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4화 〉(93화) 13. 계약 (94/130)



〈 94화 〉(93화) 13. 계약

(제 93 화)


13. 계약

‘격구’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최고 인기를 얻고 있는 스포츠로, 유명이 예전에 살던 세상의 축구와 비슷한 위상이라 할 수 있다. 차이가 있다면 여성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즐긴다는 점이다.


각 도시국가별 프로리그와 국가대항전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모두 여성이라 여성들만의 전유물이라 생각할  있으나, 남성들만의 스포츠가모두 사라진 현실에서 그런 구분은 의미가 없다.

중학교를 졸업하는 17세 전후의 남성들 대부분이 통합우주군에 지원해 오랫동안 복무하기 때문에 스포츠나 대중문화 종사자들 절대다수가 여성인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격구는 어깨와 팔꿈치 그리고 무릎에 보호대가 있고 전면이 투명한 헤드기어까지 착용한 상태로 플레이 중 몸싸움과 태클이 가능해 미식축구(American Football)와 유사해 보인다. 심지어 공 모양까지 비슷하다.

그러나 타원형의 경기장에서 5명의 선수가 빠른 패스와 돌파를 이용해 높이 위치한 골대에 공을 던져 득점하는 방식이 핸드볼과 농구와 유사한 것을 보면 여러 구기종목이 격구란 이름으로 합쳐져 지금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유명의 친여동생 유리가 주전공격수로 활동하는 동서울중학교 격구팀은 지역에서 최상위권으로 시드를 받고 바로 본선리그로 직행한 상태라 시즌 개막이 다른 학교들보다 한 달가량 늦어졌다.


“와… 리그전에서 2위는 해야 전국토너먼트에 나갈 수 있네?”

휴대폰으로 배포된 시즌일정을 보고 유명이 놀라자 옆에 앉은 혜리가 씽긋 웃었다.

“작년에 유리가 후보였을 때 3위였으니까 올해는 전국대회에 나갈 수 있을 거야.”

“자기 딸이라고 그렇게 확신하면  돼, 우리 지역이 서울에서 가장 치열한  몰라?”


반대편 옆에 앉은 세아가 짐짓 심각한 말투로 지적하자 혜리가 혀를  내밀고 새침하게 말했다.


“저 아줌마 말만 엄마라고 그러지! 공연장에서 리아가 최고라고 난리법석일 때 난 같이 박수쳐줬는데, 흥!”


“아니… 그거야…….”


허를 찔린 세아가 별다른 대꾸를 못하는 걸 보고 유명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미소녀 3명이 관객석으로 올라오다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시즌 개막전이 학교 내에 있는 격구전용경기장에서 개최되는지라 관중들 대부분이 가족 아니면 같은 학교 학생들이었다.

“안녕, 유명아~”
“선배, 안녀엉~”
“안녕하세요, 유명선배!”


유명은 미소와 함께  대꾸 없이 손만 가볍게 흔들었다. 조금 전 다투던 분위기는 어쩌고 혜리와 세아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사이좋게 물었다.

“누구야? 셋  귀여운데?”

“나도 몰라.”


무덤덤한 아들의 대답에 상황을 눈치  세아가 젖가슴을 쓰윽 문지르면서 말했다.

“우리 아들 인기 많은데? 새로 사귄 여자친구 없어?”


“없어, 리아에다 유리까지 합숙가고 없으니까 학교생활이 그저 그래.”

옆에 여자 없다고 학교생활이 그저 그렇다니, 별 생각 없이 나온 말인데 생각해보니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 사실 말과 달리 학교생활은  즐겁고 흥미롭다

수업은 어느 하나 부족함 없이 유익하고 훌륭한데다 주변 학생들 모두 지금처럼 남녀 가릴  없이 알아봐주고 친근하게 대해주는데 그저 그럴 리가 있는가. 엄마들이라 아들의 이런 배부른 투정을 미소로 받아넘겼다.

