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7화 〉(26화) 5. 등교 (27/130)



〈 27화 〉(26화) 5. 등교

(제 26 화)



“유명아~~”

주택가 끝에 있는 스쿨버스정류장에서 바구스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옆에 여동생이  달라붙어 있었다.

“박스~~”

여동생과 여자친구를 옆에 끼고 등교하는 길에 친구와 만나 반갑게인사를 나눌 수 있다니, 이보다완벽한 아침이 있을까.

‘그래 이런 기분이야…!’

학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또 잘 적응할  있을지 등의 걱정은 이 행복감에 뒷전으로 밀렸다. 유명의 손을 꼭 잡고 대놓고 젖가슴을 문지르던 유리와 리아가 박스남매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
“바구스 안녕~ 바니아 안녕~”

자신을 향한 두 여자의 행동이 이전과 완전히 달라진 것에 바구스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리아가 유명의 여자친구가 된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으나 유리마저 이럴 줄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다.

“야, 유리 쟤 왜 저렇게 얌전해졌냐? 설마…?”

바구스 딴에는 유명에게만 들리도록 한 말이었는데 그게 들린 모양이다. 유리가 원래의 까칠한 표정과 말투로 톡 쏘아붙였다.

“내가 뭐? 오빠대접계속받고 싶으면 말조심해!”


“유리선배야말로 우리오빠한테 말조심하셨으면 좋겠네요! 아…안녕하세요, 유명선배~”


오빠를 닮아 또랑또랑한 눈망울이 귀여운 바구스의 여동생이 당차게 나오자 유리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콧방귀를 꼈다.

“요게 귀엽고 착해서 오냐오냐해줬더니 아주 당돌해졌네? 바니아  오늘 언니랑 따로 훈련 좀 할래?”

유리의 협박에 사색이 된 바구스의 여동생 <바니아>는 얼른 오빠 뒤에 숨었다. 그 귀여운 모습에 모두 웃음이 터졌다.


“하하하 바니아? 이름도 귀엽다. 둘이 잘 아는 사이인가 봐?”

유명의 물음에 유리가 대답하기 전에 바구스가 얼른 끼어들었다.


“우리 바니가 유리랑 같은 격구팀이야.”


“그래?”


2차 성징을 하지 않은 몸으로 어떻게 격구팀에서 활동할 수 있을까 궁금해 하려는 오빠에게 유리가 눈치껏 설명을 덧붙였다.


“바니는 일반부소속인데 공식시합만 안 나갈 뿐이지 같은 팀원이야. 내 사랑하는 후배지~”


그러면서 오빠 뒤에 숨어있던 후배를 한 손을 획 잡아당긴 유리는 바니아의 귀여운 얼굴을  손으로 문지르며 괴롭혔다.

“자…짤못했쪄요… 유리언뉘…….”


스쿨버스정류장에는 다들 학생들이 몇 명 더 있었는데 역시 모두 여학생이었다. 이들은 즐겁게 웃고 떠드는 유명의 일행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잠시 후 소리 없이 스르륵 도착한 노란색 대형스쿨버스는 다른 자동차들과 달리 밖에서 속이 다 들여다보이고 버스바닥이 한 계단높이 정도로 낮은  인상적이었다.

멈춰선 스쿨버스의 앞문이 열리자 버스와 같은 노란색 제복을 입은 여승무원이 얼른 내리더니 학생들의 승차를 도왔다. 그녀의 복장 역시 속이 살짝 비치는 전신타이즈였다.

‘제복은 다 타이즈구나.’


2차 성징한 여승무원은 미모는 평범했지만 몸매가 꽤 눈길을 끌었다. 젖꼭지와 음모가 비치는 전신타이즈차림의 풍만한 8등신 몸매를 남자라면 모른 척 할  없는 노릇이다.

“오늘은 리아언니에게 양보할게.”


유리는 오빠 옆자리를 리아에게 내주며 새침한 미소를 지었다. 유명의 일행은 뒤쪽의 빈자리에 자리를 잡았는데 격구팀 선배에게 당돌하게 군 대가를 치르느라 바니아가끌려가는 바람에 바구스는 건너편에 혼자 앉았다.


‘버스 안이여자들 냄새로 가득해….’

‘여자들 냄새’라는 생각 그대로 예전에 살던 세상처럼 인위적이고 자극적인 냄새가 아니라 뭔가 원초적이고 은은한 향기가 스쿨버스 안을 채우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다들…?’


밝고 깨끗해서 미처 신경을  썼는데 여학생들이 화장기가 전혀 없었다. 옆에 앉은 리아나 뒷자리로 간 유리 역시 처음 만난 이후 지금껏 화장품이나 향수 냄새를 맡은 적이 없다.

“흐음~ 냄새 좋다~~”

유명은 찰랑찰랑 반짝이는 머리에 코를 갖다 대고 여자친구의 냄새를 한껏 맡았다. 샴푸냄새가 그윽한 꽃향기가 풍겼다. 남자친구의 살가운행동이 좋은 듯 리아가 활짝 웃었다.

“후후 내 살 냄새좋아?”


