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0화 〉(59화) 9. 대결 (60/130)



〈 60화 〉(59화) 9. 대결

(제 59 화)



“아… 내가 왜  말렸지…….”


리아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계속 자책하는 중이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3교시 내내 이러고 있는데 정작 사고 친 당사자는 무덤덤하게 수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제 그만 해 리아야.”

“그냥 가입신청 받아 준다고 하고 시간 끌면 되는 거였는데….”

앞으로 벌어질 일을 어떻게 감당해야할지 몰라 리아는 책상에 엎드려 버렸다. 그러나 주변의 다른 학생들은 유명에게 틈나는 대로 엄지를 치켜세워주고 있었다.

학생들 커뮤니티에는 새로운 글들이 쉴 틈 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대부분 유명을 응원하는 내용이었고 휘신과 그 추종자들을 비꼬는 내용까지 심심찮게 올라왔다.

리아가 자책하는  멈추지 않자 유명은 교사의 눈을 피해 재미있는 내용을 찾아 슬쩍 보여주면서 달랬다.

“봐봐 리아야, 네가 옆에서 도와주면 문제없다고 하잖아? 나도 너 믿고 그런 거야.”

“……….”


휴대폰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리아는 잠깐 기뻐하는 거 같더니 이내 걱정하는 표정으로 돌아갔다.

“뭘 그렇게 걱정하는 건데? 휘신이 그  그냥 덩치만 큰 거잖아? 그런 놈이 체육대회에서 해봤자  하겠어?”

남자친구의 자신만만한 위로에도 불구하고 리아는 다시 책상에 엎드렸다. 유명은 더 이상 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놔둘 수밖에 없었다.

엎드린 동작 때문에 그렇잖아도 풍만한 젖가슴이  크게 보였으나 심각한 분위기 때문에 만져보고 싶은 욕구를 참아야했다. 그때 갑자기 벌떡 고개를 들더니 유명을 보고 말했다.

“안 되겠어, 내 머리로는 도저히 방법이 안 떠올라. 수업 끝나고 아이샤언니 만나서 상담 좀 하자.”


“어… 그…그래…….”

3교시 수업이 끝나고 실내체육관으로 가는 내내 유명은 다른 학생들의 열렬한 성원을 받았다. 마치 리아만 이 사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연구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이샤 역시 표정이 심각했다.


“넌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거니?”

소파에 앉기 무섭게 아이샤가 나무라자 리아는 다시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푹 숙였다. 별 일이 아닌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유명은 울컥 반발심이 생겼다.

하지만 상대가 그냥 교사가 아닌 오늘 아침에 마야, 린과 함께 아침발기를 해소해준 사랑스런 여자친구인지라 목소리는 투정하듯이 나왔다.


“그냥 체육대회에서 맞붙자고한 건데 다들 왜 그래? 혹시 지면 큰일이라도나?”

“다른 학생들 너 응원하는 거 못 봤어? 너 지금 대표남학생자리 걸고 싸우게  거란 말야.”

“그 자리는 휘신이 건 셈이잖아? 난 잃을 게 없는데 왜 이렇게 걱정해?”


대표남학생이 뭐 그리 대단한 자리라고 이러는지 유명은 이해가 안 됐다. 리아가 다시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른 애들 반응 보면 휘신이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어? 걔의 모든 게 이 승부에 걸려 있잖아! 이판사판으로 나설 게 뻔한데 그걸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래?!”

리아가 다시 얼굴을 감싸 쥐고 무릎에 엎드려버리자 아이샤가 등을 쓰다듬어주더니 차분한 말투로 유명에게 말했다.

“휘신이 걔가 덩치만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운동천재야. 마음만 먹으면 뭐든 잘   있는 애라구. 오죽했으면 리아가 종합격투기부에 끌어드리려고 했겠어?”


이제야 리아가 이러는 게 이해가 됐다. 걱정이 되기 시작했으나 아이샤가 마지막에 해준 이야기에 더 관심이 갔다.


“근데 휘신이가 종합격투기부에서 그런 짓을 저질렀는데  아무런 처벌은 안 받은 거지?”


유명은 물으면서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성적으로 이렇게 개방적인 세상이라면 휘신의 행동이 의외로 큰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는 짐작이다.

“그런 짓? 무슨 이야기야? 휘신이가 종합격투기부를 그만  이유가 따로 있어?”

아이샤는 처음 듣는 이야기인 모양이다. 리아가 고개를 들더니 담담하게 대답했다.

“어제 하나라고 내 후배 봤지? 걔가  권유를 받고 우리 동아리에 막 들어왔을  벌어진 일인데 휘신이가 억지로 겁탈하려고 했었어. 마침 내가 저지한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거든. 근데 무슨 이유인지 그 일이 흐지부지됐어.”


“저지 정도가 아니라 먼지 나게 얻어터지던데? 박스가  영상 보여주니까 아주 기겁을 하드만 크크크~”


리아의 설명에 먼저 놀란 아이샤는 유명의 말에 더 놀랐다.

“이 체육관에서 그런 일이 있었단 말야?! 그리고 영상이라니? 하나를 겁탈하려던 영상이 있어?”

