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83화) 12. 선물
(제 83 화)
계약서에 서명하고 인증까지 마치고 나자 <주인님>사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멤버 모집부터 비밀리에 진행하기로 결정되어 유명은 학교수업이 끝나면 바로 회사로 직행하게 되었다.
수지는 프로격구팀 구단주이자 산하에 여러 회사를 운영하는 바쁜 몸이지만 연인의 출근을 직접 챙겼고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퇴근했다. 물론 그 보상으로 사이사이 질펀한 섹스를 즐길 수 있으니 결코 빼먹어선 안 될 자신만의 행복이었다.
“어머! 어쩜… 이렇게 완벽한 애가…, 너 진짜 유명이 여자친구니?”
루시는 남자친구를 따라 회사를 방문한 리아를 보고 평소에 못 보던 호들갑을 떨었다. 이어 사업관계자들이 전부 몰려와 미모에서부터 몸매에 이르기까지 온갖 칭찬과 감탄을 늘어놓았는데 본인보다 유명이 더 당황했다.
이 세계에 와서 마야 다음으로 자신의 품에 안긴데다 어릴 때부터 자신만 바라보고 늘 곁에 있어준 존재라 생각하고 있던 나머지 리아가 얼마나 대단한 여자인지 잊고 있었던 것이다.
사업 최고책임자인 루시의 열렬한 제안과 유명의 적극적인 권유 그리고 본인의 호기심이 더해지자 바로 그 자리에서 오디션이 치러졌다.
“나 진짜 해도 되는 거야?”
리아는 테스트를 위해 카메라 앞에 설 때까지 이런 식으로 몇 번이나 물었다. 자신의 선택이 사랑하는 남자친구와 떨어지게 될까봐 걱정되는 것 같았다.
“너 죽을 때까지 나 따라다닐 거라면서?”
“응!”
“내가 원하는 건 뭐든 다 들어준다고 했지?”
“응!”
“그럼 일단 테스트만 받아 봐.”
“알았어.”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관계자들은 리아가 소극적인 성격이면 어쩌나 걱정했다. 그런데 남자친구가 시켜야만 하는 거 같더니 막상 시작하자 뭐든 망설임 없이 다 해치우는 걸 보고 타고난 아이돌이라는 걸 직감했다.
외모는 실물이나 영상에서 모두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해 바로 합격했고, 노래실력은 평범한 편이었으나 성량이 풍부해 무사히 통과했다. 제대로 배운적이 없는 춤이 문제였는데 몸매가 워낙 육감적이고 아름다워 실수마저 예뻐 보였다.
그리고 태권도를 시작으로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종합격투기를 오랫동안 수련한 덕분인지 한 번 가르쳐준 동작을 어김없이 해내는 것을 보고 관계자들이 혀를 내둘렀다.
“수고했어, 리아야. 우리 사무실가서 계약서부터 쓸까?”
오디션결과를 처음부터 지켜본 루시는 보물을 발견했을 때 지을만한 표정으로 리아의 팔꿈치를 와락 끌어안았다. 당황과 기쁨이 교차하는 얼굴로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여자친구에게 유명이 뿌듯함이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하고 싶어?”
“글쎄…….”
대답을 미루는 건 허락을 구한다는 의미다. 어쩌면 뼛속까지 이렇게 사랑스런 여자가 있을 수 있을까. 유명은 여자친구의 머리에 키스를 해주고 오늘 점심시간에 여동생과 함께 마음껏 맛봤던 탐스런 엉덩이를 툭툭 쳐줬다.
“사무실가서 계약조건 들어보고 결정해, 이번 사업이 기밀유지가 필수라 내가 해줄 수 없었던 이야기가 좀 있어.”
“응, 알았어.”
리아는 <주인님>사업의 내용을 전해들은 뒤 유명의 허락이 떨어지자 계약서에 서명과 인증까지 망설임 없이 해버렸다. 센터가 확실한 재목을 이렇게 손쉽게 구할 줄예상 못한 관계자들은 계약소식에 환호성을 질렀다.
