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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화 〉(88화) 12. 선물 (89/130)



〈 89화 〉(88화) 12. 선물

(제 88 화)




3주차에 있었던 ‘주인님과의 하루’ 영상이 공개되자 회원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유료인데 모든 영상이 회원 수 이상으로 조회가 됐고, ‘하트(♥)’라고 불리는 각 후보들에게 던지는 유료 호감도의 판매량까지 엄청나게 늘었다.


 하트는 아직 정식 연습생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개인적으로 받는 것이라 만약 탈락할 경우 보상금 형태로 모두 가져갈 수 있는 시스템이다.

“꺄아아~ 나 오늘 하트 100개 넘게 받았어!”
“부럽다…  20개도  받았는데….”
“아… 난 이러다 탈락하겠어…….”
“하트 수는 상관없다고 그랬어.”
“얘들아! 사라 하트 좀 봐봐!”
“나비 너도 엄청난데?”
“히이익! 리아  무슨 하트를 이렇게 많이받았어?”


하루 일과를 마치고 합숙소 휴게실에 있는 대형화면에 모여든 후보들은실시간으로 표시되는 인기도 수치를 보고 호들갑을 떨었다.


후보들은 무대에서 정식으로 공연한 장면만 볼  있어 외부에서 자신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 볼 방법이 이 하트뿐이라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근데 하트보다 우리 주인님 생각이 더 중요한 거잖아?”


나비의 말에 일순간 조용해졌다. 휴게실은 누워서 쉴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이라 친한 사이끼리 이리저리 엉켜있었다. 허벅지에 머리를 기대고있는 리아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던 사라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비 말대로 이번주부터는 매일  팀당 한 명씩 주인님한테 선택 받아야 상위리그로 올라갈 수 있대.”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팀원들은 주말 동안 벌 받고 팀을 다시짜서 다음 주에 도전해야 해, 하트 많이 받았다고 좋아할 일이 아냐.”

리아의 냉정한 말에 다들 한숨을 내쉬고 휴게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한 후보가 사라만큼이나 풍만한 몸을 출렁이면서 울먹였다.


“너희 둘은 유명이가 좋아하니까 걱정 없겠지만 난 하트 수도 적고… 어떡하지… 흑….”


“올라갈 걱정이 없긴, 오늘도 안드로이드 같이 따라만 한다고 욕만 먹었는걸.”

리아의 자책 같은 위로에 다들 가볍게 웃었다. 그때 한 후보가 입구에서 팔짱을 끼고 짝다리로 비아냥거렸다.

“리아 너 아직 학생이면서 언니들앞에서 너무 잘난  하는 거 아냐? 인기  있으니까 눈에 보이는 거 없지?”

어울리지 않는 거만한 표정을지으려고 애쓰는  보면 원래 성격이 아니라 일부러 시비 거는 게 분명했다. 상대와 원래 나쁜 사이라면 모르겠는데 갑자기 이러니 화가 나기보다 의아했다.


“잘난 척한 거 아닌데 그렇게 보였다면 사과할게요, 미안해요.”

“넌 사과를 싸가지 없게 누워서 하니?”

이번 표정은 진짜 화난 것처럼 제대로 지었다. 친한 사이로 보이는 다른 후보가 얼른 일어나 말렸다.

“언니 갑자기  이래? 리아가 틀린 말   없잖아?”

“넌 빠져, 너도쟤들 재수 없다고 그랬잖아?”


“아…아니 내가 언제…?”

변명 없이 슬그머니 빠지는 걸 보면 진짜 그런 말을 한 모양이다. 다들 언니라고 부르는 이 후보는 연습생들 사이에서 다방면으로 뛰어난 그 실력만큼 인기가 많은 후보였다.


현재 나비와 엎치락뒤치락 하트를 많이 받고 있으면서 이렇게 나선 이유라면 질투나 시기심 때문일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앉은 리아가 씽긋 웃으면서 물었다.

