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6화 〉(75화) 11. 체험 (76/130)



〈 76화 〉(75화) 11. 체험

(제 75 화)




“오래 걸렸네, 큰  였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얼굴에 꽃이 핀 것처럼  예뻐진 사라가 눈치 없이 하는 말에 소피아가 욱 하려는 걸 비비안이 얼른 나서서 막았다.

“그냥 주변  둘러봤어, 무슨 좋은 일 있었어? 웃음을 못 참네?”

“헤헤~ 저 유명이랑 키스했어요. 첫 키스였거든요.”


겨우 키스만 한 사이면서 뭐가 그리 좋은지 팔짱까지 끼고 미련할 정도로 큰 젖가슴을 비벼대는 꼴이 눈꼴셨으나 언니 된 입장에서 질투만큼 보기 싫은 게 없다.


“어머 그래? 좋겠다~”


콧방귀와 함께 고개를 돌려버리는 소피아와 노골적인 접대용 말투인 비비안의 반응을 보고 유명은 속으로 난처했다. 어차피 1주일 후면 헤어질 사이라 그냥 모른 척하면 그만이겠으나 방장으로 네 여자를 책임져야  입장이라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유명의 이 책임감 넘치는 생각은 엄밀히 말해서 착각에 가깝다. 남자훈련생을 방장으로 4명의 여자훈련생과 한방을 쓰게하는 이유는 훈련 중에 포기하지 않길 바라는 매우 단순한 의도이기 때문이다.

[1부 입소식에 이어 2부 오리엔테이션이 곧 시작됩니다. 아직 자리로 돌아오지 않은 훈련병이 있다면 서두르세요.]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되지 않은 때문인지 입소식 전에 남자상관의 목소리를 제외하면 교관과 조교들의 지휘나 안내방송 등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으로 친절하고 부드러웠다.

유명은 여자들과 함께 생활을 하는 것보다 이런 게  낯설게 다가왔다. 언제 불벼락이 떨어질까 은근히 기대하고 있긴 한데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되자  기대마저 조금씩 줄어들었다.

[경례는 계급에 관계없이 헌신에 대한 존중과 존경의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자 모두 일어나서 옆 동료와 함께 차례로 해보시고 영상과 다른 점을 말해주세요.]

오와 열을 맞춰 연병장에 서서 몇 십번 몇 백번에 걸쳐 죽어라 반복했던 경례를 이렇게 여자들과 마주보고 소꿉장난하듯이   몰랐다. 더구나 젖가슴을 출렁이면서 자신을 향해 경례하는 여자친구라니.


“팔꿈치가 너무 올라갔어. 영상을 보면 검지가 눈썹 근처에 오게 자연스럽게 올리면 돼.”


“응, 알았어. 다시 해볼게.”


유명의 지도에 쌩긋 웃으면서 다시 경례하는 리아의 섹시한 자태에 뜨거운 콧김이 훅 나왔다.  이은 사라와 소피아 그리고 비비안까지 별다른 동작이 아닌데 왜 이렇게 섹시해 보이는 걸까.


경례동작과 함께 경례는 상급자에게 무조건  필요 없이 아는 상대에게만 하면 되고 ‘충성’과 같은 구호 없이 인사처럼 아무나 먼저 하면 된다는 걸 알게 됐다. 유명은 이 경례 하나 만으로 군대생활에 대한 스트레스가 확 줄어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례 외에 알고 있던 수많은 군대문화가 없어지거나 바뀐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는데, 철저한 상명하복의 군대이긴 하지만 강당에서 느낀 분위기대로 통합우주군 자체가 결코 독단적이고 경직된 조직이 아니었다.

[이로서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겠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점심식사까지 자유시간이지만  날이니만큼 되도록 생활관에서 룸메이트들과 머무르길 권합니다.]