*****
1학기가 끝나는 연말연초에 넘겨주는 게 전통이지만 부장이 어느 날 갑자기 아이돌연습생이 돼버리자 종합격투기부는 부부장이었던 하나가 맡을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런데 평소 좋아하고 존경하는 부장이 종합격투기가 아닌 연예인이 되겠다고 결정하자 이에 자극을 받았는지 하나도 해보고 싶다고 난리를 피웠다. 하나 역시 자기여자나 마찬가지라 유명은 마냥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아직 외부에 알려지면 안 되는 단계지만 하나의 미모와 몸매를 본 루시는 오디션을 허락했다. 외모야 바로 통과했고 춤 역시 리아와 비슷한 경우라 어떻게 넘어갔는데 노래에서 답이 없다는 최악의 결과가 나와 탈락하고 말았다.
이런 소란과 관계없이 리아가 연습생 1번으로 선발된 후 진행속도가 오히려 느려졌는데, 유명의 눈이 워낙 높은 게 문제였다. 여자친구가 보통여자가 아니다보니 다른 후보들이 마음에 들 리가 없었던 것이다.
“너 기준을 좀 낮추면 안 되겠니? 리아가 네 여자인 건 맞지만 숫처녀가 아닌 상태에서 선발된 거잖아?”
루시까지 설득에 나서자 유명은 마지못해 한 발 물러섰다.
“좋아요, 숫처녀는 제가 포기할게요. 현실성이 부족한 조건이었다는 거 인정해요.”
“그래 잘 생각했어, 그 조건만 없으면 대상자가 확 늘어나. 다른 회사소속 연습생들은 따로 연락을 해야 하니까 나중에 보고, 여기 일반인들 중에서 다시 골라봐.”
몇 백 명에 불과했던 후보가 몇 천 명 단위로 확 불어났다. 이 많은 소녀들을 일일이 캐스팅하러 다녔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고집을 피운 게 더 미안해졌다.
숫처녀를 타락시켜 노예를 삼는 나름의 목표가 좌절된 게 아쉽지만 반면에 남자를 아는 여자들이 얼마나 헌신적이고 좋은지 그간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어 비교적 쉽게 포기할 수 있었다.
“새 후보들이야?”
춤 연습이 끝나고 사무실을 찾은 리아는 홀로그램을 넘기고 있는 남자친구에게 키스부터 했다. 뜨거운 숨결과 함께 땀 흘리는 여자친구를 가까이서 마주하고 있으니 유명은 후보들이 더 마음에 안 들어 한숨이 나왔다.
“휴… 너 때문에 우리 사업 실패하겠다.”
“뭐? 왜…왜? 내가 뭐 잘못했어?”
“네가 너무 예쁘고 섹시하니까 다른 애들이 눈에 안 들어오잖아!”
“……….”
칭찬이라 너무 기쁜데 그게 또 사실이면 어쩌나걱정되니 좋아할 수가 없다. 무릎위에 앉은 채로 살짝 주눅이든 표정을 짓는 여자친구가 너무 사랑스러워 유명은 다시 키스를 해준 뒤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숫처녀 조건을 포기했더니 후보자가 확늘었어, 같이 골라보자.”
“그래~”
여자친구의 살 냄새를 한껏 마시고 풍만하고 탄탄한 몸까지 마음껏 주무르면서 다른 여자를 고르는 맛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짜릿한 일이다. 스포츠브라 위로 뾰족 튀어나온 젖꼭지를 어떻게 괴롭혀줄까 고민하던 유명은 익숙한 홀로그램에 눈이 커졌다.
“어?”
“어머, 얘 사라잖아?”
연예기획사에서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다더니 이렇게 연결될 줄이야, 신기한 인연에 뭔가 운명적인 느낌을 받았다. 유명이 리아의 크고 예쁜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사라라면 꽤 괜찮지?”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후보에 있을 정도면 1차 오디션은 통과했다는 거잖아? 고민할 이유 있어?”
