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44화) 7. 도약
(제 44 화)
“나도 운동을 좀 해볼까하는데, 다들 어떻게 생각해?”
점심시간이 끝나갈무렵, 유명이 꺼낸 이야기에 유리가 먼저 손뼉을 치고 호들갑을 떨었다.
“좋은 생각이야! 나하고 같이 격구하자! 응? 응? 격구하자 오빠야~~”
여동생의 제안에 유명의 귀가 솔깃했다. 유리처럼 2차 성징한 육감적인 여학생들 속에서 땀 흘리고 뒹구는 맛은 실로 짜릿할 것이다.
그럴까 대답하려는데 갑자기 속살이 다 비치는 타이즈를 입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뭔가 혐오스런 느낌이 들려는 순간 바구스가 놓치지 않고 지적한다.
“난 유명이가 타이즈유니폼 입고 돌아다니는 거 별로 보고 싶지 않은데?”
“박스오빠는 은하언니 품에서 조용히 좀 있어줄래?”
그나마 화내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유리는 바구스를 힘껏 째려봤다. 분위기가 나빠질까봐 바니아가 얼른 끼어 들었다.
“난 유명오빠가 격구팀 들어오는 거 대찬성!! 우리 팀에 남자가 한 명도 없으니까 오빠 들어오면 다들 난리가 날 거야~!”
“맞어맞어, 나보다못하지만 우리 팀에 예쁘고 섹시한 여자들 엄청 많아!”
유리가 바니아의 말을 적극적으로 거들고 나서면서 격구로 결정될 것 같은 분위기가 돼버렸다. 그때 은하가 불쑥 다른 의견을 꺼냈다.
“유명이가 어릴 때 리아랑 같이 태권도한 걸로 아는데, 아냐?”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유리가 자신의 남자친구를 타박한 데에 따른 반발이 분명했다. 하지만 틀린 사실이 아닌지라 바구스가 여자친구의 의견을 거들고 나섰다.
“어릴 땐 리아보다 유명이가 태권도 더 잘했어, 소학교 때 대표선수까지 했었지?”
“응, 나보다 잘했어. 유명이가 봐주지 않았으면 나 한 번도 못 이겼을 거야.”
리아까지 나서자 분위기가 다시 바뀌었다. 유리는 대놓고 실망하는 표정을 지었고 바니아는 오빠와 오빠여자친구의 의견을 따를지 아니면 같은 팀 선배인 유리의 의견을 따를지 난감해했다.
“나도 격투기 쪽이 좀 더 끌리는데?”
유명의 마음은 오로지 유니폼 때문에 기운 것이다.종합격투기마저 속이 다 비치는 타이즈를 입고한다면 난감해지지만 최소한 구기 종목보다 사정이 나을 것이 분명했다.
더구나 여자를 상대로 그래플링(grappling)하는 망상이 실현되리란 생각이 들어 더 끌렸다. 그 엉큼한 속내를 어떻게 알았는지 리아가 씽긋 웃었다.
“너 나하고 뒹구는 거 상상하지? 나 예전처럼 만만한 여자 아닌데, 괜찮겠어?”
만만하지 않으니 제대로 덤벼달라는 말로 들렸다. 예전 세상에 살던 유명이었다면 망설였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좋아! 유리의 제안도 있으니까 일단 양쪽 다 둘러보고 결정할게, 좋지?”
유명의 결정을 가장 반긴 이는 역시 유리였다. 유리는 주위 시선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빠에게 폴짝 뛰어들어 키스를 퍼부었다.
*****
점심식사시간이 끝나자마자 운동하러 갈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월요일이었던 어제와 달리 오늘은 리아와 유리까지 3교시 수업이있었다.
유명과 리아의 3교시는 ‘위생’과목이었다. 학과목으로는 생소하지만 어떤 내용일지 대충 짐작이 갔다.
“어? 저 자식 휘신이잖아?”
위생과목은 5학년 강의실건물이아닌 실내체육관과 가까운 별관에서 받는 수업이었는데 거기에 휘신이 있었다. 유명의 지적에 리아가 불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자식이랑 같이 받는 유일한 수업이 바로 위생이야.”
