의 억지에 식구들은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몰라 난감했다. 아기랑 엄마를 여전히 사랑해 곁에 두고 싶어 하는 마음이 남의 일 같지 않아 너무 반갑고 기쁜데, 그 사랑이 이런 생억지를 부릴 줄은 몰랐던 것이다.
“바보야, 주말에 오잖아! 그리구 매주 이틀이나 연습생들한테 가면서 뭘 하루도 못 보면 죽어?!”
오빠에 대한 타박은 역시 유리만한 식구가 없다. 유명의 머리를 때리고 발로 차는 구박을 할 사람이 또 누가 있겠는가.
“유리야, 생각을 좀 해봐. 집에 아기랑 엄마가 이렇게 예쁘게 기다리고 있는 상태에서 내가 잠깐 일 때문에 집을 비우는 거랑 이 둘이 날 버리고 집을 떠나 1주일 동안 안 오는 거랑 같아? 응? 같냐고!”
듣고 보니 다른 게 맞다. 그러나 설명이 자기중심적이라 유리가 발끈했다.
“이게 자기입장만 우기고 있어! 그럼 마야언니 어쩌라고? 벌써 절반 넘게 받은 훈련을 이대로 포기하라구? 언니가 경찰 관두고 집에서 엄마 뒤만 따라다니면 좋겠어? 응? 말해봐!”
“아…아니 유리야, 내 뒤가 어때서…….”
혜리가 따지려는 걸 세아가 얼른 잡아당겼다. 유명의 표정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그야… 그렇지만……, 그럼 보고 싶으면 어떻게 해…?”
이 상황에서 누구보다 가슴이 아픈 사람이 바로 마야다. 자신과 아기를 이렇게까지 사랑해주는 남자를 놔두고 어떻게 떠난단 말인가.
“흐아아앙… 흐윽 내가 경찰 관둘게…! 내 욕심만 부려서 미안해… 흐어어엉…. 자기가 우리 딸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면서… 흑흑 그냥 집에 있을게, 경찰 안 할 거야…!”
“우와아아아앙 응아아앙 응애 응애 으아아앙”
엄마가 울음을 터뜨리자 딸이 곧바로 응수했다. 이 두 모녀를 달랠 책임은 아빠에게 있음을 식구들이 눈길로 말했다. 유명은 얼른 모녀를 끌어안고 달랬다.
“아…아냐, 내가 미안해. 내가 억지 부린 거야, 그만두길 뭘 그만둬. 정 보고 싶으면 내가 찾아가면 되잖아? 뚝! 그만 그쳐, 내가 잘못했어!”
엄마인 마야보다 딸이 먼저 울음을 그쳤다. 심지어 눈까지 살며시 뜨고 웃는 게 아닌가. 그걸 본 모든 식구들의 얼굴에 일제히 미소가 피어났고 혜리가 먼저 감탄을 터뜨렸다.
“어머나~ 우리 공주님 눈동자색이 엄마랑 똑같네?”
“어쩜 눈이 이렇게 크고 예쁘니? 까꿍~”
세아까지 감탄을 터뜨리자 유명의 억지는 이제 뒷전으로 완전히 밀렸다. 그때 수지가 눈치껏 화제를 돌려버렸다.
“우리 예쁜 공주님이 아직 이름이 없네? 까꿍~ 아빠가 투정만 부릴 줄 알지 정작 자기할 일을 안 하는데, 어쩌니? 웃는 것 좀 봐, 아유~ 예뻐라아~~”
“바보야, 이름 언제 지을 거야! 언니 이제 가야한단 말야…!”
유리가 다시 오빠를 구박하자 유명의 머리에 퍼뜩 뭔가가 떠올랐다.
“가야해…? 가야? 가…야… 가야 어때? 우리 딸 이름으로 가야 어떠냐구?”
“……….”
식구들은 유명이 여동생 놀리려고 말장난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표정이 진지한 걸 보고 다들 입안에서 이름을 맴돌려보기 시작했다.
“가야… 괜찮은 거 같은데? 아니… 좋아, 부르기 쉬워서 마음에 들어.”
친할머니인 혜리의 의견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생각하던 세아가 유명을 보고 넌지시 물었다.
“너 설마… 고대 가야…국에서 따온 이름 아니지…?”
“어… 맞아, 마야 이름하고 뒤 음절을 맞추려다 보니까 그게 생각났어….”
전공자인 세아만 알고 있을 정도로 이미 잊힌 역사를 16살 유명이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는 지금 이 순간 중요하지 않았다. 식구들은 첫 아기의 이름이 ‘가야’로 정해진 걸 그저 기뻐할 뿐이었다.
(다음 124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