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3화) 1.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제 3 화)
납치로 2일이나 행방불명되었다가 경찰에 발견되어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 가족이 바로 찾아오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설사 본인이 만나기 싫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얼굴은 고사하고 이름조차 모르는 생판 남남이 갑자기 나타나 첫눈에 반해버린 여자와 진정한 의미의 첫 경험 순간을 방해하면 분노가 치밀어 오를 일이다.
엘프히로인 마야는 첫 키스의 여운이 채 사라지기 전에 아련한 미소를 남기고근무지로 돌아갔다. 신데렐라를 놓친 왕자의 심정이 유명에 비할까.
“갑자기 사라져서 식구들 혼을 쏙 빼놓고는 자기는 병원에 편안하게 누워서 도대체 뭐하는 짓이래?”
이미 사랑에 빠진 마야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에 사무쳐있느라 여자의 거침없는 비난이 유명의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그만해, 유리야. 오빠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거니? 너도 의사선생님 설명 같이 들어놓고서 왜 그래?”
<유리>라는 이름의 여자는 여동생이고 그녀를 말리는 또 다른 여자는 엄마로 짐작되지만 망연자실한 상태의 유명에게는 불청객이자 방해꾼일 뿐이다.
“그 마야라는 경찰언니도 그래, 어떻게 환자인 오빠를 상대로 그럴 수 있어?”
일생일대의 기회를 망쳐놓고 누굴 비난한단 말인가. 유명은 갑자기 확 짜증이 나서 뭐라고 할 심산으로 고개를 들었다가 그대로말문이 막혔다.
“……!!”
순간적으로 마야를 완전히 잊어버렸을 정도로 눈앞에 있는 두 여자의 엄청난 미모와 몸매에 사로잡혀버렸다. 등장하는 여자마다 이런 수준이라니, 기쁜 마음을 넘어 황당함마저 느껴질 정도다.
‘아니… 무슨 여자들이 전부…….’
아직 어떤 곳이라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낯선 세상에서 눈을 뜬 뒤 지금까지 말을 나눠본 사람은 정확하게 5명. 모두 여자인 것은 둘째 치고 그들 중 4명이 비현실적으로 아름답고 섹시한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한단 말인가.
‘설마 내 주위에만 이런 여자들이 있는 건 아니겠지?’
자신의 외모가 바뀌지 않았다면 이런 고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유명은 화를 가라앉히고 새 등장인물들을 찬찬히 살폈다.
“오빠, 엄마랑 나 만나기 싫다고 했다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어?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기나 해?”
진짜 여동생이라면 섭섭해 할 만 하다. 중간 길이의 짙은 갈색머리를 단정하게 올려 묶은 포니테일이 아주 잘 어울리는 유리는 화가 난 목소리 덕분인지 발랄함이 물씬 느껴졌다.
옆에 있는 엄마와 똑 닮은 앳되고 반듯한 이목구비는 혼혈이라고 여겨질 정도는 아니지만 마야와는 반대로 동양의 단아함 속에 서양의 화려함이 엿보이는 굉장한 미모다.
그런데그 아래 몸매가 도저히 10대 소녀로 볼 수 없을 정도였다. 20살 마야에 비해 풍만함은 부족할지모르나 성적매력은 결코 모자라 보이지 않았다.
‘교복이 맞긴 한가…?’
경찰과 의사의 전신타이즈도 아직 적응이 안 되는데 유리가 입고 있는 것은 진짜 성인코스프레용 교복처럼 보였다.
군청색 치마와 같은 색의 사각 깃 그리고 빨간색 양 갈래 네커치프(neckerchief)의 조합은 전형적인 세일러교복이지만 그 길이와 타이트함이 교복과는 거리가 먼 수준이었다.
브래지어를 안 하고 있는지 흰색상의 위로 젖가슴의 형태는 물론 출렁임은 말할 것 없고 젖꼭지의 굴곡까지 그대로 드러나 보였고, 테니스치마는 배꼽까지 올려 입기는 했으나 얼마나 짧은지 엉덩이를 다 가려줄지 의심스러운 정도였다.
유명의 노골적인 시선이 자신의 몸을 훑고 올라오자 유리가 살짝 놀라는 표정으로 쏘아붙였다.
“뭐야? 지금 내 다리 훔쳐보는 거야?”
“……….”
얼른 고개를 돌리느라 유명은 여동생의 표정을 미처 보지 못했고, 의사의 설명을 믿지 못하던 유리는 오빠가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에 경악했다.
“유명아, 우릴 전혀 못 알아보겠니?”
엄마로 짐작되는 여자는 목소리와 표정이 딸보다확실히 차분하고 다정했다. 그러나 미모에서부터 몸매에 이르기까지 도무지 10대 자녀를 둘이나 둔 여자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젊고 아름다웠다.
