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33화) 5. 등교
(제 33 화)
교내시설이라고 보기에 지나치게 크고 좋은 실내체육관은 꽤 높은 뒷산과 울창한 숲을 끼고 있었다. 지붕 각도가 산의 경사면에 맞춰져 있어서 숲을 그대로 반사하는 전면외벽과 더불어 주변 자연환경과 잘 어울렸다.
리아는 일부러 정문을 통해 실내체육관으로 들어갔다. 정문 홀과 거기에 딸려있는 휴게실에는 이미 많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역시 여학생들의 복장이 가장 먼저 유명의 눈에 들어왔다.
‘부르마?!’
여학생들의 하의가 타이트한 군청색 블루머(bloomer)였다. 옆에 흰색 띠가 있어서 체육복처럼 보이긴 했으나 워낙 짧고 작은 스포츠 비키니수준이라 도끼자국까지 고스란히 드러났다.
상의 역시 스포츠브라수준의 흰색 민소매탱크톱이었는데 젖꼭지와 젖꽃판이 선명하게 비쳐서 젖가슴과 엉덩이가 풍만한 여학생들은 굉장히 음란해보였다.
사실 여학생들의 몸매가 근육질이 아니라 그런 것이지 옷차림 자체는 육상경기에 출전하는 전문여자선수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저기가 옷 갈아입고 샤워하는 준비실이고, 3교시 수업 끝났으니까 좀 있으면 박스 올 거야. 그때 같이 움직이면 돼.”
리아는 휴게실에 있는 편의점으로 들어가면서 경기장 입구 오른쪽을 가리켰다. 남녀학생들 몇 명이 들어가는 게 보였다.
“어서 오세요~”
편의점 여자직원이 발랄한 목소리로 학생들을 친절하게 맞이했다. 편의점직원 역시 스쿨버스 안내원처럼 속이 다 비치는 파란색 전신타이즈차림이었다.
“리아야, 이런 교내편의점 같은 곳은 무인인 게 더 낫지 않나? 스쿨버스도 자율주행이던데 승무원이 왜 필요해?”
혜리와 상점가에서 이미 나눴던 화제인데 또래의 생각이 궁금해서 묻는 것이다. 개방형인데 냉기가 밖으로 전혀 새어나오지 않는 냉장고에서 스포츠음료 2개를 꺼낸 리아가 별 생각 없이 가볍게 대답했다.
“응? 무인이나 인공지능보다 사람에게 도움 받는 게 더 편하고 좋지 않아?”
“리아 말이 맞지만, 그보다 남녀의 만남을 확대시켜 출산율을 끌어올리려는 정부의 큰 그림이라고 볼 수 있지.”
언제 나타났는지 바구스와 은하가 뒤에 와 있었다. 그 주장에 은하가 딴지를 걸었다.
“그런 의도가 없는 건 아니지만 시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공공복지에 일환이라구. 너희들처럼 부잣집 도련님들이 우리 처지를 어떻게 알겠어?”
빠르게 쏘아붙인 은하는 리아에게 팔짱을 끼더니 도도한 척 턱을 치켜들었다. 그 귀여운 모습에 유명은 다른 생각보다 웃음부터 나왔는데 바구스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은하 넌 매사를 너무 비판적으로 보고 있어. 너나 리아도 공립대학교에 진학하면 학비나 생활비 걱정할 필요 없잖아? 게다가 리아네 식구는 조만간 유명이랑 합칠 거라고 했으니 더 걱정이 없고 말야.”
계산을 하고 편의점을 나선 넷은 자연히 휴게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은하가 리아에게 매달리듯 달라붙으면서 물었다.
“리아야, 박스 말이 사실이야? 너희식구들 전부 유명이네로 합치는 거야? 진짜?”
“아직 결정된 건 아냐, 어제 함께 지내면서 가볍게 그런 이야기가 나왔을 뿐인걸.”
그러면서 리아는 남자친구의 눈치를 살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자신을 바라보는 여자친구가 원하는 게 뭔지 못 알아차릴 유명이 아니다.
“합치는 거 맞아. 절차상의 문제는 엄마들이 알아서 하실 거고, 어제부터 우리 집에서 다함께 지내고 있어.”
“와… 좋겠다….”
은하는 새 친구들을 바라보며 진심으로 부러워했다. 그런데 3명의 표정이 각자 복잡했다. 유명은 자신의 힘이 아닌 연금제도로 잘난 척 하는 것 같아 조금 낯 뜨거웠고, 리아는 자신만 남자친구가 있는 행복을 누리는 것에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둘과 달리 바구스의 표정은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리아의 눈치를 슬쩍 보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커흐음… 내 여자친구가 되면 은하 너도 리아처럼… 어… 음… 내가 2차 성징한 여자를 좋아하긴 하지만 은하 너라면… 저기….”