“오늘로 시즌 개막했으니 유리는 정신없을 거구, 리아는 아이돌이  텐데 새 여자친구 사귀는  어때?”

풍만한 젖가슴을 비비고 혜리가 다정하게 권하자 유명은 순간 혹했다. 그러나 성욕은 종합격투기부 후배인 하나가 다른 부원들과 함께 틈나는 대로 풀어주고 있어 혼자 수업 받는 거 외에 특별히 아쉬울 게 없었다.

“괜찮아,  바쁜 거 엄마들도 알잖아? 그보다 언제 시작해?”

유명이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자 관객석은 이미 꽉 차있었고   선수들과 코치진을 제외한 운영요원들까지 모두 자리한 상태였다.

“저 언니는 여기 와서도 편하게 같이 못 보네.”

세아의 지적은협회에서 나온 관계자들 사이에 앉아있는 수지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 분야의 최고 유명인사인데다지역 연고팀 구단주다보니 어찌 보면 마땅한 대우라  수 있다.

정작 본인은 식구들과 함께 딸의 경기를 오붓하게 즐기려던 계획이 틀어진 상태라 기분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친딸인 아이샤가 옆에 같이 있어 그나마 견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오늘 우리 팀이 이기면 유리랑  같이 수지네 집에서 저녁 먹어야겠다, 그치?”


역시 가장 친한 사이인 혜리가 그 마음을 알아준다. 그때 양 팀 선수들이 코치진을 따라 경기장에 입장하자 다들 일어나 박수를 치고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아~~!!”


지역협회에서 주관하는 아마추어 경기라 장내방송은 없었으나 경기장 분위기만큼은 프로경기 못지않게 열광적이었다. 물론 홈팀인유명과 유리의 학교에 대한 일방적인 응원소리였다.

“같은 타이즈인데 아마추어라 속이 안 비치는 거야?”

유명의 지적에 혜리가 설명을 덧붙였다.

“응, 그리고 프로들하고 다르게 절대 안 찢어지니까 아쉬워도 참아~”

“엄마는 내가 만날 그런 것만 좋아하는 줄 알아?”

아들이 어이없다는 식으로 반응하자 세아가 과장되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우와~! 그런 것만 좋아하는  알았는데, 아녔어?”

“아이 진짜!”


다들 즐겁게 웃는 사이에 양 팀 선수들이 서로 인사하고 악수를 주고받고 있었다. 교내 경기장이라 거리가 멀지 않아 선수들의 면면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혜리가 호들갑스럽게 박수를 치면서 자랑하듯이 말했다.


“우리 유리가 눈에 확 들어온다, 그치?”

“자기 딸이라고 그렇게 확신하면 안 돼, 우리 지역이 서울에서 가장 치열한 거 몰라?”


“아우 진짜!”


세아가 똑같은 말로 장난을 치자 혜리 역시 아들과 똑같이 짜증을 냈다.  엄마가 양쪽에서 젖가슴을 터질 것처럼 문질러대고 옥신각신하는 사이 출전준비를 마친 여동생과 눈길이 마주치자 유명이 엄지를 척 올리고 말했다.


“엄마 말대로 우리 유리가 최고네!”

“그치그치? 세아 너 다음 공연 때 두고 봐!”

혜리가 눈을 흘기자 세아가 유명에게 매달리듯이 들러붙어 코맹맹이소리를 냈다.


“유명아 아이돌들 중에 우리 리아가 최고지?”


“리아 인기도가 2위로 떨어진 거 몰라? 걔 이제 한 물 갔어~”


“아우 진짜!”

세아가 혜리를 똑같이 흉내 내자 다들 웃음이 터졌다. 검정색 블루머와 스포츠브라차림의 심판 3명까지 준비를 마치고 나자 양 팀 주전선수들 10명이 1열로 도열해서 섰다.

아직 15~16살 중학생선수에 불과하지만 모두 2차 성징한 8등신들이라 젖꼭지 굴곡까지 그대로 드러나는 타이즈차림의 탄력 넘치는 몸매가 숨 막힐 듯이 육감적이었다.

