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74화) 11. 체험
(제 74 화)
우연찮게 참여하게 된 직업체험에서 미래세계의 군대를 접한 첫인상은 꽤 흥미롭고 신기하다였다. 이동시 탑승했던 수송비행체나 각종 첨단시설 등은 처음 보는 것들이라 관심이 안 갈 수 없었다.
그러나 이 군대체험을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건 그 무엇보다 남녀가 함께 한다는 것이다. 예전 세상 기준으로 여고생에 해당하는 여자친구와 1주일 동안 함께 생활한다는 사실만으로 유명의 관심과 기대는 충만한 상태였다.
하지만 리아, 소피아, 비비안, 사라와 함께 도착한 2층 1호실은 기억하고 있던 군대생활관과 큰 차이 없어 기대에 못 미쳤다. 방문과 마주보고 있는 벽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창으로 아침햇살이 환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것 정도가 인상적이었다.
처음엔 옛날 군대에서나 사용하던 구형 침상인 줄 알았는데 창가 쪽 벽에 맞춰 설치되어 있는 건 초대형 침대였다. 1인용을 5개 붙여 놓은게 아니라 통으로 1개짜리였다.
“와아~ 이렇게 큰 침대는 처음 봐~”
리아의 손을 꼭 잡고 있던 사라가 먼저 침대에 몸을 던졌다. 엄청나게 풍만한 몸이 사정없이 출렁일 정도인 걸 보면 침대의 품질은 좋은 것 같았다.
“이게 사물함이겠네요. 제가 문 쪽에 있는 걸 쓸게요.”
지문으로 인식하는 개인사물함 각 칸 앞에 들고 온 전술배낭을 놓고 자신의 짐부터 알아서 정리하는 유명의 행동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소피아가 사라를 따라 침대에서 뒹굴고 있던 리아를 불렀다.
“너 리아라고 했지?”
“예.”
길게 웨이브로 늘어뜨린 빨간 머리가 매력적인 소피아는 마야가 연상되는 백인혼혈로 아이샤만큼 탄력 넘치는 몸매가 돋보였다.
“쟤 진짜 동급생 맞아? 오빠나 아빠 아냐?”
“예? 풉!”
리아만이 아니라 유명을 도와 짐 정리를 하려던 비비안과 뽀얀 엉덩이를 다 까놓고 엎드려있던 사라까지 웃음을 터뜨렸다.
“와하하하하~”
“아니 다들 왜 웃어? 16살짜리 남자애가 학사장교 되려고 온 나보다 적응 잘 하는 게 안 이상해?”
“하하 네 말이 맞아, 유명이 너 진짜 16살이야? 직업체험이 아니라 재입대 아니니?”
비비안이 거들어주자 소피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데 그 귀여운 반응이 도도해보이던 인상을 푼수기로 바꿔버렸다. 유명은 자신의 숨겨진 면을 알아봐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씽긋 웃었다.
“저 리아랑 동갑 맞아요. 그냥 체질인가 부죠 히히~”
군대라면 지긋지긋했는데 체질이라는 말까지 쓰게 될 줄이야. 주변 환경이나 시설, 도구 등 모든 것이 생소한데도 불구하고 유명의 행동은 막힘이나 주저함이 없었다.
이런 남다른 모습은 오늘 처음 만난 사이인 소피아, 비비안, 라사는 당연하고 매일같이 몸을 섞는 리아에게까지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침대 맞은 편 전면 디스플레이에서 재생되고 있는 안내영상을 그대로 복사한 것처럼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는 사물함을 보고 모두들 혀를 내둘렀다.
[훈련병들은 30분 뒤인 10시까지 개인물품 정리를 끝낸 후 기본훈련복으로 갈아입고 강당으로 집합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립니다. 훈련병들은…]
반복된 안내방송이 끝나자 전면 디스플레이의 영상이 기본훈련복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착용하는지, 강당은 어딘지에 대한 내용으로 바뀌어서 재생되었다.
길면 10분 짧으면 5분 정도의 짧은 시간만 허락되던 분위기에 익숙했던 유명은 괜히 서둘렀나싶어 한숨을 돌렸다. 그런데 리아를 포함한 여자들이 정리하는 걸 보고 30분이 딱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벌써 다 갈아입었어? 동작이 너무 빠른 거 아냐?”
