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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화 〉(77화) 11. 체험 (78/130)



〈 78화 〉(77화) 11. 체험

(제 77 화)

[공습경보! 공습경보! 모든 훈련생들은 지금 즉시 전투복장으로 신속히 지하대피소로 이동하세요. 공습경보! 공습경보! 모든 훈련생들은…]

경보방송에 깜짝 놀라 일어난 유명은 전면 디스플레이에 관련 내용과 함께 시간이 새벽 4시라는 걸 확인하고 여자들을 흔들어 깨웠다.

“다들 일어나, 어서! 리아! 사라! 소피아! 비비안! 공습경보야, 빨리 일어나!”


어제저녁 식당에 들러 요령껏 챙겨온 음식으로 배불리 먹은 후 곧바로 곯아떨어진 바람에 다들 어렵지 않게일어났다. 여자들  가장 먼저 일어나 유명과 함께 속옷을 챙겨 입던 리아가 아직 정신을 못 차리는 사라에게 소리쳤다.

“서둘러 사라야! 공습경보래!”


“아우웅… 조금만 더 잘게…으응…….”

기본훈련복과 거의 동일한 타이즈전투복바지를  입고 상의를 손에 든 유명이 사라의 탐스런 엉덩이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어서 일어나!”

쨔악


“꺄악!”

얼마나 사정이 없었는지 뽀얀 엉덩이에 손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졌다. 대신 잠이 확 달아난 사라는 동료들의 행동과 디스플레이에 떠있는 경보방송을 보고 서둘러 일어났다.

“후이잉… 진짜 공습경보인가?”

사라는 속옷을 꺼내 입으면서 울먹였다. 예전에 학교에서 세아와 같이 대피훈련을 한 적이 있는 유명은 여자들이 묵묵히 서두는 것을 보고 전쟁 중인 세상에 살고 있다는 실감이 다시 들었다.

접착식으로 한 번에 착용이 되는 일체형전투화까지 신은 유명은 지하대피소 위치와 대피방법을 빠르게 숙지한 뒤 여자들이 전투복을 입는 걸 도왔다.


같은 타이즈이지만 전투복은 기본훈련복과 달리 조금 헐렁한 상태에서 빠르게 입은 뒤 이름표를 누르면 몸에 맞게 바로 줄어드는기능이 있었다.

유명은긴장한 여자들을 위해 가볍게 키스를 했는데 생각이상으로 효과가 있었다. 리아와 사라는 또래의 학생이라 긴장감이 덜했으나 소피아와 비비안은 학사장교지원자라  긴장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자 준비 다 됐으니 갈까?”


어제 섹스하면서 보여준 절륜함 때문인지 아니면 산악달리기 때와 저녁식사를 챙겨오던 모습 때문인지 여자들은 유명의 뒤를 따르며 연심과 다른 감정을 느꼈다.

산악달리기 때와 달리 대피는 일반훈련생들의 동작이 훨씬 빨랐다. 2차 성징한 훈련병들 중에선 유명일행이 가장 빨리 지하대피소에 도착했다.

훈련소의 지하대피소는 학교에서 경험한 훈련처럼 큐브를 타고 이동하는 게 아니라 5명씩 1개조로 함께 움직이면서 1개 층을 내려갈 때마다 개인물품을 보급 받아 전투무장을 하는 식이었다.


영화에서 보던 지하벙커와 같은 곳에 도착했을 땐 팔꿈치와 무릎보호대에서부터 생존용품이 든 전술배낭과 장갑 그리고 디스플레이와 통신기능이 있는 투명 헬멧까지 착용한 상태였다.

[이동! 헬멧에 표시되는 화살표를 따라 조별로 이동해, 어서!]

헬멧을 통한 통신으로 명령이 내려지자 훈련병들은 빠르게 이동을 시작했다.  맞춰 앉아 인원을 확인하는 절차 같은 건 할 필요 없이 각 정보들이 실시간으로 체크되고전달되었다.


예전 세상에 살던 기억이 남아있는 유명은 자기여자들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계속 살피고 챙겼으나 조원들의 위치정보가 헬멧에 표시되고 있어서 사실상 필요 없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 행동은 여자들에게 큰 안도감을 선사했다.


[우리 어디 가는 건데? 진짜 공습인 거야?]

사라의 불안한 통신이 있기 무섭게 지하대피소가 흔들리더니 위에서 폭발음 같은 게 들렸다.


쿠구구구궁 쿠궁 쿠구궁

“꺄아아악!”

이제 하루가 지난 훈련병들이니 비명을 지르는 게 당연했다. 사라는 물론이고 다른 여자들까지 유명의 품에 와락 안겼을 정도니 다른 훈련생들의 상태는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여긴 안전하니까 다들 진정해! 지금 상황을 파악 중이니  관련 정보가 업데이트될 거야. 다들 서둘러! 이동!]

격앙된 목소리이긴 했으나 여상관은 비교적침착한 말투로 통신을 통해 명령을 내렸다. 덕분에 훈련병들은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다시 이동했다. 폭발음이 들리기 전과 달라진 점은 조원들끼리 손을 꼭 잡고 있는 것이었다.

