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화 〉(8화) 2. 신세계 (9/130)



〈 9화 〉(8화) 2. 신세계

(제 8 화)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선 유명은 전신거울 앞에서 자신의 알몸을 보고 잠시 넋을 잃었다. 병원 화장실에서 확인했던 환자복차림과는 차원이 다른 모습에 새삼 놀라는 중이다.

‘우와……, 이게 진짜 내 몸이야?’

16살 남자애라서 근육은 적당한 정도였으나 키가 훤칠한데다 넓은 어깨에 균형이 완벽하게 잡혀있어 남자가 보기에도 반할 정도로 멋진 몸매였다.

무엇보다 이제 막 나오기 시작한 음모 아래 자리 잡은 자지가 포르노에서나 보던 검은 형님들의 것과 비교할  있을 정도로 크고 우람했다.


오랜 직장생활로 불룩 튀어나온 똥배 때문에 고개를 숙여야 겨우 보이던 원래의 것과 너무 비교되는 크기라 이리저리 만져보면서도 믿어지지 않는다.


얼굴은 제법 익숙해졌다. 진한 눈썹아래 여동생처럼 살짝 치켜 올라간 눈매와 커다란 눈동자가 시원한 콧대와 매끈한 턱과 함께 선하고 부드러운 인상을 풍겼다.


‘너무 예쁘게 생긴 거 아닌가?’


39살 속마음에게는 너무 앳된 얼굴이라 그렇게 보일지 모르나 8등신에 걸맞은 크기에 두상까지 예쁜 얼굴과 몸은 어디 한군데 빈틈이 없는 조각과 같았다.

유명은 자신의 달라진 외모에 흠뻑 빠져 거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인 뒤에야 5~6명이 함께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원형 욕조로 향했다.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던 욕조에 몸을 담그자 속에서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곧바로 거품이 확 일어났고 풍성해진 거품은 순식간에  전체를 감쌌다.


“후우우우…,  좋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거품이 온몸을 감싸주니 기분이 나른해지면서 저절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너무 넓어서 썰렁하게 느껴지던 욕실이 전체적으로 스르륵 어두워지더니 욕조 위에만 아늑한 조명이 비쳤다.


별다른 조작을 하지 않았는데 자신의 기분에 맞춰 이렇게 된다는 건 이 집에 인공지능 기반의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 이름이 뭐야? 우리 집?”

[안녕하세요, 우리 집이라 부르시면 됩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자율주행자동차가 말하던 ‘우리 집’을 떠올린  정확했다. 유명은 욕조에 몸을 더 깊게 담그면서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TV 볼 수 있어?”


[예, TV 켜드리겠습니다.]

인공지능의 목소리가 혜리와 똑같았다. 일일이 녹음했을 리는 없을 테고 실제로 곁에서 말하는 것 같이 자연스러운 것을 보면 역시 미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TV는 홀로그램처럼 욕조 끄트머리 조금 위 공중에커다랗게 펼쳐졌는데 색감과 화질이 놀라울 정도로 선명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예전의 유명이 좋아했는지 스포츠중계가 나왔다.


화면에서 벌어지는 경기 역시 여성들만의 구기 종목이었는데, 언뜻 농구처럼 보였으나 럭비공을 옆구리에 들고 뛰어다니는 것이나 몸싸움과 태클이 가능한 것은 핸드볼이나 미식축구 같았다.

“와아~~!!”


팀당 5명씩  10명이 타원형의 경기장을 오가며 미식축구처럼 과격한 몸싸움과 농구처럼 빠른 패스가 이어졌다. 기량이 뛰어난 여자선수들이 몸을 아끼지 않아서 열광적인 경기장 분위기만큼 박진감이 넘쳤다.

‘유니폼이 엄청 야하네? 근데 운동선수들 수준이…, 어후…!’

탄력과 건강미 넘치는 여자선수들이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이리저리 뒹굴며 뛰어다니는 모습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흥분될 정도였다.

여자선수들의 복장은 마야가 입고 있던 경찰복처럼 속이 비치는 전신타이즈에 어깨, 팔꿈치, 무릎 보호대가 부착되어 있는 형태로 얼굴에 전면투명헤드기어를 쓰고 있었다.

“어? 와아! 오오오!!”


태클하며 상대선수의 타이즈를 잡아당기는 모습이 정확하게 줌인해서 비쳐졌다. 유명은 선수들의 타이즈 속이 알몸이라는 걸 뒤늦게 알아봤다.


이런 식으로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적나라하고 선정적인 장면이 경기 내내 이어졌고, 경기장을  채우고 있는 절대다수의 여성 관중들이 입고 있던 상의를 젖혀 젖가슴을 드러내고 흔들거나 아예 알몸 위에 페인팅을 하고 응원하는 모습까지 여과 없이 비쳐주고 있었다.

“우리집, 이거 성인방송이야?”


[성인방송이요? 죄송합니다,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물어주세요.]

