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화 〉(2화) 1. 여긴 어디, 나는 누구? (3/130)



〈 3화 〉(2화) 1.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제 2 화)


“어억! 이거 뭐야?!”

소변을 보려고 바지를 내렸던 최현우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 섞인 말이 튀어나왔다. 자기 목소리에 놀라 주변을 둘러보니 다행히 화장실에 아무도없었다.

‘시…실화임?’

믿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최대한으로 발기해봐야 한 뼘이  되는 길이였던 자지가 완전히 힘이 빠져있는 상태인데도 더 길고  굵었기 때문이다.

‘아, 그렇지. 몸이 바뀌었지….’

일단 시원하게 볼일을 본 최현우는 거울 앞에서서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살펴봤다.

‘우와…  정도면 아이돌이 아니라 영화배우 수준이잖아? 이게 진짜 내 얼굴이란 말야?’

볼을 잡아당기고 코를 누르고 입을 벌리고 턱을 비틀어 보니 자신의 것이 분명한데, 워낙 낯선 얼굴인데다 비현실적으로 잘생기다보니 도무지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여기다 자지까지 크다고?’

최현우는 환자복바지 위로 불룩하게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자신의 물건을 다시 만져봤다. 묵직한 느낌이 나쁘지 않지만 역시 낯설다.

‘이거… 발기하면 얼마만큼 커질까? 외국인들처럼 그냥 이 대로 발기하는 거라면 별로   건가?’

이런  바로 확인하면 된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마야순경의 섹시하기 그지없는 자태를 떠올리며 좌변기로 가려던 최현우는 누군가 자기 앞에 나타나자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

의사나 간호사로 보이는 옷차림의 여자가 쌩긋 미소까지 지어주면서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너무 놀란 나머지 그녀의 흰색 전신타이즈 속 탐스런 엉덩이를 미처 훔쳐보지 못했다.

‘헉, 내가 여자화장실에 들어왔었구나!’

잘생기면 이런 큰일 날 일조차 그냥 넘어갈 수 있구나라고 마음을 쓸어내린 최현우는 황급히 화장실밖으로 나왔다.

‘어? 오줌 눌 때 분명 남자용이었는데? 공용화장실인가?’

이렇게 번듯한 병원의 화장실이 공용이라니 뭔가 이상하다. 그러나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그냥 ‘화장실’이란 글자만 있을  남녀를 구분하는 그림이 보이지 않았다.

“유명씨, 왜 그러세요?”

공용인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화장실이 하나뿐이라는 걸 확인한 최현우는 마야순경이 다가와 묻자 여기를 안내해준 사람이 그녀라는 사실에 그냥 생각 없이 대답했다.

“아…, 여기 공용화장실이었나 봐요.”

“예? 그게 무슨…? 간호사가 들어가던데,  여자가 무슨 짓이라도 했어요?”

마야순경은 당장 총을 빼들고 들어갈 것처럼 심각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성인만화주인공을 코스프레 한 것 같은 민망한 복장으로 이렇게 진지하게 행동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하하,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전 남자화장실인 줄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여자가들어와서 놀랐을 뿐이에요.”

“남자…화장실이라뇨? 그런 게 있어요?”

마야순경의 의아해하는 반응 뭔가 이상하다. 여자의 감정변화는 못 알아차리지만 이런  귀신같이 알아본다.

‘남녀가 화장실을 따로 사용하지 않는 건가? 이런 상식마저 다르단 말이지.’

온갖 상상이 가득한 각종 매체를 섭렵해온 경험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흔히 ‘이세계’라고 불리는 판타지세계 보다 적응이 쉬울 거라는 생각에 최현우는 가벼운 마음으로 물었다.

“남자랑 여자가 화장실을 같이 쓰나요? 그래도 괜찮아요?”

“예? 다…당연히 같이 쓰죠.”

마야순경은 대답하면서 가슴 한구석이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도대체 무슨 일을 당했기에이 사랑스런 남자가 상식마저 잊어버린단 말인가.