“너무 좋아, 근데 이 향기를 살 냄새라고 해?”

“응, 자신만의 향기를  냄새라고 해. 체취란 말도 있는데 잘  써.”

예쁜 여자친구가 자신의 향기를 백치미 가득한 표정으로 ‘살 냄새’라고 말하니 사뭇 음란하다. 이런 표현마저 성적인 자극을 느끼도록 변화되다니, 유명은 이 세계가 점점 더 좋아졌다.

“그럼 샴푸나 향수 같은 건? 화장도 안 하는 거 같은데?”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이런 사소한 것마저 기억 못한다는 사실에 리아는 가슴이 저려왔으나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써 웃으면서 대답했다.


“샴푸는 살 냄새를 가릴까봐 일부러 무향을 쓰고, 향수는 살 냄새가 약한 2차 성징 안 한 애들이 가끔 쓴다고 하는데 우리들은  써. 화장은 연예인들이나 하는 거야.”

“왜 연예인들만 해? 화장해서 더 예뻐 보이고 싶지 않아?”


대답은 뒷자리에 있던 유리가 앞으로 고개를 내밀면서 대신했다. 대화에 끼고 싶은 바니아가 그 조그맣고 귀여운 얼굴을 이리저리 내밀었다.


“남자들이 싫어해서 아주 오래전부터 안 해. 글구 이런 건 박스오빠가 아주 잘 알아.”


“그래?”


모두의 시선이 건너편으로 향했다. 그런데 바로 대답이 나올 줄 알았던 바구스가 팔짱을 끼고 다리까지 꼬고서 고개를 창밖으로 돌리고 있었다.

“저 녀석 왜 저래?”

유명의 지적에 유리의 가슴과 의자 사이로 고개를 쏙 내민 바니아가 속삭이듯이 말했다.

“오빠가 저렇게 폼 잡는 건 여자한테 잘 보이려고 그러는 거예요.”

유리와 리아는 웃음이 터지려는 걸 손으로 입을 막아 참아냈다. 유명은 여자 없이 혼자 앉게  친구를 못내 안쓰러워했던 걸 후회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정류장이  번 지나갔음에도 여학생들은 다른 빈자리를 차례로 채울 뿐 바구스 옆자리는 마지막까지 비어있었다. 그때  출발한 정류장에서 올라  커다란 덩치의 남학생 한 명이 다가왔다.

“야 박스, 저리 비켜.”


친구의 이름이 나오니 관심이 안 갈 수 없다. 이름을 알고 있고 강압적인 말투를 봐서 처음 하는 행동이 아닌 게 분명했다. 덩치 옆에 유리와 리아와 비교될 정도로 섹시한 여학생이 착 달라붙어 있었다.

“알았어….”


무시하거나 따질 줄 알았던 바구스가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유명은 놀라기보다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었다.

“그냥앉아있어, 박스.”


친구의 일에 이렇게 나설  유명 스스로 몰랐다. 호기롭게 자리에서 일어나 마주섰더니 상대와 키는 비슷한데 덩치가 어깨 하나 정도로차이가 났다.


“어? 유명이 너 납치당했다더니멀쩡하네?”


거만하고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씨익 웃는 모습이 영락없이 자신을 괴롭히던 일진들 같았다. 유명은 가슴 한구석에 무섭고 두려운 마음이 똬리를 트는  느꼈다.


‘씨발, 괜히 나섰다….’


속마음과 달리 유명의표정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39살 직장인의 표정관리기술이 이럴 때 힘을 발휘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심지어 건조한 목소리로 대꾸까지 바로 나왔다.

“멀쩡해서 미안하다. 근데너 누군데 내 친구한테이래라저래라 명령이야?”


“뭐? 하하  새끼 기억상실증이라고 그러더니 안 하던 짓을 하네? 하하하~”

자기 여자의 눈치를 보며 과도하게 웃는 덩치의 반응이 뭘 의미하는지 유명은 바로 알아봤다. 그게 긴장을 풀어주는 것과 동시에 용기를 북돋았다.

“기억상실증은 아니지만 편하면 그렇게 알고 있어. 대신 이 자리는 지금부터 내가 앉을 거니까 넌 딴 데 가서 알아봐.”


어쩔  몰라 하는 바구스의 어깨를 지그시 누르고 유명이 건너편 자리로 옮겨 앉자 덩치는 처음과는 달리 적잖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 이것들이 왜 이러지?”

이대로 밀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덩치가 화를 내려고 하자 옆에 여자친구가 얼른 팔을 붙잡고 뒤로 당겼다.


“휘신아 그냥 앞쪽으로 가자.”


“놔봐, 여기 자리 있는데 우리가  서서 가? 어이 리아, 우리앉게 비켜봐.”

친구 지키겠다고 여자친구를 혼자 놔두다니, 유명은 자신의 무신경에 땅을 치고 후회했다. 그런데 리아가 통로 쪽으로 옮겨 앉더니 <휘신>이라는 덩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여기 자리 없으니까 여자친구 말 들어.”

냉정하고 단호한 여자친구의 행동에 유명은 깜짝 놀랐다. 특히 휘신을 노려보는 무시무시한 눈빛이 굉장히 의외였고 놀랍도록 매력적이었다.