안내방송과 함께 공식행사가 모두 끝나자 자동으로 꺼졌던 휴대폰이 켜지면서 전화와 메시지가 쇄도했다. 생활관으로 향하는 훈련병들은 가족이나 친구들과 소식을 주고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직장에서 온 업무 메시지 외에 광고나 정부의 안전안내문자가 전부였던 시절이 문득 생각난 유명은 자기여자들의 영상메시지가 한가득 들어와 있는 휴대폰을 보고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비슷한 처지인 마야, 린, 혜리는 환한 미소와 함께 간단한 아침인사와 키스를 보냈고, 세아와 아이샤는 학교와 연구실을 배경으로 유혹하는 영상을 찍어서 보냈다. 유리는오빠를 응원하는 외침과 함께 동료선수들과 단체로 엉덩이와 젖가슴을 흔드는 영상을 보냈다.

가장 많은 수의 영상메시지를 보낸 여자는 수지였다. 언제 찍었는지 아침발기를 해소해주는 장면에서부터 출근하던 차 안과 회사에 도착해 직원들과 회의하는 동안 몸에 남아있는 정액이 어떻게되는지 상세하게 기록한 영상은 함께 보던 리아가 고개를 돌렸을 정도로 음란하기 짝이 없었다.


“아… 유명이는 좋겠다…….”

생활관에 도착하자 침대에 널브러진 소피아가 한탄을 토하자 비비안까지 그 옆에 몸을 던지더니 한 마디 거들었다.

“리아  명이라면 어떻게 될 줄 알았는데 네 여자들 보니까 우린 안 되겠다…. 사라도 꿈 깨는 게 어때?”

“………….”


사라는 눈치를 살피더니 아무 대답 없이 비비안 옆에 슬그머니 누워버렸다. 세 여자의 행동은 멋진 몸매만큼 악의는 보이지 않았으나 분위기는 그리 밝지 않았다.


“이거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는  아냐?”

걱정된 얼굴로 조용히 묻는 유명에게 리아는 쌩긋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냥 놔둬, 어차피 저녁 되면 다 잊어버릴 거야~”

“리아 너 그게 무슨 말이야? 저녁에  다 잊어?”

역시 성격대로 소피아가 빨딱 일어나 앉으면서따졌다. 디스플레이로 식당 위치와 식사 순서를 검색하던 리아는 뒤로 쳐다보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저녁 되면  알게 돼요. 우리가 가장 먼저 먹네? 군대급식은 어떨까?”

유명이 대꾸하려는데 어느새 일어나서 다가온 사라가 불쑥 끼어들더니 리아의 팔을 붙잡고 사정했다.


“다 알게 되다니 뭘? 리아야 말해죠 응?”

“나중에  알게 된다니까~”

“아이잉 지금 말해죠 제바알~~”


폴짝폴짝 뛰는 사라의 먹음직스런 젖가슴과 엉덩이를 훔쳐보던 유명은 자신을 향한  여자의 강렬한 눈길을 느꼈다. 도둑이  발 저린 격이라 머쓱한 미소를 지었는데 웃어넘기는 비비안과 달리 소피아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리아야  지금 심각해. 무슨 뜻인지 어서 말해줘.”

“하하 어색하게 다들 왜 그러세요? 리아는 별 뜻 없이 이야기한 거예요. 우리 정식으로 인사  했죠? 점심 먹으러 가기 전에 자기소개부터 하죠.”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나섰으나 소피아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사이가 좋아 늘 웃음이 끊이질 않던 자기여자들만 상대하던 유명은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내 소개부터 할게, 알다시피  이름은 비비안이고 이란하고 인도인 피가 섞이긴 했는데 서울태생이야. 나이는 20살이고 시립예술대학교에서 무용을 전공하다 학사장교가 되려고 지원했어. 다음은 소피아가 해.”


비비안이 먼저 나서서 자기소개를 하자 다행히 분위기가 바뀌었다. 옆구리를  찔린 소피아가 한숨을 쉬더니 마지못해 말했다.


“이름은 알지? 아빠는 한국계인데 아일랜드계 엄마가 파리에서 날 낳았어. 소학교 들어가기 전에 서울로 와서 프랑스어는 다 잊어 먹었어. 나이는 19살이고 시립체육대학교 바이애슬론전공인데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홧김에 학사장교로 지원했어.”