유명은 순간 당황했다. 이런 수준의 방송은 이탈리아 같은 개방적인 나라에서조차 성인물로 분류될 텐데 성인방송이란 말을 이해하지 못하다니. 인공지능의 성능이 기대보다 못한 것 같다고 생각하다 뭔가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우리 집, 요즘 방송은 연령별 시청제한이 없어? 성년, 미성년 구분이 없는 거야?”


[아, 그 말씀이셨군요? 사회보장제도상의 차이는 있습니다만 그 외에는 어떠한 연령별 제한이 없습니다. 현재 보고 계시는 프로격구중계와 같은 실시간방송은 시청자의 연령별 선호도에 맞춰 방송시간이 특정되기는 합니다. 답변이 되셨나요?]

인공지능이 혜리의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로 설명하는 사이, 화면에서는 타이즈가 찢어지며 한 선수의 사타구니가 그대로 드러났다.

방송은 이걸 놓치지 않고 클로즈업해 음모와 보지, 심지어 항문의 주름까지 여러 각도에서 생생하게 잡아주고 있었다.

유명은 혹시나 하는 호기심에 손을 뻗어 검지와 엄지로 화면을 확대하는 시늉을 했다. 그랬더니 화면이 확대되고 자동으로 느려지면서 땀인지 오줌인지 애액인지 흥건하게 젖어있는 보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해상도가 얼마나 높은지 음모 가락 사이에 송골송골 맺힌 물방울과 진한 분홍색의 날개와 도톰한 살집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기까지 또렷하게 확인할  있었다.

“꿀꺽.”


저절로 군침이 넘어갔다. 미녀선수들의  여기저기를 마음껏 감상한 유명은 스포츠중계가 이정도면 즐겨보는 애니메이션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우리 집, 애니메이션채널로 바꿔줘.”


[현재 실시간방송중인 곳이 없습니다. 어떤 장르의 애니메이션을 찾으시나요?]

잠깐 고민했던 유명은 해시태그를 다양하게 적용할수록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 확신하고말했다.

“판타지, 모험, 노예, 섹스, 하렘 물로 찾아줘.”

[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기다리라더니 곧바로 화면에 섬네일이 쫙 펼쳐졌다. 연령별제한이 없는 세상이니  고르더라도 조금 전의 스포츠중계 수준의 적나라한 내용일 것이다. 유명은 눈에 딱 들어오는 섬네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언제나 그렇듯 이런 걸 감상할 때는 오른쪽 방향 화살표가 필요한 법이다. 키보드가 없으니 이럴  우에서 좌로 손동작을 하면 다 통한다.

그런데  한 장면만 건너뛰고서 손을 멈췄다. 유명이 고른 애니메이션은 실사형태의 3D작품이었는데 화면에 펼쳐지는 장면들이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이면서 몽환적이었다.

인물들의 모델링이 의도적으로 캐릭터성을 살린 디자인이고 배경이 상상의 세계가 아니었다면 실제와 구별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때 화면  쪽에  가지 아이콘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중 고글모양의 아이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화면이 곧바로 남자주인공의 1인칭 시점으로 전환되었다.

“와아아~~!!”

스토리대로 진행되는 애니메이션이라 자유도는 높지 않았으나마치 1인칭게임처럼 아름다운 히로인들과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치마 밑을 훔쳐보거나 심지어 손을 뻗어 젖가슴을 만지면 실시간으로 반응을 하는 등 몰입도가 상당했다.

[유명아, 목욕 안 끝났어?]

화면과 별도로 옆에 혜리의 얼굴이 3D 홀로그램으로 나타났다. 유명은 잘못하다 들킨 것처럼 깜짝 놀라며 황급히 대답했다.

“어? 아… 다했어.”


[그럼 어서 나와, 점심 먹자~]



*****

외출 했을 때 입었던 타이트한 검은색 초미니스커트와 속이 살짝 비치는 흰색 블라우스 조합의 오피스 룩이 단정함 위로 성적매력이 드러나서 좋았다면,

지금 혜리가 입고 있는 발목까지 오는 길이에 골반 뼈까지 옆이 터진 민소매원피스는 터질 듯이 풍성한 풍선모양의 젖가슴과 그 가운데 젖꼭지의 굴곡까지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노골적이면서 편안한 느낌을 줬다.

“와~ 맛있겠다!”

혜리가 8인용 식탁에 차려놓은 점심식사는 놀랍게도 김밥과 라면이었다. 낯선 세상이라 익숙한 음식을 맞이할  몰랐던 유명은 그저 반가웠다. 식탁 옆의 아일랜드 주방에 요리한 흔적으로 짐작되는 도구와 재료들이 보였다.


“어서 먹자.”

혜리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넘친 이유가 있었다. 늘 먹던 맛일 거라는 선입견을 날려버리는 굉장히 훌륭한 맛이었다. 김밥은 당연하고 라면도 인스턴트가 아니라 짬뽕처럼 직접 조리한 것이었다.


“꿀꺽, 엄마요리 진짜 맛있다!! 쩝쩝쩝.”