“언니 이름이 보미 맞죠?”

“우리 벌써 3주나 넘게 같이 지내는 중인데 이제야 알아주는 거니? 이거 황송해서 어쩌나?”


<보미>의 불같은 성격을 알고 있는 다른 후보들이 슬금슬금 자리를 비키는 보고 착한 사라가 얼른 일어나 친근하게 말했다.

“보미언니 이름을 어떻게 몰라요, 그동안 같은 팀에서 활동한 적 없어서물은 것뿐이에요.”


“그럼 난 어떻게 너희들 이름을 알고 있는데?”


처음엔 이쪽의 반응을 보려고 슬쩍 찔러보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표정이나 말투가 꽤 심각하게 느껴졌다. 사라나 나비와 달리 리아는 이런 긴장감에 눈 하나 깜짝  하는 여자다.

“우리가 언니보다 예쁘고 섹시하니까 그런 거잖아요?”

“하! 이 년이…!”

딱 아픈 곳을 찔러 들어오다니, 보미는 말리는 사라의 젖가슴을 꽉 움켜쥐고 밀친 뒤 달려들었다. 그런데 얼마나 재빨리 일어섰는지 미처 몇 걸음 내딛기 전에 리아가 먼저 코앞까지 다가왔다.


“사라가 뭘 잘못했다고 그렇게 쌔게 밀쳐요?”


“예쁘고 섹시하면 싸가지 없어도 돼? 너 이러는 거 다들 보고 있는 거 몰라?”

“그러는 언니는 동생들한테 이래도 괜찮아요? 오늘 나비가 하트 더 많이 받은 거 알고 있어요?”


그러는 사이  여자에게 하트가 계속 쏟아지고 있었다. 리아와 사라가 압도적으로 많이 받고 있었으나 이 다툼 덕분인지 보미의 하트가 나비를 넘어서고 있었다.


“어? 이제는 나비보다 내가 더 많은데? 어쩌니?”


“원하는 거 얻어서 좋겠네요.”


“이게 진짜… 악!”

머리채를 잡아채려던 손을 리아가 잽싸고 강하게 쳐내는 바람에 보미가 휘청거렸다. 남자친구의 노예가 되려면 여기서 당하는 모습을 보이는  유리하겠지만 그러면서까지 아이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나온 행동이었다.

“둘 다 그만둬요.”
“그래요, 별 일 아닌 걸로 왜 그래요.”
“이러다 큰일 나겠어, 그만해.”
“같이 고생하는 사이끼리 왜 그래요….”

사라와 나비를 시작으로 다른 후보들이 너도나도 나서서 둘을 말리기 시작했다. 원래 싸울 생각이 없는데 누군가 말려주면 더 용감해지는 법이다.


“리아  내가 지켜볼 거야!”

“고마워요, 나도 언니 지켜볼게요.”


리아의 말대꾸에 더 화가 난 보미는 다른 후보들에게 끌려 나가면서 계속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욕은 안 하는 걸 보면 원래 나쁜 심성은아닌 것 같았다.



*****


이 다툼 이후로마치 의도한 것처럼 리아와 보미의 대결구도가 형성되면서 부동의 1위였던 사라가 3위로 떨어지고 나비는 4위에 고정되는 결과를 불러왔다.

법률상 개인 사생활을 상품화하면 안 되지만 비공개로 모집한 회원들에게 실시간으로만 공개되는 영상이라 후보들이 옷을 갈아입거나 화장실에서 용변 보는 모습까지 모두  수 있었고 리아와 보미의 영상이 단연 인기였다.


이 정도 관심이면 유명이나 각 후보들의 본명과 다니는 학교나 주변 사람들 정보 등이 알려질 법한데, 고가의 인공지능이 실시간으로 차단해버리는 것과 동시에 계약위반으로 바로 고발되기 때문에 사생활침해나 영상내용이 유출되는 문제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리아와 보미의 인기가 너무 치솟자 결국 이를 흉내 낸 후보들까지 나왔다. 그러나자작극인 게 밝혀지면서 무려 4명이 강제 퇴출되는 사태가 벌어졌고, 이를 기점으로 둘의 경쟁구도는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감도는 지경에 이르렀다.

