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84화) 12. 선물
(제 84 화)
“흐흑… 유…읍!”
사라는 너무 반가워 유명을 부르려는데 누군가 덥석 입을 틀어막았다. 놀라 돌아보니 처음 보는 여자가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고 구석으로 끌어당기는 것이 아닌가.
“입 막아서 죄송해요, 근데 지금 여기서 이러시면 안 돼요….”
“예? 뭘…요?”
같은 지원자인데 왜 이러는 것일까,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게 목소리까지 낮추는 걸보면 뭔가 사정이 있는 거 같은데 사라로서는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나중에 따로 회사에서 설명이 있을 거니까 일단 무대에 있는 저 분이랑 모르는 사이인 것처럼 행동하세요, 아셨죠?”
“예? 아니… 왜…….”
여자는 자기 할 말만 하고 다른 사람들 사이로 서둘러 가벼렸다. 그러는 사이 무대 앞은 지원자 대부분이 몰려가 유명에게 온갖 질문을 쏟아내고 있었다.
[자자, 다들 진정하세요. 운영상에 실수가 있었습니다. 먼저 사과의 말씀을 드리구요….]
“상관없어요~~”
“그럼 이 분이 주인님이 되는 거죠?”
“진짜요? 진짜 주인님이에요?”
“대답 좀 해주세요~~”
“안 돼! 데리고 가지 마요오오~~!!”
안내방송은 관심 밖이었고 행사담당 직원들이 올라와 데리고 나가려고 하자 비명까지 지르고 난리가 났다. 어쩔 수 없이 유명이 나서서 지원자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하하 제가 순서를 착각해서 그만…, 죄송합니다. 궁금하신 거 나중에 다 대답해드릴게요.”
“꺄아아아~~”
“목소리 너무 멋져!”
“와아아아~~~”
“가지마요~!”
“가지 마세요, 제발요오~!”
그때 눈이 마주쳤는데 자신을 못 알아봤는지 유명은 직원들의 안내를 받아 무대 뒤로 사라져버렸다. 사라는 섭섭한 것보다 조금 전 모르는 지원자가 했던 말까지 더해져 정신이 없었다.
[여러분 다시 사과말씀을 드립니다. 원래 사업내용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에 한해 1차 계약 후에 조금 전 만나신 분과 질의응답시간을 가질 예정이었거든요….]
안내방송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절반 이상의 지원자들이 계약창구로 우루루 몰려갔다. 나머지 지원자들 역시 표정이나 눈빛은 이미 넘어간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된 이상 계약내용을 공개적으로 알려드릴게요. 이번 1차 계약은 비밀유지계약과 비슷하게 오늘 설명회장소 내에서만 적용되고, 2차 계약 전까지만 유효합니다.]
다시 남은 절반 정도의 지원자들이 뒤로 몰려갔다. 사라를 포함해 처음에 포기했던 지원자들과 10여명 정도만 이어질 안내방송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2부 행사동안 여러분의 모습을 모두 촬영하고 추후 합격자 영상에 한해 본사에 권리를 양도한다는 게 주요내용입니다. 이에 동의하시는 분들께서는 뒤에 마련된 창구로 가셔서 계약서를 작성해주십시오.]
유명이 무대에 잠깐 나왔다 들어갔을 뿐인데 지원자 100명이 모두 계약서에 서명하고 인증까지 마쳤다. 상황은 정신이 없지만 사랑하는 남자가 주인님이 된다는데 망설일 이유가 없어 사라도 바로 계약을 마쳤다.
“다들 사업내용은 관심 없는 거 아냐?”
루시의 지적에 직원들 모두 기분 좋게 웃었다. 그만큼 긍정적인 반응이라 행사담당자들까지 전부 의욕이 충만해졌다. 그런데 이 놀라운 결과를 불러온 장본인은 별다른 동요 없이 누군가와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었다.
유명 : 놀랐지?
사라 : 응 왜 미리 말 안 해줬어?
