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73화) 11. 체험
(제 73 화)
11. 체험
혜리, 마야, 린은 일요일 오후에 각자 복무지로 귀대했고 유명과 나머지 식구들은 월요일 아침까지 수지와 아이샤의 집에서 보냈다.
이제 누구 집이냐를 따지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모두들 편하게 지냈는데 유명이 중학생신분이 아니었다면 수지의 바람대로 다 같이 살게 됐을지 모를 일이다.
세아의 예상대로 유명과 리아는 정해진 기간에 신청하지 않은 이유로 통합우주군 기초군사훈련소에서 직업체험을 하게 됐다는 통지를 받았다.
혜리가 예비군으로 복무하고 있는 <통합우주군 기초군사훈련소>는 서울시 밖에 위치하고 있어 시내의 지정된 장소에서 모여 준비된 차편으로 이동하도록 되어있었다.
“준비물 따로 필요 없는 거맞지?”
유명은 휴대폰으로 온 통지를 다시 확인하며 리아에게 물었다. 리아 역시 자신의 휴대폰으로 온 통지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휴대폰만 지참할 수 있고 다른 건 가져와도 반입이 안 된대.”
이런 점은 예전에 자신이 입소할 때와 똑 같았으나 초절정미녀여고생이 허벅지가 다 드러나는 미니주름치마와 젖꼭지 굴곡까지 드러나는 타이트한 세일러복 교복차림으로 함께 한다는 게 달랐다. 이 엄청난 차이가 유명의 발걸음을 새털처럼 가볍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오전 9시까지 지정된장소에 집합이라 유명과 리아는 택시를 이용했다. 버스와 지하철은 무료지만 택시는 시간에 관계없이 거리 당 요금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택시 역시 스쿨버스와 마찬가지로 완전자율주행인데 기사가 꼭 동승한다는 것이다. 2차 성징한 육감적인 몸매를 자랑하는 여자가 속살이 고스란히 비치는 노란색 타이즈제복차림으로 다정하고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저기다.”
리아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세종대왕동상이었다. 유명이 기억하는 광화문 앞 광장의 모습은 남아있지 않았으나 동상만큼은 세월의풍파를 겪은 모습으로 남아있었다.
족히 수백 명은 될 법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제복경찰들이 나와 안내와 통제를 하고 있었다. 마야와 린의 동료였을 그녀들의 타이즈경찰복차림을 보고 있으려니 유명은 세종대왕동상과 함께 남다른 감회를 느꼈다.
[통합우주군 기초군사훈련소로 가실 분들은 저쪽에 마련된 노란색 버스에 탑승하시기 바랍니다. 아무 차량이나 빈 좌석에 자리를 잡으시면 됩니다. 지금 바로 이동하세요!]
혜리와 똑같은 타이트한 초미니스커트 정복차림의 여자가 허리에 달린 소형스피커로 안내방송을 했다. 유명과 리아는 혹시 혜리가 있지 않을까 둘러봤으나 여군들의 팔에는 V가 아니라 二나 三 계급장이 붙어있었다.
버스는 매일 타고 다니는 스쿨버스와 색과 내부까지 똑같아 익숙함 덕분에 긴장이 조금 풀어졌다. 리아의 손을 꼭 잡고 중간 즈음에 자리를 잡기 무섭게 주변에 앉은 여자들이 유명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 진짜 잘 생겼다, 이름이 뭐야?”
“직업체험이니?”
“직업체험은 얼마동안 해?”
“1주일 아닌가, 여기는 좀 길어?”
“5학년 맞지?”
“둘이 연인사이야?”
“남자들은 따로 소집되는 거 아냐?”
“얘들은 직업체험이라 아닐 거야.”
여자들의 말대로 버스 안에 남자는 유명뿐이었다. 그 사이 자리는 금방 찼고 미처 대답하기 전에 여군이 올라타더니 출발한다는 안내를 했다.
훈련소에 가면 분위기가 달라지겠으나 여자들만 가득 찬 버스 안의 분위기는 등교할 때와 별 차이 없어 유명은 조금 싱거운 기분이 들었다.
주변 여자들이 옆에 앉은 리아처럼 교복이 아니라 사복차림인 게 다른 느낌을 줬는데 모두 훈련소에 입소하는 입장이라 그런지 옷차림이 비교적 평범하고 얌전한 편이었다.