그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선수가 파란색 바탕에 흰색 줄무늬가 들어간 유니폼을 입은 유리였다. 누구보다 당당하게 서있는 여동생이 자신의 정액을 한가득 품고 있다고 생각하니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유명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경기장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유리 파이팅!! 동서울중학교 이겨라아아!!!”

휘신과의 격투기시합 이후 사실상 대표남학생의 지위를 차지한 유명이선창하자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같은 교복을 입은 모든 남녀학생들이 일어나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아아~~~~!!!!”
“동서울중학교 파이티이잉~~!!”

그러자 언제 자리하고 있었는지 학교 마칭 밴드(Marching Band; 취주악단)가 우렁찬 연주를 시작했다. 공부와 시험성적이 전부였던 세상에서 아싸로 학창생활을 보냈던 유명은 이 모든 상황이 너무 흥겨워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삐이익!!

주심의 호각소리와 함께 선공인 유리가 바닥에 있는 공을짚어 가랑이 사이로 패스하자 경기가 시작됐다. 중앙선 너머에 있던 상대 팀 선수 4명이 일제히 돌진했다.

그 틈을 유리가 빠르게 파고 들자 패스가 곧바로 이어졌다. 여동생의 스피드가 집에서 장난칠 때에 비해 훨씬 빨라졌다는 걸 유명은 똑똑히 확인할  있었다.


그러나 상대 선수들 역시 젖가슴과 엉덩이가 터질 듯이 풍만한데도 불구하고 상당히 날렵해 순식간에 따라 붙었다. 경기가 시작부터 한눈 팔  없이 박진감 넘치게 진행됐다.


허리를 부러뜨릴 것처럼 과감하게 들어오는 태클을 방향전환과 점프로 가뿐하게 피한 유리는 뒤 따르던 같은 팀 선수에게 럭비처럼 허리 밑으로 패스하고 그대로 내달렸다.


쿵!


“꺄악!”

육중한 소리와 함께 옆으로 튕겨나간 유리가 짧은 비명을 질렀다. 움직임을 예측한 전문수비수의 측면태클에 당한 것이다. 바닥과 유니폼이 특수재질이라 사이드라인 바깥가지 쭈욱 미끄러졌다.

놀란 관중들이 일제히 탄식을 터뜨렸으나 유리는 아무렇지 않은 듯 빨딱 일어나더니 순식간에 달려와 수비수 옆에 붙었다. 하지만 전문공격수가 제지당한 후라 기습공격은 실패로 돌아갔다.

“유리 힘내! 파이티이잉~~!!”


“와아아아아아~~!!”


오빠가 경기장이 떠나가라 선창하고 응원함성이 우렁차게 이어지자 손을 번쩍 들어 성원에 응답한 유리는 공격실패에 대한 실망을 바로 잊고 경기에 집중했다.


“이거 실제로 보니까 진짜 잼있다!”

여동생이 직접 뛰고 있어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거겠으나 섹시한 여자 10명이 맨몸과 똑같은 모습으로 격렬하게 부딪치고 뒹구는 격구가 재미없으면 이 세상의 구기 종목은 포기해야 한다.


“비명까지 질렀는데 괜찮을까?”

친엄마 아니랄까봐 혜리가 미간을 잔뜩 모으고 안타까운표정을 지었다. 이럴 때 의지하는 남자가 나서줘야 하는 법이다.

“괜찮아,  정도 태클로 다칠 유리가 아냐. 쟤 몸이 어떤지 누구보다 내가 잘 아니까 걱정 마 엄마.”


자신의 무식한 정력을 거뜬히 받아내는 걸 보고 하는 말이라 설득력이 심각하게 부족한 주장이지만 혜리는 바로 납득하고 표정을 풀었다. 세아가 공을 돌리는 걸 보고 물었다.


“골대가 커서 저기서 던지면 들어 갈 거 같은데 왜 저러지?”