유명일행은 아예 서로 팔짱을 끼고 이동하고 있었다. 사라가 유명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는 바람에 정작 여자친구인 리아는 팔짱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수송선은 5개조 25명씩 탑승한다. 도착한 조부터 신속히 탑승!]


통신명령에 따라 도착한 곳에는 훈련소로 올  탔던 수송비행체와 동일한 수송선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뒤쪽이 어두워 출구가 따로 보이지 않았으나   비행체 수십 대가 들어올 정도면 따로 마련되어 있을 게 분명했다.

[수송선 001호 전원 탑승완료!]
[수송선 001호 출입구 닫습니다!]


연이은 통신보고에 이어 V계급장을  여하사들이 빠르게 돌아다니면서 훈련병들이 안전띠를 제대로 착용했는지 일일이 확인했다.

[수송선 001호 출발준비 완료!]
[출발!]

그르르릉


훈련소로  때보다 소리와 진동이 더 심하게 들렸다. 신속하게 이동하기 위해 그런 것으로 짐작할 뿐 이유는  수 없었다. 1열로 자리 잡은 유명일행은 옆 사람과 손을 꼭 잡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쓩쓩쓩 쿠구구궁 삑삑삑삑

정체를  수 없는 기계음과전자음이 여기저기서 들리더니 수송선이 더 심하게 흔들렸다. 여기저기서 훈련병들의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꺄아아악!”

쓔우우우웅 콰과가가가가콰쾅

[수송선 002호 대파! 추락한다!]
[적 위치 미확인! 공격지점 추적불가!]

푸슈우우우우우웅 슈우우웅 쿠쿵 콰콰쾅 콰쾅

“꺄아아아아악!!”

[수송선 006호완파! 완파!]
[각 수송선 산개하라! 산개하라!]


콰콰쾅 쿠쾅 푸슈우우웅 쾅쾅 슝슝

정신을 차릴  없을 정도로 온갖 소리와 통신이 터져 나왔다. 여기에 훈련병들의 비명소리까지 섞이자 수성선 내부 분위기가 최악으로 치달았다.

[흐흑 엄마아… 우와아아앙 흐아아아앙]

사라가 울음을 터뜨렸다. 유명이 손을 더 쌔게 잡아줬음에도 불구하고 진정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소피아는 어떻게 견뎌내는 것처럼 보였으나비비안과 심지어 리아까지 거의 울기 직전인 상태였다.

[다들  봐! 리아! 사라! 소피아! 비비안!  봐! 내 상태가 어떤 거 같아? 어서 말해봐!]

유명의 말에 여자들의 시선이 쏠렸다. 1열로 서 있어서 다 같이 눈길을 주고받을 순 없으나 묶여 있는 게 아니라서 고개를 내밀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볼 순 있었다.


[괜찮아… 보여….]
[흐이잉… 유명아아…….]
[넌 긴장도 안 되니?]
[후우우… 너 덕분에 견딜 만 해….]

마지막 비비안의 말에 공감하는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사라도 울음을 그치더니 눈물을 삼켰다. 수송선은 여전히 심하게 흔들렸으나 소음은 잦아든 상태라 내부 분위기까지 진정되고 있어 빠르게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너희들을 다 지킬게! 나만 믿어!  여자들절대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

정식 지원자도 아닌 직업체험으로 훈련소에 온 16살짜리 남자애의 다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만 이 순간 여자들은 유명의 말에  감명을 받았다.


“다들 힘내자! 훈련이면 무사히 돌아갈 거고, 실제상황이면 우린 아직 살아 있잖아! 교관님과 조교님을 믿고 명령에 신속히 따르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야! 다들 힘내!!”

유명이 큰 소리로 외치자 수송선에 있던 모든 남녀가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그러더니 서로 눈길을 주고받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힘내자!”
“모두들 힘내!”
“힘내자!!”

남녀 가릴  없이너도나도 소리를 지르고 격려하기 시작했다. 밖에서 들리는 끔찍한 소음이 훈련생들의 목소리에 묻혀버렸다.

[수송선 001호는  지구정거장에 도착합니다. 공습으로 인해 현재 산소공급과 인공중력이 차단된 상태이니 탑승자들은 상관의 지시에 따르십시오.]

‘지구정거장’이란 말에 유명의 머릿속에 혜리가 떠올랐다. 이유가 궁금해 고개를 돌리니 리아가 바로 알려준다.

[엄마가 훈련소로 옮기기 전에 근무하던 곳이 지구정거장이야.]

[아! 맞다, 그랬지!]

이럴 줄 알았으면 어떤 곳인지 물어서 알아둘 걸 잘못했다고생각하려는데 혜리를 시작으로 지구에 남아있을 자기여자들의 얼굴이 차례로 생각났다.

울컥 울음이 나오려는 걸 유명은 입술을 꽉 깨물고 참았다. 주변 어른들  제치고 나서서 힘내자고 해놓고 이제 와서 울어버리면 뭐라고 하겠는가. 하지만 가슴이 찢어지는 것처럼 따끔거리고 아팠다.