유명 : 미안미안
사라 : 넌 줄 모르고 포기할 뻔했잖아
유명 : 계약했어?
사라 : 당연하지!
유명 : 와! 진짜?
사라 : 헤헤저 뽑아주세요 주인님♡
유명 : 크크크 참 리아 봤어?
사라 : 리아? 못 봤는데? 리아는 왜?
유명 : 찾아봐 리아 있을 거야
사라는 얼른 휴대폰화면을 끄고 두리번거렸으나 아직 계약이 끝나지 않은 지원자들 때문에 금방 찾을 수 없었다. 그때 막 계약을 끝내고 식탁으로 돌아오는 한미녀를 발견했다.
“리아야!”
“아! 사라야~”
둘은 손을 맞잡고 아이처럼 폴짝폴짝 뛰면서 좋아했다. 제일 뒤쪽에 있는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기 무섭게 사라가 리아를 끌어안고 응석을 부렸다.
“어제 통화했는데 여기서 보니까 너무 반갑다 리아야앙~~”
“후후 그러게, 너 계약했어?”
“응! 유…읍!”
유명의 이름을 들먹이려고 하자 리아가 순식간에 입을 틀어막더니시치미 뚝 떼고 활짝 웃었다.
“근데 주인님 너무 멋지지 않아? 몇 살일까? 우리 또래 같지 않니?”
“아…! 하하하…….”
드디어 어떤 상황인지 알아차린 사라가 어색하게 웃었다. 리아가 찡긋 윙크하더니 손을 꼭 잡고 둘만 들리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중에 다 말해줄게.”
*****
2부 행사로 준비된 ‘주인님에게 물어보기’는 원래 블라인드 상태로 음성변조까지 해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꺄아아아아아아~~~~!!!!”
연회장 조명이 꺼지고 짧은 소개영상이 나온 뒤 기다렸던 남자가 무대 위에 나타나자 환호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첫 팬 미팅을 하는 연예인이 이런 기분일까, 유명은 생전처음 느껴보는 흥분과 기대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안녕하세요~”
“와아아아아아아~~~!!!”
간단한 인사에 100명의 미녀 아이돌 지망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고 발을 구르거나 소리를 질렀다. 이 열광적인 반응은 있는 듯 없는 듯 설치된 수많은 카메라로 모두 촬영되고 있었다.
[그럼 2부 행사인 주인님에게 물어보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아직 정식계약 전이라 진짜 주인님은 아니니까 궁금하신 점이 있으신 분은 부담 없이 손을 들고 물어보세요.]
사회자의 안내가 끝나자 거의 대부분의 지원자들이 손을 번쩍 들었다. 아이돌이 되려고 연예기획사를 찾아가 오디션을 보고 그동안 피나는 연습까지 감수하는 여자들이라 거침이 없었다.
더구나 자신의 취향에 맞게 100명 모두 2차 성징한 육감적인 몸매의 8등신 미녀들만 골라놔서 연회장의 분위기는 아이돌이 아니라 모델이나 미녀대회 합숙훈련 분위기 같았다. 유명의 지목을 받은 한 미소녀가 커다란 젖가슴을출렁이고 발딱 일어나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고 몇 살이에요?”
“이름은 유명이고 올해 16살입니다. 중학교 5학년이에요.”
다들 놀란 표정으로 웅성거렸다. 반듯한 슈트차림이라 성인이라고 여긴 모양이다. 물론 기뻐하는 빛이 역력했고 몇몇은 박수까지 쳤다. 지목을 받은 다른 미소녀가 일어나 환하게 웃으면서 예의바르게 인사까지 했다.
“좋아하는 여성스타일이 어떻게 되세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지금 주변에 어떤 분들이 계신지 모르고물어보시는 건가요?”
“와하하하하~~”
재치 있는 대응에 다들 기분 좋게 웃었다. 질문한 소녀 역시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고 좋아했다. 유명이 좋은 분위기에 맞춰대답을 덧붙였다.