폭발적인 관심을 받는 이런 아이템을 그냥 두고 볼 회사는 없다. 6개 팀의 경쟁을 아예 린과 보미가 이끄는 2개 팀으로 재편해버린 것이다.

팀장인 둘을 제외한 나머지 54명의 후보들이 각자 원하는 팀에 들어가는 방식으로, 1주일간의 연습기간을 거친  경연을통해 승리한 팀은 전원 다음 단계로 올라가고 패배한 팀은 가혹한 벌과 함께 인기도에 따라 탈락까지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선택이 시작되자 회원들의 예상과 반대로 보미의 팀에 후보들이 몰리는 결과가 나왔다. 팀장을 포함해 리아의 팀은 18명에 불과한데 보미의 팀은 무려 38명이나 된 것이다.

경연을 해보기전에 이미 승부가 결정 나버린 분위기가 되자 회원들마저 두 편으로 나뉘어 서로 다투기 시작했다.

“이거 승부가 돼?”


유명의 걱정은 역시 여자친구인 리아와 사라를 향한 것이다. 팽팽한 구도가 될 것이란 회원들의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결정된 것이라 루시로서는 해줄 말이 많지 않았다.

“힘들다고 봐야지, 대신 리아네 팀원들이 대체적으로 인기가 높으니까 탈락자는 많이 안 나올 거야.”


“리아 얘가 지는 거 은근히 싫어하는데….”


자신을 포함한 가족과 친구들에게만 져주는 성격이란 걸  아는지라 유명은 여자친구가 상처받을까 걱정부터 앞섰다. 루시는컵에 음료수를 부어주면서 다정하게 말했다.

“지는 게 오히려 좋을  있어.”

“그게 무슨 말이야?”


“회원들의 성향하고 이번 사업의 성격을 함께 놓고 생각을 해봐, 게다가 이 싸움은 사실상 보미가 먼저 시작한 거잖아.”

16살짜리가 이해하기 다소 어렵고 복합적이지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음… 노예들을 선발하는 거니까 승패보다 얼마나 인기를 얻느냐가 중요하다는 거지?”

“어? 그…그래….”


“그럼 벌을 내가 주는 게 더 좋겠네?”

원래 계획했던 6개 팀의 승부에서 패배한 팀에게 주어질 벌은 숙소청소, 식사당번, 외출금지, 상대팀원1일 메이드 등과 같은 것이었다. 승부방식이 갑자기 바뀌는 바람에 이 벌도 바꿔야하는데 유명의 적절한 의견을 내놓은 것이다.

“그래 좋은 생각이야, 그럼 어떤 벌이 좋을까?”


루시가 되묻자 유명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 현재 회원들의 예상이나 회사의 분석을 보면 승부는 거의 보미의 팀이 승리할 것으로 확정된 분위기다. 그렇다면 패배한 팀에 대한 처벌만 바꾼다고 재미가 있을까.

“어떤 벌이냐 보다 승리한 팀이 벌을 받는  어때?”

“뭐??”


“좀 전에 그랬잖아,  싸움을 시작한 쪽은 보미라고.”


“응… 그렇지….”

“그럼 보미팀이 이기면 약자를 괴롭힌 나쁜 노예니까 벌을 주고,리아팀이 이기면 버릇없는 노예라 벌을 주는 거지. 그리고  팀은 혼내는 의미로 내쫓는 거고.”

“……….”


말이  되는 억지 같은데 한편으로 주인이라서 줄  있는 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루시가 고민하는 걸 보고 유명이 한 마디 덧붙였다.

“지금 회원들끼리  편으로 갈라져서 싸우는데 이거 어느 쪽이 이기더라도 실망하지 않겠어? 어차피 수습 안 될 거 같으니까 그냥 전부 다 벌을 주자는 거야.”