리아의 말투와 표정처럼 위생이란 과목이 갑자기 싫어졌다. 그런데 상대 역시 마찬가지 심정인지 대놓고 거북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획 돌려버렸다. 그 유치한 반응에 유명은 코웃음이 나왔다.
“큭 저 자식 스쿨버스에서 무시당한 거 마음에 담고 있나 본데?”
“그러게 후후~”
유명과 리아는 휘신의 불편함을 덜어주기 위해 일부러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그러나 실습위주로 수업이 진행되는 위생과목의 특성상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었다.
“오늘은 건물붕괴로 인한 위급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네 명이서 한 조를 짜도록 하세요.”
체육교사인 아이샤에 비할 수준은 아니었으나 위생교사 역시 2차 성징한 여자라 은회색 전신타이즈 위로 드러난 몸매가 굉장했다.
교사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피차 의도적으로 피하다보니 휘신과 같은 조가 되지 않았다. 2차 성징한 여학생 두 명이 유명의 조에 들어왔다.
“안녕.”
“안녕, 잘 부탁해~”
자기 여자들과 은하, 바니아 외에 또래 여학생들과 이렇게 가까이서 이야기 나눠보는 게 처음이라 유명은 살짝 긴장됐다.
“안녕, 나도 잘 부탁해.”
위생이라고 해서 특별히 어려운 건 없었다. 현역으로 군 생활까지 한 유명에게 16살짜리들이 배우는 응급처치나 부상자후송 등은 마치 소꿉장난 같았다.
너무 잘하는 탓에 학생들 대표로 앞에 나가 시범까지 보이게 된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오전 사회수업에 이어 또다시 동급생들에게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이 위생과목을 통해 유명이 알게 된 점은 교보재로 사용된 응급기기들의 성능이 미래사회에 걸맞게 굉장하다는 것과 이를 이용한 실습이 실용적이라 매우 유익하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휘신을 포함한 몇몇 학생들의 이해도가 놀라울 정도로 형편없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는데 교사가 그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게 눈길을 끌었다.
3교시 위생수업을 훌륭하게 마친 유명은 여자친구가 자신을 실내체육관으로 이끄는 걸 뒤늦게 알아보고 물었다.
“체육수업 어제 했는데 오늘 또 있어?”
“아니, 넌 오늘 수업 다 끝났어.”
“그럼 지금 실내체육관은 왜 가는 거야? 아… 종합격투기부가 실내체육관에 있다고 했지?”
“그건 맞는데 지금 아이샤선생님 만나러 가는 길이야. 운동동아리에 들어가려면 상담 받고 시간표도 바꿔야 하거든.”
자신에게 들이대던 그 매력적인 흑인혼혈교사가 생각나자 유명의 코에서 뜨거운 김이 훅 나왔다. 아이샤의 살벌한 성적매력 때문만이 아니라 자타공인 완벽한 여자친구를 옆에 끼고 다른 여자에게 흑심을 품는 상황 자체가 흥분되었다.
“유명이 너 그 표정, 뭘 의미하는 거야?”
“뭐? 무…무슨 표정?”
“후후후~”
엉큼한 생각이 그대로 드러난 모양이다. 여자친구가 웃어넘기는 걸 보고 유명은 슬쩍 다른 이야길 꺼냈다.
“나 예전에 수업 끝나면 어떻게 했어? 어제처럼 엄마연구실에 가지는 않았을 거 아냐?”
“집에 먼저 가서 방에 틀어박혀 있거나, 학교 어딘가에서 혼자 시간 보내고 그랬어.”
리아의 대답은 예전 세상의 자신을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마치평행하게 흘러가는 두 세계에서 동시에 존재했던 것 같은 신비한 기분이 들었다.
“나 완전 바보처럼 지냈구나….”
자조 섞인 유명의 말에 리아는 따뜻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저었다.
“기억나지 않는 일에 굳이 마음 쓰지 마, 지금 이렇게 나하고 같이 있다는게 중요하잖아?”
이럴 땐 16살 소녀가 아니라 누나처럼 느껴진다. 말 그대로 지금 이 순간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유명은 여자친구의 늘씬한 허리를 살며시 감싸면서 말했다.
