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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5화 〉(104화) 14. 가족 (105/130)



〈 105화 〉(104화) 14. 가족

(제 104 화)


14. 가족

유명이 주디와함께 집으로 돌아오자 식구들 모두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조용히 맞이해줬다.  달 동안 떨어져있었으나 하루에 몇 번씩 연락을 주고받고 지내서 특별한 위로의 말이 필요 없었다.


그  달 사이, 수지는 타이가 저질러 놓은 일을 깨끗하게 수습해 놓았다. 정작 당사자의 횡령이나 배임은 심하지 않았는데 인턴에서부터 회사 곳곳에서 암약하던 추종자들을 솎아 내는 게 보통일이 아니었다.

금지된 약물을 이용해여성을 정신적으로 지배한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받았는데, 예나 지금이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논란의 중심에서 한발자국 물러나있으면 관심이 멀어지기 마련이다.

수지가 인터뷰까지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뛰어다닌 결과지만 한창 시끄러울 주디를 곁을 지킨 덕분에 유명이 집으로 돌아왔을 땐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조용해진 상태였다.


대신 이번 사건을 해결한 공로를 인정받아 마야와 린이 경찰특공대학교와 경찰수사관학교 역대 처음으로 학생신분인 상태에서 경찰청장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얻었다.

생사가 불분명하던 1주일 동안 넋이 나가있었던 유리는 오빠가 멀쩡히 돌아오자 미칠 듯한 경기력을 발휘해 나머지 지역예선리그 경기를 전승으로 이끌었고, 팀이 1등을 차지해 전국토너먼트에 진출하게 된 것은 물론 지역협회가 수여하는 최우수선수상과 최다득점상, 신인상, 베스트5에 선정되는 등 개인상을 휩쓸어버리는기염을 토했다.


리아는 유명이 납치당한 충격으로 아이돌을 관두겠다고 무단이탈했다가 돌아온 유명에게 엉덩이가 불이 나도록 맞고 무릎 꿇고 사과한 뒤 다시 연습생생활로 돌아갔다.


그런데 리아만 그랬던 게 아니라 주인님이 납치당했다는 소식을 접한 연습생들이 한꺼번에 1주일 동안 연락을 끊고 집에 틀어박히는 바람에 회사가 발칵 뒤집어졌었다. 물론 다시 출근한 첫날 한 명도 빠짐없이 엉덩이에 불이 나도록 맞았다.


도망치는데 정신이 없었던 타이에게 추행만  당했던 혜리, 세아, 아이샤는 유명에게 극적으로 구출된 영향 때문인지 정신과 치료가 필요 없을 정도로 멀쩡해 곧바로 일상으로 돌아갔다.

대신 아이샤는 체육교사직을 관두고 엄마를 돕기 위해 와일드 캐츠구단에 입사해 타이가 맡았던 마케팅이사가 됐다. 유명은 회사로 출근하고 퇴근할 때마다 모녀덮밥을 먹을 수 있게 됐다.

말로만 듣던 엄청난 미녀들과 함께 지내게 되어 본의 아니게 열등감에 빠졌던 주디는 유명이 수지와 논의해 보안전문 자회사를 설립하여 운영을 맡기자 물 만난 고기처럼 좋아하면서 일에 몰두했다.

세상만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자신을 포함해 식구들 모두 납치당하기 전보다 훨씬 행복해졌다. 그 행복이 주는 안도감에 유명은 비로소 충격에서 벗어날  있었다.

*****



문화권별로 조금 사정이 다르지만 유명이 살고 있는 서울은 서비스직종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민들이 연말을 전후로 2주간 휴가에 들어간다.

유명과 수지, 아이샤, 주디의 회사는 당연하고 연습생인 리아와 학생인 유리 그리고 교사인 세아, 경찰특공대학교와 경찰수사관학교에 다니는 마야와 린까지 모두 휴가를 맞이했다.


