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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3화 〉(102화) 13. 계약 (103/130)



〈 103화 〉(102화) 13. 계약

(제 102 화)


“내가 반대쪽으로 가서 고폭탄으로 시선을 끌 테니까, 넌 암살탄으로 최대한 조용하게 접근해.”


주디는 자신의 암살탄이 들어있는 탄창을 건네주면서 고폭탄 탄창을 받아 챙겼다. 유명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고마워….”


“고맙긴…, 어차피 너 살려서 데려가야 잔금 받아. 그리고  혼자 살아서 가봤자 반겨주는 사람 없어.”


부담 갖지 말라고 한 말이긴 한데 그렇다고 거짓말은 아니다. 매번 죽을 고비를 넘길 정도로 위험한 의뢰만 도맡아한 이유가 뭐겠는가, 그러나 이제는 반드시 살아 돌아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그냥 나하고 섹스하고 싶어서라고 하는   설득력 있지 않아?”

“풋! 너 물건 좀 크다고 너무 우쭐해 하는 거 아냐?”

“물건만 크나? 어제 적들 다 들으라고 소리 질러댄 여자가 누군데?”


죽으러 가는 마당에 나누는 야한 농담이 이렇게 위안이 될  몰랐다. 주디는 훅 달아오른 얼굴로 유명에게 간곡하게 말했다.


“절대 죽지 마, 알았어? 죽으면 안 돼, 살아서 돌아가면 해달라는  다 해줄게.”


“자기야 말로 죽지 마…!”


뜨거운 눈길을 주고받던 둘은 말없이 등을 돌려 풀숲 사이로 사라졌다. 유명과 주디가 미리 약속한 위치에 자리 잡는 사이 타이일행은 요트에서 내린 짐을 덮개가 씌워진 화물차 다섯 대에 옮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고글로 보니까 내 여자들은 맨 앞에 있는 화물차 짐칸에있어. 뒤에 있는 차들을 무력화시킬게.]


유명의 통신에 주디가 곧바로 응답했다.


[모터만 맞출 수 있겠어?]


[나 특등사수기장 있는 남자야]

[진짜?]

[근데 훈련소에서 받은 건 안 쳐준다며?]

[내가 인정해줄게, 특등사수]


[흐흐흐 인정해 준다는 말, 왜 이렇게 꼴리지?]

[못 말려…]


각자 띄워 올린 드론의 데이터를 링크하니 부둣가 상황이  세밀하게 보였다. 주디가 자리를 잡는 걸 확인한 유명은 맨 앞에 있는 화물차를 제외한 나머지 화물차의 모터를 정확하게 맞춰 무력화시켰다.


콰콰콰쾅 쿠쾅 퍼펑 쾅 파바박 쾅

소총용 고폭탄이라 폭발력은 한계가 있으나 워낙 빠른 속도로 난사되니 연속된 굉음이 정신을 쏙 빼놓았다.

“Jīngxǐ yīxià !!”
“Nǎ yǒu ?”
“Nà shì xiǎoshān !”
“Shèjí~~!!”
“Gōngjí !!”


대장소녀를 따라다니는 소녀들이라 황망한 상황일 텐데 제법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폭발로 죽었거나 부상당한 동료는 내버려두고 곧장 응사하기 시작했다.


타다다다당 타타타탕 타탕 탕탕탕탕
콰콰쾅 파바바바박 콰쾅 쿠과과과쾅

총소리와 폭발소리가 여기저기 무작위로 터져 나오자 조그만 부둣가가 전쟁터처럼 난장판이 됐다. 그 틈을  유명은 맨 뒤에 있는 화물차 두 대 밑으로 수류탄을 던졌다.

쿠콰콰쾅 콰과과쾅

앞쪽에 이어 뒤쪽까지 폭발이 일어나자 소녀들이 드디어 혼비백산했다. 대장소녀와 호위들이 악다구니를 써댔으나 절반 가까이 입구  도로로 도망쳤다.

“으아악!! 야! 이게 뭐야? 섬에 있는 다른 조직들 정리했다면서?!”

바닥에 엎드린 타이가 소리치자 쌍 권총을 빼든 대장소녀가 콧방귀를 꼈다.

“흥,  남자 도망가고 네 놈이 나타난다음 이렇게  게 다 우연이라는 거야?”


“그…그럼 이 사단이 나 때문에 벌어졌다고?! 그게 말이 돼?”

말이 되고  되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돈을 주고 산 남자가 도망가자 곧바로 그 남자를 팔았던 놈이 나타났는데 아시아연방 해상경찰조차 모르는 비밀장소를 급습 당하면 누굴의심한단 말인가. 대장소녀는 타이의 이마에다 총구를 갖다 대고 물었다.


“너 이 새끼, 연방에다 꼰질렀지?”


“히이익! 그…그럴리가!! 나 서울에서 바로 오는 길이야! 도망친 거라고 했잖아아!! 유명이 그 새끼 여자들 중에 경찰이 있는데 그 년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내 여자들을….”

“씨발새끼…  존나 많네….”

탕!!