버스는 지하의 차량전용도로를 이용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시내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홍보영상이 나올 줄 알았는데 음악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일일이 친절하게 대답을 다 해준 덕분에 관심이 잦아들자 버스 안이 더 조용해졌다. 몇몇은 주말동안 뭘 했는지 벌써 졸고 있었다.
“너무 심심한데?”
유명이 작은 소리로 말하자 리아가 씽긋 웃어주면서 다정하게 허벅지를 다독였다.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곁에 있어 새삼 편하고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좋아하는 꽃향기를 그윽하게 풍기는 리아에게 키스와 애무를 퍼붓고 싶었으나 입대하는 다른 여자들을 위해 유명은 꾹 참았다.
“나중에 틈나면 해달라는 거 다 해줄 테니까 지금은 좀 참아, 알았지?”
뜨거운 숨결과 함께 귓가를 간질이는 리아의 달콤한 속삭임에 유명은 이번 직업체험이 너무 기대가 되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
광화문광장에서 출발한지 20분이 지나지 않아 도착한 곳은 철원근처였다. 자신이 복무한 곳과 가깝다는 걸 유명은 휴대폰으로 확인하면서 버스에서 내렸다.
군복차림은 아니지만 남자들을 찾는 게 힘들 정도로 많은 여자들이 군 입대를 위해 모여든 광경은 예상보다 더 낯설고 이상했다.
[저쪽으로 가시면 접수용 단말기가 있습니다. 지원자들은 신원확인과 함께 다음 안내를 받으세요, 다들 이동하세요!]
정복차림의 여군들이 멀리 보이는 건물 쪽을 가리켰다. 그 안내가 필요 없을 정도로 바닥과 주변에 알아보기 쉽게 표식과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사람이 많아 조금 어수선했으나 유명은 리아의 잘록한 허리를 감싸 안고 목적지로 이동했다.
[유명, 16세, 동서울중학교 5학년, 직업체험 대상자로 확인됐습니다. 훈련병 번호는 001-0001번입니다. 팔찌를 착용하시고 의무대로 가서 건강검진을 받으세요.]
지정된 단말기 앞에 서자 안내와 함께 화면에 사진과 간략한 신상명세가 표시됐다. 이어서 노란색 스포츠팔찌에 <001-0001>번호가 찍혀서 나왔고 화면에 왼쪽팔목에 팔찌를 착용하라는 동영상 안내가 이어졌다.
건강검진이라고 해서 별다른 절차는 없었다. 납치됐다 발견됐을 때 마야가 하던 간단한 검사에 채혈만 추가된 정도였다.
곧바로 아무 이상 없다는 진단이 나온 유명과 리아는 <제1훈련장>에 배속되었으니 집합장소로 이동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제1훈련장이라고 표시된 집합장소에는 정복이 아닌 검붉은색 전신타이즈차림의 여군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제1훈련장에 배속 받은 지원자들은 이쪽으로 오세요!”
폭발적인 볼륨과 당당한 체구를 자랑하는 한 여군이 목청껏 외치는 소리에 유명과 리아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몰려갔다.
“건강검진은 다 받았습니까?”
“예에!”
특별히 시키지 않았는데 지원자들은 큰소리로 대답했다. 유명이 생각하는 훈련소에 아직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여자라서 그런지 군인들의 안내와 통제는 전혀 강압적이지 않았다.
“저기 준비된 수송선에 탑승하는 순간, 여러분들은 지원자에서 통합우주군훈련병 신분이 됩니다.입소를 망설이는 분은 접수창구에 팔찌를 반납하시고 돌아가시면 됩니다. 기회는 얼마든지 있어요.”
직업체험이라 돌아갈 이유가 없는 유명은 주변을 둘러봤다. 여자들이 절대다수였으나 높은비율로 남자들이 보였고 유명과 리아처럼 교복차림도 드문드문 보였다.
“돌아가실 분이 안 계신 것 같으니 앞으로 6주간 기초군사훈련을 받을 제1훈련장에 대한 간단한 안내를 하겠습니다.”
훈련병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V계급장을 단 여하사의 목소리에 집중했다.그때 상당수의 여자들이 다양한 인종의 혼혈인 것이 유명의 눈에 들어왔다.