“엄마, 이 인간 완전히 딴 사람 같은데? 그렇지 않아?”
“글쎄…….”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나 안타까워하는 목소리에서 친엄마의 느낌이 묻어나긴 하지만 그 엄마가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마야보다 더 섹시하다면 당황스럽다.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기다란 검정색 시스루 카디건(cardigan) 속에 회색 민소매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이 초미니 원피스가 얼마나 타이트한지 몸의 굴곡이 가로로 접힌 주름으로 고스란히 강조되어 보였다.
언뜻 미련해보일 정도의 풍만함인데 딸과 마찬가지로 키가 커서 오히려 늘씬한 느낌마저 줬고, 여기에 딸 유리와 똑 닮은 예쁜 얼굴 위에 부드러운 펌으로 늘어뜨린 세련된 긴 머리가 더해져 성숙한 매력이 압도적이었다.
“뭐라고 말 좀 해, 바보야! 기억을 못하는 거지, 말을 못하는 건 아니잖아?”
평소와전혀 다른 눈길과 표정을 보이는 오빠의 낯선 행동에 답답한 기분을 느낀 유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만 해, 유리야. 오빠에겐 안정이 필요하다고 의사선생님께서그러셨잖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 거야.”
두 모녀가 익숙하고 평범한 외모였다면 오히려 대응하기 부담 없었을지 모른다. 유명은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뭐라고 말해? 아는게 있어야 말하지.유리라는 네 이름도 지금 이 분이 말해줘서 알았는데?”
자신을 ‘이 분’이라고 지칭하는 것에 엄마는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다. 아들의 증상에 대한 담당의사의 설명을 먼저 듣지 않았다면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유명아, 내 이름은 혜리고 우린 같은 집에 살고 있는 한식구야. 너희 둘은 친남매간이고, 나도 네 친엄마야.”
한식구라면 당연히 친엄마에 친남매일 텐데 굳이 강조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으나, 유명은 이 <혜리>라는 거유아줌마가 자신의 엄마라는 사실에 야릇한 기대감과 함께 기분이 좋아졌다.
‘여동생도 좋지만 이런 엄마라면 못 참지.’
친엄마라는 자각이 없으니 거대한 젖가슴의 음란한 출렁임과 그 가운데 솟아있는 젖꼭지의 존재감을 즐기는데 거리낌이 없다.
엉큼한 눈길로 자신과 엄마를 훔쳐보기 바쁜 오빠의 행동에 유리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한탄했다.
“내참…, 그렇게나 바라던 모습을 기억을 몽땅 잃은 바보가 돼서야 갖게 되다니…. 이걸 기뻐해야 해, 슬퍼해야 해?”
유리가 바라는 오빠의 모습이란 게 뭘 뜻하는지 몰라 유명은 혜리를 바라봤다. 그런데 그녀의 표정이 뭘 의미하는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했다.
“내가 기억을 잃기 전에 뭐 어쨌기에 유리가 저런 말을 하는 거죠?”
이건 다분히 의도된 질문이다. 지금까지의 정황을 분석해보면 어쨌든 앞으로 꼼짝없이 16살짜리 남자로 눈앞의 두 미녀와 한 가족으로 살아야한다.
그렇다면 납치사건으로 인해 예전 기억을 잃었다는 것만큼 좋은 핑계가 없다. 유명은 이 상황을 철저히 이용할 생각이었다.
23년의 시간을 거스르는 게 쉽지 않겠지만 적응할 자신이 있었다. 39살이 될 때까지 입시, 대학, 군대, 직장으로 이어지는 치열한 경쟁을 이겨낸 경험이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경험이 얼마나 통할지 확신할 수 없으나 검과 마법을 이용해 몬스터를 물리쳐야 하는 판타지세계보다야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널 좋아해서 그래, 너무 신경 쓰지 마. 한 살 터울이라서 어릴 때부터 티격태격했어.”
“엄만, 누가 누굴 좋아한다는 거야? 내가 저 인간 어딜 좋아 한다구?”
엄마 혜리의 말을 극구 부인하면서 얼굴을 붉히는 반응이 이유는 모르겠으나 모습은 참으로 귀엽다. 외동아들로 자란 유명은 유리와 같이 예쁘고 활달한 여동생을 항상 갖고 싶었다. 물론 그 이유에는 일본성인만화에나 가능할법한 그런 엉큼한 망상이 포함되어 있다.
“아, 리아언니 전화 왔다.”
유리는 손목에 끼고 있던 노란색 스포츠 팔찌를 손으로 톡 쳤다. 그러자 조그만 2등신의 여성캐릭터가 홀로그램으로 나타났다.
[유리야, 유명이는?]
“오빠는 멀쩡해.”
[진짜? 아… 다행이다. 지금 어디야?]
