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화 〉(107화) 14. 가족
(제 107 화)
격투기체험 업소에서 의도치 않게 집단섹스로 몸을 푼 가족들은 맛있는 길거리 음식으로 가볍게 배를 채운 다음 잠깐 호텔에 들러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곧장 하르빈 최고의 클럽으로 향했다.
초대형 최고급 리무진에서 차례로 내리는 유명의 식구들은 연예인 못지않게 모두의 시선을 독차지했고, 이 초절정 미남미녀들은 끝을 모르게 늘어선 대기 줄을 무시하고 곧장 클럽에 입장했다.
세계 최대의 도시 서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하르빈을 대표하는 클럽답게 내부 치장이나 분위기는 최고라는 명성에 걸맞게 휘황찬란했다.
심장을 두드릴 정도로 크고 경쾌한 음악과 남녀가 질러대는 교성이 어울린 분위기는 모든 걸 내려놓고 즐기기 안성맞춤이었다.
“나랑 놀아 줄 사람 없어? 뭐야… 다들 완전히 뻗었네?”
음악과 춤 그리고 술까지 더해진 광란의 밤을 보낸 후유증으로 여자들 모두 홍콩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완전히 뻗어버렸다.
술과 기분에 취해 호텔에 와서 또 섹스를 해놓고 멀쩡하게돌아다니는 유명이 이상한 것이다. 그나마 미성년자라 술을 눈치껏 마신 유리가 몸을 뒤척였다.
“오빠…앙… 다들 죽을 맛이니까… 좀 내버려둬…, 우으응…….”
“아! 유리야… 유리야? 어이~ 동생님~”
엉덩이를 다정하게 톡톡 다독였으나 유리는 다시 잠들어버렸다. 정력이 좋은 게 이런 낭패를 초래할 줄이야, 유명은 자기 자리로 돌아와 털썩 주저앉았다.
“주인님, 제가 놀아드릴까요?”
“아, 루비!”
루비는 코스프레 마니아인 게 틀림없다. 언제 갈아입었는지 스튜어디스복장으로 바람에 날린 스카프에 모자까지 쓰고 활짝 웃고 있었다.
“다들 주무셔서 전 한가해요.”
“참 어제 클럽은 왜 같이 안 갔어?”
“전 호텔에서 룸서비스 받는 게 최고의 휴식이에요. 저만의 즐거움을 무시하지 말아주세요.”
“어… 그…그래…. 그럼 우리 뭐하고 놀까?”
“죄송하지만 이 제복이 한 벌 뿐이라 섹스는 절대 안 돼요.”
“그래?”
안 된다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게 사람 아니 유명의 속성이다. 객실 뒤쪽에 마련된 침대로 끌려간 루비는 스튜어디스용 초미니스커트 정장이 다시 입을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질 때까지 입, 보지, 항문 할 것 없이 박히고 또 박혔다.
*****
한 때 ‘동양의 진주’로 불리다 중국으로 반환 되어 빛을 잃어가던 홍콩은 이제 대륙 남방지역과 동남아시아 유민들이 한데 뒤섞인 아시아연방 최대의 다민족 도시국가가 되어 있었다.
서울이 세계에서 2차 성징한 인간의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국가라면 홍콩은 반대로 일반인의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국가다.
그래서 2차 성징한 것에 더해 미모와 몸매까지 우월한 유명의 식구들은 공항에 도착해서부터 다음 날 떠날 때까지 홍콩시민들의 시선을 달고 다녔다.
“여기는 진짜 아시아라는 느낌이 좀 든다.”
유명의 감상에 다른 여자들도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거리 곳곳에 남아있는 한자간판과 오밀조밀한 구식 거리, 그리고 전 세계 도시국가들 중 가장 높은 인구밀도가 홍콩을 대표하는 이미지다.
덕분에 가족의 안전을 자임한 주디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있어 어딜 마음 놓고 다니질 못했다. 결국 관광투어용 버스를 빌려서 돌아다니기로 일정이 변경됐다.