정작 최현우는 미간을 살짝 모으면서 눈물까지 글썽이는 마야순경의 표정에 가슴이 쿵하고 흔들린 나머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될 것을 묻는다.

“마야순경님, 왜 그런 표정을…?”

“아…아무것도 아니에요. 어서 침대로 돌아가요. 유명씨는 최대한 안정을 취해야 해요.”

자신의 손을 선뜻 붙잡고 앞서가는 마야순경의 숨 막힐 듯한 뒤태를 보고 최현우는 코피를 쏟을 뻔했다.

*****


응급실로 돌아오니 담당의사가 손에 조그만 메추리알 같은 걸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최현우의 관심은 그 검사기보다 흰색 전신타이즈 속의 끈 팬티 사이로 삐져나온 거뭇한 음모에 쏠렸다.

“선생님. 유명씨가 일반적인 상식까지 기억 못하는 거 같은데, 증상이 이상하지 않아요?”

마야순경의 말에 최현우의 관자놀이에 검사기를 부착하던 담당의사가 긴장하면서 되물었다.

“일반적인 상식을요? 어떤…?”

“남자와 여자가 화장실을 같이 쓰는 게 괜찮은 거냐고 묻더라구요.”

“어머, 그래요? 유명씨, 지금이  년도인지 기억나요?”

살짝 놀란 여의사는 의료기기 화면을 바라보며 최현우에게 물었다. 의료기기가 엉터리가 아니라면 여기서 거짓말을 해봐야 아무 소용없다.

“솔직히… 모르겠어요. 마치 다른 세상에서 다른 사람으로 살다가 이곳에 던져진…, 그런 기분이에요.”

표정이 더 심각해진 담당의사가 최현우의 손을 꼭 쥐고 있는 마야순경에게 물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유명씨가 납치됐다고 했었죠?”

“예, 이틀 전에 실종신고가 들어왔고 수사관들의 긴급조사결과 납치로 특정되었어요.”

대답을 듣고 담당의사는 검사기를작동시키면서 마야순경에게 다시 물었다.

“마야순경님, 유명씨에게 납치됐을 때 기억을 물어도 될까요?”

“아, 잠깐만요.”

마야순경은 자신의 단말기를 꺼내더니 뭔가를 열심히 조작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녀는 최현우에게 단말기를 내밀며 말했다.

“손가락으로 여기를 누르고 승인한다고 말씀하시면, 지금 하는 문답으로 사건수사를 대신할 수 있어요.”

경찰이 마야와 린 같은 초절정 미녀만 있다면 모를까, 경찰서는 되도록  가는 것이 좋은 법이다. 최현우는 단말기에 얼른 엄지손가락을 대고 말했다.

“네, 승인합니다.”

담당의사는 의료기기 화면을 계속 확인하면서 최현우에게 물었다.

“납치된 전후로 기억나는 것이 있으면 뭐든지 좋으니까 말씀해보세요.”

자신이 취조 받는 것처럼 바짝 긴장한 마야순경이  달라붙는 바람에 그녀의 젖가슴이 팔에  눌려졌다. 최현우는 순간 숨이 턱 막혔으나 허벅지를 꽉 붙잡으며 겨우 견뎌내고 말했다.

“제가… 눈을 뜨기 전에 어떤 꿈을  거 같은데, 그게 실제로 겪은 것처럼 너무 생생했어요.”

막상 말을 꺼내놓고 나니 망설여진다. 전후사정이 어찌되었든 여자에게 무기력하게 당한 기억은 남자에게 결코 유쾌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첫눈에 반해버린 마야순경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가 걱정이었다. 그러나 없는 이야기를 지어낼  없고 심지어 기억 안 난다고 할 수 없어 난감했다. 다행이 담당의사가 최현우의 부담을 조금 덜어준다.

“성적환상이라도 상관없으니까, 부담 갖지 말고 말해 봐요.”

“네…, 일단 눈이 안 떠지고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상태였는데요.  몸을 만지는 느낌이나 주변에서 하는 말은 생생하게 잘 들렸어요.”

두 여자의 표정이 전혀 다른 의미로 굳어졌다. 담당의사가 확인하듯이 물었다.