지금이 가상훈련이 아니라 실제상황이라면 그 예쁘고 사랑스런 여자들을 다시 만나지 못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다시 울컥하려는  유명은 자신의 역할이 옆에 있는 여자들을 지키는 것이란 생각에 리아와 사라의 손을 꽉 움켜쥐면서 참아냈다.

그러나 가진 게 몸뚱이뿐인데 무슨 수로 여자들을 지킨단 말인가. 자부심마저 느끼던 절륜한 몸이 이렇게 아무짝에 쓸모없을 줄이야. 격투시합 준비한다고 운동마저 안 했으면 어쩔 뻔했나. 미워죽겠던 휘신이 고마울 지경이다.


[지구정거장에 도착하면 산소발생기가 지급될 것이다. 전술벨트 아무데나 부착하면 헬멧으로 산소가 공급된다. 중력은 없으나 전투화가 바닥에 밀착시켜주니 양발이 다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해라.]

책임자인 여소위의 통신에 이어 관련된 정보가 헬멧 디스플레이에 표지되자 유명은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 상황에서 자책만큼 필요 없는 생각이 없다.


[지금은 통신이 두절됐지만 사령부에서 받은 마지막 명령은 지구정거장에도착하는 즉시 모든 훈련병들은 제1선착장에 정박해있는 엘리시움호로 향하란 것이었다.]

여소위의 통신에 유명을 포함한 훈련병들은 마른 침을 삼켰다. ‘엘리시움’이 무슨 역할을 하는 함선인지 관련 정보가 나오지 않는  답답했으나 최소한 목적지는 명확했다.


[지구정거장에 도착했습니다. 출입구가 열리면 무중력상태가 되니 주의하십시오.]

안내방송이 끝나자마자 바로 출입구가 열렸고 훈련병들을 지휘하기 위해 장교와 사관들이 먼저 하선했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굉음이 터졌다.


슈슈수수숭 쓩쓩 파바바박 파박 파바박


“…………??!!”

훈련병들은 안전띠를 풀 생각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버렸다. 레이저빔 같은 붉은색 광선이 쏟아지면서 지휘관들이 비명조차  지르고 사라져버린 것이다.


유명은 책임자였던 여소위와 하사 2명이 광선에 맞아 먼지처럼 터져버리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다른 훈련병들과 마찬가지로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콰콰콰콰쾅 파바바바박 콰쾅 쿠구구궁


다시 굉음이 들리더니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때 출입구를 바라보고 서있던 한 남자훈련병이 고개를 이러저리 내밀고 살피더니 소리쳤다.

“터미널이 난장판이긴 한데 아무도 보이지 않아!”

가장 먼저 반응한 훈련병은 유명이었다. 자신의 안전띠를 푼 뒤 리아와 사라 순서대로 안전띠 푸는 걸 도와주고 서둘러 출입구 쪽에 가서 몸을 숨겼다. 다른 훈련병들 역시 그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했다.

[다친 사람 있어요?]

유명의 통신에 다들 둘러보더니 다행히 고개를 저었다. 처음 겪어보는 엄청난 상황이라 공포에 질린 데다 중력까지 없어 달라붙어있는 바람에 따로 살펴볼 필요가 없었다. 소피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유명아 어떻게 하지?]

[명령에 따라야죠.]

당연한 대답이지만 이제 2일차인 훈련병들이라 명령이라는 말이 주는 무게와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했다. 귀엽게 생긴 일반훈련병이 잔뜩 겁을 먹은 얼굴로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그냥 지구로 되돌아가면 안 돼?]


[맞아… 우리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나…나도 같은 생각이야…]


몇몇이 동조하고 나서자 훈련병들의 표정에 공포감이 더 퍼져나갔다. 그걸 알아본 유명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수송선 다룰 줄 알아요? 이게 우리 생각대로 움직인다면 저도 돌아가는 의견에 찬성이에요.]

그러자 친구인 바구스가 연상되는 총명하게 생긴 조그만 남자훈련생이 헬멧을 톡톡 치더니 고개를저었다.


[이 수송선에 대한 정보가 검색되는데… 사관이상의 허가된 책임자가 아니면 운용이 불가능하다는데?]

[그럴 줄 알았어요. 그렇다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당장 두 가지라고 생각해요. 첫째는 통신을 시도해 지휘관을 찾는다. 둘째는 명령을 따라 제1선착장으로 간다. 어때요?]


유명의 말에 유명일행을 포함한 훈련병들이 헬멧을 조작하더니 가지고 있던 휴대폰까지 꺼내 통신을 시도했다. 조금 전 수송선 정보를 검색했던 그 남자훈련병이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통신이 안 돼, 아예 모든 채널이 막혔다고 나와. 휴대폰 되는 사람 있어?]

훈련병들 중 유일하게 유명만 눈빛과 표정이 멀쩡했다. 그걸 보고 리아와 사라는 존경에 찬 표정을 소피아와 비비안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목적지는 정해졌네요. 혹시 남고 싶은 사람 있어요?]

확신에 찬 목소리에 아무도 이견을 말하지 않았다. 유명은 어느새 25명의 훈련병을 지휘하고 있었다.



(다음 78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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