타원형의 경기장 양쪽 끝에 홀로그램으로 떠있는 골대는 그 앞을 지키는 전문수비수가 손을 위로 뻗으면 닿을 정도 높이에 있어 멀리서 던지면 다 쳐낼 게 분명했다. 친딸의 전공이라 잘 알고 있는 혜리가 설명했다.


“그러다    수비수한테 걸리면 바로 상대진영까지 패스로 이어지니까 롱 슛은 잘 안 던져.”


원형의 공격지대에는 수비 팀의 전문수비수와 공격 팀의 전문공격수만 들어갈 수 있어 위치선정을 위한 몸싸움이 골대 밑에서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회장님, 동서울중학교의 저 유리선수를 보러 오셨다고 하셨죠?”

키가  상대 수비수가 힘껏 밀쳐내는  등진 상태로  버텨내는 유리를 보고 협회임원이 접대성 질문을 하자 수지가 씽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 딸이나 마찬가지인 선수죠. 괜찮아 보이나요?”

“아, 그래요? 어쩐지 굉장히 잘한다 했어요!”

경기 시작한지 얼마나 됐다고 잘하다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다시 칭찬을 늘어놓으려는데 유리가 놀라운 움직임을 보였다. 수지가 벌떡 일어나는 순간 상대 수비수 머리 위로 패스가 들어갔다.


삑!


등을 밀치는 타이밍에 맞춰 돌아 들어가 패스를 그대로 골로 연결시킨 것이다. 득점을 알리는 호각소리와 함께 중앙에 홀로그램으로 1:0이란 표시가 나오자 경기장이 함성과 비명으로 난리가 났다.

“우와아아아아~~~~!!!!”
“꺄아아아아아아~~~!!!”

“우리 유리 최고오오!! 잘한다아아~~!!”

엄청난 함성 속에서오빠의 응원목소리를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유리가 활짝 웃으면서 두 손을 번쩍 들고 폴짝폴짝 뛰었다. 그 어느 때보다 기뻐하는 여동생의 표정에서 유명은 리아의 얼굴이 겹쳐보였다.

“자기가 좋아하는  하면 저런 표정을 짓는구나….”


주변이 워낙 시끄러워 알아듣기 힘들었을 텐데  엄마는 유명의 혼잣말을 놓치지 않았다.혜리가 다정한 미소로 등을 쓰다듬어주자 세아가 아들의 손을 꼭 잡고 물었다.


“아이돌 키우는 거 재미있지 않아?”


“너무 재밌어, 근데… 내가 좋아하는 일인지  모르겠어….”

자신의 속마음을 바로 알아보고 물어봐주니 대답이 선선히 나왔다. 이번엔 혜리가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말했다.

“재밌으면 다른 생각 말고 끝까지 가봐, 요즘 네 표정도 유리나 리아만큼 좋아.”

“그래? 나도 그렇게 보여?”

 엄마는 말없이 따뜻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환한 미소만큼 가슴이 따뜻해진 유명은 혜리와 세아에게 차례로 키스했다. 향긋한 살 냄새를 한껏 맡으니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았다.


만약타고난 성품이 막무가내에 안하무인이었다면 오히려 이런 고민이 없이 기분 내키는 대로 저지르고 다녔을지 모른다. 그래도 되는 세상이고 하는 것마다  잘되니 생각이 많은 자신이 답답할 때가 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의 주변에 있는 여자들 모두 눈앞의 두 엄마나 지금 열심히 땀 흘리는 여동생처럼 너무 사랑스럽고 소중해 도저히 함부로 대할 수가 없는 걸 어떡하란 말인가.


삐익!

“와아아아아아아~~~!!!”

이번엔 유리의 어시스트를 받아 다른 선수가 득점을 올리자 경기장은 광란의 도가니가 됐다. 유명은 여동생에게  키스를 날린 뒤 자기여자들 모두에게 하는 것처럼 있는 힘껏 외쳤다.

“유리야아 사랑해애애~~~~!!!!”


(다음 94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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