“진짜 사람 많다…! 다들 숨 막혀서 어떻게 살지?”
유리가 차창 밖 거리를 가득 채운행인들을 보고 혀를 내두르자 세아가 새로 산 선글라스를 일부러 끌어 올리면서 말했다.
“인구수는 서울이 더 많아, 홍콩이 그냥 좁은 거야.”
“아니 저렇게 멋진 인공 섬까지 만들어놓고 좁다고 그럼 말이 안 되잖아?”
전문 투덜이 린이 멀리 보이는 해변거리를 가리키고 투덜대자 리아가 휴대폰으로 검색한 내용을 읊었다.
“저기가… 인공 섬이 아니라 옛 마카오 지역을 확장한 군사지역이라는데? 마카오는 처음 들어봐, 웃긴 이름이다.”
“얘들이 수업 때 뭐 들었니? 지금 홍콩은 옛 중국의 광저우와 마카오가 합쳐진 지역이잖아.”
역사와 사회를 가르치는 세아의 타박에 다른 식구들이 모른 척 시선을 돌렸다. 아마 버스 안에서 유일하게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버스투어로 경계심이 조금 누그러진 주디가 설명을 덧붙였다.
“어쨌든 여기 홍콩이 옛 중국 남방을 모두 커버하는 곳이라 물류 량이나 유동인구가 엄청나. 그만큼 위험하다는 거지.”
“주디 넌 어떻게 그런 생각만 해? 시민들이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위험하다는 거니?”
주디에 대한 구박은 언제나 직장상사인 수지의 몫이다. 그러나 같은 남자에게 사랑 받는 동일한 위치가 되면서 예전보다 주눅 드는 경우가 줄었다.
“다들 너무 느긋하니까 나라도 좀 긴장하고 다녀야지, 시민이 많다고 안전하다면 학교 안에서 납치당한 유명인 뭔데?”
“어? 그거 선 넘었다.”
유명이 아무렇지 않게 받아 넘기자 다들 가볍게 웃었다. 여행 전만 하더라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분위기가 무거워졌는데 단 며칠만의 변화에 다들 기분이 더 좋아졌다.
“우릴 생각해서 긴장하는 건 좋은데, 어제 클럽에서 주디가 가장 많이 마시지 않았나? 지금도 술 냄새 나는 거 같지 않아?”
혜리가 해맑은 표정으로 지적하자 주디가 갑자기 경계근무를 서는 초병처럼 얼른 선글라스를 끼더니 괜히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크크큭 하여튼 다들 귀여워 죽겠다니까, 근데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거야?”
주디의 엉덩이를 툭툭 다독여주면서 유명이 묻자 여행 가이드를 맡은 아이샤가 휴대폰에 저장된 홀로그램을 켜고 대답했다.
“지금 통합우주군 과학기술개발부산하 제2조선소로 가는 중이야.이번 주부터 최신형 전함 건조하는 거 견학할 수 있대.”
“제2조선소? 제1조선소는 어딘데?”
유명의 반문에 다른 사람이 아닌 유리가 대뜸 대답했다. 대답을 위해 선글라스를 벗었던 주디가 적잖이 실망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디긴 우리나라에 있지!”
“그래? 그럼 거기가 볼 게 더 많지 않나?”
주디가 다시 선글라스를 벗고 설명하려는데 이번엔 마야가 먼저 끼어들었다.
“우리나라에 있는 군사시설들은 대부분 1급 비밀이라 견학이 안 될걸?”
“응, 안 돼. 유명이가 갔던 기초군사훈련소도 수료식 외에는 면회조차 안 되잖아.”
린이 자신이 할 설명을 먼저 해버려 실망감에 젖어있던 주디는 정작 유명이 묻는 걸 제대로 못 들었다.
“주디, 주디!”