이제 옷을 다 벗고 군용 T팬티를 꺼내 입던 소피아가 군화까지 완벽하게 착용하고 침대에 앉아있는 유명을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소피아가 느린 게 아니구요?”
유명이 친근하게 이름을 불러준 것과 상관없이 여자들은 동시에 움찔했다. 리아는 그나마 팬티에 스포츠브라까지 입는 중이었으나 비비안은 알몸으로 막 팬티를 꺼내 들던 중이었고 사라는 입고 온 속옷마저 다 벗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너 진짜 군대 처음이야? 남자나 여자나 똑같은 군복인데 쟤 왜 저렇게 빨라?”
소피아의 지적과 같은 마음이었으나 여자들의 동작이 빨라졌다. 사라는 급한 마음에 서두르다 옆에서 타이즈바지에 다리를 집어넣고 있는 리아의 엉덩이에 얼굴까지 부딪쳤다.
혜리가 생각날 정도로 풍만함을 자랑하는 사라가 T팬티 옆으로 삐져나온 음모를 어떻게 정리해야할지 고민하다 리아에게 슬쩍 물었다.
“리아야, 유명이가 평소에도 저러니?”
“글쎄… 나도 저런 모습은 처음 봐, 집에선 항상 느긋한 편이거든.”
리아의 대답에 다른 두 여자가 관심을 보였다. 소피아와 눈길을 교환한 비비안이 타이즈상의를 입기 전에 넌지시 물었다.
“너희들 한집에서 살아? 그냥 사귀는 사이 아녔어?”
“사귀는 사이 맞는데 요즘은 엄마랑 같이 유명이 식구랑 한집에서 지내요.”
서두르다 앞뒤를 바꿔 입은 걸 알아차린 소피아가 타이즈바지를 다시 벗으면서 물었다.
“그럼 같이 지내는 식구가 전부 몇 명인데?”
“우리 둘 포함해서 모두 다섯이요, 근데….”
리아는 마야와 린 그리고 아이샤와 수지의 사정까지 이야기해주려다 말을 삼켰다. 소피아와 비비안의 얼굴에 실망하는 빛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사라가 스포츠브라에 거대한 젖가슴을 겨우 집어넣고 해맑게 웃었다.
“다섯 식구가 한집에 지낸다구? 와~ 좋겠다…, 난 엄마랑 둘만 살아서 식구 많은 집이 부러워.”
“남자친구는?”
여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질문한 유명에게 쏠렸다. 순식간에 얼굴이 새빨개진 사라가 보여줄 거 다 보여준 몸을 슬그머니 가리더니 고개를 숙이고 겨우 대답했다.
“어…없어…….”
리아가 난처한 표정으로 사라의 안색을 살피는 것과 자신을 그윽하게 바라보는 소피아와 비비안의 눈길을 보고 유명은 방안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남자친구의 유무를 묻는 게 여자들 간에는 굉장히 실례되는 행동이지만 남자가 묻는 건 상대에게 관심 있다는 의미라는 걸 유명이 아직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
진녹색의 기본훈련복은 상하의 분리형 타이즈로 신축성과 착용감이 놀랍도록 뛰어난 것에 반해 속옷이 비쳐서 알몸에 바디페인팅을 해놓은 것처럼 보였다.
거의 비슷한 형태의 타이즈인데 그 위에 이름표와 계급장 그리고 부대마크와 각종 기장에 팔꿈치와 무릎 보호대까지 부착하고 있어서 그런지 교관과 조교들은 상당히 멋있어 보였다.
극장 형태의 강당은 훈련소 수용인원에 딱 알맞은 규모로 시설이나 구조가 훌륭했다. 교관과 조교들은 탄탄한 몸매를 자랑하듯이 당당한 자세로 벽을 따라 서있었고 그 가운데 수백 명의 훈련병들이 자리를 잡았다.
양 옆에 리아와 사라를 끼고 앉은 유명은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경험에 대한 기대로 살짝 조바심이 났다. 그 흥분된 기분을 주변 여자훈련생들의 그윽한 살 냄새가 살며시 진정시켜주고 있었다.
“모두 일어섯!”
