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5화) 2. 신세계
(제 5 화)
2. 신세계
마지막으로 언제 했었는지 기억조차 안나는 몽정이라유명은 찝찝한 기분보다 놀랍고 신기했다. 그러나 엄마 혜리와 여동생 유리가 새벽같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꿈의 여운을 즐길 겨를 없이 응급실을 나서야했다.
그 불만은 정신과 상담을 받기위해 진료실로 향하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의료진과 직원들이 전부 여자인 것과 더불어 그녀들의 행색이 유명의 눈길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젖꼭지와 음모가 슬쩍 비치는 흰색 전신타이즈차림으로 젖가슴과 엉덩이를 출렁거리며 진지한 표정으로 바쁘게 오가는 여자들 사이를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나가기란 남자에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힘들게 도착한 진료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의사 역시 여자였는데, 전신타이즈는 아니었으나 별다를 바 없는 타이트한 흰색 초미니스커트원피스에 흰색 망사스타킹차림이었다. 정작 진료실은 편안한 기분이 들도록 아늑하게 꾸며져 있어서 옷차림이 더 야하게 보였다.
어제 응급실 담당의사가 다루던 메추리알처럼 생긴 작은 검사기로 유명을 다시 검사한 정신과전문의는 검사결과를 보여주면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유명씨의 증상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 참 어려운데…, 마치 몸에 다른 사람의 의식이 덧씌워진 것 같다고 할까요?”
정신과전문의의말에 유명은 속으로 뜨끔했다. 상담이라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왔는데, 이정도로 자신의 상태를정확하게 파악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어제 응급실에서 마야와 함께 담당의사에게 검사받을 때와 별다르지 않은 상황이고 이후 혜리와 유리가 왔을 때 자신의 상태를 철저히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던 터라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문제는 마야의 연락처를 물었을 때 보였던 엄마와 여동생이 반응 같은 것이다. 대충 얼버무려서 넘어가기는 했는데 이런 게 쌓이면 괜한 오해를 불러온다.
그때 유명은 자신을 관찰하듯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유리와 눈이 마주쳤다. 어제와 똑같은 성인코스프레용 같은교복차림 속의 육감적인 몸매와 아침햇살을 받은 미모가 눈이 부셨다.
“선생님, 이 남자 우리 오빠 맞아요? 혹시 통합우주군에서 만든 신형안드로이드 아녜요?”
‘안드로이드(Android;인간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인간과 닮은 행동을 하는 로봇)’은 뭘 말하는지 알겠는데 ‘통합우주군’은 뭘까.
15살 소녀다운 참신한 지적에 유명은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 반응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유리는 엄마와 유일하게 다르게 생긴 살짝 치켜 올라간 매력적인 눈을 흘겼다.
“후후, 걱정하지 마세요. 여기 엄청나게 잘생긴 남자는 틀림없는 유리씨 오빠니까. 단지….”
“단지 뭐요?”
정신과전문의가 말끝을 흐리자 혜리가 바로 따지듯이 물었다. 어제에 이어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타이트한 검정색 초미니스커트에 흰색 긴팔블라우스의 오피스룩을 보고 유명은 자신도 모르게 군침을 삼켰다.
“단지… 유명씨의 증상이 워낙 특별한 경우라 뭐가 어떻다고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다는 게 문제예요.”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잘 안 되는데, 그럼 우리 유명이가일시적으로 기억을 못하는 게 아니라는 건가요?”
긴장된 표정으로 진심으로 걱정하는 엄마를 보고 성욕을 느끼다니 이 얼마나 비도덕적인 아들이란 말인가. 그러나 당장 치마를 찢고 튀어 나올 것만 같은 탱글탱글한 엉덩이와 그 아래 쭉 뻗은 늘씬하고 매끈한 다리를 마냥 외면할 수 없는 게 건강한 남자의 본능이다.
‘이 여자는 엄마다, 엄마다…, 엄마다…….’
속으로 아무리 자기최면을 걸어봤자 단순한 손짓에서 교태가 느껴지고 가벼운 움직임에 숨이 훅 멎을 정도의 관능미가 흐르는 여자를 친엄마로 여기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유명씨?”
정신과전문의가 자세를 바꾸면서 자신을 부르는데 유명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엄마 때문에 슬금슬금 피어오르던 성욕이 눈에 들어온 어떤 광경에 훅 치솟았기 때문이다.
“……….”
“유명씨, 제 보지는 그만 훔쳐보시고 제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하세요.”
학구적이고 순진하게 생긴 것과는 달리 정신과전문의의 말투는 거침이 없었다. 벌어진 초미니스커트 사이에서 얼른 눈길을 거둔 유명이 허리를 곧추세우고 대답했다.
“네…네, 선생님.”
“어머님이랑 여동생 이름이 뭐죠?”
