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82화) 12. 선물
(제 82 화)
“뭐? 나보고 주인님이 되라구?”
유명이 놀란 표정으로 되묻자 수지와 아이샤 모녀가 씽긋 웃었다. 성인물에서만 보던 주인님이란 단어가 자기여자들 입에서 나왔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럼 오빠가 사장님이 되는 거야?”
유리의 물음에 수지가 고개를 저었다. 음란한 메이드복장으로 루비가 젖꼭지를 바짝 세운 맨 젖가슴을 탐스럽게 출렁이면서 후식을 내어왔으나 다들 관심은 다른 데 있었다.
“그 정도까지 구체화된 건 아니구, 아이돌들이 주인님을 위해 활동한다는 기획이야.”
“유명이가 정식으로 계약을 해야 다음 단계로 진행될 수 있어서 아직 콘셉트 정도만 잡혀있는 거야.”
아이샤가 엄마를 도와 추가로 설명하자 이제 이해가 되는 듯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정작 당사자는 수없이 꿈꿨던 망상이 현실이 된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남자친구를 대신해 리아가 물었다.
“걸그룹으로 활동하는 건가요?”
“현재로서는 그래, 인기가 있으면 활동영역이 더 넓어질 수 있겠지?”
수지의 대답에이어 다시 아이샤가 설명을 덧붙였다.
“우리도 더 이상은 몰라, 엄마가 얼마 전에 지분을 인수한 회사에서 새롭게 기획한 사업이거든.”
“그럼… 내가뭘 어떻게 해야 돼?”
여자들은 유명의 얼굴에 깃든 엉큼한 미소를 보고 쿡 웃음이 터졌다. 결혼보다 이 선물을 더 좋아할 줄 몰랐으나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다 좋아하는 것만큼 의미 있는 선물이 또 없다. 신이 난 수지가 활짝 웃으면서 대답했다.
“내일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내가 학교로 갈게!”
*****
1주일짜리 직업체험이 6주로 늘어난 바람에 부장으로서 종합격투기부 활동을 등한시해버린 꼴이 된 리아는 도저히 남자친구를 따라 나설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매일 24시간 붙어 지낸 여자친구와 떨어져 혼자학교주차장으로 향하던 유명은 옆에 여자가 없는 게 어색해졌다는 걸 알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정말 격세지감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순간이었다.
“유명아~”
차문이 열리고 수지가 환한 미소로 맞아주는 걸 보자 잠깐 느꼈던 어색함과 허전함이 바로 사라졌다. 유명은 초미니스커트 사이로 음모가 삐져나온 레이스팬티를 훔쳐보며 최고급대형리무진에 올라탔다.
“많이 기다렸어?”
“아니 딱 맞춰 왔어.”
유명과 수지는 앞에 누군가 앉아있는 것에 아랑곳없이 뜨거운 키스부터 나눴다. 서로의 침 맛과 살 냄새에 흠뻑 취해 한참동안 애무까지 주고받고 나서야 입술이 떨어졌다.
“안녕하세요.”
눈이 마주치자 다소곳이 기다리고 있던 여자가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2차성징을 하지 않아 아담한 느낌에 단발머리가 잘어울리는 미녀였다.
“인사해, 이쪽은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한 루시씨. 이쪽은 내가 사랑하는 남자 유명.”
“크리스털 엔터테인먼트 기획이사 루시예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휴대폰으로 명함을 건네면서 다시 공손하게 고개를 숙인 <루시>는 조금 차가워 보이던 첫인상과는 달리 목소리와 미소가 나긋나긋해 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제가 부탁을 드려야죠, 유명이라고 합니다.”
“후후 회장님이 자랑하실 만하네요. 우리 유명씨 너무 멋진데요?”
루시의 말에 수지는 소녀처럼 좋아했다. 아부가 얼마나 능숙한지 모르겠으나 칭찬은 진심으로 들렸다. 쑥스러움을 덜기위해 유명은 일 이야기를 꺼냈다.
“제 역할은 어떤 건가요?”
“자세한 설명은 회사에 가서 정식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하겠습니다만….”
“아… 말 편하게 하세요, 저 그냥 평범한 학생일 뿐이에요.”
유명의 겸손한 권유에 루시가 허락의 의미로 상사를 바라보자 수지가 미소와 함께 가볍게 말했다.
“둘이 알아서해, 나야 앞으로 끼일 일 별로 없을 거 같으니까~”
“좋아, 말 놓으면 나랑 친구하는 거지?”
업무상 관계이기 이전에 남녀사이라 친해져서 나쁠 건 없고, 둘 사이에 회사소유주인 수지가 존재하기 때문에 유명이 사실상 갑인 위치라 손해 볼게 없다.
“친구 좋죠, 많이 가르쳐주세요.”
“너도 말 편하게 해, 근데 너 정도 되는 남자가 겸손하기까지 하면 여자들은 어쩌라는 거니?”
“하하하~”
루시의 넉살좋은 칭찬에 차 안의 분위기는 친한 친구사이처럼 편해졌다. 셋을 태운 리무진은 회사가 위치한 중심가를 향해 조용하고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
“그럼 후보는 공개모집하는 건가요?”