“네 말이 맞아, 예전의 바보 병신이었던 날신경 쓸 필요 없지.”
“후후 그 정도까진 아녔어.”
“아무튼 지금의 내가 더 좋은 거지?”
남자친구의 물음에 리아는 살짝 망설이더니 숨을 고르고 말했다.
“그래서… 조금 미안해.”
“뭐가? 뭐가 미안해?”
리아는 고개를 살짝 저으면서 씽긋 웃었다. 그 청순한 표정에 유명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야말로 바보 같은 생각을 했어, 신경 쓰지 마.”
미소 뒤에 엿보이는 쓸쓸함이 뭘 의미하는지 유명은 알 것 같았다. 이런 걸 다 알아보다니 그게 더 놀랍지만 지금은 가슴 가득히 차오르는 특별한 감정을 만끽할 순간이다.
그림처럼 잘 어울리는 유명과 리아는 주변 남녀학생들의 부러운 시선 한가운데서 뜨거운 키스를 나눴다.
*****
실내체육관 1층에 있는 아이샤의 방은 세아의 연구실과 비슷한 규모와 구조였으나 비품이나 장식물 등이 체육교사 특유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무엇보다 방 주인이 유명의 관심을 끌었다.
“어서와~”
아이샤는 유명과 리아의 방문을 환한 미소로 반갑게 맞아줬다. 늘 화가 나 있거나 불만으로 가득 찬 체육교사만 경험했던 유명은 이 흑인혼혈미녀가 체육교사라기보다 또래 운동선수 같았다.
무엇보다 혜리와 비교될 정도로 압도적인 풍만함에 유리와 리아와 같은 건강함이 더해진 육감적인 몸매가 갈색피부와 함께 어우러진 독특한 성적매력이 일품이다.
이런 아이샤를 감상하느라 유명에게 상담은 이미 관심 밖이었다. 남자친구의 상태를 어떻게 알아봤는지 리아가 대신 말을 꺼냈다.
“유명이가 본격적으로 운동을 해보고 싶다고 해서 선생님께 상담 받으러 왔어요.”
“어머 진짜? 잘 생각했어 유명아, 어제 나랑 나눈 이야기가 영향을 준 거니?”
아이샤가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손뼉을 쳤다. 이야기가 아니라 육탄공격이 영향을 끼쳤으나 유명은 씽긋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선생님.”
“하하 잘 됐다~ 그럼 무슨 종목을 하려고? 격구? 아니다, 리아랑 같이 종합격투기 해보고 싶다고 했었지?”
비록 어제 일이긴 하지만 많은 학생들 중 한 명의 사정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건 역시 상대를 특별하게 여긴다는 증거다.
‘나한테 관심이 있는 거 확실하네.’
예전 같으면 할 생각조차 못했을 확신이지만 덕분에 자신감이 충만해졌다. 그 자신감이 여유를 갖게 해주자 유명은 눈앞의 미녀를 차근차근 살폈다.
오늘은 위아래 똑같은 흰색 스포츠브라와 레깅스라 피부가 더욱 빛나보였다. 의자에 앉아있어 자세히 안 보였으나 레깅스 위로 음모가 비쳐 보이는 것 같았다. 유명이 군침을 삼키려는데 리아가 다시 말을 꺼냈다.
“선생님도 격구팀 유리 아시죠?”
유명의 노골적이고 엉큼한 눈길을 의식하느라 정신이 없던 아이샤는 뒤늦게 대답했다.
“어? 아… 으응… 유리라면 잘 알지.”
“걔가 유명이 여동생이거든요, 그래서 격구팀도 둘러보고 싶대요.”
그제야 유명과 아이샤의 눈이 제대로 마주쳤다. 어제 몸을 비비면서 주고받을 때와 뭔가 다른 눈빛이다.
“아… 그래? 둘러보고 결정하는 게 현명한 거지. 그럼 무슨 종목을 할 건지 아직 결정하지않은 거니?”
다시 눈이 마주친 아이샤는 크고 선한 눈매가 흑인계열 특유의 도톰한 입술과 더불어 순종적인 느낌을 물씬 풍겼다. 덕분에 옆에 앉은 리아와 다른 살 냄새가 더 달콤하게 다가왔다.