뭐 대단히 곤란할 질문을 할 줄 알았는데 이미 알고 있는 걸 왜 묻는지 의아했지만 유명은 알고 있는 대로 대답했다.
“엄마는 혜리, 여동생은 유리요. 어제 만나서 알고 있어요.”
“아…,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정신과전문의의 반응에 혜리와 유리 모녀는 긴장된 표정으로 엉덩이를 들썩였다. 정작 유명의 관심은 속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허벅지 사이로 슬그머니 돌아갔다.
“왜 그러세요, 선생님? 다른 심각한 문제라도 있나요?”
혜리가 바짝 다가가 앉으며 애타게 묻자, 정신과전문의는 유명의 시선을 오히려 즐기는 듯이 다리를 슬쩍 더 벌리면서 대답했다.
“어머님, 여기 이 그래프를 보세요. 이게 좀 전에 제 질문에 유명씨가 대답한 결과거든요?”
한쪽 벽에 커다랗게 자리한 디스플레이에는 유명의 다양한 상태정보가 올려져 있었다. 정신과전문의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그래프는 밑바닥에서 아주 조금 올라와 있었다.
“그 결과가 뭘 의미하는 건데요?”
유리가 도전적으로 물으면서 오빠의 반응을 살폈는데, 유명이 정신과전문의의 치마 속에 정신이 팔려있는 걸 보고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그래프는 해당정보의 누적치를 나타내는 거예요. 즉 어머님이나 유리씨에 대해 유명씨가 얼마나 익숙한 가를 말해주는 거죠. 현재 유명씨는 가족인 두 분보다 어제 만났다는 그 마야라는 경찰을 더 가까운 존재로 여기고 있어요.”
이번에는 세 식구가 똑같이 놀랐다. 유명은 그런 것까지 알 수 있는 기술에 놀랐고, 혜리와 유리는 유명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제대로 알게 되어 놀랐다.
“서…선생님…, 어떡하죠…?”
혜리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아들 곁에 바짝 다가와 앉았는데 그윽한 과일향기가 훅 풍겼다. 눈앞의 광경 때문에 그렇잖아도 정신이 없는데 여기에 엄마의 자극까지 더해지면 진짜 걷잡을 수 없어진다.
‘아…안 돼, 정신 차려야해…!’
중요한 대화인지라 집중하기 위해 유명은 숨을고르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러나 이 엄마라는 여자의 냄새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흰색 블라우스 사이로 절반 가까이 드러나 있는 깊고 풍성한 가슴골은 정신과전문의의 허벅지 사이만큼이나 시선을 끌었다.
“정말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정신과전문의의 말에 유리가 오빠의 상태를 계속 살피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선생님, 아무리 봐도 오빠가 기억만 못하는 게 아니라 성격이나 취향 같은 것까지 바뀐 거 같아요. 이게 가능한 일인가요? 2차 성징한 후부터 납치당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저나 엄마는 당연하고 그렇게 친했던 어릴 적 단짝친구랑 주변 여자들에게 아예 관심이 없었거든요. 근데 지금은…….”
유리가 끝맺지 못한 말이 자신의 엉큼한 행동을 의미한다는 걸 유명은 바로 알아차렸다. 어떤 대답이냐에 따라 앞으로 생활이 달라질 수 있는 중요한 문제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때문에 중간에 언급된 ‘2차 성징’이란 말은 미처 새겨듣지 못했다.
“가능하냐 아니냐를 떠나서 다른 사람이나 마찬가지예요. 여기 이 그래프가 정상적으로 증가하는 게 보이죠? 지금도 제 보지 훔쳐보고 있는데, 유명씨의 행동이 만약 예전 성적취향과 다르다면 수치도 달랐을 거고 줄어 들어야 해요.”
정신과전문의가 가리킨 그래프는 조금 전에 가족들에 대한 친밀도를 나타내는 것처럼 바닥에서 조금씩 증가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걸 혜리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지적했다.
“혹시… 조금 전처럼 그 그래프가 낮은 게 의미가 있는건가요?”
“예, 유명씨가 다른 사람의 의식이 덧씌워진 것 같다는 근거가 이런거예요. 이런 식으로 새로 채워지고 있는 것들은 기억이나 취향, 성격 등 예전에 갖고 있던 데이터가 없어진 항목들이예요. 반대로 여기 언어항목을 보시면 충분히 높은 게 보이시죠?”
믿을 수 없는 사실에 놀란 혜리와 유리는 서로 쳐다보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아들이자 오빠였던 피붙이가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이 된 거나 마찬가지라는 진단을 받았으니 놀라는 정도가 아니라 기절할 일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유명은 최대한 표정관리를 하면서 속으로 환호를 질렀다. 이러면 몸의 원래 주인에 대해 아예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와~ 일이 이렇게 풀리네?’