“촉각과 인지능력은 정상이었단 말이죠?”

“네. 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목소리나 말투가 달랐던 것뿐만 아니라 제 몸을 만질 때 분명  명이란 걸 또렷이 확인할 수 있었죠.”

최현우의 대답에 이번엔 마야순경이 화가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요?  세 여자가 유명씨에게 무슨 짓을 했어요?”

사실대로 말하기  망설여졌다. 마야순경의 말투가 마치 알고 있는 걸 확인하는 듯이 들렸기 때문이다. 최현우는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제가… 그 세 여자에게… 강간…을 당했어요.”

의사는 깜짝 놀라 손으로 입을 가렸는데, 마야순경은 놀랍게도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닌가. 최현우의 손을 꽉 움켜쥐면서 다그쳤다.

“그 년들이 유명씨를 어떻게 했는데요? 자세히 말해보세요.”

“네? 그…그게……. 어…, 세 여자가 함께  그걸… 입으로 저기… 그래서 제가 사정을… 했는데, 그게 계속 저기… 해서 다시 세 여자가번갈아가면서… 섹스를 했어요……. 강간인데…, 강간이 아닌…….뭐라 그럴까, 나쁘지는 않았다고 해야 할까요?”

마지막 말은 하지말  후회하려는데 담당의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나쁘지 않았다는 게, 성적취향에 부합되었다는 뜻인가요? 솔직하게 말해도 돼요.”

“아…아뇨, 제가 그걸 즐겼다는  아니라. 즐긴 건 맞나? 아무튼, 강제라는 상황은 인지를 하고 있는 상태에서 그게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는 거죠. 설명이 맞나…? 아! 그때 당시엔 제가 꿈이라고 여기고 있어서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던  같아요.”

마야순경의 표정이 뭔가 미묘해졌는데 최현우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눈길이 마주치자 그녀가 머뭇거리면서 물었다.

“혹시… 아무 여자랑… 가리지 않고 섹스를 즐기시나요?”

신문을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자신의 성적취향을 묻는 것일까. 최현우는 뭐라고 대답하는 것이 좋을지 망설이다 경찰로서 궁금해 하는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고대답했다.

“그렇진 않아요. 아직 연애경험이 없어서 그렇지 나름대로 지키는 선은 있어요. 마야순경님 정도 되는 여자라면 뭐… 무조건 좋지만…….”

사실은 아무 여자랑 섹스를 한 것이 맞다. 그 대상이 업소녀 한정이라는 것이 문제인데,  업소녀도 나름 가렸던 데다가 모태솔로인 주제에 눈은 끝도없이 높았으니 거짓말은 아닌 셈이다.

“아…, 그러시구나…….”

마야순경이 얼굴을 붉히며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고 최현우가 드디어 뭔가를 알아차렸다.

‘어? 얘가…?’

영화배우 뺨치게 잘생긴 것도 모자라 늘씬하고 탄탄한 몸에 우람한 물건까지 가지게  것에서 비롯된 기대감 덕분일까, 최현우는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 제대로 실감나기 시작했다.

여기에 마야순경 같은 초절정 미녀가 자신에게 호감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까지 더해지자, 비현실적인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망설임이 날아가는 것을 느꼈다.

“유명씨,  기억이 지금도 꿈이라고 생각하세요?”

담당의사의 물음은 마치 선택을 확인하는 시스템 메시지처럼 여겨졌다. 최현우, 아니 <유명>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아뇨,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그때의 제 의식은 지금과  같았어요. 여기…  세계의 상식을 모르는 의식이요.”

유명의 다소 추상적인 설명을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인 담당의사는 의료기기의 정보를 다시 살펴본 뒤 말했다.

“꿈이 아니에요.  기억은 유명씨가 직접 느낀 기억이 맞아요.”

담당의사의 말에 마야순경이 내려놨던 단말기를 들고 다급하게 물었다.

“선생님, 그럼 유명씨 몸에서 그 여자들 유전자정보 찾을  있을까요?”