“응? 으…응? 왜? 왜? 무슨 일 있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시아연방군은 어디서 훈련 받냐고?”
“어디긴 서울이지.”
“뭐 죄다 서울이야….”
유명이 투덜대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다들 다시 웃었다. 그때 유리와 리아가 동시에 차창에 달라붙어서 외쳤다.
“우와아~~!!”
“다들 저기 봐!”
멀리 해변에 있는 시설에서 거대한 검은색 물체가 떠오르는 게 보였다. 그 놀라운 광경을 모두 한참 동안 넋을 읽고 바라봤다.
“와아아… 저…저렇게 큰 게 어떻게 하늘에 떠오를 수 있는 거지?”
유명의 감탄은 다른 식구들의 마음과 같았다. 하늘에 떠오른 물체를 직접 타 본적이 있어 아는 척 할 수 있는 기회를 다시 얻은 주디가 나서려는데 아이샤가 어디선가 찾은 설명서를 보고 읽어버렸다.
“통합우주군 4세대 전투함 거북선급 18번함이라는데…, 이게 다 무슨 말이지?”
“아 그건 말야….”
주디가 설명하려는데 이번엔 되레 유명이 나서는 것이 아닌가.
“4세대는 무기체계 수준이고, 전투함은 종류를 말하고, 거북선급은 저 함선 크기를 말하는 것일 거고, 18번함은 18번째 만들어 졌다는 뜻 맞지?”
“커흑… 그래, 맞아…….”
결국 한 마디도 거들지 못한 주디는 자기가 내세울 건 겨드랑이 털밖에 없는 게 아닐까란 심각한 자괴감에 빠져버렸다.
*****
사실 버스 안에 있는 식구들 중 통합우주군 무기에 대해 혜리만큼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주디가 자괴감에 빠진 이유를 아는 사람 역시 혜리뿐이었다.
“후후 그냥 나처럼 가만있음 편해, 언니~”
“흐흑… 난 필요 없는 여자야, 흐규흐규….”
“필요 없긴, 유명이가 언니 겨드랑이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우와아아앙~~~”
주디가 울음을 터뜨린 이유를 몰라 식구들이 난처해하는 사이, 통합우주군 과학기술개발부산하 제2조선소에서 진수식을 마친 거북선급 18번전투함은 최신식 함선의 위용을 자랑하며 지구정거장을 향해 점점 더 높이 떠오르고 있었다.
“휴우… 다음 달에 20번함 승선해서 우주로 나가면 사관학교 입학할 때까지우리 낭군님 못 만나겠지…?”
진수식이 끝난 자리를 정리하던 한미녀병사가 조금씩멀어지는 전투함을 올려다보면서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같은 일병 계급의 동료가 옮기던 짐을 내려놓고 같은 곳을 바라봤다.
“우리 낭군님은 저 함선처럼 멀리 떠났어, 소피아….”
“하긴 메시지 보기만 하고 한 달이 넘게 답신이 없는 걸 보면 우리 잊은 게 분명해….”
소피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비비안은 다시 짐을 들고 무거운 발걸음을옮기다 팔찌에서 신호가 오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어? 소…소피아… 소피아아!!”
“왜 그래? 어머! 이거 뭐야? 어어?”
소피아의 팔찌까지 신호가 울리는 걸 보고 둘은 서로 눈길을 맞추더니 동시에 소리쳤다.
“꺄아아~~ 낭군님이다!”
“세상에… 유명이가 근처에 있어!!”
이들처럼 계정이 연동되어 있는 연인사이는 상대가 어디 있는지 바로 알 수 있다. 그래서 남자들은 같이 사는 여자라 할지라도 절대 계정을 연동하지 않는다. 유명이나 되니까 자기여자들하고 일일이 연결해놓고 다니는 것이다.
“어머! 어쩜 좋아! 유명이가 이쪽으로 오고 있어!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거 기억하고 있었나봐!”