이제야말로 진짜 거리낄 것이 없어졌다. 유리가 지적한 점들이 문제가 될 여지는 있지만 그런 일들이야 이 새로운 세계에서 살아가는 재미로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걱정, 근심, 두려움이 싹 사라지니 그 자리에 희망, 여유, 자신감이 자리 잡았다. 덕분에 자신의 상태정보에 떠있는 식구들 정보에서 혜리의 배우자 즉 아버지가 없는 것을 뒤늦게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아버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한 부모 가족이야 이상할 것이 없지만 혜리 정도 되는 미녀가 싱글맘이라면 뭔가 사연이 있을 법하다. 무엇보다 자신과 여동생의 성인 ‘유’씨와 엄마의 성이다른 게 신경 쓰였다.
‘근데 혜씨란 성도 있나?’
*****
정신과전문의 상담이 끝난 뒤 재검사를 통해서 최종적으로 정상진단을 받은 유명은 병원에서 더 이상 치료 받을 게 없어서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퇴원했다.
병원을 나선 유명은 눈앞의 거리가 더 이상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화창한 날씨마저 자신의 새 출발을 축복하는 것만 같았다.
‘드디어 시작!’
여러 일이 있었고 이제 2일차에 이 새로운 세계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단편적인 정보들뿐이지만, 가능성 무궁무진한 16살 나이와 여자들 시선 독차지하는 멋진 외모를 갖게 된 기분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여기에 눈이 부시도록 예쁜 엄마와 여동생과 함께 지내게 된다는 기대까지 더해졌으니 유명은 한 시라도 빨리 집에 가보고 싶어졌다.
“이제 집에 가는 거지?”
“당연하지, 바보야. 너 때문에 학교도 빼 먹고 왔단 말야!”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유리가 톡 쏘아붙였다. 여동생의 이런 행동마저 그저 귀엽게 느껴지는 유명은 바보같이 씽긋 웃었다.
“미안해, 유리야. 예전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좋은 오빠 될 수 있도록 노력할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오빠의 행동에 놀란 유리가 얼굴을 붉히고 별다른 대응을 못하는 걸 보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혜리가 재미있어하며 끼어들었다.
“후후, 유리는 좋겠네?”
“엄만! 조…좋긴 뭐가 좋아?”
유리가 엄마에게 괜한 투정을 부리는 사이, SF영화에서 보던 유려한 디자인의 은회색 중형승용차가 소리 없이 스르륵다가와 멈춰 섰다.
[혜리님의 요청에 따라 정차하였습니다. 잠금을 해제하세요.]
“와~ 인공지능에 자율주행까지? 차도 멋지다!”
유명의 감탄에 유리와 혜리는 살짝 굳은 표정으로 서로 쳐다봤다. 혜리가 다시 휴대폰을 조작하자 잠금이 해제되면서 인도 쪽 차문 두 개가 날개처럼 위로 스르륵 열렸다.
행선지를 정하는 것이나 출발시키는 것 모두 혜리의 음성으로 간단하게 이뤄졌다. 차는 멈췄을 때처럼 소리 없이 목적지인 ‘우리 집’을 향해 출발했다.
신이 난 유명은 차창 밖의 거리풍경과 오가는 행인들에게 익숙한 모습을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 유리가 참다못해 물었다.
“오빠, 다른 건 기억 못하면서 인공지능이니 자율주행은 어떻게 알아? 그러면서 엄마랑 난 왜 못 알아보는 건대?”
어리다보니 의사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섭섭한 마음을 지울 수 없나보다. 유명은 귀여운 여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씨익 웃었다.
“나도 내가 왜 이런지 몰라. 남아있는 기억들이 이런 것뿐인 걸 어떡하겠어?”
“……….”
따져 물은 유리도 그렇고 맞은편에서 둘을 지켜보던 혜리 역시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의사의 권고가 있었기에 앞으로 벌어질 혼란을 받아들일 각오는 이미 되어있지만 두 모녀의 걱정은 유명이 짐작조차 못하는다른 것에 있었다. 그때 전화가 왔는지 유리가 팔찌를 톡 쳤다.
“그새를 못 참고 전화했어?”
[유명이는 퇴원했어?]
유리가 무심하게 손목을 내밀었다. 모든 게 흥미롭고 재미있어진 유명은 웃으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 리아야.”
[아…, 안녕. 지금 어디야?]
“퇴원해서 집에 가는 길이야. 넌?”
3D 홀로그램과 목소리로만 아는 사이지만 두 번째인데다 어릴 적부터 단짝친구였다고 말해준 덕분에 유명은 리아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난 학교야. 나도 지금 너희 집으로 갈까?]
“아냐, 그러지 마. 나중에 학교 끝나고 보자.”