통합우주군 예비역 하사이긴 하지만 전업주부인 혜리는 아들의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왔는지 휴가기간 동안 다른 도시국가로 여행가자는 제안을 내놓았고 식구들은 쌍수를 들어 찬성했다.

저번 납치 사건으로 타이완 섬의 현실을 직접 경험했던 유명은 자신이 알고 있던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는데 그걸 친엄마인 혜리가 알아본 것이다.

휴가기간이 2주 정도라 세계 일주는 무리라는 의견에 아시아연방(AU; Asia United)에 속한 주요 도시국가들만 둘러보는 것으로 결정됐고, 여행은 휴가 첫날 바로 출발했다.

이번 첫 가족여행을 위해 수지는 원래 가지고 있던 소형 자가용비행기를 팔아버리고 중형으로 새로 마련했고, 서울의 개인비행기전용공항을 출발한 최고급비행기는 유명의 가족을 태우고 최신형이라는  자랑하듯 첫 여행지인 하르빈(하얼빈)에 순식간에 도착했다.

아시아연방 내 도시국가간의 이동은 옆 동네 가는 것과 똑같아 출입국수속 없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준비된 초대형 벤을 타고 곧장 호텔로 향했다.

“하르빈이라고 해서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서울이랑 비슷한데?”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화려한 도시풍경을 보고 유명이 감상을 내놓자 고향에 온 기쁨에 한껏 들떠있던 마야가 도톰한 입술을 샐쭉 내밀고 눈을 흘겼다.

“흥, 촌 동네라고 하려다 나 생각해서 그렇게 말한 거지?”


“음… 그게 아니라 난 만주에 있는 도시니까 뭔가 색다른 분위기일 줄 알았거든.”


오빠의 대답에 옆에 찰싹 붙어있던 유리가 얼른 끼어들었다.

“나도 하르빈은 처음이라 기대했는데 좀 실망이야~”

“우리도 그래~!”


식구들이 동시에 합창으로 거들자 울상이 된 마야가 엉덩이를 들썩거릴 정도로 투정을 부렸다.

“으아앙~ 다들 나만 미워하구~! 시내라서 이렇지 시외로 나가면 옛 중국이나 러시아 분위기 난단 말야아~!”


“하하하하하~~”


다들 들뜬 분위기라 기분 좋게 웃었다. 유명이 키스를 해줄 때까지 투정을 부리던 마야는 아는 곳이 나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안내하기 바빴다.

“다른 도시국가들도 여기랑 비슷한 분위기면 재미없는데….”


호텔에 도착해 스위트룸으로 올라가던 중 유명이 탄식처럼 말하자 마야 대신 세아가 나섰다.

“하르빈이 다른도시국가들 중에 서울이랑 가장 비슷해. 한국계 비율이 높은데다 공업도시라서 그런 거니까 너무 실망하지 마.”

“실망하지 마~”

여자들이 다시 합창하자 안내를 위해 함께 있던 전신타이즈 차림의 벨 걸들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가볍게 웃었다. 마야 같은 러시아계가 많다고 하더니 금발벽안의 미녀들이 눈길을 끌었다.


“나 말고 딴 백인한테 한 눈 팔지 마!”


유명의 눈길이  걸의 탐스런 엉덩이를 훑어 내리는 걸 보고 마야가 얼른 끼어들었다. 그냥 낯선 여자들이라 훔쳐보는 것일  자기여자들보다 섹시한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한  팔면 어떻게  건데? 읍!”

마야는 기회다 싶어 얼른 키스했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부터 들뜨던 기분이 고향에서 동족들을 보자 확 치솟은 모양이다. 벨 걸들이 한껏 부러운 눈길로 대놓고 쳐다보자 혜리가 다른 식구들에게 넌지시 물었다.


“유명이가 관심 있는 거 같은데 이 분들 같이 어울리자고 할까?”


“안 돼, 최대한 우리 식구들끼리만 뭉쳐 다니자고 나하고 약속했잖아?”

지금껏 조용하던 주디가얼른 막고 나섰다. 그러자 다른 식구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최상급 호텔의 최상급 객실이라 모두의 기대에 부응했다.