“헤어진 거 맞아?”

“그래, 버림받았어! 됐니? 우이 씨…”


비비안의 장난에 곧바로 버럭 한 소피아는 침대에 털썩 엎드려버렸다. 그 모습에 다들 웃음을 참느라 손으로 입을 가려야했다. 사라가 가운데 나서더니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말했다.

“안녕하세요, 전 사라입니다. 나이는 유명이랑 같은 16살이구요. 북서중학교에 다녀요.”

“너도 혼혈 같은데 어디 계열이야?”

유명이 물어줘서 감동을 받았는지 사라는 활짝 웃더니 발랄하게 대답했다.


“아빠가 스페인계였는데 엄마는 한국계라 서울에서 태어났어. 스페인어는 하나도 모르니까 묻지 말아죠.”


천진난만하다 못해 푼수기까지 엿보이는 사라의 대답에 다들 기분 좋게 웃었다. 소피아까지 일어나 앉아 큰 소리로 웃어준 덕분에 훨씬 화기애애해졌다. 기세를 타고 리아가 나섰다.

“전 리아구요, 분위기 어색하게 만들어 죄송해요. 유명이랑 같이 동서울중학교 다니고 16살입니다. 엄마가 일본계 혼혈인데 아빠가 한국계라 혼혈이라 하기엔  부족하죠? 아시다시피 유명이 여자친구입니다.”

“흥!!”


마지막 여자친구라는 소개에 소피아, 비비안, 사라가 동시에 콧방귀를 꼈다. 분위기가 또 어색해질까 두려워 유명이 얼른 나섰다.

“저기… 리아 남자친구 유명입니다.”

“흐응!!!”

세 여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콧방귀를 강하게 꼈는데 덕분에 분위기가 유쾌해졌다. 다들 큭큭 거리는 걸 보고 유명이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었다.


“윽… 내 심장…!”
“아… 어쩜…….”
“꺄아아~~”


이번엔 감탄 섞인 신음을 동시에 흘렸다.  여자의 얼굴이 붉어지는 걸 보고 유명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쉬었다. 리아 말대로 그냥 놔두면 해결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어… 학교나 나이는 리아랑 사라가 말해버렸고… 나도 혼혈이야?”


“그런   들었어. 엄마랑 아빠가 친남매였으니까 한국계겠지?


순수 한국계 남자라는 리아의 대답에 세 여자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이유를 유명은 아직 모른다. 그때 비비안이 리아에게 물었다.


“리아 너 말하는  보니까 둘이 학교에서 만난 사이가 아닌가봐?”

“예, 저희 소학교 다니기 전부터 단짝이었어요. 제 첫사랑이죠.”

리아의 자랑에 가장 격렬한 반응을 보인 건 소피아였다. 다시 침대에 엎어지더니 주먹으로 팡팡 치면서 다리를 굴렸다.


“우이 씨… 부러워! 내 꿈이었는데!!”

“너희들 진짜 재수 없다…….”

비비안의 말은 부러워서 나온 탄식이다. 사라는 특유의 반응인 두 손을 모으고 큰 눈을 반짝거리고 좋아했다.

“우와~너무 멋지다아~!  소꿉친구는 인형뿐이었는데… 리아는 너무 좋겠다~”

“응, 너무 좋아~”

이어 어릴 적 추억을 리아가 자랑삼아 늘어놓기 시작하자 세 여자는 귀를 기울이고 들으면서 재미있어하더니 유명이 기억을 잃은  성격과 취향이 바뀌어 다시 섹스한 대목에선 박수까지 치면서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



점심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향한 유명일행은 기대 이상으로 훌륭한 시설에 놀라고 급식의 수준과 맛에 다시 놀랐다. 학교식당과 마찬가지로 상하급자 구분 없이 같은 식당에서 식사하는 게 인상적이었고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다음 차례를 위해 빠르게 먹고 나와야 하는 정도가 단점이었다.


