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화 〉(15화) 3. 연인과 친구 (16/130)



〈 16화 〉(15화) 3. 연인과 친구

(제 15 화)



식탁에 새로운 요리가 차려질 때마다 날름날름 집어먹는 여동생의 행동이 귀여워 유명은 별 생각 없이 물었다.

“유리 넌 막내인 주제에 안 거들어?”

“리아언니가 있는데 내가 왜? 전에 오빠가 물었던 것처럼 난 프로격구선수를 노리는 귀하신 몸이라구~”

‘격구’라는 단어를 들어본 것 같은데 뭐였나 생각하던 유명은 욕실에서 본 그 미식축구와 농구가 섞인 것 같은 스포츠중계가 떠올랐다.


“격구라면 어제 목욕하다 잠깐 봤어. 그거 굉장히 과격하던데, 유리 네가 그 걸 한다구?”


15살짜리가 가질 만한 크기가 아닌 풍만한 가슴을 가운데로 모으면서 팔짱 척 끼더니 유리는 자랑하듯이 말했다.


“봤어? 어때, 재밌지? 그 과격한 게 격구만의 매력이야~!”

“유리가 올해부터 주전공격수야. 4학년이 주전인 경우도 드물지만 공격수는1명뿐이라서 더 대단한 거야.”

혜리의 딸 자랑에 유리는 조금  자신만만하던 표정은 어디가고 수줍은 듯이 얼굴을 붉혔다. 식탁 차리는 걸 돕던 리아가 거들었다.


“내년에 전국대회 본선까지만 진출하면 유리는 대학에 안 가고 곧바로 프로리그 드래프트에 나갈 수 있어.”

“드래프트에서 1순위 지명을 받아도 바로 1부 리그 경기에는 못 나가. 최소 3년은 하부리그에서 단계를 밟아야지.”

어울리지 않게 겸손을 떠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이다. 유명은 그냥 까칠한 성격의 당돌한 여동생으로만 생각했던 유리가 다시 보였다.


“내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프로리그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는 거 자체가 대단한 아냐?”

“헤헤헤….”

2차 성징 이후로 오빠에게 처음 받아보는 칭찬에 유리는 몸을 이리저리 꼬았다. 몸매가조금만 덜 성숙했으면 무척 귀엽게 보였을 반응이었다.

“자, 이제 먹자~”

혜리의 말에 4명은 신나게 먹기 시작했다. 마야가 출근하면서 준비해놓은 건 순식간에 먹어치웠고 혜리가 실시간으로 만들어내는 것 역시 식탁에 올려놓기 무섭게 사라졌다.

유명 역시 땀을 흠뻑 흘릴 정도로 격한 운동을 한 덕분인지누구 못지않게 많이 먹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세 여자가 놀라는  미처 눈치 채지 못했다.

한참 신나게 먹던 유명은 문득 친구 바구스가 해준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렇게 살 찔 걱정 없이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게 전부 2차 성징 덕분이란 사실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주변 여자들 몸매가 한 명도 빠짐없이 풍만하고 늘씬한 것 역시 2차 성징의 영향일지 모른다. 그런데 지극히 여성스럽고 섹시한 몸매로 어떻게 운동까지 잘 하는 걸까.

유명이 예전에 살던 세상에서도 미모와 몸매가 출중한 여성선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모델이나 배우에 비하면 신체적으로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즉 성적매력이 도무지 15살 같지 않다는  떠나서 유리가 체지방이 풍부한 몸으로 좀 전처럼 움직일 수 있는  강화된 신체가 아니라면 설명이  된다. 그러고 보니 격구중계방송에 나왔던 프로선수들 몸의 굴곡도 무척 여성스러웠다.

덩치가 작고 소질이 없어서  했던 것일  유명은 운동을 좋아했다. 운동 잘하는 친구들을 항상부러워했고 미모와 몸매가 출중한 여자운동선수들은 언제나 성적망상의 대상이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여동생에 대한 엉큼한 상상과 관심이 더 강해졌다. 검색해보면 보다 자세히 알  있겠지만 눈앞에 당사자가 있으니 바로 물어보면 된다.