지도 홀로그램에 유명의 아이콘이 조금씩 가까워지는 걸 보고 소피아가 커다란 젖가슴이 턱을 칠 정도로 방방 뛰고 호들갑을 떨자 같이 손잡고 좋아하던 비비안이 갑자기 멈칫했다.
“어? 우리 여기 1주일 전에 왔잖아? 그동안 진수식 준비하느라 정신없어서 연락 안 했는데?”
“어… 맞다, 그저께부터 겨울휴가라 우리 엄청 투덜대면서 왔었지…?”
내부사정으로 진수식이 1주일 연기되는 바람에 휴가까지 연기되어 짜증을 낸 적이 있어 틀림없는 기억이다. 그렇다면 유명은 자신들이 여기 있는 걸 모르고 오는 중이란 말이 된다. 단순한 소피아가 씽긋 웃어넘겼다.
“알게 뭐야, 우리 낭군님만 볼 수 있다면 난 상관없어~”
“어머, 얘 어디가? 소피아! 여기 치워야지! 얘!”
“지금 청소가 문제야? 얼른 와!”
소피아는 내버려진 짐을 어쩌지 못해 망설이는비비안을 손을 꽉 잡고 조선소 입구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러는 경우가 어딨어요, 여기 이번 주부터 된다고 안내해놓고 왜 안 된다는 거예요?”
여행 가이드를 맡은 아이샤는 출입이 통제됐다는 위병에게 안내문을 홀로그램으로 켜놓고 따지는 중이다. 버스 맨 뒤에 앉은 주디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마 진수식 때문에 저러는 걸 거야, 이럴 줄 알았으면 내일 올 걸….”
“내일은 카이로에 가기로 예정되어 있잖아, 전투함 진수하는 거 멀찍이나마 본 걸로 만족해야지 모~”
혜리의 위로에 다들 포기하는 분위기였다. 그때 호기심으로 여기저기 둘러보던 리아가 멀리서 조그만 카트를 타고 손을 흔들고 오는 두 병사를 발견했다.
“어? 유명아… 저기 저 사람들… 소피아랑 비비안언니 아냐?”
“어? 진짜네, 쟤들이 여기서 왜 나와?”
기초군사훈련소 수료식 때 만나서 같이 섹스까지 해서 주디를 제외하고 다들 아는 사이다. 소피아가반가운 마음에 카트를 비비안에게 맡기고 휙 뛰어내렸다.
“아이샤언니!”
“어머! 소…소피아? 소피아 맞지? 어떻게 여기서 만나니? 우와~ 너무 반갑다~~!!”
위병이랑 말다툼 하는 걸 잊고 아이샤는 소피아 손을 잡고 폴짝 거리면서 좋아했다. 비비안이 뒤늦게 인사하려는데 버스에서 내리는 유명을 보고 위병이 펄쩍 뛸 정도로 큰 소리로 불렀다.
“유명아아!!”
“꺄아아아아~~!!”
위병사관인 여하사가 나와 말리는 것에 아랑곳없이 소피아와 비비안은 유명의 목을 끌어안고 키스부터 퍼부었다.
결국 통합우주군 예비역 하사인 혜리가 나서서 신분을 증명하고 아시아방위군 상사출신 주디와 서울의 명문 격구팀 와일드 캐츠의 구단주인 수지의 이름까지 팔고 나서야 겨우 출입이 허가됐다.
사실 세 명의 이름값보다 소피아와 비비안이 막무가내로 떼를 쓴 게 오히려 상급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기초군사훈련소 동기인 낭군님을 두 달 만에 보는 거라 출입시켜주거나 휴가를 앞당겨 달라고 난리를 피웠기 때문이다.
소피아와 비비안이 양쪽에서 유명을 차지하는 바람에 다른 여자들은 끼리끼리 어울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제2조선소의 방대한 시설과 신형 전함의 일부분을 건조하는 광경을 구경하느라 다른 생각할 정신이 없었다.
(다음 108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