“전 여러분들처럼 2차 성징한 여성을 좋아합니다. 키가 크고 늘씬하고 음… 볼륨감이 있는… 아우 되게 쑥스럽다.”
평소처럼 노골적으로 말하려고 했는데 너무 많은 미녀들 앞이라 그런지 갑자기 쑥스러웠다. 자기여자들에게 온몸으로 사랑 받을 때와 다른 의미의 관심이라 아직 적응이 안 된 탓이다. 그런데 유명의 이 행동이 오히려 지원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꺄아아 귀여워~~”
“하하하하~~~”
“저도 주인님 좋아해요오~!”
“너무 멋있어요!!”
루시를 비롯한 사업관계자들은 예상을 뛰어넘는 반응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한참환호와 성원의 시간을 보낸 뒤 다시 한 미소녀가 일어나 수줍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기… 여자친구나 정기적으로 만나는 파트너는… 몇 명이나 되세요?”
“음…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게 좋겠죠?”
다들 기다렸던 질문인지 연회장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유명이 특유의 부드럽고 천진난만한 미소를 씨익 지어주자 지원자들이 탄성을 흘리고 얼굴을 붉혔다.
“여자친구는 모두 9명이고 가족 3명해서 모두 12명이네요. 파트너는 따로 없어요.”
“와아아아……….”
낮은 감탄과 함께 반응이 제각각이었다. 100명 모두를 속속들이 살펴볼 수 없었으나 최소한 부정적으로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을 거라는 회사의 분석이정확했다.
“중학교 5학년이라고 하셨는데, 가족은 그렇다 치고 9명이나 되는 여자친구를 언제 다 만나요? 그리구… 다들 섹스는… 만족하던가요?
당돌한 질문이긴 한데 궁금한 모양인지 다시 조용해졌다. 이에 대해선 회사직원들조차 처음 듣는내용이라 모두 유명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게 제 앞에서는 좋다고 하는데설마 거짓말은 아니겠죠?”
“와하하하하하~~~”
솔직한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는지 가볍게 넘기려는 대답에 모두들 즐겁게 웃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좀 더 노골적인 질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루에 섹스를 몇 번까지 해보셨어요?”
“와…이런 것까지 묻는 구나….”
“꺄아하하하하~”
“음… 섹스는 정확히 기억 안 나는데 사정은 20번… 넘게 한 적 있어요.”
농담을 주고받는 것처럼 화기애애하던 연회장에 일순간 침묵이 흘렀다. 남자직원들까지 경악에 찬 표정으로 입을 떡 벌렸고 여자들은 도무지 믿을 수 없는지 한참동안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러자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사회자가 얼른 끼어들었다.
[우리 유명씨가 거짓말 할 남자는 아닌데 솔직히 안 믿기죠? 하하하 이 엄청난 대답이 사실인지 허풍인지 확인할 방법은 딱 한 가지입니다. 정식계약을 하시면 됩니다!]
“하하하하~”
웃음소리가 크진 않았으나 분위기는 의도한 대로 조금 풀렸다. 정작 이 황당한 사실을 털어놓은 당사자는 100명의 미녀들이 당황하는 모습에 성욕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지금껏 얌전히 있던 사라가 손을 번쩍 들었다.
혹시 아는 사이라는 걸 들킬까봐 지목하고 싶지 않았는데 망설이는 사이 동작 빠른 운영직원이 사라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저기… 주인님이 되시면 우리랑 얼마나 자주 만나주시는 건가요?”
[아… 그에 대한 대답은 죄송하지만 제가 대신 해드리겠습니다.]
사회자가 끼어들자 지원자들이 실망하면서 탄식을 흘렸다. 곤란한 질문을 했나싶어 사라는 얼른 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였다.
