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103화) 13. 계약
(제 103 화)
뒤집어진 화물차에서 2명의 신형이 튀어나오자 능선을 내려오던 소녀들이 일제히 총을 쏘기 시작했다.
타타타타타탕 타다다당 파바바박 파파팍
사격술이 형편없는데다 구식무기들이라 근처에 떨어지는 총알은 거의 없었다. 유명과 주디는 자신들이 얼마나 대단한 신체능력을 가졌는지 증명이라도 하듯 엄청난 속도로 달렸다.
“아이샤! 떨어지면 안 되니까 나한테 박힐 때처럼 꽉매달려 있어!!”
어쩌면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까지 야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아이샤는 희망에 찬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절대 떨어지지 않을게에~~!!”
그냥 뛰어서 5분 걸릴 거리를 사람까지 등에 업고 3분 만에 주파했다. 천만다행으로 부둣가엔 적이 보이지 않았다. 유명은 숨이 턱까지 올라왔으나 아이샤를 내려놓고 주디의 손을 꽉 잡았다.
“허윽… 여기서 기다려 헉헉… 내가 헉… 갔다 올게.”
“헉헉… 미쳤어?! 읍…!”
말이안 된다고 하려는데 키스로 입을 막혀버렸고 마치 서로의 폐가 연결된 것처럼 거친 숨이 오고갔다. 그 짧은 순간 오르가슴을 느껴버린 주디는 뒤돌아 뛰어가는 유명을 그만 놓쳐버렸다.
“헉헉헉헉… 어…엄마… 내가 가! 엄마아!!”
멀리 엎드려있는 혜리를 보고 소리를 지르자 총탄이 빗발쳤다. 피한다고 피해질 게 아니고 폐는 찢어질 것처럼 아팠으나 유명은 달리고 또 달렸다.
파바바바박 피비비핑 파팍 슈우우우 콰쾅
먼발치에 RPG 탄두가 날아와 터졌다. 고폭탄이 아닌지 소리만 요란하고 먼지가 심하게 날렸다. 유명은 그 먼지 사이로 몸을 날렸다.
“엄마!!”
“유명아아~~!!”
바닥에 바짝 엎드려 있었는지 그 커다란 젖가슴과 얼굴이 흙투성이였으나 멀쩡했다. 유명은 얼른 흙을 털어내고 엄마를 들쳐 업었다. 그러는 사이 사방에 총탄이 쏟아졌다.
파바바바박 핑 피유웅 파파파팍 피웅 핑
이제 탄환을 아낄 상황이 아니라 유명은 있는 힘껏 방아쇠를 당겼다.
슈수수수수숙 슈수수수숙 슈수수수수숙
“꺄아아아악!!”
“아아아악!!!”
“끼야아아아~~!!”
코앞까지 몰려왔던 소녀들이 비명과 함께 우수수 쓰러졌다. 이제 상대가 소녀인지 누가 누굴 죽이는 그런 생각은 사치였다. 사느냐 죽느냐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라 모든 게 본능에 의한 행동이었다.
슈수수수수숙 슈수수수숙 슈수수수수숙
“커흐으윽!”
“으아악~~!!”
“끼야아악!!”
특수부대원과 같은 최정예 요원도 아니고 실전경험이라고 해봤자 경계근무가 전부인 대한민국의 평범한 예비역 병장이지만 유명은 자신이 가진 능력과 경험과 기억을 총 동원해 움직였다.
거리가 너무 가까워 등을 돌리고 달리면 업혀있는 엄마가 총알받이가 될 게 뻔해 뒷걸음을 치면서 쉬지 않고 적들을 사살했다.
퍽 푸슈수수수수
남아있던 연막탄을 던지고 유명은 냅다 뛰었다. 아주 잠깐의 소강상태를 이용해 조금이나마 거리를 벌릴 심산이었다.
“유명아, 달려!!”
앞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이어 정확히 양 옆으로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슈수수숙 슈수숙 슈수수수숙
콰콰쾅 콰쾅 콰콰쾅
고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리자 한 순간 총격이 멈췄다. 유명은 주디가 있는 곳에 도착하자 등을 돌려 다시 사격을 개시했다.
슈수수수수숙 슈수수수숙 슈수수수수숙
“이동!!”
유명의 명령에 주디가 망설임 없이 뒤돌아 달렸고 잠시 후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슈수수숙 슈수숙 슈수수수숙
“이동!!”
콰과과쾅 쾅 쿠구구궁
이런 식으로 이동하는 덕분에 속도는 느려졌을지 모르나 상대가 응사할 틈이 없었다. 유명과 주디는 다급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이 리듬을 계속 이어갔다.
“엄마! 엄마아!!”
“왜? 나 멀쩡해!!”
대답과 함께 혜리가 자신의 젖가슴을 터질 듯이 아들의 등에 문질렀다. 원했던 반응에 안도한 유명은 다시 등을 돌려 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슈수수수수숙 슈수수수숙 슈수수수수숙
“이동!!”