“어디긴, 병원이지. 응급실이야.”
[응급실? 진짜 괜찮아?]
“호들갑은, 괜찮다니까!”
그러면서 유리는 대뜸 자기 손목을 유명에게 내밀었다. 홀로그램 캐릭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유명은 무심하게 물었다.
“리아언니가 누군데?”
사전정보가 전혀 없는 대상은 특히 아는 체하면 안 된다. 게다가 자신의 사정을 알 가능성이 높은 주변인들에게 솔직하게 대하는 것이 적응하기 더 용이하다.
[어머, 유명아! 나 리아야! 괜찮아? 어디 아픈 데는 없어? 응?]
“난 괜찮아. 근데… 내가 기억이 엉망이 돼서 내 이름도 몰랐고, 엄마랑 유리도 못 알아봤어. 그래서 미안한데….”
[괜찮아, 유명아. 괜찮아. 우리가 있으니까, 아무 걱정하지마. 네 몸만 생각해, 알았지?]
말투와 목소리에서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한다는 느낌이 물씬 느껴졌다.
“그래…, 걱정해줘서 고마워.”
유리는 오빠의 대응에 놀라는 표정을 과장되게 짓더니 손목을 다시 가져가 말했다.
“언니, 엄마랑 난 좀 있다 집에 갈 거야.”
[왜? 그럼 유명이 혼자 있는 거잖아? 내가 갈까?]
“아니아니, 응급실이라서 면회만 잠깐 허용되고 보호자가 함께 있을 수가 없대. 그래서 엄마도 여기 있으면 안 된대.”
[아…, 그래? 그럼 유명이 혼자 쓸쓸하겠다.]
“누가 납치당하래? 그만 끊어~”
[으응….]
리아의 목소리는 바로 곁에서 들리는 것처럼 선명해 아쉬움이 그대로 전해졌다. 이 예쁘고 상냥한 목소리의 <리아>라는 여자와 어떤 관계일지 궁금했으나 유명은 일단 관심을 끊었다.
일생의 꿈이었던 ‘하렘(Harem)’의 현실이 될 가능성이 살짝 엿보이기는 하지만 현재로서 확실한 것은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몸은 16살 존잘남일지는 모르나 의식은 39살 모태솔로 아재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고, 이제 겨우 눈앞의 두 여자와 관계가 정리됐을 뿐이다.
연애시뮬레이션 게임으로 따지면 현재 가장 친밀도가 높은 여자는 첫 경험을 시도하다 실패한 마야다. 유명은 누구에게 부탁할까 고민하다 1살 차이라는 여동생을 선택했다.
“유리야, 너 마야순경님 연락처 좀 알아봐줄래?”
“뭐? 갑자기 그 여자 연락처는 왜?”
예상했던 반응이라 다음에 할 말 역시 준비해놓았다. 그런데 두 여자의 표정이 뭔가 이상하다. 엄마 혜리가 그 크고 예쁜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물었다.
“유…유명아, 혹시 너 그 경찰에게 관심…있어서 그러는 거니?”
“어? 그 경찰언니가 들이댄 게 아니라 오빠도 관심 있어서 그랬던 거야? 진짜? 응?”
여동생 유리까지 깜짝 놀라 다그치자 유명은 당황했다. 마야 정도 되는 미녀라면 관심 정도가 아니라 첫눈에 반해야 정상이 아닌가.
‘주변에 여자가 많은 이유가 설마……, 게…게이였던 몸에 들어온 거야?’
*****
“휴…….”
마야는 샤워실에서 걸어 나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백옥같이 뽀얀 살결 위에 송골송골 맺힌 물방울이 풍만하고 탄력 넘치는 몸매의 굴곡을 따라 스르륵 흘러내렸다.
“무슨 한숨을 그렇게 쉬어? 걱정 있어?”
경찰관학교 동기이자 같은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단짝동료 <린>이 다가와 묻자 마야는 고개를 저었다. 둘은 함께 건조대로 걸어 들어갔다.
푸슈우우우우,슈우우우우
건조대에 들어가 버튼을 누르니 몸에 남은 수분이 말끔하게 증발되었다. 마야는 수건으로 금발의 긴 머리카락 속에 남은 물기를 털어내며 거울 앞에 서서 한숨부터 쉬었다.
“휴… 마음이 진정이 안 돼….”
옆에 다가선 린은 심각한 친구의 섹시한 자태를 보며 일부러 장난기 섞인 탄성을 흘렸다.
“어휴~ 이 예쁜 언니 누가 안 데려 가나? 마야 넌 경찰하기 아까우니까, 얼른 사라져줄래?”
“넌 만날 그러더라? 나 사라지면 울고불고 할 거면서?”
린은 마야를 와락 끌어안으며 크고 탐스러운 젖가슴을 거칠게 주물러댔다.