대장소녀가 무심한 표정으로 타이의 머리를 날리는 모습을 유명은 멀찍이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다. 둘이 합심해서 반격할 줄 알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러면 상황이 달라진다.


[주디! 주디!]


[왜?  바빠!]

[사격 멈추고 뒤로 물러나 봐, 여기 대장이타이를 쏴 죽였어.]

[뭐…뭐? 자기들끼리?]

[응, 상황이 좀 이상해.]

통신이 끝나자 주디의 공격이 바로 멈췄고 이어 소녀들의 반격사격 또한 잦아들었다. 화물차 운전수들을 이미 암살해놓은 상태라 대장소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궁금해 유명과 주디는 숨죽이고 기다렸다.

조금 전까지 전쟁터와 같았던 조그만 부둣가에 위태로운 정적이 감돌았다. 다들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어리둥절해하는데 요트에서 짐을 들고 나오던  여자가 소스라치게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악!! 저…저년이 주…주…주인님을… 우리 주인님을 죽였어어!! 으아아아아아악!!!!”


그 여자가 무기도 없이 무작정 대장소녀에게 달려들자 옆에 있던 호위가 망설이지 않고 소총으로 쏴버렸다.

타타탕


털썩

아랫배에서부터 가슴과 얼굴까지 3발을 맞은 여자는 맥없이 꼬꾸라졌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대장소녀가 벌떡 일어나 뭐라고 소리치려는데 요트 쪽에서 갑자기 총격이 빗발쳤다.


두두두두두두두 투루루루루루 파파파팍

중화기가 분명한 소리가 들리자 멍하니 서있던 소녀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대장소녀의 명령이 떨어지기 전에 응사가 시작됐고 부둣가는 다시 난장판이 됐다.


[자기들끼리 싸우기 시작했어.]

[구출할 수 있겠어?]

주디의 반문에 유명은 드론 영상을 살폈다. 중화기를 동원한 요트  화력이 강력해 조금만 기다리면 화물차에 접근할  있을  같았다.


[가능할 거 같아, 이쪽으로 올 수 있겠어?]

[알았어, 해변을 통해서갈게]


부둣가 상황이 워낙 혼란해 주디가 몰래 선착장으로 빠져나오는 걸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집중 공격을 받은 요트에 불길이 치솟았고 양측의 사상자가 급증했다.


“Chètuì ! Chètuì !!”

대장소녀가 소리치자 소녀들이 일제히 화물차와 반대방향으로 뒷걸음질 치면서 계속 응사했다. 그쪽에 있는 무너진 건물을 엄폐물로 이용할 생각인 것 같았다.


그 사이 삼각뿔 진형처럼 입구 쪽에 숨어있던 유명은 양  진영에 번갈아 타격을 주고 있었다. 생면부지의 여자들을 총으로  죽이는 게 불가능할 줄 알았는데 고글로 자동 조준되는 목표물을 맞히기만 하면 되는 거라 마치 게임처럼 원 샷 원 킬이었다.


[하나 더 잡았고… 이 거 버릇되겠는데…, 또 하나 잡았고…]


유명의 혼잣말에 잠시  숨이 턱까지 차오른 주디가 응답했다.


[헉헉… 나 도착했어, 뭐가 버릇된다는 거야?]

[여자 죽이는 거 말야…, 아무 감각이 없어…]

[여자가 아니라 적이야, 네가 구출해야 할 대상이여자고]

주디의 지적에 유명은 정신이번쩍 들었다. 그 짧은 순간 자신이 왜 이 짓을 하는지 잊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사람을 죽이고 있는 것에 대한 충격에 휩싸였던 것이다.

[미안… 잠깐 정신이 다른 데 가 있었어]


믿기지 않는 절륜함과 최정예 전사수준의 신체능력을 갖고 있지만 역시 평범한 16살 학생일 뿐이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는 어린 신병들을 숱하게 봐온 주디로서는 이렇게 곧바로 정신을 차리는 게 오히려 놀라웠다.


[괜찮아, 내가 운전할 테니까 넌 짐칸으로 가봐]


[응]


짐칸 덮개 구석에 열선이 주루룩 생기더니 반투명 유리로  머리 크기의 공이 쑥 들어오는 걸 보고 세 여자는 깜짝 놀랐다. 그런데 가벼운몸놀림으로 안으로 들어서는 형체가 어딘가 낯이 익었다.

“엄마!”


전술헬멧을 벗고 자신들을 부르는 남자를 보고 여자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바로 반응을 못했다. 제발 살아만 있길 빌고  빌었던 사랑하는 남자가 군복차림으로 불쑥 나타났으니 기절하지 않은 게 다행이다.


“유…유명아…?”
“유명아…….”
“꺄아아아! 유명아아!!”

혜리, 세아, 아이샤는 자신들이 묶여있는 것도 잊고 달려들려발버둥 쳤다. 유명이 세 여자를 와락 끌어안았다.

“괜찮아? 어디 다친 데는 없어?”


감격에 겨운 얼굴로 세 여자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타이가 자기여자 삼을 생각에 곱게 다뤘는지 셋은 놀랍도록 깨끗하고 멀쩡했다. 유명은 자기여자들에게 차례차례 키스부터 퍼부었다.