“마지막 사격이야!”
주디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외치고 지나갔다. 유명은 자신의 탄환 역시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보고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임을 직감했다.
슈수수숙 슈수숙 슈수수수숙
“이동!!”
콰콰쾅 콰쾅 콰콰쾅
“마지막 탄창이야! 탄창 가지고 돌아올 테니까 조금만 버텨!!”
유명은 눈을 질끈 감고 그대로 달렸다. 주디가 지원을 오지 않았다면 등에 업고 있는 혜리와 벌써 죽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누군가 한 명은 남아야할 순간이고 교대할 시간조차 없었다.
“돌아오지 마! 내가 누구라고 생각해?! 내가 알아서 갈 테니까 5분만 기다려!!”
주디의 외침이 멀리서 들렸다.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였으나 자신을 안심시키려고 내지른 허세가 분명했다. 유명은 평소보다 더 말랑말랑하고 묵직한 엄마의 엉덩이를 꽉 움켜쥐고 죽어라 달렸다.
*****
“우으으응…… 왜 깼어… 더 자자…….”
헝클어진 머리 사이로 잠이 덜 깬 얼굴이 너무 사랑스러워 보였다. 다정하게 키스해주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더 자….”
“5분만… 더 잘게… 5…분만…… 우응…….”
남다른 의미를 가진 말을 남기고 다시 잠에 빠져드는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 유명은 살며시 이불을 들쳐 탄력 넘치는 몸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어제 섹스하면서 아무렇지 않은 걸 수차례 확인했지만 그 날의 충격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미안해…….”
혼잣말이 들렸는지 주디는 행복한 미소를 짓더니 몸을 뒤척였다. 탄탄하고 늘씬한 팔다리가 몸을 감싸자 유명은 자신도 모르게움찔했다. 이런 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것일까.
머리에 키스를 해주고 자리에서 일어난 유명은 샤워실로 향했다. 차가운 물을 맞으면 머리가 조금 맑아질 것 같아서다.
쏴아아아아아아아아
쏟아지는 물줄기소리가 마치 그날 들었던 총소리 같았다. 탈출용 보트에 혜리를 내려놓고 탄창을 챙겨 세아와 아이샤의 간절한 손길을 억지로 뿌리친 후 다시 돌아갈 때만 하더라도 반쯤은 포기한 상태였다.
자기여자들은 다 구했으니 이제 같이 죽으리란 각오까지 했었다. 그래야만 마음이 편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탄이 떨어져 뒤 돌아 도망치는 주디가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걸 보고 마음이 산산조각 나버렸다.
“휴우우…….”
유명은물줄기 사이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날아간 팔다리를 챙겼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영화에서 본 장면이 떠올라 그랬던 것 같은데, 숨만 붙으면 살릴 수 있을 거란 믿음은 어디서 나왔을까.
“자기야… 자기 샤워 중이야?”
그새 잠이 깼는지 주디가 활짝 웃으면서 욕실로 들어왔다. 유명은 안 하겠다고 약속해놓고 다시 팔다리부터 살폈다. 상처하나 없이 말짱하게 붙어있는 걸 보고 감정이 북받쳤다.
“흐흑… 미안해… 미안해…… 흐흐흑…….”
울음을 터뜨리는 유명을 주디는 아무 말 없이 다가와 꼭 끌어안았다. 자신보다 강하고 키마저 더 큰 여자에게 안기는 기분은 더 없이 포근하고 따뜻했지만 가슴은 찢어지는 것만 같다.
“울어… 울고 싶으면 내 품에서 마음껏 울어, 내가 다른 건 못났지만 널 이렇게꼭 안아줄 순 있어….”
“흐흑… 젖이 커서 좋기는 해… 흑….”
“너 정말… 하하… 아하하하하~~”
유명과 주디는 타이완 섬 깊은 숲속에서 첫 섹스를 했을 때처럼 그렇게 서로의 젖은 몸을 꼭 끌어안았다.
끔찍한 경험을 안고 타이완 섬에서 돌아온 유명은 가족들과 짧은 재회를 뒤로한 채 벌써 한 달이 넘게 주디의 곁을 지키는 중이다.
적절한 응급처치와 빠른 이송 그리고 최첨단 의료기술은 포탄으로 왼쪽 팔다리가 떨어져 나간 주디를 살려놓은 걸 넘어 지금처럼 수술자국 하나 없이 멀쩡하게 치료해냈다.
그 다급한 상황에 유명이 팔다리를 챙긴 덕분에 재생복원술 효과가 더 좋았던 것이지만 그때 당시엔 이렇게 멀쩡해질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계속 이렇게 나하고만 있을 거면 호텔 방보다 같이 살 집을 구하는 게 낫지 않을까?”
룸서비스로 브런치를 먹던 주디가 하는 말에 유명은 피식 웃었다.
“나하고 살림 차리게?”
“어머, 그 말도 기억하네? 후후후~”
젖은 머리로 목욕가운을 두르고 마주앉은 주디는 전장에서 볼 때보다 훨씬 여성스러웠다. 그러나 그녀의 진정한 매력은 저 속에 숨은 강인한 전사의 모습이다.