“없지, 내가 얘 첫 남자인데.”
비록 1주일에 불과한 시간이었으나 함께 고생하면서 들었던 정이 적지 않고 그 음란하기 짝이 없던 맛있는 몸이 떠올라 유명은 바로 선택버튼을 눌렀다.
*****
연습생으로 결정된 리아를 제외한 1차 후보로 모두 99명이 선발됐는데 사라와 같이 일반캐스팅 출신은 12명에 불과했다. 그만큼 오랜 기간 연습생생활을 한 예비 아이돌들의 수준이 높다는 증거다.
주말을 이용해 서울 외각에 있는 한 휴양시설을 통째로 빌려 후보를 불러 모았다. 통합우주군 기초군사훈련소에서 훈련병대표까지 해본 유명이지만 아이돌 지망생 100명이 모여 있는 걸 보자 입이 떡 벌어졌다.
“와~ 이거 다 모아놓으니까 정신을 못 차리겠네….”
휴양시설에 있는 호텔 연회장 뒤에서 후보들을 보고 하는 말에 루시가 씽긋 웃었다.
“회장님이 너하고 싶은 데로 다 해주라고 하셨어. 마음에 들면 100명 다 선발해도 돼.”
“뭐? 진짜?”
“안 될 건 뭐야, 300명짜리 걸그룹 있는 거 몰라?”
예전에 살던 세상에서도 100명이 넘는 아이돌그룹이 있었으니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 후보들은 정식계약에 앞서 비밀유지계약만 상태라 다 선택한다고 남을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아냐, 내 욕심만 부려선 안 되지. 회사에서 생각하는 적정인원은 몇 명인데?”
“넌 그런 거 신경 쓰지 못하게 하라는 당부가 있었어. 그냥 부담 갖지 말고 마음에 드는 애 있으면 다 골라.”
진짜 16살짜리였으면 그 말 그대로 받아들였겠으나 직장생활까지 지겹게 해본데다 사업기획 단계부터 함께 일했던 터라 대충 감이 잡혔다. 유명은 최소 5명에서 최대 10명 정도만 추려낼 생각이었다.
“다음 일정이 어떻게 돼?”
유명의 물음에 루시를 수행하는 여직원이 얼른 대답했다.
“비밀유지계약은 다 된 상태라 바로 사업설명회를 시작하면 돼요.”
“내가 직접 나서는 것보다 우리 사업에 관심이 있는 애들만 골라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이미 논의된 사안이라 여직원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루시가 설득하듯이 물었다.
“너 아는 애 꼭 뽑고 싶다며? 걔가 포기하면 어쩌려고?”
“걔는 내가 주인이 된다는 거 모르거든, 포기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그래.”
“오호~ 걔가 너만 좋아하는지 알고 싶은 거구나, 너 요즘 남자들답지 않게 꽤 소유욕이 강한 편이네?”
루시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옆에 있는 여직원의 반응 역시 비슷한 것을 보면 소유욕이 강하다는 평가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닌 것 같았다. 유명은 확인을 위해 물었다.
“어… 소유욕이 강하면 여자들이 싫어해?”
“싫어하긴, 다들 소유당하고 싶어서 난린데. 너 타고난 주인님인 거 알아?”
루시의 말에 여직원이 얼굴을 붉히고 수줍은 듯이 웃었다. 이러면 땅 짚고 헤엄치기가 아닌가, 유명은 이렇게 흥분되고 기대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준 수지와 아이샤 모녀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럼… 설명회를 진행하다가 내가 실수로 얼굴을 내미는 거 어때?”
“음…….”
유명의 의견에 두 여자는 눈길을 주고받더니 잠시 후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가 절충안을 내놓았다.
“내부적으로는 3분의 1 정도 돌아갈 거라고 예상하고 있는데, 네가 찍어놓은 여자애 포함해서 30명이 넘어가면 순서를 착각해서 나왔다는 식으로 해보자.”
“30명 보다 적게 포기하면?”
