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화 〉(9화) 3. 연인과 친구 (10/130)



〈 10화 〉(9화) 3. 연인과 친구

(제 9 화)

3. 연인과 친구



“하하하, 안녕하세요.”

친근하게 인사하는 모습이나 살짝 낯이 익고 아들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을 보면 친구가 맞는 거 같은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혜리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아… 안녕….”

“유명아, 나 몰라보겠지?”


귀여운 스타일의 남자를 좋아하지 않지만 웃는 얼굴이 해맑아서 반감은 들지 않았다.


“응, 누군지 전혀 모르겠다.”

“카카카카, 잼있다! 나 바구스야, 바·구·스. 넌 박스라고 불렀지. 히히히~”

<바구스>는 쾌활한 남자였다. 동남아시아 혼혈로 보이는 인종적 특성 때문에  그렇게 보였는데 밝은 표정과 활기찬 목소리에는 상대의 경계심을 넘나드는 특별함이 있었다.


“그래…? 기억 못해서 미안하다. 우리 많이 친한 사이였어?”


말은 퉁명하게 나왔지만 바구스가 친한 친구이길 유명은 속으로 바라고 있었다. 학창시절부터  이어온 친구가 없는 늘 아쉬웠다.


“많이 친했지. 미래를 약속… 아 그건 아니고, 운명을 같이하기로 약속…  그것도 아니구나.아무튼 형제와 다름없는 최고의 친구지!”


거짓말이다. 바구스는 양심에 심각한 가책이 느껴졌지만 이 절호의 기회를 절대 놓칠  없었다. 유명에 대한 조사는 오래전에 철저하게 해놓은 상태였다.


“어머, 그래? 근데…  왜 몰랐지?”

혜리의 반응에 바구스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씨익 웃었다. 유명의 엄마가 자신을 몰라볼 때의 대비는 이미 되어있었다.


“모르시는  당연하죠. 유명이가 어디 그런  겉으로 드러내던 친구던가요?”


“하긴… 그렇기도 하네. 바구스라고? 친한 친구였으니까 우리 유명이 좀 잘 부탁해. 납치사건으로 기억을 전부 잃었다는 소식은 들었지? 기초상식 같은 것들도 모르니까 박스가 곁에서 좀  챙겨줘, 내가 부탁할게.”


혜리는 바구스가 유명에게 큰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또래의 동성친구이기에 자신과 가족들이 못하는 뭔가를 해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바구스는 기뻐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맡겨주세요. 저 그런 거 아주 잘해요. 유명이 소식 듣자마자 제가 필요한 정보를  정리해놨다니까요.”

왜소한 체구 때문인지 마치 16살 때 자신을 만난 것 같아 유명은 소름이 돋았다. 자신의 사정을 잘 아는 친한 친구만큼 새로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존재가 또 있을까. 머리 하나는 작은 바구스가 점점  마음에 들어 어깨를 툭 치며 친근하게 말했다.

“염치없지만, 나도 부탁할게.”

“어? 그런 말도 할 줄 알아? 와~ 너 굉장히 멋지게 변했다. 어머니,  이러는  더 반갑지 않으세요?”

바구스의 넉살에 혜리는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민감한 문제라 자신은 꺼낼 생각조차 못하던  이렇게 가볍게 말해주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것이다.


“후후후, 그럴지도 모르겠네.”


“어? 뭐가 그럴지도모르겠다니, 엄마가 그러면 예전의  뭐가 돼?”

이번엔 유명의 넉살에 모두 웃음이 터졌다. 이런 분위기면 자신이 옆에 있는 것보다 친구랑 어울리는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혜리가 둘의 등을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둘이 같이 가서 놀다가 와. 금요일 오후잖아, 친구랑 즐거운 시간 보내.”

터질 듯이 풍만한 젖가슴의 말랑말랑한 감촉을 맛보며 엄마를 향한 야릇한 감정을 느끼는  포기하는 것은 아쉽지만 지금은 우선순위를 바꿔야할 때가 분명했다.

“아, 그래도 돼?”

“당연하지~ 가서 재미있게 놀다와. 대신 늦으면 안 돼, 무슨 말인지 알지?”


혜리의 윙크가 뭘 말하는지 유명은 바로 알아봤다. 마야가 퇴근하면 집에 오기로 한 약속을 말하는 것이다. 그걸알리가 없는 바구스가 나서서 말했다.