“아이샤도 모르고 있었어? 진짜 이상한데? 휘신이 놈이 저지른 짓 정도면 큰 사건 아냐?”

유명의 말에 리아와 눈길을 주고받은 아이샤가 어른답게 냉정을 되찾고 말했다.

“큰 사건 맞고 네 말대로 뭔가 이상해. 성적인 요구를 쉽게 받아주는 세상이라고 상대를 함부로 대해선 안 되거든. 물론 법적으로 따지면 증거가 필요해지지만 영상까지 있는데 흐지부지됐다면 문제가 있는 거야.”


아이샤가 성별을 특정하지 않은 걸 유명은 놓치지 않았다. 자신이 이 세계에 와서 당한 일이 있다 보니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야랑 린에게 알아봐달라고 할게,  되면 박스한테 그 영상 확 뿌려버리라고 하지 뭐.”


“알아보는 것만 해, 영상은 지금 공개해봤자 얻을 게 없어.”


“얻을  없다니? 가장 확실한 증거잖아?”


“휘신 쪽에서 가짜라고 하면 그만이야. 실제와 구별 안 가는 영상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잖아. 그래서 영상이 증거능력이 있으려면 어디서 추출된 것인가가 중요해.”


교사에 어른이라 생각하는 게 확실히 달랐다. 리아야 진짜 16살이니 그럴 수 있다지만 이 세계에 대한 상식이 부족한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냈던 대가를 이런 식으로 치르게 될  몰랐던 유명은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이거… 내가 함정에 걸려든  같은데?”

“그 정도는아니야, 휘신이도 그 영상을 박스가가지고 있는 줄 몰랐던 게 분명해.  자극해  덤비게 하려는 목적이었던 거 같은데 지금 반대로 된 거니까.”

리아의 의견에 동의하는 듯 아이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문제는 해결된 것이 없어 잠깐 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 잠깐 동안 유명은 휘신이 휘둘렀던 주먹을 떠올렸다. 무시무시하기는 했으나 어제리아가 퍼부었던 발차기공격이 더 빠르고 매서웠다.

“내가 휘신을 만나서 상황을 좀 정리해볼게. 체육대회에서 붙자고 했지?  외에 정해진 건 없어?”

아이샤의 물음에 리아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때 유명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넌지시 물었다.


“근데… 체육대회에서 붙자고 했으니까 달리기 같은 거나 힘겨루기 뭐 그런 거야?”

리아와 아이샤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동시에 대답했다.


“당연히 아니지!”


*****




종합격투기부 부원들의 성원은 거의 광적이었다. 같은 부원이 겪은 사건이라 다들 알고 있으니 그럴 만했다. 다른 누구보다 당사자인 하나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하나는 유명을 보자 옆에  붙어있는 리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포옹과 함께 키스부터 퍼부었다. 자신이 관여된 일이라 미안한 마음이 짝사랑과 함께 감정을 폭파시킨 결과였다.


마치 시녀처럼 착 달라붙어  갈아입는 것까지 일일이 도와주려는  리아가 버럭 소리를 질러 떼어내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짐작하고 남는다.


하나가 여동생 못지않게 예쁘고 섹시한 후배인데다 자신을 향한 마음까지 알고 있지만 휘신과의 일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를 상황이라 유명으로서는 앞뒤 가리지 않고 받아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잠깐!! 너희들 전부 모여 봐!”


평소와 달리 산만한 훈련분위기를 더 두고 볼 수 없는지 리아가 부원들을 불러 모았다.


“부장님!  잠깐 빠져 있을까요?”

불호령이 내려질 것 같은 상황이라 유명은 나름 동료부원들을 생각해서 한 제안이다. 그러나 리아는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저었다.


“혼내려고 그러는 거 아니니까 그냥 있어.”


“네, 부장님!”


둘의 대화에 부원들이 긴장하던 표정을 풀었다. 리아가 잠깐 심호흡을 한 뒤 말했다.

“오늘 너희들 훈련하는  보다가 정리됐는데  생각이 좋을지 묻고 싶어서 불러 모은 거야.”

“……….”

유명을 포함한 부원들은 이어질 이야기가 뭐일지 궁금해 숨을 죽였다.

“지금 아이샤선생님이 상황을 수습하고 있어. 하지만 다음 체육대회  우리 유명이랑 휘신이가 어떤 형태로든 맞붙게 될 거야.”


“무슨 종목으로 할지 아직 결정  된 건가요?”

하나가 손을 들고 물었다. 리아가 다른 부원들 표정을 둘러본 뒤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 하지만 결국 주먹다짐 쪽이겠지.”


“어제랑 오늘 유명선배 운동하는 거 보니까 이길  있을 거 같은데요?”

다른 후배가 손을 들고 말하자 부원들 역시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한마디씩 거들었다. 리아가 손을 들어 조용히 시켰다.

“나도 같은 마음이지만 이런 일일 수록 냉정하게 판단해야해. 그래서 내 생각에는 유명이가 여기보다 학교 밖에서 훈련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너희들 생각은 어때?”