처음으로 군대다운 우렁찬 남자목소리가 들렸다. 훈련병들은 비교적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자세를 바로잡았다. 사이사이 남자들이 끼어 있긴 했으나 맨살이나 다름없는 여자들의 엉덩이가 눈앞에 쭈욱 펼쳐지는 것을 보고 유명은 입맛을 다셨다.
“너 발기하면 큰일 나….”
때맞춰 들린 리아의 속삭임에 쿡 숨을 삼켰다. 어쩌면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바로 알아차리는 것일까. 유명은 키스를 퍼붓고 싶은 걸 겨우 참고 여자친구의 엉덩이를 슬쩍 움켜잡았다.
“꺅!”
단발 비명에 주변 훈련병들의 시선이 일제히 누군가에게 쏠렸다. 여자친구의 엉덩이를 몰래 만진다는 게 반대쪽 옆에 서있던 사라의 엉덩이를 움켜쥐어버린 것이다.
“거기 조용! 입소식이 곧 시작된다. 이 시각부터 잡담과 장난은 일체 허용되지 않는다. 전체 차렷!”
확실히 힘 있는 남자의 목소리라 영향력이 달랐다. 훈련생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얼른 자세를 잡았다. 양옆에 있는 리아와 사라의 젖가슴이 음란하게 출렁이는 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진짜 군대에 온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사라야, 미안….”
바로 옆에만 들리게 작은 목소리로 유명이 사과하자 사라는 대답 없이 그냥 고개만 까딱하더니 살며시 손을 잡았다. 남자친구가 있는지 묻고 이런 긴장된 분위기에서 대뜸 엉덩이까지 만졌으니 오해하기 딱 알맞은 상황이다.
“나도 너 마음에 들어….”
감격에 겨운 사라의 목소리는 반대편 리아에게 들렸고 양 옆에 서있던 소피아와 비비안의 귀에까지 전해졌다. 이제 2층 1호실 여자들에게 입소식은 뒷전이 됐다.
“지금 뭐하는 거야? 여기서 꼭 이래야 해? 잡담금지라는 명령 못 들었어?”
소피아는 옆에 있는 사라의 옆구리를 쿡 찌르더니 언니이자 진짜 훈련병으로서 할 만한 지적을 했다. 그러나 이 감정 섞인 목소리는 생각보다 멀리 퍼졌다.
“거기 누가 잡답 하는 거야? 입소식도 하기 전에 집에 돌아가고 싶어, 엉?!”
깜짝 놀란 소피아는 그렇잖아도 하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는 차렷 자세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애먼 사람 잡을 뻔한 유명과 사라는 웃음을 참느라 몸을 떨고 있었다.
[지금부터 통합우주군 기초군사훈련소 191년 제6기 입소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방송으로 여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191년이라는 연도가 ‘지구세기’를 말한다는 걸 유명은 친구인 바구스를 통해 알고 있어 당황하지 않았다.
이후 입소식은 지구연합, 통합우주군, 서울시, 제1기초군사훈련소 등을 상징하는 여러 깃발을 든 엄청난 몸매의 여군들이 초미니스커트 정복차림으로 연단으로 올라오는 것을 시작으로진행됐다.
유명이 예상한 입소식과 다른 점은 국기에 대한 경례나 국가제창 같은 의례가 없었고 훈련소장이 2차 성징을 하지 않은 여대령이라는 것과 축사가 굉장히 짧고 유쾌했으며 영상자료를 통한 훈련소 소개가 주요내용이었다는 것이다.
“너희들 때문에 클 날 뻔했잖아!”
1부 입소식이 끝나고 무려 30분간의 휴식시간이 주어지자 소피아가 기다렸다는 듯이 버럭 했다. 웃음이 터진 사라는 손으로 입을 막고 엎드려버렸다.
“하하 미안미안, 내가 리아한테 한다는 걸 실수로 사라 엉덩이를 그만….”
“어? 뭐라구?”
엎드려있던 사라가 고개를 들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다들 어리둥절하는 것을 보고 리아가 얼른 나섰다.
“사라야, 유명이가 어떤 일로 인해 기억이랑 상식을 다 잃어버려서 지금 새로 배우는 중이거든? 그래서 너한테한 행동이 우리가 아는 의미가 아닐 수 있어.”
“……??”