“걱정마세요. 우리 집에 가서 놀 거니까 제가 책임지고 돌려보낼게요!”

바구스가 가리킨 집은 길 건너로 그리 멀지 않았다. 아무 이유나 대가 없이 친구 집에 놀러가는 게 도대체 얼마만인가, 유명은 진짜 16살이  것처럼 흥분되고 가슴이뛰었다.

“다녀올게, 엄마~~”

*****

바구스의 집은 같은 동네에다 불과 몇 십 미터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있어서 유명의 집과  차이없었다. 대신 구조나 가구, 장식 등이 달라 다른 집에 온 느낌이 들었다.

“나 왔어~”

집 안으로 들어서며 바구스가 외치자 거실과 2층에서  여자가 동시에 뛰어오더니 그에게 포옹과 키스를 퍼부었다.


“방금 나가더니 벌써 왔어?”

“오빠, 나랑 놀아주려고 돌아온 거야?”

작은 키에 앳되고 귀여운 얼굴까지 한식구라는 인상이 바로 들 정도로 셋은 똑 닮았다. 포옹과 키스가 노골적인 것은 유명 역시 당한 적이 있어 그냥 그러려니 생각하고 인사부터 했다.

“안녕하세요,바구스 친구 유명입니다.”


조금 전에 처음 만났으면서 ‘친구’라고 말하기 무척 어색했으나 다행히 여자들은 바구스처럼 활짝 웃으며 다정하게 맞아주었다.

“어서와, 우리 집에는 처음 오는 거지? 난 바구스엄마야. 소식은 들었어, 이제 괜찮은 거야?”


엄마가 아니라 누나나 여동생으로 보일 정도로 앳된 외모다. 혜리 역시 여동생인 유리와 별 차이 없을 정도로 젊다는 사실이 새삼 생각났다.


“네, 이제 괜찮아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는 게 문제인데… 바구스 도움을 좀 받으려구요.”


“그래, 잘 생각했어. 우리 바구스가 그런  잘 챙겨.  집이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있어.”

이 세상의 엄마들은 모두 혜리처럼 자상하고 다정한 걸까. 바구스의 엄마는 귀엽고 세련된 미모가 아담하고 늘씬한 몸매와 잘 어울렸다. 옆에 생글거리고 있던 미소녀가기다렸다는 듯이 유명을 와락 껴안았다.


“괜찮아보여서 정말 다행이에요, 선배!”


여자에게 ‘선배’라고 불릴 줄은 기대도  했다. 어디 가서 이런 미소녀에게 선배대접을 받는단 말인가. 유명은 바구스를 친구로 삼길 잘했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단란하고 끈적끈적한 바구스의 식구들과 잠시 유쾌한 대화를 나눈 유명은 친구의 방에 들어서자 감탄부터 터뜨렸다.


“와~ 이게  뭐야?”

마치 현실의 자기 방에 돌아온 기분이 들었을 정도로 바구스의 방에는 온갖 진기한 물건들이 가득  있었다.

“내 보물들이지. 어때, 흥미가 좀 생겨?”

“생기는 정도가 아니라 좋아! 이건 뭐냐?”

유명이 들어 올린 것은 유명한 SF영화의 굿즈(Goods)와 비슷하게 생긴 막대기였다. 바구스는 뿌듯해하는 미소로 선뜻 권했다.

“거기 버튼 눌러봐.”

츄이이이잉

“우와아아~~!!”

영화와 똑같이 멋진 효과음과 함께 광선이 솟아오르더니 파란 빛을 뿜었다. 선명한 화질의 3D 홀로그램이 가능한 시대이니 이런 효과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그러자 바구스가 다른 광검을 들더니 버튼을 눌러서켰다.


츄이이이잉


“그건 희귀본 레플리카라서 소리랑 효과만 보이는 거고, 이건 이번에 새로 나온 거야.”

키이이이잉 촤차차차창

광검으로 손바닥을 치자 실감나는 효과음과 함께 불꽃까지 튀었다. 진짜 광검처럼 보여서유명은 감탄을 터뜨렸다.


“이야아아~~ 진짜 같다. 비싸지 않아?”


“당연히 비싸지. 그래서 하나 밖에 못 샀어. 나머지는 다음달에 사려고.”