유명의 질문에 프레젠테이션을 담당한 여직원이 고개를 끄덕이고 해당 내용의 화면을 띄웠다.
“예, 현재 콘셉트 상으로는 그런데 계획이 확정되면 비공개로 바뀔 수 있어요. 현재 명단이 확보된 연습생과 캐스팅 중인 일반인만으로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수준이라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크리스털 엔터테인먼트’사는 수지가 구단주로 있는 프로격구팀의 본사가 있는 건물로 이주해 한창 정비중인 상태라 회사분위기는 다소 어수선했다. 그러나 회사의 소유주인 수지까지 참석한 회의실 분위기는 프레젠테이션 내용에서 엿볼 수 있듯이 매우 충실했다.
콘셉트만 잡혀있다고 하더니프레젠테이션을 담당한 여직원이 마지막에 한 말처럼 사업계획은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아마 새 소유주의 연인이 참여하는 신규 사업이라 총력을 기울여 준비한 모양이다.
“전 그럼 앉아서 여자들만 고르면 되는 건가요?”
“하하하하~~”
유명의 농담에 모두 가볍게 웃었다. 회장님의 연인에 대한 접대성 웃음일 수 있으나 표정과 손짓만으로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존재감 넘치는 남자의 말을 허투루 듣는 여자는 회의실에 없었다.
“뭐 개인적으로 원하는 거 있어?”
회장님이신 수지의 말에 모두의 신경이 유명의 대답에 쏠렸다. 그 대답이 곧 사업의 방향을 정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음… 알고 계실지 모르겠는데 제가 상식이 좀 부족해서 미성년자는 배우를 못한다는 걸 얼마 전에 알았거든요?”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어떤 아이디어나 의견이라도 좋으니까 편하게 말해.”
수지 다음으로 높은 지위인 루시의 말에 다른 여직원들의 표정이 더 진지해졌다. 유명은 지금껏 꿈꿔온 망상을 실현할 기회라는 생각에 큰 마음먹고 말했다.
“저랑 멤버들 관계를 진짜 주인과 노예처럼 하는 거 어때요? 아예 그런 조건을 내걸고 후보를 모집하는 거죠.”
회의실에 잠깐 침묵이 흘렀다. 유명은 너무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말했나싶어 수지의 눈치부터 살폈다. 그런데 여자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루시가 엉덩이를 들썩일 정도로 좋아하더니 애써 신중한 말투로 물었다.
“너 그래도 괜찮겠어?”
“잘 생각해 유명아, 그 조건은 한 번 정하면 되돌릴 수 없어.”
수지까지 심각한 표정으로 경고하고 나서자 뭔가 잘못됐나싶어 걱정이 됐다. 그때 루시의 지시에 다른 여직원이 일어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진짜 주인님이 되는 방식이 될 경우 발생할 문제를 말씀드리면, 법적으로는 그룹멤버들이 유명씨와 결혼한 상태가 됩니다. 즉 걸그룹이 거두는 모든 수익을 소유주인 주인님이 갖게 되는 거죠. 대신…”
“자…잠깐만요, 제가 말하는 주인과 노예의 개념은 그게 아닌데….”
깜짝 놀란 유명이서둘러 말을 끊었다. 성적인 상하관계이지 진짜 노예를 원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수지가 팔을 잡고 부드럽게 말했다.
“그런 거 아니니까 설명을 더 들어봐. 계속해요.”
“예, 회장님. 걸그룹이 거두는 모든 수익을 주인님이신 갖게 되는 대신 유명씨 역시 멤버들과 함께 활동을 해야 합니다.”
이 역시 바라는 바가 아니다. 대중들에게사랑받는 미녀걸그룹을 뒤에서 조종하는 주인으로서 성노예로 삼고 싶은 것이지 함께 노래 부르고 춤을 추겠다는 게 아니다. 그때 다른 여직원이 일어나더니 미리 준비해둔 영상을 띄우고 설명했다.
“유명씨께서 진짜 주인님이 되었을 때 하게될 활동을 대표적인 것만 말씀드리면, 결성 초기 때부터 멤버들 선발하고 노예로 조련하는걸 시작으로 데뷔하면 성생활이 포함된 Vlog나 뮤직비디오인터뷰 등이 있습니다.”
우려하던 활동은 아니라 유명은 일단 한숨을 돌렸다. 그런데 아이돌이 되려는 여자들이 과연 이런 막장 같은 걸그룹에 들어오고 싶을지 그게 의문이었다.
“이거 일방적으로저만 좋은 거 아닌가요?”
“아니 전혀 그렇지 않아.”
루시의 단호한 대답에 유명은 말문이 막혔다. 당황하는 반응을 예상했는지 옆에 앉은 수지는 그저 웃고만 있었다. 또 다른 여직원이 일어나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멤버 수에 따라 활동주기가 달라지겠지만 진짜 주인과 노예라는 관계를 증명하기 위해 멤버들과 주기적으로 섹스를 해야 하고 그 순간을 실황으로 중계하거나 영상으로 판매하게 됩니다.”