“박스한테 2차 성징에 대해서 들었는데, 유리 너 그 몸매로 운동 잘하는  2차 성징의 영향이야?”

갑작스런 질문이라그런지 맛있게 잘 먹던 세 여자가 동시에 멈칫했다. 유리가 의심의 눈초리로 확 째려보면서 대답했다.


“내 몸이 어디가 어때서 그딴 소릴 해?”


“아…아니, 유리 너도 그렇고 엄마나 리아도 몸매가 얼굴만큼 너무 예쁘잖아. 풍만하고… 어… 섹시하고… 근데 운동까지 잘하니까… 신기해서 물어보는 거지.”

갑자기 훅 들어온 칭찬에 세 여자의 얼굴이 동시에 새빨개졌다. 혜리와 리아는 다시 먹는 것에 집중하고 유리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으려고 애쓰며 대답했다.

“2차 성징 했다고 몸매가 저기… 다 예쁘고 음… 운동 잘하는  아냐, 반대로 2차 성징 안 했다고 전부 똑똑한 것도 아니구.”


“아… 그래?”

진짜 15살 소녀가 된 유리는 다시 먹는 것에 집중했다. 불쑥 꺼낸 자신의 이야기 때문에 세 여자의 심정이 어떻게 됐는지 알리가 없는 유명은 열심히 잘 먹는 모습을 그저 흐뭇하게 바라봤다.


‘먹방을 왜 보나했더니 이런느낌이구나….’

*****




아침식사가 끝나자 유리는 흰색 스포츠브라와 레깅스에 검정색 학교격구팀 점퍼차림으로 커다란 스포츠가방을 들고 훈련이 있다며 학교로 가버렸다.

“토요일에도 훈련하는구나.”

여동생의 노팬티 레깅스차림을 노골적으로 훑어보는 유명의 엉큼한 모습에 리아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혜리에게 말했다.

“유명이 얘 진짜 다른 사람 같아요.”

“후후, 많이 낯설지? 나도 아직 적응이  돼.”

자기 이야기가 나오자 관심이 두 여자에게로 돌아왔다. 유명은 리아 옆에 슬쩍 다가와 앉으며 물었다.

“근데 리아야….”

“응?”

커다란 갈색눈동자로 다정하게 바라보는 리아의 얼굴이 보고 있으니 유명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자신은 처음 보는데 상대는 오래토록 좋아해준 여자라는 관계가 주는 감정이 특별했다.

“박스가 너한테 들이대다 맞았다던데, 그게 사실이야? 뭘 어떻게 했기에 그 작은 애를 때렸어?”


유명은 재미있는 사건이라 이를 계기로 더 가까워질 의도로 물은 것인데 리아의 예쁜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드리워졌다.


“아, 그거… 그냥… 그럴만한 일이 좀 있었어. 지금은 박스랑 친구로 잘 지내.”


“난 그럼 빨래도 하고 청소나 해볼까~”

혜리는 눈치껏 핑계를 대고 자리를 피했다. 어젯밤 마야와 첫 경험 때처럼 아들의 연애를 기가막히게 잘 챙겨주는 엄마다.

“박스는 여전히 너 좋아하던데, 넌 그럼….”

유명이 말끝을 흐리는 이유를 리아는 알 것 같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완전히 달라져있어  짐작은 확신에 가까웠다. 그래서 대답이 생각보다 쉽고 시원하게 나왔다.


“그래, 지금도 너만 좋아해.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야.”

대놓고 고백을 받을 줄 몰랐던 유명은 말문이 막혀 한동안 리아의 맑고 초롱초롱한 눈동자만 멍하니 보고 있었다. 눈물이 살짝 맺히는 걸 보고서야  말이 떠올랐다.

“아… 미안, 내가 좀 멍했지? 나로선 오늘 널 처음 보는 거나 마찬가지라서 이런 감정이 좀 익숙지가 않아. 게다가….”


“게다가 뭐?”


변명이 우호적이라 그런지 다소 도전적이었던 리아의 표정과 말투가 부드러워졌다. 그게 유명을 솔직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어제 마야씨랑 섹스를 해서… 음…  어떻게 대해야할지 잘 모르겠어….”