“우리 제1훈련장은 직업체험으로 온 중학교 5학년생을 비롯해 학사장교 희망자 등 특수직종 지원자를 위한 시설입니다.”
여하사의 안내에 다들 주변을 둘러보고 눈길을 주고받았다. 다른 훈련장에 비해 2차 성징을 하지 않은 남녀가 많은 것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훈련의 내용이나 강도는 다른 훈련장과 동일하니 혹시 기대했다면 미안합니다.”
“하하하하하~”
가벼운 농담으로 훈련병들의 긴장을 풀어준 여하사는 허리에 손을 얹더니 당당한 목소리로 이어서말했다.
“여러분들의 지원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통합우주군의 선임자로서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우리 조교와 교관들이 최선을 다해 여러분을 이끌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탑승!”
여하사의 우렁찬 지시가 떨어지자 옆에 서있던 우주선처럼 생긴 사각형 수송선의 옆문이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활짝 열렸다.
유명은 리아의 손을 꼭 잡고 다른 사람들을 따라 탑승했는데 의자는 없이 4점식 안전띠가 달린 등받이가 양쪽 벽을 따라 있었고 가운데 등을 지고 2열이 있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통합우주군훈련병입니다. 상급자의 명령에 따를 의무가 있으며 명령불복종은 절차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모두 빈자리에 자리 잡고 서서 안전띠를 착용하세요!”
목소리는 훨씬 커졌으나 말투는 여전히 정중했다. 훈련병이 되자마자 매몰찬 목소리로 윽박지르던 모습이 기억난 유명은 예상과 다른 분위기에 조금 당황했다.
조교와 교관들은 훈련병 사이를 돌아다니며 안전띠를 잘 착용했는지 꼼꼼히 확인했다. 여군이라 그런지 어딘가 자상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소위로 짐작되는 ◇계급장을 단 여군이 수송선 안쪽의 단말기 화면을 확인한 뒤 여하사에게 엄지를 척 올렸다.
“훈련병 전원탑승완료! 훈련장으로 이동합니다. 모두들 흔들림에 놀라지 마십시오!”
그르르릉
낮은 기계음이들리는 거 같더니 수송선이 좌우로 살짝 흔들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위로 떠올랐다. 바퀴가 왜 보이지 않나 했더니 하늘을 날 수 있는 수송선이었던 것이다.
놀라운 승차감을 보이던 자동차에 비해 좀 심할 정도로 이리저리 흔들리고 창이 없어 상황을 확인할 수 없으나 수송선은 분명히 하늘 위로 빠르게 떠오르고 있었다.
“우와! 설마 우주로 가는 건 아니지?”
유명의 목소리가 컸는지 옆에 리아를 포함해 주변의 여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덕분에 잠깐이나마 긴장을 풀 수 있었다.
*****
무슨 원리와 어떤 기술로 얼마나 멀리 날아왔는지 모르나, 몇 분 지나지 않아 도착한 곳은 유명이 복무하던 부대가 있던 곳과 비슷한 산 능선에 자리하고 있었다.
훈련소 전체가 아니라 1개 훈련장이라 그런지 전체적인 규모는 유명과 리아가 다니는 학교보다 작았고 각 건물과 각종 시설의 수준은 군대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해보였다.
지금까지 안내를 맡았던 당당한 체구의 여하사가 아니라 2차 성징을 하지 않은 작은 키의 여소위가 나서서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잘 알고 있겠지만 첫 주는 다섯 명이 한 방에서 합숙을 합니다. 그리고 각 방장은 남자훈련병이 의무적으로 맡게 되고 방장은 룸메이트를 지정할 수 있습니다. 남자훈련병들은 앞으로 나오세요!”
유명은 걱정하는 리아의 엉덩이를 팡팡 쳐주고 키스까지 해준 뒤 선뜻 앞으로 나섰다. 여러 대의 수송선을 나눠서 타고 오느라 몰랐는데 남자들만 따로 모아놓으니 족히 5~60명은 될 것 같았다.
“룸메이트는 방만 같이 쓰는게 아니라 1주일동안 모든 훈련을 함께 받게 됩니다. 시간이 많이 걸려도 좋으니까 신중하게 네 명을 고르도록 하세요, 실시!”