엄살 떠는 것 같지만 진열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각종 굿즈들과 피규어, 홀로그램들의 엄청난 종류와 양을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갔다.

친구가 관심을 보이는 것에 신이 난 바구스는 귀한 것들 위주로 꺼내놓기 시작했다. 유명은 자신과 취향까지 비슷해 내놓는 것들 전부 마음에  들었다.


“와~ 이 피규어가 하는 동작 이거 애니메이션 장면 그대로 하는 거지?”

“맞아. 이거보다 좀 더 크고 비싼 거는 커스텀 동작까지 할  있는데, 얘는 고정된 장면만 따라하는 거야.”

마야를 그대로 축소시켜놓은 것 같은 금발의 엘프는 풍만한 젖가슴과 둔부를 음란하게 출렁이며 여러 동작을 반복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2~30cm 정도의 작은 피규어인데도 동작이 부드럽고 자연스러웠다.

“이거 보니까,박스  취향이 보인다?”

유명의 지적에 바구스는 특유의 귀여운 미소를 씨익 지었다. 의자에 양반다리로 앉더니 엉큼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2차 성징 한 여자들에게 사족을 못 쓰거든. 히히히~”

‘2차 성징’이란 말이 다시 나왔다. 유명은 어디서 들었나 생각하다 유리가 병원에서 자신의 변화에 대해 물을  언급했던 게 기억났다.


“근데, 2차 성징이 뭐야? 사춘기 말하는  아냐?”


“사춘기? 사춘기가 뭐야?”

궁금한   참는 성미마저 자신과 똑 같다. 바구스는 얼른 검색해보더니 이제야 알겠다는 듯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명이 너 기억 잃으면서 상식이 뒤죽박죽됐구나? 기록이나 사전에 존재하는 사춘기를 다 알고.”


“어? 그런 거야…?”


“그게 아니라면 의사들이 네 상태를 제대로 진단하지 못하는 이유가 뭐겠어?”

이럴 때는 상대의 추측이나 짐작을 그냥 인정하고 받아주는 게 신뢰를 얻기 쉽다. 바구스가 진짜로 자신과 비슷하다면 틀림없이 그럴 거라고 유명은 확신했다.


“그러네…, 네 말을 들으니 그런 거 같다.”

“짜식, 이제야 이 박스님을 인정하는구나.”


유명의 예상대로 바구스는 뿌듯해하는 표정까지 지었다. 사실과 관계없이 바구스의 주장이 꽤 설득력 있는 것은 사실이다. 기억과 사고가 21세기에 머물러 있는 상태를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이해시키겠는가.

“그래, 인정할게. 인정!”

“좋아좋아~ 그런 자세 아주 마음에 들어,크크크. 그럼 검색하면 될 일이지만 직접 설명해주지. 2차 성징은 12살이 된 직후에 겪는 신체적 변화를 말하는 거야.”

원래알고 있는 사실과 큰 차이가 없는 것에 유명은 살짝 김이 빠졌다. 그런데 상징과도 같은 사춘기가 기록이나 사전에서만 존재한다면서 정작 2차 성징은 왜 별다르지 않은 걸까.


“그 신체적 변화라는 게  말하는 거야?”


“그걸 설명하기 전에 세상 사람들이 모두 2차 성징을 하지 않아. 통계상으로는 거의 반반이지. 참, 남녀성비가 3대7인 건 알아?”

“응, 그건 검색해봤어.”


유명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바구스는 조금 더 진지해진 표정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너나 너희집식구들은 모두 2차 성징을 한 사람들이야. 반대로 나나 우리집식구들은 성징을 겪지 않은 사람들이고.”


“반반이라고 했지? 그럼 2차 성징은 성별과 관련이 없는 거야?”

“맞아, 심지어 유전도 아니야. 유명이 네 아이라고 무조건 2차 성징이 되지 않는다는 거지.”

2차 성징으로 신체적 변화를 겪는다는 것만큼이나 놀라운 사실이다. 분명 유전적인 이유일 거 같은데 유전이 아니라니. 근친상간이 유전적으로 가능한 세상이니 그럴  있겠다싶지만 성비가 불균형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뭔가 이상하다.


“신체적 변화라는 게 단지 덩치만 커지는 거야?”