“응? 박스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한테 프러포즈하는 거니?”
역시 은하는 솔직한 만큼 직설적이었다. 바구스의 귀여운얼굴이 새빨개졌다. 유명은 친구가 잘 되기만을 속으로빌고 또 빌었다.
“아…아니 뭐… 너만 좋다면….”
“똑바로 말해, 나 유명이랑 너 좋아한다고 했잖아? 그게 남자로서 좋아한다는 거 모르는 거 아니지?”
은하의 표정이 환해지는 걸 보니 뭔가 되는 모양이다. 유명이 친구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찔렀다. 바구스가 숨을 크게 들이쉬고 길게 내쉬더니 결의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그…그래 나도 너 마음에 들어.”
“미안해, 아직은 유명일 더 좋아해. 유명이가 날 완전히 포기하면 그때 가서 진지하게 고민해볼게.”
모두의 시선이 곧바로 유명에게 쏠렸다. 시기와 원한에 찬 바구스의 눈길이 가장 강렬했다.
‘은하보다야 우리 세아선생님이 100배는 더 섹시하잖아?’
이제 16살에 불과한 은하가 나중에 더 예뻐지고 섹시해질지 모르나 당장 결정해야하는 상황에서 고민의 여지는 없었다. 유명은 1교시 수업직후 세아와 나눴던 달콤한 키스를 떠올리면서 솔직하게 말했다.
“은하야, 날 좋아해줘서 정말정말 고마워. 하지만 난 리아랑 내 여동생처럼 2차 성징한 여자들을 좋아해.”
유명의 단호한 대답에 잠깐 침묵이 흘렀다. 기쁨을 감추지 못한 리아는 친구를 위해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은하가 실망한 표정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사실… 짐작은 했어. 유명이 너 기억만 잃은 게 아니라 성격이나 취향까지 바뀌었다는 소문이 쫙 퍼졌거든. 이럴 줄 알았으면 납치되기 전에 고백이라도 해볼 걸….”
“야, 그럼 꿩 대신 닭인 거야?”
바구스가 버럭 따지고 들자 리아가 뭐라고 하려는데 은하가 먼저 획 고개를 돌려 노려보면서 말했다.
“닭이라서 싫다는 거야?”
“어…….”
그대로 굳어버린 바구스의 반응에 유명과 리아는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이 터뜨렸다. 은하는 자신만만하게 콧방귀를 끼더니 대뜸 바구스 옆으로 자리를 옮겨 팔짱을 꼈다.
*****
“나 숫처녀이긴 한데 섹스에는 아직 관심이 없어. 오늘 당장 해야 되는 거야?”
은하의 직설적인 물음에 옷을 벗던 바구스가 멈칫했다. 유명은 애써 모른척하며 교복 바지를 벗어 옷장에 넣었다.
“아니… 그래도 우리 사귀기로 한 사인데….”
바구스는 은하의 매끈하고 예쁜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리아와 유리에 비할 수 없으나 밸런스가 좋아 성적매력은 부족함이 없었다.
유명은 친구를 위해 탈의실에 있는 다른 여학생들에게 눈길을 돌렸다.여기저기 발가벗은 여학생들의 뽀얀 맨살이 한가득 눈에 들어왔다.
화장실도 그렇고 지금 있는 탈의실이나 옆에 딸린 샤워실까지 남녀구분이 없었다. 12~16살짜리 혈기왕성한 남녀학생들이 이런 식으로 노출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새삼스레 훅 달아오른 유명은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애석하게도 실내체육관 탈의실에는 2차 성징한 학생이 남녀 통틀어 자신뿐이었다.
“나도 섹스를 싫어하는 건 아냐. 자위는 너랑 유명이 떠올리면서 매일 했거든. 그럼 우리 언제 할까? 우리 집에서 하는 거 어때?”
여자친구의 거침없는 말에 긴장한 바구스는 대답을 못했다. 다른 여학생들이 부러운 눈길로 키득거렸다. 보다 못한 유명이 친구의 어깨를 툭 쳤다.
“야, 대답해야지?”
“어? 어…으응… 그…그래 그러자, 너희 집이 좋겠다. 여…여자친구 집에 꼭 가보고 싶었어.”