[유명아, 수갑은 안 되겠지만 쇠사슬은 끊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출발할 거니까 뒤쪽을 짐으로 막아]

[어, 알았어]

주디의 지시에 유명은 대답과 함께 서둘러 짐을 옮겼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지만 크고 묵직한 상자들이라 엄폐물로 적당했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총격이 쏟아졌다.

파바바바바박 핑핑 파박 피비빙 퍽퍽 


“꺄아아악!”
“꺄아아~~!!”


세아와 아이샤는 비명을 질렀는데 혜리는 통합우주군 예비역 하사답게 조금 놀라는 반응만 보였다. 강철수갑으로 손이 묶여있지 않았다면 훌륭한 지원전력이 됐을 텐데 너무 아쉬웠다. 전자 봉으로 쇠사슬을 잘라낸 유명은 곧바로 응사했다.


슈수수수수숙 슈수수수수숙 슈수수수수숙

기초군사훈련소에서 다뤘던 SL-19A와 동일한 성능의 최신레일건에서 대인암살용 탄환이 바람을 갈랐다. 짐칸이 덮개로 가려져있었으나 밖에 있는 드론과 연계된 영상을 통해 유명은 목표물을 정확히 조준했다.

[뒤에 괜찮아?]

[걱정 말고 달려!]

화물차의 속도가 빨라지는가 싶더니 총격이 멀어졌다. 다른 차들을 무력화시켜놓은 덕분에 무사히 도망갈 수 있었던 것이다.



*****



변경된 접선지점은 교전이 있었던 부둣가에서 남쪽으로 도보로 1시간 거리에 있었다. 화물차의 성능은 그저 그런 전기차였지만 걸을 수 없는 여자 3명을 데리고 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넌 괜찮아? 어디 다친 덴 없어?”

물마시고 한숨을 돌리자 혜리가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유명은 세 여자의 손을 꼭 쥐고 활짝 웃었다.

“멀쩡해, 멀쩡하니까 구하러 왔지!”


“난 네가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어….”


세아가 아들의 손에 키스하더니 눈물을 흘렸다. 아이샤가 무릎으로  가까이 다가와 유명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흐흑… 우린… 네가 죽은 줄만 알았어… 흐흐흑….”


“하하하 우리 아이샤는 우니까 더 예쁜데?”


평소와 같은 능글맞은 목소리에 세 여자는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재회의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콰쾅

굉음과 함께 화물차가  뜨는 거 같더니 이내 바닥에 내리꽂히면서 옆으로 구르기 시작했다. 유명은 본능적으로 세 여자를 끌어안고 등을 구부렸다. 비명을 지를 새 없이 화물과 화물차 사이에 네 명이 끼어버렸다.


[주디! 주디! 괜찮아?]


[아우우… 괘…괜찮은 거 같아…, 그쪽은?]

유명은 얼른 자기여자들을 살폈다. 체육교사 아니랄까봐 아이샤가 세아를 품에 꼭 안고 있었고 자기 품엔 혜리가 안겨있었다. 세 여자 모두  이상이 없었다.

[우리도 괜찮아, 공격 받은 거지?]


[RPG 같아, 동쪽 능선에서 날아 온 게 분명해. 빠져나올  있겠어?]

유명은 대답 없이 몸을 움직여봤다. 품에 안겨있는 여자들이 방해가 됐으나 아이샤가 있는 힘껏 밀어내자 공간이 생겼다.


“다들 여기 그대로 있어, 어차피 걸을 수 없으니까 여기 있는 게 안전해.”


사랑하는 남자의 믿음직한 명령에 세 여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뒤집어진 화물차를 엄폐물로 경계를 서고 있던 주디가 짐칸에서 빠져나오는 유명에게 물었다.


“난 벨트 메고 있어서 멀쩡해, 다친 데 없어?”


“내 여자들이 워낙 풍만해서 오히려 좋았어~”

“후후 멀쩡하네, 근데 어쩌지? 적이 너무 많은데….”

주디의 말대로 능선에 모습을 드러낸 소녀들의 수가 족히 4~50명은 될 것 같았다. 유명은 빠르게 남은 탄환을 살폈다. 부둣가에서 효율적으로 사용한 덕분에 제법 넉넉히 남아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저쪽에 RPG가 있다면 화물차에 숨어 있는  오히려 위험하겠지?”


유명의 지적에 주디가 절망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금 당장 뛰어가면 접선지점까지 5분이면 가겠지만…….”

“고민할 시간 없네!”

유명은 서둘러 여자들을  명씩 꺼냈다. 세아를 주디의 등에 걸쳐주고 자신은 아이샤를 업고 총을 엄마에게넘겼다.


“엄마, 바로  테니까 10분만 버텨줘.”


“걱정 마, 뭘 해야 하는지 잘 알아.”

키스를 나눌 시간조차 부족했다. 유명과 주디는 아이샤와 세아를 각각 업은  접선지점을 향해 달렸다.

(다음 103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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