상대가 아무리 일편단심이라지만 이 상황에서 왜 다른 여자를 언급한단 말인가. 유명은 39살이나 되는 나이를 어디로 처먹고 이러는지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그게 뭐 어때서? 남자가 여러 여자 사귀는 거 당연한 거잖아?”

검색 한 적이 없어 모르던 사실이다. 성비불균형의 사회라서 막연히 기대하고 있었지만 여자들 스스로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몰랐어…, 나 기억만 없어진 게 아니라 상식이 뒤죽박죽이야. 그래서 여자가  더 많은지 2차 성징이 뭔지 검색해보고 가르쳐줘서 알았어.”

진실이 주는 힘은 무섭다. 그게 상대의 의문이나 기분을 풀어주게 되면 더  힘을 발휘한다.  힘이 리아의 죄책감을 한 쪽으로 치워버렸다.

“그럼… 나… 받아줄래? 어릴 적 단짝친구가 아니라 여자친구로 받아주면  두 번째든 열 번째든 상관없어.”


유명은 소름이 돋았다. 그냥 평범한 여자가 이렇게 나와도 좋아 죽을 판인데 마야와 비교될 정도의 초절정미녀여고생이 받아만 달라고 하다니 고민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예전 세상의 관습을 아직 떨쳐내지 못한 유명은 마야에 이어 리아까지 이렇게 덥석 받아들이자니 양심에 찔리고 너무 염치가 없어 변명이 줄줄 터져 나왔다.


“나도 리아 너처럼 예쁘고 착한 어릴 적 단짝친구를 늘 갖고 싶었어. 네가 보기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없던 친구가 갑자기 생긴 것만 같아서 너무 좋거든? 내 솔직한 마음이야  당장이라도 여자친구로 만들고 싶…, 읍!”


리아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유명에게 키스를 퍼부었다. 아까부터 자신을 유혹하던 그윽한 꽃향기가 훅 밀고 들어오자 유명은 그대로녹아버렸다.


*****



“뭐?! 우리가 섹스한 적이 있다고?”

유명의 목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멀리 앞서가던 주민이 놀라서 돌아봤다. 둘은 겸사겸사 리아의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그런 말을 그렇게 크게 말하면 어떡해!”

얼굴이 새빨개진 리아가 유명의 등을 퍽퍽 쳤다. 주먹질이 상당히 매서워 꽤 아팠으나 실망감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아아…….’

오늘 처음 만난 여자의 처녀를 기억조차 없는 11살의 자신이 가져갔다는  황당한 사실에 어찌  눈물이 안 나오겠는가.


“기억 못해서 그렇다는 건 이해하겠는데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이니? 내가 다른 남자랑 그랬던 것도 아니잖아?”


리아의 항변은 지극히 옳고 당연하다. 놀랄 일은커녕 섭섭해 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명은 안타까워 죽을 맛이다.


“그건 그런데…, 나 사실… 좀 기대하고 있었거든.”


솔직함이 항상 좋은 결과를 불러오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도 얻어걸렸다. 한껏 가슴이 부푼 리아는 유명에 팔짱을 끼고 말없이 집으로 이끌었다.

“엄마, 유명이 왔어~”

집에 들어서면서 리아가 외치자 주방에 있던 리아엄마 세아가 얼른 나와서 맞이했다.


“어머나~ 이게 누구야?”


“안녕하세요.”


2차 성징을 안 해서 키와 덩치가 작을  딸과 놀랍도록 닮았고 향기까지 똑 같은 세아가 활짝 웃으며 반갑게 안아주는 바람에 유명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납치됐다는 소식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이제 진짜 괜찮은 거야?”

“네, 이제는 아무렇지않아요.”

상대적으로 작아보여서 그렇지 몸매의 풍만함이 딸 못지않아 성적매력이 대단했다. 귀엽기만 하던 바구스의 식구들과 다른 느낌이었다.


‘여대생 같다….’

예전 세상의 인터넷에만 존재하는 미녀들보다 월등한 세아의 미모와 몸매에 유명은 눈을 떼지 못했다. 특히 7~8등신 정도 되는 비율이 오히려 현실적으로 느껴져 친근함마저 들었다.