[유명씨가 학생인 건 다들 아시죠? 현재 학생이면서 연습생인 분들과 마찬가지로 주중엔 학교수업을 받아야합니다. 만약 졸업하기 전에 데뷔하게 되면 만나는 횟수가 적을 수 있음을 고려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모범적이고 적절한 답변이라 순순히 받아들였고 몇몇 눈치 빠른 현역연습생들은 데뷔가 빨라질지 모른다는 뉘앙스에 눈빛이 달라졌다. 이번엔 옆에 앉아있던 사라가 손을 번쩍 들었는데 유명보다 회사직원들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몸이 굉장히 좋아 보여요. 혹시 재킷을 벗어 보실 수 있을까요?”
“와아아아아아~~~!!!”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박수와 환호를 보냈고, 곤란한 질문하면 어쩌나 긴장하던 회사직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반대 아닌가요? 내가 주인님인데….”
“꺄아하하하하하~~~~”
지원자들이 너무 기대하고 좋아하는 반응이라 쑥스러워 무척 망설여졌지만 남자친구의 매력을 알아주길 바라는 리아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닌지라 유명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
옷을 받으러 온 행사직원에게 슈트재킷과 넥타이를 벗어 넘기고 셔츠 단추까지 몇 개 풀자 지원자들이 비명과 환호를 질렀다. 아예 셔츠까지 벗으려다 너무 지나친 서비스 같아 그대로 다시 의자에 앉았다.
“얼굴에 몸까지 너무 멋진데… 따로 운동하시는 게 있나요?”
질문하러 일어난 미소녀뿐만 아니라 다른 지원자들까지 마치 하트가 새겨진 것처럼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여자들의 이런 표정과 눈빛이 뭘 의미하는지 이제는 잘 아는지라 성욕이 훅 치솟았지만 유명의 목소리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어릴 때 태권도를 좀 했구요. 몇 개월 전부터 학교 종합격투기부에 가입했어요. 그리고 얼마 전에 직업체험으로 통합우주군 기초군사훈련소에 갔었는데 재미있어서 6주 과정을 다 마치고 왔습니다.”
“와아아아아아!!”
비명을 지르고 발을 구르는 열렬한 반응은 아니었으나 환호와 박수는 가장 크게 나왔다. 소수의 남자들이 군대에 헌신하는 행동에 존경심을 갖고 있다는 증거였고, 덕분에 유명에 대한 지원자들의 인식은 확고해진 것 같았다.
이후 성적인 질문은 더 이상 없었으나 취미와 특기 같은 일반적인 관심사에서부터 학교생활과 성적, 장래희망 등 아주 상세한 것까지 물었는데, 유명은 마치 결혼을 전제로 100명의 여자와 소개팅 하는 것 같은 신기한 기분을 느꼈다.
*****
2부 행사가 끝나고 이어진 2차 계약에 1차에 이어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계약하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그만큼 유명의 매력에 모든 지원자들이 흠뻑 빠졌다는 의미라 후보선발에 관한한 성공적인 출발이었다.
“좋아! 이 기세를 몰아 애들을 완전히 휘어잡자고!”
루시가 힘을 주어 독려하자 회사직원들이 큰 목소리로 환호했다. 이번사업은 멤버가 된 아이돌들이 주인님이 될 유명에게 얼마나 진실하게 복종하는가가 핵심이기때문에 지금과 같은 분위기를 유지하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2차 계약부터는 주도권이 회사 즉 주인님에게 주어지게 되었다. 계약을 마친 지원자들은 2명씩 배정된 호텔방으로 향했는데 이들에게 주어진 목표는 유명의 눈에 들어 선택받는 것 오직 하나 뿐이었다.
지원자들이 잠시 휴식시간을 가지는 동안 유명은리아와 사라가 함께 있는 방을 먼저 방문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두 여자친구가 마치 중세일본여자들처럼 무릎을 꿇고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이들의 행동 역시 모두 촬영되는 중이라 서로 아는 사이인 걸 드러낼 수 없었으나 일명 ‘도게자(土下座)’로 불리는 굴욕적인 자세를 여자가 무려 알몸으로하고 있으면 남자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유명은 앞뒤 가릴 것 없이 바지춤부터 풀기 시작했다.
(다음 85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