“그럼 찍어 놓은 걔만 살짝 데려오면 되잖아?”
“좋아!”
결정이 되자 여직원에게 사라가 어디 있는지 가르쳐 준 뒤 유명은 무대 뒤편에 마련된 자리에 대기했다. 곧이어 연회장의 조명이어두워지면서 사업설명회 영상이 나왔다.
영상은 구체적인 사업내용과 함께 주인님이 될 유명이 얼마나 매력적인 남자인지가 주 내용이었다. 회사에 소속된 뮤직비디오 전문가들이 제작한 영상은 과장되고 왜곡된 내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원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것으로 크리스털 엔터테인먼트의 신사업 주인님 설명회를 마치겠습니다. 점심식사를 겸한 휴시시간을 가진 뒤에 1차 계약을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회자의 인사가 끝나자 조명이 다시 밝아지고 끔찍하게 야한 메이드복장을 한 웨이트리스들이 음식을들고 줄지어 들어왔다. 5명씩 앉은 20개의 원형식탁에 최고급 요리가 코스로 제공되자 지원자들은 탄성과 함께 박수까지 치면서 좋아했다.
사업내용과 계약조건이 까다로운 것을 넘어 일반적이지 않은데다 각 지원자들의 개인취향에 따라 성공여부가 좌우될 사업이라 회사에서작은 서비스까지 신경을 많이 썼다. 그 덕분인지 일단 전체적인 분위기가 상당히 긍정적으로 보였다.
리아는 혹시 알아볼 우려가 있어 회사소속의 한 연습생이 대신 참석한 상태라 주변에 아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사라는 혼자 조용히 앉아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고민에 빠져있었다.
[후식을 드시는 동안 1차 계약을 진행하겠습니다. 이 계약은 여러분들이 저희 사업에 참여할 의사만 알아보는 것으로, 법적인 구속력이나 어떠한 불이익이 없다는 걸 말씀드립니다.]
안내방송이 나오자 10명이 넘는 지원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연회장 뒤편에 마련된 계약창구로 뛰듯이 모여들었다. 이 모습에 자극받은 지원자들이 줄을 이었는데 사라를 비롯한 몇 명은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참여의사가 없으신 분들은 저기 입구에 있는 직원의 안내를 받고 돌아가시면 됩니다. 비밀유지계약만 잘 지켜주시면 약속한 날짜에 보상금을 지급해드리겠습니다.]
다시 안내방송이 나오자 사라를 포함한 6명의 지원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입구 쪽으로 걸어갔고 잠시 후 다시 3명이 더 일어나 그 뒤를 따랐다.
50여명은 계약을 위해 뒤에 몰려가있었고 40여명 정도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자리에 앉아있었다. 원래 계획은 사라를 포함해 30명이 넘게 포기하면 나서는 거였으나 이대로 가다간 사라도 놓치고 절반 밖에 못 건질 상황이었다.
“꺄아아아아~~~”
갑자기 무대와 가까운 식탁에 앉아있던 지원자들이 비명 같은 환호를 내질렀다. 그 소리에 모든 지원자들의 시선이 한 곳에 집중됐는데 무대 뒤에서 웬 남자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누구지?”
“영상에서 보던 실루엣과 비슷해.”
“진짜?”
“와아… 너무 잘 생겼다…!”
“잘생긴 정도가 아닌데?”
“설마……?”
“혹시… 주인님이신가요?”
“주인님 맞나요?”
“누군데요 말씀해주세요오~~!!”
연회장이 삽시간에 콘서트장처럼 떠들썩해졌다. 수십 명의 아이돌 지망생들이 무대 쪽으로 우루루 몰려들어 첫눈에 반할 정도로 멋진 남자에게 너도나도 질문과 환호를 던졌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이미 밖으로 나갔던 지원자들까지 전부 되돌아왔는데, 다른 지원자들을 따라 연회장으로 들어서던 사라는 인생이 바뀔 기회를 포기하게 만들었던 남자가 무대 위에 서있는 걸 보고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려버렸다.
(다음 84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