“사실 종합격투기로 마음을 굳힌 거나 다름없는데 여동생이 같이 하자는 걸 모른 척 할 수 없어서요.”
유명은 일부러 여자친구의 허벅지 위쪽에손을 쓰윽 얹으면서 말했다. 교복하의가 초미니 테니스치마라 살짝 드러난 새하얀 팬티에 유명의 손가락이 닿을 것처럼 보였다.
“……….”
아이샤의 시선이 자신의 손길을 따라가는 걸 유명은 놓치지 않았다. 둘의 긴장감을 눈치 채지 못했는지 리아가 곧이어 말했다.
“일단 어떤 종목이든 운동을 하기로 마음먹은 거니까 유명이 시간표 좀 바꿔주세요.”
“응? 맞아… 그래야지. 내가 알아서 조정해놓을게, 걱정하지마.”
손이 리아의 사타구니 안쪽까지 내려가는 걸 훔쳐보던 아이샤는 얼른 눈길을 거두더니 억지로 웃었다. 유명이 시치미 뚝 떼고 물었다.
“격구팀에 미리 말해두지 않아도 될까요?”
“그것도 내가 알아서 할게, 아예 잠깐 기다렸다가 나랑 같이 갈래?”
아이샤의 말에 리아가 활짝 웃더니 예의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신경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
“뭘…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도움이 돼서 나도 기뻐~”
아이샤의자상한 대답에 마음이 놓이는지 리아는 남자친구 볼에 키스한 뒤 선뜻 일어났다.
“그럼 난 먼저 가볼게 유명아.”
“어… 그럴래? 그럼 오늘도 엄마연구실에서 만날까?”
“응 그러자, 그럼 이따 봐~”
리아는 다시 아이샤에게 공손하게 90도로 인사를 한 뒤 뽀얀 엉덩이 사이로 잔뜩 먹혀 들어간 새하얀팬티를 드러내 보이며 방을 나갔다.
코앞에서 꽃마차가 지나간 분위기에 남은 둘은 잠깐 동안 굳어있었다. 이대로 앉아있기 어색해진 유명이 슬그머니 일어나면서 말했다.
“그럼 전…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응? 아…아냐 소파에 편하게 앉아있어, 시간표 조정하는 거 금방 끝나. 격구팀 코치한테는 메시지만 보내면 되는걸.”
선의로 하는 제안을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다. 유명은 일어난 김에 건너편 기다란 소파로 자리를 옮기면서 아이샤에게 의도적인 말을 던졌다.
“제가 있으면 방해 안 될까요?”
“방해? 아… 아니 방해는 뭐….”
어정쩡한 대답이 뭘 의미하는지 그리고 예쁜 얼굴에 드러난 복잡한 표정의 이유 역시 알 것 같았다. 등을 돌리는 아이샤를 향해 유명이 넌지시 말했다.
“선생님을 처음 뵀을 때는 강하고 공격적인 느낌이었는데 오늘은 반대로 다정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드네요? 어느 게 진짜 성격이에요?”
“………….”
이런 이야기를 꺼낼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단 며칠만의 놀라운 변화에 말을 꺼낸 본인조차 놀라는 중이다. 그 속을 알리가 없는 아이샤는 차마 돌아보지 못하고 태블릿화면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스포츠브라와 레깅스 사이에 드러나 잘록한 허리의 탄력 넘치는 근육이 살짝 긴장하는 게 보였다. 엉덩이보조개 위에 탄탄하게 자리 잡은 기립근이 풍성한 등 근육을 받치고 있는 뒤태가 실로 숨이 막힐 정도였다.
다른 여자들 역시 마찬가지지만 아이샤의 피부는 기름을 바른 것처럼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거기다 티클 하나 없이 깨끗하고 군살까지 없으니 몸 구석구석 성적매력이 흘러넘쳤다.
유명이 이런 엉큼한 감상에 젖어있는 줄 모르는 아이샤는 둘이 한 방에 있다는 사실에 너무 긴장한 나머지 일이 손에 안 잡혀 한참동안 애를 먹었다.
(다음 45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