유명은 성욕이 확 일었다. 도대체  믿고 저렇게 위풍당당하단 말인가, 그때 리아가 종합격투기를 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허허 이거 황당하네…, 리아 넌 또 왜 이래? 네가 나한테 이러면 안 되잖아?”

 재수 없는 놈이 어떻게 자신의 여자친구를 알고 있는 것일까. 몸의 원래 주인이 그동안 주변여자들에게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이 기억난 유명은 가슴이 철렁했다.

“내 남자친구가 오해할  있는 말은 안 했으면 좋겠는데?”


“남자친구? 누구? 박스? 설마… 유명이?”


휘신의 표정은 진심으로 놀란 것처럼 보였다. 리아가 다시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말했다.

“야, 네 남자친구 데리고 저리 꺼져.”


“으…으응… 알았어, 그럴게….”


리아의 말에 휘신의 여자친구 얼굴이 순식간에 사색이 됐다. 그녀는 남자친구의 팔을 힘껏 끌어당겼다.

“와~ 이 상황 이거 어쩌지? 허허허허~”


폭력적으로 나올 것 같던 휘신은 못이기는 척 여자친구에게 이끌려 앞쪽으로 가버렸다. 그러자 긴장감이 감돌던 스쿨버스가 곧바로 여학생들의 수다와 함께떠들썩한 분위기를 되찾았다.

“리아  왜 이렇게 섹시한 거야?”


“후후, 내가 뭘?”


언제 그랬냐는  활짝 웃으며 대답하는 리아를 보고 있으려니 참을 수가 없다. 유명은 여자친구의 목을 당겨 모두가 보는 앞에서 키스했다.


“우우우~~”

주변 여학생들의 탄성과 휘파람 소리가 작게 들렸다.  소리에 입술이 떨어졌는데 둘의 얼굴이어느새 새빨개져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유리가 리아 옆자리로 옮기면서 한 마디 던진다.


“아무리 리아언니라도 지금은 해결 못해주니까, 참아 오빠~”


“유리 너!”

발끈하는 유명의 반응에 다들 웃음이 터졌다. 분위기가 가라앉자 바구스가 옆에 앉은 친구에게만 들리도록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유명아….”

바구스의 표정이 복잡했다. 미안하고 기뻐하는 기색은 이해하겠는데 뭔가 다른 분위기가 엿보였다.


“응? 뭐가?”


“그냥… 대견하다고 할까 미안하기도 하고….”

유명은 뜻 모를 말을 하는 친구를 팔꿈치로 툭 밀고 씽긋 웃었다.


“이상한 말을 다 한다. 근데  녀석 뭐야? 덩치 믿고 저러는 거 아니지?”


“덩치 믿고 저러는 거야. 휘신이라고 우리학교 대표남학생이야.”

대표라고 해서 학생회장같은 걸 말하는 줄 알았다. 근데 2차 성징한 뇌까지 근육인 녀석이 학생대표를 한다는  뭔가 이상하다.

“뭐 저런 멍청한 놈이 대표야? 다른 놈들은 뭐하는데?”

“유명이 네가 여자에게 관심을 안 가지니까 저런 놈이 대표남학생이 됐지.”

‘대표남학생’이라는  학생회장과 같은 선출되거나 임명되는 공식 직책이나 직함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빠가 모를거라는 걸 알아차린 유리가 설명을 덧붙였다.


“대표남학생이라는 거 별  아냐, 그냥 여자 많이 거느린 난봉꾼을 말하는 거니까.”

이제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친구의 허벅지를 톡톡 치면서 리아가 씽긋 웃었다.


“후후, 틀린 말은 아닌데 꼭 여자가 많다고 대표남학생이 되는 건 아니야.”


“그럼?”

이번에는 바구스의 여동생 바니아가 오빠와 똑 닮은 명랑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여학생들에게 두루두루 인기가 많아야 돼요. 매년 방송국에서 열리는 대표남학생 경연대회도 있어요.”


“말이 경연대회지 그냥 장기자랑이야, 연예인 되려는 놈들이나가서 잘난 척하는 방송이거든. 미리 각본 짜놓고 하는 짓거리지.”


바구스의 냉소적인 추가설명이 없더라도 대충 그럴 거라고 짐작이 갔다. 바니아가 고개를 쏙 내밀고 생글생글 웃었다.

“올해는 유명선배도 나서보세요. 우리학교 최고미녀  명이 여자친구가 됐잖아요? 저 휘신 같은 멍청한 놈보다야 선배가 백배는 나아요!”

“바니, 백배는 좀 적지 않니?”

바니아 위에 가슴을 척 얹고 유리가 끼어들자, 리아까지 풍만한 젖가슴 자랑하듯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그러게  천배는 더 낫지 않아?”


“난리구나 난리… 사랑에 눈이 멀어다들 이성을 상실했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쉬는 바구스의 행동에 모두 즐겁게 웃었다. 그 사이 스쿨버스는 모두의 학교인 ‘동서울중학교’ 교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다음 27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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