“그건 불가능해요. 옷차림도 그랬지만 유명씨 몸은 약품을 이용해서 아주 깨끗하게 닦여진 상태였어요.”

담당의사의 대답에 실망하는 마야순경의 사랑스런 모습을 뿌듯한 마음으로 바라보던 유명은 뒤늦게 한 가지 사실을 기억해냈다.

“맞다! 세 여자 중에  명이 저한테 비싸게 구한 약을 사용했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제가  움직인다고….”

이 말에 마야순경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바라봤으나 담당의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역시 아무 것도 발견되지 않았어요. 마야순경님도 잘 아시겠지만 경찰이나 구급대원이 데려오는 응급환자들은 무조건 정밀검사를 하도록 되어있어요.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유명씨의 몸은 납치됐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주 깨끗하고 정상이에요.”

“아…, 유명씨를 이렇게 만든 범인을 특정할 수 있을 줄 알고 기대했는데…….”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마야순경을 보며 유명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쩌면 이렇게 예쁜 여자가 있을 수 있지?’

감탄이 절로 나오는 미모다. 동서양혼혈이 아무리 예쁘다고 해도 마야처럼 서양의 화려함 속에 동양의 단아함이 어우러진 얼굴은 쉽게 찾아볼  없다.

게다가 몸매는단순히 키가 커서 늘씬한 수준이 아니라 풍만함에서 비롯되는 관능미가 실로 아찔할 정도다. 성추행으로 오해 받을까 두려워 대놓고 보지 못해서 그렇지 보는 것만으로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보다 자세한 상태는 내일 가족과함께 정신과전문의의 상담을 받아보시면 아실 수 있을 거예요. 이제 그만 쉬세요.”

자상한 말과 함께 다정하고 따뜻한 미소를 남기고 담당의사는 검사기를 챙겨서 돌아갔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자 마야순경이 주춤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명씨, 그럼 전 이만….”

“아, 복귀하시게요?”

“예, 응급실이라 굳이 보호자가 없어도 되니까요….”

말끝에서 진한 아쉬움이 묻어난다. 이런 미묘한 상황에서 연애경험이 없는 남자들은 무작정 덤벼드는 법이다.

“혼자 있고 싶지 않아요. 마야순경님, 아니 마야씨가 제 곁에 계속 있어주셨으면 좋겠어요.”

“…….”

마야순경의 표정이 살짝 굳어지는 것을 보고 16살 유명은 다시 39살 최현우로 돌아가 버렸다.

‘망했다…….’

그린라이트가 순식간에 레드라이트가 됐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마야가 손을 뿌리치지 않고 계속 잡고 있는 것인데, 이게 무슨 의미일지 몰라 최현우는 답답하기만 했다.

“유명씨,  처녀… 가지시지 않을래요?”

“……??!!”



*****



자신의 제안에 유명이 별다른 대꾸가 없는 것에 의기소침해진 마야는 조용히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였다.

다른 환자가 없는지 응급실은 조용했다. 그리고 널찍한 넓이로 침대를 커튼이 둘러싸고 있어서 마치 둘만의 공간에 있는  같았다.

“저기 유명씨, 뭐라고 말을 좀….”

망상에서나 가능하던 상황을 직접 겪은 충격에 사고가 정지되어 눈만 껌뻑이고 있던 유명은참다못한 마야가 먼저 말을 꺼내고 나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죄…죄송해요. 너무 놀라서…….”

“유명씨라면 주변에 따르는 여자들 많을 텐데 놀라실 것까지야…,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다 부끄러워지네요.”

거울에 비친 16살 유명이라면 충분히 그럴만하다 싶다. 그러나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일을 당연히 여기는 것만큼 허무하고 무의미한 짓이 또 있을까.

“글쎄요, 제 기억이 지금 엉망이라….”

“아, 맞다. 죄송해요, 제가 그만 생각 없이….”

마야는 진심으로 당황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엉덩이를 들썩였다.  때문에 음란하기 짝이 없는 풍만한 몸 여기저기가 유혹하듯이 출렁이는 바람에 유명은 당장 달려들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려고 별로 궁금하지 않은 걸 물었다.