“와~ 생각보다 좋다~”

막내 유리의 감탄에 다들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사실은 엄청나게 좋은 객실인데 이들이 워낙 좋은 저택에서 사는 사람들이라 반응이 이 정도였을 뿐이다.


스위트룸이라 전용 룸메이드들이 무려 3명이나 대기하고 있었다. 마야와 계속 키스하면서 움직이느라 젖꼭지에 장식까지 매달고 있는 룸메이드들의 풍만한 맨 젖가슴을 유명은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다.

“루비야, 우리 저 메이드복 한 벌씩 살까?”

동종업계 종사자라 유심히 살펴보던 루비는 혜리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우리 것보다 그냥 노출만 심할 뿐 별로예요.”


다른 식구들과 다들 바 없는 미모와 몸매를 자랑하는 루비가 자신들과 같은 메이드라는   리가 없는 룸메이드들은 뒤이어 들어온 여행 가방을 옮기고 정리하느라 바빴다.


“여기 다음이 홍콩이었지? 옛 중국 도시 중에 남아 있는 곳은  없어?”


마야와 린이 미리 점찍어둔 중식당에서 점심을 먹던 중 유명이 묻자 여자들의 시선이 긴장을 풀지 못하는 주디에게 쏠렸다.


“어? 왜…왜? 무슨 일인데?”

“네가 대답하라구, 너 연방군에 있을 때 옛 중국지역에서 근무했다면서?”

수지가 팔꿈치로  치자 머쓱해진 주디는  손으로 겨드랑이를 가리고 다른 손으로 머리를 긁었다. 버릇이 돼버린  어색하고 웃긴 행동에 리아와 유리가 음식을 뿜었다.

“풉! 푸하하하하~”

“프흐흐흐~ 크크크큭~”

유명이 겨드랑이를 빨아댈 때마다 따라하는 리아와 유리의 과장된 반응에 주디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다른 식구들처럼 매끈하게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지라 더 부끄러웠다.


“너희들 진짜…! 자꾸 놀리면 엉덩이 때려줄 거야!”

“언니가 그 큰손으로 애들 때리면 죽어, 음란해서 좋은데  그렇게 부끄러워 해?”

“네가 더 미워!”

혜리의 농담에 주디는 전사와 같은 이미지와 달리 손으로 얼른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기대했던 소녀 같은 반응이 나오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




“1차 공격 때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나라가 옛 중국이야. 극소수를 제외한 내륙 대부분이 전멸했거든.”

주디의 설명에 유명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세아의 수업을 통해 배운 내용이기도 하거니와 서울에서 출발해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 검색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혜리가 설명을 거들었다.

“유명이는 그런 사실보다 지금 대륙 사정이 어떤지 궁금한 거야.”


“얜 어떻게 이런 것까지 알지? 다들 신기하지 않아?”

세아의 지적에 노천카페에서 겨울 햇빛을 즐기던 식구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혜리는 옆구리에 주먹을 턱 얹더니 거대한 젖가슴을 쭉 내밀어 일부러 출렁이면서 대답했다.


“내가 이래봬도 유명이 친엄마거든~”

“저번에 같이 목욕하면서 이야기 다 해줬어.”


“야아아~!”

유명이 대뜸 끼어들어 초를 치자 당황한 혜리가 아들의 어깨를 팡팡 치고 엉덩이를 들썩였다.


“와하하하하하~~”

식구들이 신나게 웃음을 터뜨리자 지나가던 행인들이 다들 쳐다봤다. 유명을 비롯해 여자들 모두 외모와 옷차림이 워낙 아름답고 세련되다보니 주변의 관심을 과하게 끌었다.


“다들 살살 웃어, 모르는 사람들 관심 끌어서 좋을  없다구.”