 식사까지 함께 마치고 나오자 5명의 룸메이트들은  이전에 비해 가까워져있었다. 남자처럼 털털한 성격의 소피아는 리아와 죽이 잘 맞았고 자상한 비비안은 덜렁이인 사라를 잘 챙겼다.

휴식 겸 산책을 위해 훈련소 주변을 거닐 던 유명일행은 다른 훈련생들에 비해 자신들의 관계가 좀 다르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2차 성징 여부와 관계없이 방장인 남자를 중심으로 여자들이 일사분란하게 졸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이상한 건가?”

남자를 거의 주인 모시듯 하는 어느 일행을 보고 소피아가 하는 말에 리아가 거들었다.


“그러게요,  아는 사이인가?”

“왜 저러겠어, 섹스한 사이라서 그렇지.”

비비안의 말에 사라가 놀란 표정으로 유명의 눈치를 살피고 말했다.

“벌써 섹스를요? 그럴 시간이 있었나요?”


“시간이야 충분했지. 입소식 사이 휴식시간에 화장실은  마다 난리가 아녔어. 입소식 끝나고 나서 자유 시간까지 있었잖아.”


소피아의 해석에 리아가 조금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섹스를 해요? 우리유명이는…….”

리아는 하려던 말을 삼켜야했다.세 여자가 쳐다보는 눈길이 굉장히 강렬했기 때문이다. 소피아가 콧김을  뿜고 물었다.


“유명이가 뭐?  사실대로 말 안 하면 혼날 줄 알아!”

“아…아니… 그게….”


리아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여자인지 알았다면 하지 않았을 겁박이지만  여자가 한마음으로 달려드는 분위기라 꼼짝없이 이실직고해야할 상황이다. 비비안이 넌지시 물었다.

“눈치를 보니까 유명이가 섹스를 엄청 잘하는 거 같은데, 맞지?”


“언니들 그만해요, 리아가 곤란해 하잖아요. 그런 게 뭐 중요하다고 그러세요.”

원래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법이다. 두 언니의 따가운 시선이 사라에게쏠렸다. 소피아가 흘러내린 빨강머리를 신경질적으로 쓸어 올리고 말했다.

“사라 넌 이런 엄청난 몸을 가지고 그렇게 말하면어떡해? 남녀사이에 섹스가 얼마나 중요한데!”

“사라야, 이렇게 잘생긴 유명이가 섹스까지 잘한다고 상상해봐. 지금 직업체험이나 훈련이 문제가 아냐.”


비비안의 말에 사라의 표정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백치미 가득한 얼굴에 성욕으로 물드는 모습이 리아와 닮아 더 유혹적이었다.


대화가 의도치 않게 야릇한 쪽으로흐르자 리아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곤경에 빠진 여자친구를 위해 뭔가 한 마디 하자니 자랑이 될 거 같아 쑥스럽고  하자니 비겁한 거 같아 유명은 답답했다. 그때 소피아가 해결책을 내놨다.

“유명이 너 저쪽으로 가 있어, 어서!”

“네? 아…아니 그래도 제가 방장인데….”

“너 누나 말 안 들을 거야? 어서 안 가?”

‘누나’는 유명에게 마법의 단어다. 첫 여자인 마야와 그의단짝인 린에게 엉큼한 의미로사용하던 단어라 효과가  크다. 그리고 소피아정도 되는 미녀누나가 허리에 팔을 턱 얹고 명령을 내리면 무조건 따라야하는 법이다.

유명이 멀찍이 떨어지자  여자는 얼굴을 맞대더니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쭈뼛거리고 망설이는 거 같던 리아는 조금 있으니 흥분된 얼굴로 신나게 말하고 있었다.

남자경험이 있는  같은 소피아와 비비안은 벌어진 입을 손으로 가리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사라는 새빨개진 얼굴로깜짝깜짝 놀라면서 연신 유명을 쳐다봤다.


이제  반나절 지난 군대체험이 이런 식으로 진행될 줄이야.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상황은 정말예상을 벗어난 수준이다. 유명은 앞으로 1주일 동안 자신이 생각하던군대를 과연 경험할  있을지 그게 걱정이었다.




(다음 76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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