“근데… 병원에서 저기… 섹스…해도 괜찮을까요? 쫓겨나지 않나요?”

마야는 이해할 수 없다는  고개를 갸웃하다 이내 입을 살짝 벌리며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미모와 몸매에 백치미까지 있으면 반칙이다.

“아… 괜찮아요. 그런 거 터부시하던 문화는 아주 오래전에 사라졌어요. 그렇지 않다면 경찰인 제가 유명씨에게 어떻게 그런 제안을…….”

“그런 거라면  말하는 거죠?”

그런  뭘 말하는지 유명은 짐작하고 있으면서 마야의 입으로 꼭 듣고 싶었다. 지금 그게 급한 게 아닌데 말이다.

“예? 그…그게….”

“아! 곤란하시면 대답하지 않으셔도 돼요. 전 그냥 궁금해서…….”

육감적인 몸을 살짝 꼬면서 망설이는 모습에 뜨거운 콧김이 훅 뿜어져 나왔다. 덕분에 자신의 몸 어딘가에 피가 쏠리고 있음을 유명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

“저로선 당연한 일들이라  궁금해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근데 지금 그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하려다 마야는 말끝을 흐렸다. 자기 딴에는 확신에 차서 한 제안이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상대가 심리적으로 혼란한 틈을 타서 들이댄 꼴이라는 생각이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유명은 20살인 자신보다 4살이나 어린 남자가 아닌가.

그때 유명의 아랫도리가 시트 위로 불쑥 솟아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큰 키를 감안하더라도 믿기지 않을 정도의 존재감이다. 마야는 얼른 고개를 돌렸으나 이미 심장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근데…, 진짜 저랑… 저 같은 놈이랑 저기… 처…첫 경험을 하고 싶으세요?”

다행이 원하던 본론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 때문에 심장은 터질 것처럼 쿵쾅거렸다. 첫눈에 반할 정도로 멋진 남자의  우람한 물건이 자신의 처녀막을 꿰뚫는다고 상상에 사로잡힌 마야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

이번엔 마야가 대답이 없자, 유명은 자신이 뭘 잘못했기에 쳐다봐주지조차 않는지 궁금해 조급해졌다.

“저기… 마야씨… 마야순경님?”

“예? 아… 죄…죄송해요. 내가  이러지….”

수많은 인파가 지나가는 시내 한 복판에서 거리낌 없이 몸매를 드러내고 당당하게 근무하는 정복경찰이 이렇게 당황하는 이유는 상대가 자신의 이상형이기 때문이다.

“저 사실…, 이 상황 자체가 꿈같아요. 제가 유명이라는 이름을 쓰는 열여섯 살이란 사실도 아직 믿어지지 않거든요.”

유명의 뜬금없는 고백에 마야는 무릎을 꽉 움켜쥐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눈앞에 있는 남자가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이상형이지만 상태가 이렇다면 인내심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저… 유명씨 같은 분을 만나려고 서울로  거예요. 첫눈에 반했다면 믿어 주실 건가요?”

말해놓고 아차 싶다. 이 얼마나 적절하지 못한 유치하기 짝이 없는 고백이란 말인가. 마야는 차라리 그냥 경찰복을 벗어던지고 꽤 자신있어하는 알몸으로 덤벼들 걸 잘못했다고 후회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정작 상대인 유명은 처녀를 가지라고 했을 때 미처 느끼지 못했던 기쁨에 빠져있었다. 선남선녀가 서로에게 반하면 헛발질이 계속되더라도 이어지기 마련이다.

‘와…, 이런엄청난 미녀에게 첫 눈에 반했다는 고백을 받다니. 이런 게 존잘남의 삶이구나.’

아무나 허락해주면 목청껏 웃고 싶었다. 정말 꿈에서나 그리던 상황이라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유명이 이런 생각을 빠져있는 줄 알리가 없는 마야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다음으로 미루는  좋겠어요.”

“네? 뭘요?”