[그래…, 그럼 이따 봐.]
“응~”
자신은 찾지 않고 통화가 끊어진 것에 유리는 살짝 실망하는 표정을 짓더니 도톰한 입술을 쑥 내밀었다.
“뭐야? 어제는 모르는 사람처럼 대하더니, 리아언니에 대한 기억은 돌아왔어?”
이건 의도적으로 따지는 것이 분명하다. 16살 오빠라면 못 알아 차렸겠지만 39살 유명은 시치미를 뚝 떼고 대답했다.
“아니, 내 단짝친구라고 네가 말해서 그냥 친하게 대한거야. 리아 사진이나 영상 없어?”
유리가 잠깐 망설이는 사이, 혜리가 자신의 투명휴대폰을 내밀었다. 거기엔 어릴 때 사진과 영상들이 잔뜩 있었다.
“너랑 리아는 소학교 다닐 때부터 친구라서 추억이 많아. 언제든 보고 싶을 때 봐.”
소학교라면 현실의 초등학교를 말하는 것일 테고, 그렇다면 최소 7~8년은 친구로 지낸 사이라는 말이다. 유명은 가장 근래의 사진만 몇 개 클릭해서 확인했다.
‘얘도 장난 아니네….’
어릴 적부터 친구였다고 하더라도 마야에 버금갈 정도로 예쁜 또래 여고생과 그냥 친구사이였다는 게 유명은 믿어지지 않았다.
‘진짜 게이였나…?’
병원에서 유리가 언급했던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다. 주변 여자들에 엄마와 여동생이 포함된 게 신경 쓰였으나 그것보다 여자들에게 왜 관심이 없었는지 궁금했다.
“엄마, 나 학교로 갈래.”
오빠가 리아에게 푹 빠져있는 것으로 오해한 유리는 팔짱을 끼고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혜리가 떠보는 말투로 슬쩍 물었다.
“왜? 오빠한테 집 구경시켜주고 모르는 것도 좀 가르쳐주고 그래야지?”
“됐어, 그런 건 엄마가 하면 되잖아. 야! 학교로 가!”
[목적지를 변경하라는 유리님의 요청입니다. 변경하시겠습니까?]
“응. 학교로 가.”
[혜리님께서 승인하셨습니다. 목적지가 동서울중학교로 변경되었습니다. 예상도착시간은 15분 후입니다.]
마주보고 앉아있는 혜리 옆의 콘솔화면에 해당내용들이 표시되었다. 같은 방향인지 차는 변화 없이 조용히 달렸다. 학교이야기가 나오자 유명은 궁금한 점이 생각났다.
“나 16살이면 내년에 고등학교 가는 거지?”
“뭐? 고등학교? 그게 뭔데?”
유리의 반문에 혜리도 고개를 갸웃했다. 말을 꺼낸 오빠가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을 짓자 유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검색해줘, 고등학교가 뭐야?”
[검색결과입니다. 고등학교는지금의 5년제 중학교과정으로 통합되기 전에 존재했던 교육과정입니다. 직업학교와 비슷하지만 대부분 대학교 입시를 위한 3년제 준비과정이었습니다.]
“웃겨, 대학 가는데 3년이나 준비했대.”
자동차의 인공지능이 검색해준 결과와 유리의 반응에 유명은 생각나는 게 많았다. 그는 궁금한 걸 검색해보려다 일부러 유리에게 물었다.
“유리야, 그럼 우린 중학교 몇 학년이야?”
“난 4학년이고 오빠는 5학년이지. 내년에 졸업인데 기억 홀라당 다 날아가서 어쩌나?”
유리는 말을 해놓고 아차 싶어 엄마 눈치를 살폈다. 눈짓으로 딸을 혼낸 혜리가 최대한 아무렇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말했다.
“유명아 학업이나 학교생활은 걱정하지마. 정 불편하거나 힘들면 강의는 집에서 받으면 되니까, 알았지?”
혜리의 다정한 위로를 듣고 나서야 유명은 학교에 다시 다녀야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엄마 말대로 그냥 집에서 받을까…?’
떠올리고 싶지않은 고등학생시절이 기억난 유명은 시선을 밖으로 돌렸다. 다행이 거리에 각양각색의 여자들이 눈길을 끌었다. 경찰이나 의료진들이 입던 제복과 달리 평상복은 의외로 평범했다.
물론 가린 것보다 드러낸 게 더 많은 끔찍하게 야한 옷차림도 심심찮게 보였는데, 이런 걸 놓치지 않고 보느라 거리에 남자들이 별로 없다는 걸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
유명이 별다른 말이 없자 혜리와 유리는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차는 목적지를 향해 울창한 고목들이 멋들어지게 어우러진 거리를 빠르게 지나갔다.
(다음 6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