“당연하지! 도망가면 우주 끝까지라도 따라갈 거야~~”
“꺄하하하하~~~”
둘은 탈의실로 가면서 소녀들처럼 즐겁게 장난을 쳤다. 그러나 사복으로 갈아입는 동안 마야의 얼굴이 조금씩 굳어가는 것을 보고 린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아직 중학생이라며? 우리처럼 2차 성징을 거쳤다지만 너무 어린 거 아냐…? 그냥 포기하는 게 좋지 않을까?”
린의 말이 맞고 마야 역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이 생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문제다.
“근데…, 그 얼굴이랑 미소를 도저히 잊을 수가 없어…….”
유명의 숨결이 아직 남아있는 것만 같아 마야는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가댔다. 린은 친구의 어깨를 감싸주며 위로했다.
“첫사랑은 원래 아픈 거라고 누가 그러더라. 나도 해봐서 아는데, 빨리 잊을수록 좋아.”
“나도 소학교 때 아이돌이랑 군인들 짝사랑했었거든? 넌 그걸 첫사랑이라고 하니?”
마야가 평소의 직설적인 성격으로 얼른 받아치자 린 역시 능글맞게 대답했다.
“짝사랑도 사랑이고 첫사랑도 사랑인데 뭐가 다른가요, 마야순경님? 너도 그 유명이란 중학생 만나기 전까지 연예인 좋아했잖아? 그 남자배우 포스터 침대 옆에 붙어있지? 내가 그걸 찍어 놨을 텐데~?”
“너…너…, 그 사실 만약 유명씨가 알면 무조건 네가 범인이야. 그럼 너 다시는 안 볼 거야!”
마치 큰 비밀이라도 들킨 것 마냥 마야는 새빨개진 얼굴로 소리쳤다. 둘은 서로의 휴대폰을 뺏으려고 난리를 치며 탈의실을 나왔다.
지구대를 나온 마야와 린은 기숙사로 돌아가기 전 저녁식사를 위해 근처의 단골식당으로 향했다.
별 말이 없던 마야가 식사가 끝난 뒤 털어놓은 이야기에 린은 깜짝 놀랐다.
“뭐? 앞뒤 안 가리고 처녀 가져가라고 말했다구?!”
“그냥…, 나도 모르게 불쑥 나와 버렸어….”
린은 뭐라고 하려다 친구의 풀죽은 표정에 말을 삼켰다. 이해 못할 일이 아니라서 마야만 탓할 수 없었다.
“차라리 그냥 끝까지 갔으면 좋았을 걸.”
“날 이상한 년이라고 생각하진 않을까…?”
마야의 예쁜 얼굴이 걱정으로 가득해졌지만 린 자신도 연애경험이 없어서 딱히 해줄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럴 땐 마냥 편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유명씨도 너한테 반했다고 그랬잖아? 상식이나 성문화 같은 걸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게 좀 걱정이긴 하지만 설마 널 이상한 여자라고 여기기야 하겠어?”
예뻐서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으나 요즘 남자들 취향이 워낙 특이하고 다양해서 린 스스로 확신이 없었다. 마야는 여전히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나한테 반했다는 거 그냥 하는 말이면 어떡해? 내가 경찰이고 보호자라서 잠깐 의지했던 건 아닐까?”
“그건 아닐 거야. 단순히 의지한 상태라면 네 고백을 부담스러워 했거나 제안을 거절했겠지.”
린의 이번 대답은 제법 위로가 된 모양이다. 한결 표정이 나아진 마야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휴……,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거 처음이야. 밥도 무슨 맛인지 모르고 먹었어.”
“마야 너 진짜 심각한 상태구나? 오늘 나 잠 못 자는 거 아냐?”
장난 반 진담 반의 말에 마야도 가볍게 웃었다. 린의 존재가 새삼 소중하게 생각되었다.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니 생각도 여유를 되찾았다.
“그래도 첫 키스는 했으니까, 첫 번째 소원은 달성했어~”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해. 넌 이상형의 남자랑 키스라도 해봤잖아. 근데 그거 자랑인 거 알지?”
마야는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린의 지적대로 꿈꾸던 이상형의 남자를 만나 첫 키스까지 해봤으니 확실히 어제보다는 나은 오늘이다.
“경찰학교 수석은 내가 놓쳤지만, 키스는 내가 빨랐지? 메롱~”
“어? 실컷 위로해줬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아? 좋아, 지금 면회 끝났을 시간이지? 유명씨 내가 덮쳐서 따먹을 거야. 나 지금 엄청 심각해!”
진짜 갈 생각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린은 그 긴 다리로 성큼성큼 식당을 나가버렸다. 당황한 마야가 급하게 따라가려다 상을 엎을 뻔했다.
(다음 4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