“어머, 유명이 너 그런 눈으로 보는 거 정말 오랜만이다. 다른 사람이됐다더니 진짜네? 나 마음에 드니?”

“네…네? 아하하하…….”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격의 없이 털털하게 구는 모습이 어색하면서 뭔가 신선하다.유명은 혜리와는 다른 매력의 엄마 세아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엄마는 굶은   내지 마. 유명인 내 남자라구!”

 남자라는 리아의 말에 유명의 심장이 더 요동쳤다. 게다가 자신을 가운데 두고 친모녀가 연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색다른 자극에 성욕까지 확 치솟았다.

“넌 엄마가 유명이랑 친해지려고만 하면 항상 민감하게 반응하더라?”

“엄만… 내가 언제?!”

토라진 표정으로 발을 살짝 구르는 리아의 반응이 너무 귀여웠다. 세아가 환한 엄마미소와 함께 유명의 등을 다정하게 어루만졌다.


“유명아, 너희 집이나 마찬가지니까 절대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있어. 알았지?


“네, 그럴게요.”

엄마와 사이좋게 이야기하는 것에 질투를 느꼈는지 리아가 유명의 팔을 잡아 끌고 2층으로 올라가며 새침하게 말했다.

“우리 올라갈 거야. 밥은 내가 알아서 챙길 테니까, 걱정 마.”


“그래, 알았어. 그럼 엄마 잠깐 나갔다 올게.”


딸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린 세아는 타이트한 원피스실내복차림으로 휴대폰만 챙겨서 그대로 집을 나가버렸다.


“와~!  예쁘다. 리아 너 취향이 굉장히 여성적이구나?”

방에 들어서자마자 유명이 감탄했을 정도로 리아의 방은 말 그대로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침대에는 각종인형이 놓여 있었고 커튼이나 가구 등에는 어김없이 레이스로 장식이 되어있었다.


“너도 어릴 때는 이런 거 좋아했어.”


“그래? 나 이런  진짜 좋아해~”

유명의 대답에 리아는 얼굴이 환해졌다. 예전처럼 싫어하면 어쩌나 우려하던 게 기우로 끝났으니 기뻐할 만하다.


잘 그려진 수채화속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으로 방 구석구석을 구경하던 유명은 작은 액자에 눈길이 머물렀다.

 장  장씩 천천히 넘어가는 사진들 속에 어김없이 남자아이가 함께 있었다. 그게 누구인지 물어볼 필요 없었다. 리아가 곁에 와서 조용히 말했다.

“우리 소학교 때야.”

“넌 어릴 때도 정말 예뻤구나?”

리아만이 아니라 어린 유명도 굉장히 귀여웠다. 둘은 티 없이 맑게 웃으며 서로에 대한 친밀감을 온몸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사진으로는 너한테 엄청 들이대는 걸로 보이는데? 이러던 놈이 너 처녀 먹고서는 그동안 모른 척 했다는 거야?”

“후후, 뭐… 그런 셈이지.”


웃고 있지만  뒤에 아련한 애환 같은 것이 느껴졌다. 유명은 리아의 허리를 살며시 감싸며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널 힘들고 슬프게 한 거… 예전의 나를 대신해서 지금의 내가 사과할게. 이런 말 한 마디로 지난 시간을 보상해줄 수 없다는 거 알지만…, 앞으로 잘하겠다는 약속으로 용서해줄 수 없을까?”

여자 앞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줄 유명 스스로 몰랐다. 리아는 그 크고 예쁜 눈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유명의 가슴에 두 손을 얹고 조용히 대답했다.


“우리 사이에 용서할 게 뭐 있어? 보상 따위 필요 없어. 그냥 내 마음 알아준 것만으로 충분해. 내 앞에 이렇게 서서 날 바라봐 주는 것만으로 충분해.”


이 간절한 마음을 감싸주듯이 유명은 리아를 꼭 끌어안고서 키스했다. 서로에 대한 끌림만큼이나 강렬한 성욕이 두 동갑내기 남녀의 몸을 뜨겁게 만들었다.


(다음 16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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