퍼뜩 정신을 차린 유명은  예쁜 마야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역력한 걸을 확인했다. 뭘 잘못한 것일까.

“제가 너무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좀 더 안정이 되시고….”

 기회를 걷어차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게임으로 치면 마야는 자신을 구해준 것이나 다름없는 엘프히로인이 아닌가.

“아뇨, 그냥 마야씨처럼 예쁜 여자가 저 좋다고 해줘서 믿기지 않아 당황한 것뿐이에요. 솔직히 하고 싶어서 지금 미치겠어요.”

“아…….”

마야의 얼굴이 붉어지면서 미소가 번졌다. 어쩌면 이렇게 섹시한 여자가 이렇게 정숙한 느낌을  수 있을까. 유명은 지금까지 겪은 모든 이상한  중에 지금이 가장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고백이 얼마나 믿음을 줄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저도 마야씨 처음 보자마자 반했어요. 같이 오셨던 린순경님도 예쁘시지만  마야씨가 더 좋아요.”

유명은 말 해놓고 곧바로 후회했다. 누가 모태솔로 아니랄까봐 이 중요한순간에 동료인 린순경을  들먹였을까. 그러나 둘에게는 상대의 말이 그저 사랑의 속삭임으로 들릴 뿐이다.

“믿을게요. 아니… 믿어요.  경찰이니까, 유명씨가 기억을 되찾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남자고 여자고  생기면 다 통하는구나 생각하며 유명은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비록 연애경험이라고는 1도 없지만 이어질 상황이 뭐일지 정도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마야씨…….”

“유명씨…….”

둘은 가까이 다가가며 살며시 눈을 감았다. 얼굴도 모르는 강간녀들에게 뺏기긴 했지만 39살 최현우에게 지금  순간이스스로 원해서 하는 진짜  키스다.

어쩌면 사람에게서 이렇게 좋은 향기가 날 수 있을까. 마야의 은은한 꽃향기를 다시 맡으며 유명은 첫사랑에 빠진 진짜 16살이 되었다.

유명만이 아니라 마야도  키스였다. 그래서 둘은 차마 입을 벌릴 생각은 하지 못한 채 입술만 조심스럽게 맞추었다.

촉촉하고 부드럽고 도톰한 감촉이 느껴지는 것만으로 온몸에 전기가 찌르르 흐르고 머리에 종이 울렸다. 입술과 입술이 맞닿는 것만으로 이렇게 감정이 벅차오르고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거릴 수 있는지 그저 놀랍고 신기하다.

‘아… 이런 날이 줄이야…….’

감미로운 감동이 몸 전체로 퍼져나가는  느껴졌다. 마야의 숨소리조차 너무 예쁘고 달콤해 유명은 감히 다른 짓을  엄두가 안 났다.

그러나 오늘의 여정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영원히 계속되어도 좋을 순간이지만 자신은 물론 상대가 원하는 것은 훨씬 더 자극적이고 격렬하고 짜릿한 행위다.

맞닿은 입술이 촉촉하게 젖어오기 시작하자 유명은 조심스럽게 손을 올려 마야의 어깨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맨살이 아닌데도 살짝 몸을 떠는 반응이 신선하다 못해 유혹적이다.

조금만 더 용기를 내면 처음 만난 이후 자신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물방울 모양의  풍성한 살덩이를 만질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이 끝없이 치솟았다.

“……??”

그때 멀리서 누군가가 급하게 달려오는 소리가유명의 신경을 건드렸다. 다른 환자이거나 의료진일 거라고 애써 무시하며 손을 옮기려는데 커튼이 확 젖혀졌다.

“오빠!”

생전처음 보는 여자의 갑작스런 등장에 유명은 엄마 몰래 나쁜 짓을 하다 들킨  같은 심정으로 얼른 마야와 떨어졌다.

그런데 이 결정적인 순간을 망친 방해꾼이 한 명이 아니었다. 화가 난 듯 도끼눈을 뜨고 노려보는 여자 너머에 또 다른 낯선 여자가 울먹이는 표정으로 황급히 뛰어오고 있었다.

(다음 4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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