멍한 표정인 걸 보니 리아의 설명을 사라가 전혀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다. 여자친구보다 더 백치미가 심한 여자가 있을 줄 몰랐던 유명은 터질 듯이 출렁이는 엄청난 몸매와 무척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만이 아니라 상식까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고개를 갸웃하고 묻는 비비안과 달리 옆에 있는 소피아는 별 생각이 없어보였다. 아일랜드계로 보이는 빨강머리의 이 백인혼혈미녀의 백치미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게 그렇게 됐어요. 병원에서도 이유를 모른다더라구요.”
유명이 머쓱한 미소로 미안해하자 그제야 대충 상황을 이해했는지 사라가 간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유명이 너… 나한테 관심 없는 거야?”
“아… 여기선 제가 추가로 설명을 좀 할게요. 사라 너도 그렇고 소피아언니나 비비안언니 모두 유명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에요.”
“……….”
리아의 설명에 사라는 두 손을 모으고 활짝 웃었고 소피아와 비비안은 얼굴을 살짝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근데 좀 전에 말 한 것처럼 유명이가 상식이 뒤죽박죽이 돼버리는 바람에 여자에게 남자친구 있냐고 묻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몰라요. 그래서 이런 오해가 생긴 거 같아요.”
“아…!”
리아의 추가설명에 탄성을 흘린 건 사라가 아니라 유명이었다. 또래 여학생에게 관심의 표현인 남자친구 있냐고 물어놓고 엉덩이까지 만졌으니 오해를 살만 했다. 소피아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는 사라의 어깨에 팔을 척 두르더니 짐짓 따지듯이 물었다.
“유명이 너 사라 마음 흔들어 놓은 거 어떻게 책임 질 거야?”
“사라야, 내가 마음에 든다는 거 진심이야?”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이에 오해로 벌어진 고백이지만 서로에 대한 관심은 이미 선을 넘은 상태다. 사라는 유명의 눈빛이 진지하다고 확신하고 용기를 내어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좋아, 나도 너 마음에 들어. 앞으로 잘 부탁해~”
“꺄아 유명아아~~”
망설임 없이 시원하게 받아들이는 유명의 환한 미소에 사라는 눈물까지 흘릴 정도로 기뻐하더니 와락 껴안다. 갑작스런 전개에 소피아와 비비안은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섹스도 하지 않은 남자에게 마음을 뺏긴 적이 없어 당황하는 중인데 이렇게 간단하게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고 가까워지다니, 자신들보다 어리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걸 둘은 알고 있었다.
“비비안, 너 유명이를 어떻게 생각해?”
볼일을 핑계로 함께 화장실에 온 소피아가 어렵사리 말을 꺼내자 비비안은 어깨를 으쓱했다.
“안타깝게도 나도 너랑 같은 마음이야.”
“내 마음이 어떤 줄 알고 그런 말을 해?”
처음 봤을 때부터 자신보다 여성스럽고 예뻐서 신경이 쓰였던 소피아는 다 알고 있다는 투로 말하는 비비안을 노려봤다.
“소피아 너 평소에 감정이 얼굴에 다 드러난다는 이야기 듣지 않았어?”
“……….”
비비안의 지적대로 소피아는 직설적이고 솔직한 만큼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 그 성격 때문에 애교는커녕 내숭은 꿈도 못 꾸는 바람에 남자관계가 그리 순탄하지 못했다.
“너 유명이 바라보는 눈빛이 마치 먹이를 노리는 야수와 같은 거 모르지?”
“비비안 너 무지 재수 없는 거 알아? 그래 1년이 넘도록 남자 냄새조차 못 맡아서 미칠 것 같다! 그런 넌 얼마나 잘 나서 자원했어?”
가벼운 도발에 발끈해 달려들 것처럼 소리 지르는 소피아를 비비안이 얼른 안더니 등을 토닥였다.
“잘난 척 해서 미안해, 나도 너랑 똑 같아. 너처럼 솔직하지 못해서 항상 버림만 받았는걸. 진정해… 내가 사과할게.”
“비비안…….”
소피아와 비비안은 그렇게 한참동안 끌어안고서 상대의 체온으로 위안을 얻었다. 그 사이 유명과 첫 키스까지 한 사라는 인생 최고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다음 75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