“진짜 용병 그만 둘 거야?”
“응, 그만 둘 거야. 너만나 소원 다 풀어서 미련 없어.”
“그럼 뭐하게?”
“음… 달리 배운 게 없어서 어디 경호원이나 할까 생각중이야.”
“내 여자 하라니까?”
“나 같은 게 어떻게 네 여자들 사이에 껴?”
커피를 마시던 주디는 진짜 화가 난 것처럼 커피 잔을 탁 내려놓았다. 덩치는 큰데 하는 짓은 꼭 소녀 같아 미워할 수가 없다. 유명은 남은 음식을 입에 털어 넣고 우적우적 씹으면서 장난스레 말했다.
“너 은근히 열등감 심하다?”
“뭐? 열등감? 내가 자존감이 얼마나 높은 여잔데… 네 여자들한테 총 쥐어주고 한번 붙어볼까?”
“그래그래, 너 강한 거 잘 아니까 내 여자 하라고. 어제 버티는 거 보니까 자격이 충분해~”
“……….”
주디는 뭐라 대꾸하려다 남은 커피를 홀짝였다. 말과는 달리 어제 별로 심하게 하지 않았는데 너무 가버리다 정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퇴원한 직후 서로 약속을 지키겠다고 호텔이 떠나가라 섹스할 때는 제법 견뎌낼 수 있었는데, 무슨 조화인지 하면 할수록 몸이 민감해지더니 이제는 박히기만 하면 곧바로 가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왜 대답이 없어? 내 말대로 하는 거지?”
“그…그럼 어떻게 되는 건데…?”
“뭘 어떻게 돼? 우리 집에서 다 같이 지내는 거지.”
“우리 집이라면… 수지회장님 댁?”
“수지한테 약점 잡힌 거 있어?”
주디는 대답 없이 자신을 직접 만나 일을 의뢰하던 수지의 그 인상적이었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 이후로 다시 만나지 못했지만 병원 회복실에 있을 때 찾아왔다는 건 유명에게 들어서 알고 있다.
“약점이 아니라… 혹시… 수지회장님이 네 여자들 중에 가장 아름다운분이야?”
“음… 글쎄…….”
“………….”
그렇다는 대답이 바로 나올 줄 알았는데 망설이다니, 그렇다면 더 아름다운 여자를 거느리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주디는 몸을 동그랗게 웅크리더니 이미 다 마신 커피 잔을 홀짝거렸다.
“예쁘기는 마야하고 리아가 쌍벽이고, 몸매는 수지랑 아이샤가 모녀라 비슷하네. 음란하기로 따지면 혜리랑 사라가 단연 압권이고… 사실 유리, 세아, 린도 다른 여자들 못지않게 섹시해서 우열을 가리기 좀 힘들어.”
“………….”
착잡한 속도 몰라주고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자랑을 늘어놓는 유명을 보고 있으려니 주디는 자신에게 진짜 열등감이있는 게 아닐까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아 맞다! 살 냄새는 주디 네가 가장 진해, 그리고….”
“야!”
“푸흐흐흐~ 겨드랑이는 네가 단연 톱이야!”
“이게 진짜아~~!!”
임무가 길어지거나 쉴 사이 없이 의뢰가 들어오면 관리할 틈이 없어 지금처럼 수북해질 때가 있다. 그러면 만나는 남자 없는 핑계로 그냥 놔두는 편인데 혹시 관심을 가지는 남자가 있을까싶어 일부러 드러내놓고 다닌 적이 많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부끄러운 것일까, 얼굴이새빨개진 주디는 도망치는 유명에게달려들었다. 입고 있던 목욕가운이 벗겨져 알몸이 된 것에 아랑곳없이 둘은 한참동안 호텔방을 뛰어다니며 장난쳤다. 그게 섹스로 이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하으으응… 나 무시하지 않고 다른 여자들이랑… 히약! 또…똑같이 대해줄 거야? 하으읏!”
주디는 벽에 손을 기대고 엉덩이를 내민 상태로 박히는 중에 고개를 돌려 간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후욱… 걱정 마, 주디 넌 너만의 매력이 있어. 후우우… 그걸 잊지만 않으면 아무 문제없어!”
“하으으응… 그…그게 걱정이란 말야! 아후우우우우… 이…이러면 이럴수록… 응히이이잇! 내가 평범한 여자가 되는 것 같단 말야아… 히야아아아아아!!!”
고백과는 달리 오르가슴에 다다라 파르르 떠는 주디의 몸은 툭툭 불거져 나온 근육은 뒤에서 정신없이 박아대는유명의 것보다 더 단단해보였다.
그러나 등 뒤에서도 음란한 출렁임이 드러나 보이는 거대한 젖가슴과 박을 때마다 찰떡처럼 통통 튕기는 엉덩이의 풍성한 살집은 주디가 여자일 수밖에 없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다음 104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