“………….”
이 대목에서 유명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멤버들과 섹스하는 거야 진심으로 원하는 바이지만 말이 주인님이지 포르노배우가 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일이아닌가. 이 걱정을 여직원이 추가설명으로 덜어준다.
“이 때 유명씨의 얼굴과 신분은 철저하게 비밀로 유지될 겁니다. 공개되는 것보다 그게 더 수익이 높을 거라는 시장조사결과가 있습니다.”
영상으로 각종 도표와 데이터들이 올려졌다. 수많은 아이돌들의 매출과 그 소유주들의 수익을 비교분석해놓은 자료였는데, 예전세상에서 10년이 넘는 직장생활을 한 터라 무슨 내용인지 단번에 알아봤다.
“걸그룹들은 대부분 개인소유로 운영되네요?”
관계자들이나 관심을 가질 전문자료를 알아보는 걸 보고 수지를 포함한 모든 여자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첫눈에 반해버릴 정도로 매력적인 남자이긴 하지만 속으로는 회장의 철없는 연인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한 지적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요즘 걸그룹들은 유명인들 특히 남자들의 개인소유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게 더 인기가 많고 수익 또한높기 때문이죠.”
“그럼 우리 기획하고 별 차이 없는 거 아닌가요?”
이번 지적에 대해서는 루시가 나서서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그렇게 볼 수 있는데 결정적인 차이가 있어.”
“어떤…?”
“저기 자료에 나오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활동 중인 아이돌은 포화상태야.네 지적대로 우리 기획과 비슷한 그룹까지 있을 정도니까.”
“……….”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너무 기대되어 유명은 자신도 모르게 군침을 삼켰다. 제발 자신의 바람에 부응해주길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루시가 새로운 영상을 띄우고 설명을 이어갔다.
“유명이 네가 진짜 주인님이 되면 우린 이 그룹을 철저히 두 얼굴을 가진 아이돌로 만들 거야.”
“두 얼굴… 그럼…?”
“그래, 평상시엔 평범한 걸그룹으로 활동하지만 실제로는 주인님에게 몸과 마음과 돈까지 모든 걸 다 바치는 노예인 거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만세를 부를 뻔했다. 이거야말로 자신이 진심으로 꿈꾸던 망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유명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으려고 애쓰며 물었다.
“그럼 포화상태인 시장에서 수익을 어떻게 거두려구요? 그리고 좀 전에 물었던 것처럼 저만 일방적으로 좋은 조건인 거 같은데 이걸 하겠다는 여자가 있을까요?”
“그게 바로 유명이 네가 할 역할이지.”
“……??”
“두 번째 의문부터 설명하면 현재 엔터테인먼트시장은 아이돌이 되기만 하면 만족하는 연습생들로 넘쳐날 지경이야. 엄마가 받는 연금에 회사에서 생활비를 주니까 너도나도 덤벼드는 거지.”
“……….”
이런 심리를 유명으로서는 아직 완전히 이해하는 게 힘들었다. 예전세상에서는 연예인이 되려는 이유가 개인적 성공에 따른 부의 축적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지 아이돌이 되는 게 인생의 목표라니, 자신조차 엄마가 받는 연금으로 여자친구와 함께 속편하게 살고 있긴 하지만 옆에 앉아있는 수지처럼 부자가 되면 더 많은 걸 누릴 수 있지 않은가.
“아무리 그래도 아이돌이 되기 위해 저한테 모든 걸 다 바친다는 게 저로선 이해가 안 되는데요?”
이 지적에 여자들이 어리둥절해하면서 잠깐 동안 말이 없었다. 유명의 사정을 아는 수지만 손을 꼭 잡아주면서 웃고 있을 뿐이었다. 전문적인 자료를 단번에 알아볼 때는 언제고 이런 기초적인 상식은 왜 모르는지 이해가 안 됐으나 루시는 최대한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음…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여자들은 저기… 유명이 너 같은 남자의 여자가 되는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경우가 많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아… 네에….”
유명은 바로 옆에 앉은 수지가 이 막대한 재산을 자신과 공유한 사실일 뒤늦게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런 걸 왜 결혼이라고 부르게 됐는지 또한 알 것 같았다.
“수익을 어떻게 거둘 것인가에 대한 설명을 하면, 우린 주인의 존재가 비밀인 만큼 노예 활동역시 비밀회원들에게만 제공할 생각이야. 이에 대한 시장조사역시 이미 해놓은 상태고.”
유명은 영상에 올려 진 도표를 보고깜짝 놀랐다. 최정상급은 아니지만 그에 버금가는 인기를 얻는 아이돌이 거두는 수익이 예상된다고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자료들이 새 소유주의 환심을 사기위해 과장 혹은 왜곡시킨 게 아니라면 꿈꾸던 주인님과 노예관계가 아니더라도 마다할 이유가 없는 사업계획이 아닌가.
자신을 바라보고 씨익 웃은 표정이 뭘 의미하는지 알아본 수지는 연인을 위해 뭔가를 해줄 수 있다는 뿌듯한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부하직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유명과 뜨거운 키스를 나눴다.
(다음 83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