리아의 말에 모두 바로 대답하지 않고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일을 이렇게 진심을 다해 걱정해주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유명은 부원들에 대한 애정과 성욕이 확 치솟았다.

“제 생각에도 그게 나을  같아요. 유명선배의 실력을 휘신이 모르는 게 조금이나마 유리한 거잖아요?”


하나의 의견에 부원들도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나섰다. 그때 2차 성징을 하지 않은 귀여운 일반부원이 손을 들고 말했다.


“저도 그게 좋을 거 같은데… 학교 밖에서 운동한다고 저쪽에서 모를까요?”

예상했던 지적인지 리아는 자상한 미소를 지었다.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 거 같아. 그럼 다들 유명이가 밖에서 운동하는 건 동의하는 거지?”

“예, 부장님!”


*****


샤워를 하고 도장을 나서려는데 아이샤가 젖가슴과 엉덩이를 음란하게 출렁이면서 뛰어오고 있었다. 리아가 얼른 다가가 물었다.


“어떻게 됐어요?”


“휴~ 하나는 얻고 하나는 내줬어.”


 얻고 뭘 준 것일까, 유명의 안색을 살핀 리아가다시 물었다.

“뭘 얻었는데요?”

“그래플링기술 없는 격투시합이라면 받아들이겠대.”


기대했던 결과에 유명과 리아는 활짝 웃었다. 정작 아이샤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다.


“저쪽에서 내 건 조건이 문제야.”

조건이 뭐일지 짐작이  유명은 리아와 아이샤를 양쪽에 끌어안고 말했다.

“대표남학생을 걸 수 없다는 조건이지?”


“어?  어떻게 알았어?”

깜짝 놀라는 아이샤의 엉덩이를 꽉 움켜쥔 유명은 둘을 데리고 걸음을 옮기면서 피식 웃었다.

“뻔하지, 그 놈도 졌을 때가 두려울 테니까.”


“맞아. 그래서 철저하게 비공식적인 행사로 해야만 우리 조건을 받아주겠다고 하더라구.”


아이샤의 대답과 함께 모두 가볍게 웃었다. 셋은 1층으로 내려가 다시 연구실에 자리 잡았다.

“그럼  정도로 충분한 거야? 우리가 조건을 까다롭게 걸면 그냥 없던 일이 될  같은데?”

아이샤가 냉장고에서 스포츠음료를 내어주면서 하는 말에 리아가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무시무시한 주먹질이 슬로비디오로 보였던  짜릿한 경험을 다시 느끼고 싶은 마음에 유명이 고개를 저었다.

“충분해. 더 많은 걸 걸어도 좋지만 다들 반대하겠지?”

“당연하지!”


리아가 새침한 표정으로 흘겨봤다. 아이샤 역시 같은 마음이라 엄청난 젖가슴을 가운데로 모으고 나무라듯이 말했다.

“너 뭐 믿고 이렇게 자신감이 넘치는 거니? 휘신이 걔 만만하게 볼 애가 아니라니까?”


“아아 나도 녀석 덩치 보면 주눅 들긴 해. 근데 그냥… 이길수 있을 것 같거든?”


유명의 대답에 리아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너 휘신이 주먹 보였어?”


“응 보고 피했어.”

깜짝 놀란 아이샤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진짜? 휘신이가 휘두르는 주먹을… 눈으로 보고 피했다고?!”


휘신의 신체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5학년을 담당하는 체육교사가 모를 리 없다. 그런 우월한 몸으로 휘두르는 주먹을 보고 피한다는 건 보통의 동체시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 아이샤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언니, 유명일 다른 곳에서 몰래 훈련시키고 싶은데 언니가  도와줘.”

리아의 말에 아이샤가 빠르게 상황을 이해했다. 남자친구를 도와줄 수 있게 됐으니 오히려 반길 일이다.

“그래 좋은 생각이야, 우리 집에서 훈련하면 완벽하게 숨길 수 있어!”


“좋아! 기술적인 건 내가 틈틈이 도와주면 되니까 언제부터 시작할까?”

당사자의 의사는 묻지 않고 자기들끼리 의기투합해서 결정해버리는  여자를 보고 유명은 기분 나빠하기는커녕 흐뭇한 마음에 싱글벙글 웃고만 있었다. 남자친구와 같이 지내게 되어 신이 난 아이샤가 제안했다.

“갈아입을 옷만 챙기면 되니까오늘부터 당장 하지 뭐, 어때?”


“나도 그러면 좋겠는데 엄마한테 허락 받아야 하지 않을까?”

리아의 말에 꽃이 피어있던 아이샤의 얼굴이 바로 굳어졌다. 그때 유명이 엉큼한 미소를 씨익 짓더니 말했다.

“아이샤선생님이 같이 가서 설명하면 되지 않을까요?”


“아…….”


남자와 이렇게 뜨거운 사랑을 해본 적이 없으니 사랑하는 남자의 친엄마를 만난본적이 없다. 동료교사인 세아가 친엄마라면잘 아는 사이라 어떻게 넘어갈지 모르는데,어린 아들을유혹한 자신을 어떻게 볼지 짐작조차 안 된다. 아이샤는 생전처음으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다음 60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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