“그런 걱정 그만하고 아는 거 있으면 말 좀 해줘~”

다른 누구도 아닌 유명의 타박이라 주디는 수줍은 미소를 짓더니 들고 있던 커피 잔을 내려놓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타이완 섬이나  차이 없을 정도로 엉망이야. 대륙에 있는 연방시설이 광산 같은 곳이 대부분인데 연방군병력만으로 전부 관리가 안 되거든.”

“관리가 안 된다는 게 공격이라도 받는단 말이야?”

유명의 반문에 주디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식구들도 처음 듣는 이야기라 귀를 기울였다.


“지구연합이 직접 관리하는 아프리카나 남극, 오세아니아는 사정이 괜찮은데, 아시아는 워낙 지역이 넓어서  시설마다 사설경비업체 비용이 막대하게 들어가.”


“누가 공격하는 거야? 타이완 섬에 있던 그런 여자들이야?”

“뭐 대부분 그렇지, 이 세상에 정상적인 인간들만 있는 건 아니니까….”


주디의 마지막 말에 세아가 진지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설명을 덧붙였다.

“지구연합이 지금 이니아랑 전쟁 중이라 여유가 없다는 건 충분히 이해하는데, 이 비시민들의 문제를 연방이나 도시국가들에게만 맡겨놓으니까 유명이가 겪은 일 같은 게 생기는 거야.”


‘이니아’는 지구를 침공한외계문명이 스스로 내세운 이름이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 유명은 궁금한 걸 물었다.

“타이완 섬에서 싸웠던 여자들… 2차 성징 안  일반인보다 작던데 그거 왜 그런 거야?”

“2차 성징을  해서 신 종족이나 구인류의 후손이란 주장이 있는데, 연구결과로는 신인류와 유전적으로 아무 차이 없었어. 식생활이나 자연환경의 영향이란 주장이 오히려 설득력 있어.”

세아의 설명에 이번 사건으로 납치된 식구들 제외하고 가장 많은 피해를 본 수지가 다소 짜증 섞인 목소리로 투덜댔다.


“맞아, 그냥 나쁜 인간들… 법과 제도를 부정하는 범죄자들일 뿐이야.”

“글쎄…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날 도와주다 죽은 소녀는 섬을 벗어나고 싶어 했어. 그렇게 사는 방법 말고는 몰라서 그렇게 사는 것일 수 있잖아?”


유명의 주장에 다들 생각에 잠겼다. 언급한 그 소녀를 직접 포섭했던 주디가 조용히 눈물을 흘리자 옆에 있던 아이샤가 얼른 안아줬다.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자 역시 막내인 유리가 나섰다.

“여행 와서 왜 심각한 이야기만 하는 거야? 마야언니보다 예쁜 백인여자 만나면 좋겠다고 오빠가 그랬잖아?”

마야가 벌떡 일어나기 무섭게 유명은 몸을 던졌다. 실전경험 덕분인지 앉아있던 자리에서 테라스난간을 가볍게 넘더니 순식간에 길 건너로 달아나있었다.


“유명이  이리 안 와? 나 경찰청장 훈장 받은 여자야!”


“웃겨, 자기만 받았나?”

린이 투덜대면서 우아하게 남은 커피를 마시려는데 리아와 유리는 벌써 유명과 마야를 따라 난간을 뛰어넘고 있었고 주디는 언제 거기까지 뛰어가는지 유명의 뒤에 바짝 붙어있었다.


“엄마들만 놔두고 지들끼리만 가네?”


수지가 격구구가대표출신답게 빠르게 뒤따라가면서 남긴 말에 아이샤가 몸을 날리면서 소리쳤다.

“엄마! 난 엄마들 아니거든~~!!”


“넌 안 따라갈 거야? 너도 엄마 아니잖아?”

세아는 가장 키가 작은데도 잽싸게 아이샤 뒤를 따라가고 있었고 물어보는 혜리 역시 어느새 난간을 넘은 뒤였다. 린은 혼자 버려졌다는 사실에 왈칵 눈물이 날 뻔했다.


“어…엄마… 나도 데려가아아~~!!”


(다음 105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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