은하는 씽긋 웃더니 바구스의 볼에 뽀뽀해주며 엉덩이를 토닥였다. 뭔가 반대로 보이지만 꽤 잘 어울리는 한 쌍은 분명했다.
“우리엄마 간호산데 이번 주는 야간근무라 오늘밤 내내 둘이서만 보낼 수 있어. 엄마는 다음에 소개시켜줄게.”
“어… 그래…….”
바구스는 첫 여자친구를 맞이한 사실에 아직 적응이 안 되는지 난처한 표정으로 연신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유명은 친구를 위해 일부러 모른 척 물었다.
“박스, 나 체육복 따로 준비 안 했는데 어떻게 해?”
“응? 아… 그건 저기 체육관 쪽 출구로 가면 있어. 체육복은 다 1회용이야.”
셋뿐만 아니라 다른 남녀학생들 모두 옷을 다 벗고 알몸으로 출구로 향하고 있었다. 모두 2차 성징을 안 한 친구들이라 유명은 쑥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상대적으로 어려 보이는 여학생들이 노골적으로 자신의 몸을 훑어보다 사타구니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는 모습은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이거 애들 앞에서 꼬추 내놓고 돌아다니는 변태아저씨 된 기분인데….’
16살로 즐겁게 지내고 싶은데 자꾸 39살 이성이 소환된다.유명은 최대한 평상심을 유지하려고 자기최면을 걸면서 체육복을 꺼내 입었다.
“박스, 나 어때?”
허리에 손을 턱얹고 자신의 몸매를 자랑하는 스포츠비키니 체육복차림의 은하는 더 봉긋한 젖가슴과 더 발달된 골반 덕분에 다른 여학생들보다 성적매력이 뛰어났다.
“와~ 괜찮은….”
바구스가 말을 끝맺지 못한 이유는 은하 뒤에 머리 하나더 큰 여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유명의 시선이 자동으로 옮겨갔다.
“유명아, 오늘 운동해도 괜찮겠어?”
상의는 학생들과 비슷한 흰색 스포츠브라에 하의는 골반 뼈 아래까지만 올라오는 군청색 레깅스차림의 굉장한 미녀였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아이샤선생님, 안녕~”
평소 친근한 사이인지 남녀학생들이 지나가면서 반갑게 인사하자 미녀체육교사는 활짝 웃으면서 일일이 인사를 받아줬다.
‘모델인줄 알았네…, 흑인? 아니 혼혈인가?’
과하지 않은 갈색의 피부가 윤이 나는 것처럼 매끈한 <아이샤>는 아프리카계 혼혈이었다. 선하고 커다란 눈매와 도톰한 입술은 이국적인 느낌을 주지만오뚝하고 작은 콧방울과 갸름한 턱은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속이 비치는 스포츠브라와 레깅스를 당장 찢고 나올 정도로 폭발적인 몸매가 유명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큰 키에 팔다리가 길쭉길쭉 늘씬해서 전체적인 밸런스가 훌륭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제가 기억을 다 잃어서 못 알아 뵀어요.”
“아아 괜찮아~ 네 사정은 세아선생님에게 자세하게 전해들었어. 그럼 운동해도 괜찮은 거지?”
가까이 다가온 아이샤가 친근하게 등을 쓰다듬었다. 혜리와비슷한 과일향이 조금 진하게 풍겼는데 그게 성욕을 살짝 건드렸다. 유명은애써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이려고 활짝 웃었다.
“네, 괜찮아요. 너무 튼튼해서 탈인 걸요.”
“하하하 좋아~ 2차 성징한 친구는 너 뿐이니까, 오늘수업은 나하고 같이하자.”
이 성적매력 넘치는 체육교사와 뭘 같이하게 될지 너무 기대되어 유명은 가슴이 요동쳤다. 친구의 상태를 알아본 바구스는 아이샤가 멀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엉큼한 미소를 씨익 지으면서 말했다.
“조심해 친구, 우리 섹시한 아이샤선생님이 보기와는 달리 슈퍼맨이니까 만만히 봤다가는 큰 코 다칠 거다~”
그러자 바구스의 팔꿈치에 젖가슴을 문지르고 있던 은하가 해맑게 웃으면서 유명을 위로했다.
“괜찮아 유명아~ 저 선생님 예전부터 너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어. 같이 운동하면서 여기저기 만지고 비비고 그러면 못 이기는 척 넘어올지 몰라~”
은하의 말 덕분인지 멀리 학생들과 친근하게 웃고 있는 아이샤가 더 예쁘고 친근하게 여겨졌다. 유명은 그렇게 싫어하던 체육시간을 앞으로 가장 좋아하게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음 34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