“음… 지금 이야기는 나도 동의해. 그렇다면 아예  아이디어를 회원들에게 공개하는 건 어때?”

안 될 이유가 없다. 회원들이 환영하면 바꾸면 되고 반대하면 기존 계획대로 하면 그만이 아닌가. 그러나 유명은 나름대로 확신이 있었다. 아이돌이노예가 되는 걸 재미있다고 돈까지 쓰는 회원들이 서로 싸웠다는 이유로 주인에게 혼나는 걸 싫어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좋아, 아예 이번에도 회원들에게 결정을 맡겨버리자.”

“그래, 바로 진행할게!”

유명의 예상대로 반응은 굉장했다. 둘로 갈라졌던 회원들이 이제 누가 이기든 상관없다는 심정으로 좋아하는 소녀가 있는 팀이 패배하길 응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탈락이야 인기도가 낮아서 당하는 것이니 돈을 질러 하트를 날리면 그만이었다.


덕분에 매출이 다시  늘어나자 회사도 덩달아 신이 났다. 탈락하면 자신이 받은 하트를 모두 가져가기 때문에 매출이 수익으로 직결되는 건 아니지만 그만큼 인기가 있다는 의미라 따질 이유가 없다.


<승리와 패배한 팀 모두에게 주인님께서 선물을 주실 겁니다!>라는 공지가 발표되자 후보들은 그 선물이 뭘까 상상하느라 한바탕 난리가 났다.

이어서 자작극 이후로 주춤하던 하트가 쏟아지기 시작하자 승부욕이 최고조에 치솟았다. 승패와 관계없이 벌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순진하게 좋아하는 거라 측은해 보이기까지 했으나 그게 회원들의 심리를  자극했다.

“리아야 저쪽에선 자체적으로 2개 팀으로 나눠서 이긴 애들이 우리랑 붙기로 했대.”


사라가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연습실에 들어서자마자 울먹이는 얼굴로 발을 동동 굴렀다. 다른 동료들까지 동요하는 걸 보고 리아가 소리쳤다.


“38명은 상대하기 힘들지만 19명이면 우리랑 비슷하잖아? 내가 2명 잡을 테니까 다들 1대1로 붙는다고 생각하자, 어때?”

팀장으로 임명되어서가 아니라 리아는 실제로 리더십이 탁월했다. 춤이나 노래 어느  하나 다른 동료들보다 나은 게 없으나 자신감만큼은  누구에게 지지 않을 정도라 의지가 되는 존재였다.

“그래! 우리 힘내자!”
“19대 18이면 우리가 이길 수 있어!”
“화이팅!!”
“이제 며칠 안 남았어, 어서 연습하자!”

사라와 나비만이 아니라 모두 나서서 소리를 지르고 포옹을 하면서 동료를 격려했다. 종합격투기부원들에게 하던 것처럼힘까지 사용했다면 애초에 이런 억지경쟁을  필요조차 없었겠지만 남자친구를 위해 아이돌이 되려고마음먹었으니 리아도 최선을 다해야했다.


그러나 이런 반응은 오히려 4년차 연습생인 보미가 원하는 것이었다. 진짜 싸움도 아니고 18명을 상대로 경연을 하는데 38명이 나서봤자 실력발휘는 고사하고 1주일 만에 합을 맞추는 것조차 쉽지 않다.

하지만 둘 중 어느 팀이든 자체경연을 통해 올라가면 그 과정자체가 경험이 되어 승리의 발판이  것이고, 만에 하나 패배하더라도 탈락의 책임을 자체경연에서 패배한 팀이 지도록 사전에 약속하면 되니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영리한 결정인 셈이다.

물론 이 의도는 패배한 팀이 일방적으로 벌과 탈락을 모두 받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상대에 대한 감정싸움으로 번질 분위기였던 두 팀의 경쟁은 이제 경연이라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다음 89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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