“그런 거랑은 개념이 달라. 인류의 반은 2차 성징을 통해 신체가 강화되고, 나머지반은 2차 성징을 겪지 않고 지적능력이 강화되는 거야.”

“뭐? 그럼 우리가 뇌까지 근육인 바보들이란 말야?”


“푸흡! 뇌까지 근육… 푸하하하하하하~~~”

유명의 엉뚱한 생각에 웃음이 터진 바구스는 의자에서 떨어져 바닥까지굴렀다.

“크크크, 맞잖아? 게임으로 치면 우린 무식한 전사고 너희들은 마법사 같은 현자라는 말이잖아?”

“와하하하~ 맞아맞아! 바로 그거야~ 우하하하하~~”


둘의 대화는 바구스의 여동생이 간식과 음료를 가지고 오는 바람에 잠시 중단되었다. 여동생은 오빠들 사이에 끼고 싶어 하는눈치가 역력했으나 바구스가 대놓고 눈치를  쫓아냈다.

이런 모습은 현실과 비슷해 유명은 친근한 느낌을 받았다. 바구스가 여동생의 노골적인 행동을 비난하는 투로 투덜거렸다.

“저게 날 닮아서 2차 성징 한 남자라면 사족을 못 쓰거든. 게다가 유명이너 취향을 알고는  들이대는 거야.”

드디어 궁금해 하던 이야기가 나왔다. 예전 취향은 신경 쓸 필요 없이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주변 여자들에게 관심 없었던 이유는 알고 싶었다.

“내 취향? 내가 네 여동생 같은 여자들을 좋아했어? 진짜?”


“어? 너 설마 취향까지 바뀌었어? 우정에 금가는 소리가 들린다…. 아니라고 해, 어서!”


조그만 손으로 주먹을  쥐고서 덤벼들 것처럼 구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하지만 표정만큼은 진지해서 유명은 웃음을 억지로 참고 되도록 진지하게 대답했다.

“미안하지만 취향이 바뀐 거 같다. 자, 이거.”


유명은 뿌듯한 마음으로  휴대폰을 꺼내 자랑하듯이 마야의 계정을 보여줬다. 바구스는 게임에서 볼법한 초절정미녀엘프의 아름다움에 잠시 넋이 빠져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아… 이런 운명의 장난이…. 친구냐 사랑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익숙한 셰익스피어의 문장이 나와 웃음이 터지려는 걸 유명은 가까스로 참았다.


“야야, 뭔데 그렇게 심각해? 친구끼리 취향이 같을 수 있는 거 아냐? 난 2차 성징  여자 좋아하면 안 돼?”


바구스의 표정은 마야를  후로 이미 한결 풀어져있었다. 유명이 진지하게 항변하는 것이 마음이 쓰였는지 다시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말이 맞아. 개인취향이 2차 성징과 아무 관련이 없는 것처럼 유명이 네 취향이 바뀌었다고 내가 뭐랄 수는 없는 노릇이지. 다만…….”

“다만, 뭐?”

순간 유명은 유리를 떠올렸다. 엄마와 자매처럼  닮은 예쁜 얼굴과 TV에서 봤던 운동선수들이 연상되는 그 육감적인 몸매는 떠올리는 것만으로 군침이 삼켜졌다.


그러나 바구스가 자신의 여동생을 좋아한다면 응원해 줄 수 있을  같았다. 근친상간이 가능한 세상이라지만 자신에 대한 행동을 보면 잘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네 단짝친구인 리아를 짝사랑한다는 게 문제란 거지.”

“리아?”

유명은 혜리의 휴대폰으로 봤던 리아의 모습이 기억났다. 그 맑고 순수한 이미지는 분명 꿈에 그리던 이상적인 여자친구였다.

자신을 향해 해맑게 웃던 미소가 떠오르자, 3D 홀로그램으로 전화통화 2번  게 전부인 사이지만 친구에게 양보하고 싶은 마음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그때 퇴원하면서 나눴던 이야기가 뒤늦게 생각났다.

‘맞다, 리아도 오늘 집에 온다고 했는데…?’


 눈에 반한 금발벽안의 미녀경찰 마야와의 역사적인 첫날밤이 단짝친구인 리아에 의해방해받는 상황이 벌어지게 생긴 것이다.




(다음 9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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