“후후후~”


너무 맛있어 유명은 정신없이 먹어치웠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심하면 가끔 폭식을 하는데 그 때보다  많이 먹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이 준비해놨기에 혜리는 아들이 더 달라는 족족 새로 내어왔다. 실컷 먹은 유명은 거실소파에 쓰러지듯 몸을 던졌다.

“배 터지겠다…, 헥헥….”

“오늘 많이 먹었지?”


엄마라면 아들이 과식하는  막아야 정상일 텐데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많이 먹인 걸까.


“좀 말리지 그랬어?”

“응? 평소보다 많이 먹은 거지, 과식한 건 아냐. 배 아프거나 힘들어?”


말을 듣고 보니 그다지 힘들지 않다.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고 생각한 것일까.


“어? 진짜 괜찮네…. 그냥 부르다 정도인데?”


“그치? 예전이랑 또 비교해서 미안한데, 네가 전에는 좀 적게 먹는 편이었어. 지금 먹는 양이 정상에 가까워.”

혜리의 말을 100% 믿는다고 하더라도 성인남성의 2배가 넘는 식사량은 결코 정상이 아니다. 그런데 혜리 역시 성인여성의 2배나 되는 양을 깔끔하게 먹어치웠다.


‘다들 살이 안 찌나…?’

그러고 보니 마야, 린, 혜리, 유리는 물론이고 병원에서 만난 2명의 의사를 포함해 거리에 지나가던 행인들까지 뚱뚱한 여자가 없었다. 덩치가 큰 여자들 역시 가슴과 골반이 좀 과하게 풍만한 정도였다.


이유가 궁금했으나 검색으로 언제든지 알 수 있는 일이라 유명은 그냥 가볍게 넘겼다. 그것보다 늘 살이 찔 것을 염려하며 살았던 입장에서 마음껏 먹을  있다는 사실만으로 뭔가 큰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기분을 알 리가 없는 혜리는 주방을 정리하다 멀리 소파에 누워 멍하니 생각에 잠긴 아들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가만히 두자니 조금 전처럼 기초상식이 너무 부족한 것이 문제였다.


“자~ 점심도 먹었고, 우리 이제 뭐할까?”


일단 뭐라도 함께 해보면 답이 나올 것 같아 혜리는 유명의 곁에 앉으며 되도록 밝은 표정을 지었다.


“글쎄…….  하고 싶은지 아는 게 있어야 하자고 그러지?”


유명은 배부른 만족감에 빠져있어서  생각 없이 한 말이지만 이게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러나   겪었던 일이라 그런지 혜리는 아무렇지 않은  다정하게 말했다.

“우리 나가서 동네라도 한 바퀴 돌까?  근처 지리도 기억  나잖아?”


혜리의 제안이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이틀 지낼 것도 아니고 집 주변은 탐색해 두는 게 공략의 기본이다. 유명은 손가락을 튕기며 대답했다.

“좋은 생각이네! 당장 나가자.”


“후후, 그래~”

식욕 다음이 성욕이라고 했던가. 꽃망울이 터지는 것처럼 활짝 웃는 혜리의 모습에 유명은 탐색이 아니라 당장 키스를 퍼붓고 달려들고 싶었다.


*****



집 밖으로 나온 유명은 조금 불편했다. 젊고 예쁜 엄마와 손을 꼭 잡고 걷는 것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옷차림이 너무 적나라해서다.

팬티가 사타구니의 굴곡까지 선명하게 드러나는 브리프(주; 삼각팬티)인 것은 빅사이즈 트렁크만 입던 몸이라 환영할 일이지만, 바지와 셔츠가 타이즈를 겨우 벗어난 초슬림 핏인 것이 문제였다.

옷 재질이나 디자인이 얼마나 좋은지 걸을 때 불편함은 전혀 없었으나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볼 지 너무 신경 쓰였다. 왜소하고 볼품없는 몸이었던 원래 기억을 아직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탓이다.

정작 오가는 사람들은 낯익은 이웃인지 반갑게 안부인사만 할  유명의 옷차림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가로수 사이로 햇빛이 비치자 혜리가 손을 번쩍 치켜들며 기지개를 켰다.


“우으으음~ 날씨 정말 좋다. 그치, 아들?”


“어… 응, 하늘도 끝내주네.”

시간이 좀 지나고 사람들의 우호적인 눈길을 받았더니 이제는 좀 익숙해진 모양이다. 유명도 하늘을 올려다  여유가 생겼다. 그때 혜리가 연인처럼 유명의 팔짱을 끼더니 생글생글 웃었다.

“우리 아들이랑 얼마만의 데이트지?”


“………….”


팔꿈치에 꾹 눌려지고 있는 거대한 살덩어리의 살인적인 말랑거림에 정신이 팔린 유명은 미처 대답하지 못했다.


혜리의 검정색 민소매탱크톱셔츠 사이로 훤히 드러난 가슴골을 훔쳐보려는데 길 건너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 유명! 야, 유명! 야아~~!!”

활기찬 목소리의 주인공은 키가 작고 귀엽게 생긴 남자애였다. 그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유명을 향해 열렬하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누구지?’

(다음 9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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