여소위의 지시에 따라 남자훈련병들이 조심스럽게 여자훈련병들 사이로 들어갔다. 유명의 예상과 달리 미녀를 선점하려고 서두르거나 나대는 남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남자가 선택했다고 여자가 무조건 따라야하는 게 아니라서 선점하겠다고 서둘러봐야 소용이 없었다. 유명은 당연히 여자친구인 리아부터 챙겼다.
“너 안 고를까봐 걱정하지 않았어?”
유명이 엉큼한 미소를 지으며 엉덩이를 쓰다듬자 리아는 손을 탁 쳐내더니 콧방귀를 꼈다.
“흥, 누가 뭘 걱정해? 나 버리면 집에 돌아가서 무사할 것 같아?”
“우히히히히~”
아무리 1주일 동안의 직업체험에 불과하다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복무할 수 있다면 군대도 꽤 매력적인 곳이란 생각에 유명은 웃음을 흘렸다.
“안녕하세요, 전 직업체험으로 입소한 유명이라고 합니다. 저랑 같은 방 쓰실래요?”
유명이 예의바르게 고개를 숙이자 붉은 머리에 파란 눈의 미녀가 살짝 당황하더니 얼굴을 붉혔다.
“안녕 난 소피아야, 그래 함께할게.”
소피아는 선택해줘서 고맙다고 하려다 그 말은 삼켰다. 상대가 깜짝 놀랐을 정도로 매력적인 남자이긴 하지만 나름 외모에 자신을 갖고 있는데다 어린 상대에게 너무 저자세로 구는 건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작 유명은 접해본 적이 없는 인종적 특성을 가진 미녀를 고른 것에 불과해 선택을 받아줘서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안녕하세요,전 직업체험으로 입소한 유명이라고 합니다. 저랑 같은 방 쓰시겠어요?”
리아, 소피아에 이어 세 번째 룸메이트로 고른 여자는 연한갈색피부의 이란이나 북인도계 미녀였다.
“반갑습니다, 전 비비안이에요. 선택해줘서 고맙습니다, 열심히 할게요.”
유명보다 더 예의바르게 고개를 숙인 비비안은 동양인 피가 많이 섞인 이목구비라 부담되지 않는 인상이라 더 친근하게 여겨졌다.
소피아는 자신과 손을 잡고 있는 리아에 이어 비비안까지 굉장한 미녀라는 사실에 넘치던 자존심이 확 꺾여버렸다.
유명이 네 번째로 고른 미녀는 리아보다 더 짧은 치마의 교복차림으로 여중생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볼륨을 자랑하고 있었다.
“안녕, 난 유명이라고 해. 너도 직업체험이지?”
유명의 친근한 인사에 인종을 특정하기 힘든 혼혈인 여학생은 연한 갈색의 머리와 같은 색의 눈동자를 반짝이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어… 맞어. 난 사라라고 해, 나 선택할 거니?”
“그래, 같은 방쓸래?”
“응 고마워, 혼자 와서 좀 쓸쓸했거든.”
사라를 마지막으로 룸메이트 선정을 끝낸 유명은 조교의 지시에 따라 네 여자를 데리고 생활관으로 들어갔다.
언제 준비해놨는지 입구에 각자의 이름이 새겨진 커다란 전술배낭이 놓여있었고 그 속에 각자에 맞는 군복과 각종 생필품 등이 가득 담겨있었다.
“우리 방은 2층 1호실이야.”
여자들의 가방까지 빠르게 찾아주고 언제 확인했는지 배정된 방으로 일행을 이끄는 유명의 모습은 허둥대거나 여자들에게 다 맡기고 멀뚱히 서있는 다른 남자훈련병들과 확연히 달랐다.
같은 나이와 학년인 리아와 사라는 남자친구이자 멋진 동년배 남학생을 평소처럼 졸졸졸 따라다녔는데 소피아와 비비안은 유명의 모습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비비안, 유명이 쟤 직업체험 맞아?”
소피아가 속삭이듯이 하는 말에 비비안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미모를 돋보이는 예쁜 미소로 대답했다.
“네가 모르는 걸 내가 어떻게 알겠어? 어쨌든 방장은 제대로 고른 거 같지?”
“그래 그건 확실해….”
마치 능숙한 지휘관처럼 거침없고 자신감 넘치는 16살 중학교 5학년 남자에게 소피아와 비비안은 순식간에 반해버렸다.
(다음 74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