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13)

등장인물

나>이름:손철민(54) 신장:173 체중:70 직업:중소기업 사장 거주지:미국

아내1>이름:이하련(70) 신장:157 체중:50 B-W-H : 32-28-34

아내2>이름:김간난(83) 신장:154 체중:55 B-W-H : 31-30-35

아내3>이름:김숙희(65) 신장:158 체중:53 B-W-H : 33-29-33

아내4>이름:고영숙(62) 신장:161 체중:52 B-W-H : 33-26-34

아내5>이름:최영주(76) 신장:152 체중:53 B-W-H : 31-29-33 그 외 다수...

현재 생존해 있는 내 아내 모두를 여기 적었다 나이를 보면 알겠지만

내 아내 중 나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건 우리들의 관계가 순리적인 것이 아님을 나타내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그녀들은 과부, 선생님...심지어는 아아..내 어머니도 있다

지금은 그녀들 모두 법적으로 하자가 없는 분명한 내 아내들이다

우리는 결혼하기를 원했고 이 곳 미국으로 건너 와 많은 고생 끝에

자리를 잡고 각 주를 돌며 그녀들과 결혼에 성공했다

내가 어떤 이름으로 그녀들과 결혼했건 그게 무슨 상관이랴?

죽어도 변할 수 없는 것은 내가 손철민이란 한국사람이고 

그녀들은 내 아이들의 어머니이자 내 아내들이란 것이다

그녀들 모두 나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나도 그녀들을 사랑한다

더 이상 무엇이 더 필요할까? ......서로 사랑하고 있음이다.....

지금 내 곁에는 내 아내들이 모두 모여있다 

우리들의 이야기에 조금 더 솔직하기 위해.....

이제 그녀들이 내게 보낸 편지 일부를 소개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 그녀들의 편지 중에서 ----

사랑하는 당신 읽어 주세요 

항상 함께 하며 무슨 편지냐고 늘 말씀하시는 당신...

하지만 용서해 주세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들의

작은 가슴은 하시라도 터져 나갈 것 같답니다

이런 삶도 있구나... 이렇게도 사는 것이구나.....

우리들의 삶 속에서 당신을 만나지 못했다면

우리들의 삶은 얼마나 추했을까요?

사랑합니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비록 세상의 잣대로 우리들을 보자면 탕남탕녀일지 몰라도

우리는 만났고 그만큼이나 열심히 사랑하지 않았습니까?

신에 맹세하거니와 우리들의 순결은 당신께 드렸습니다

모든 것을 떠나 남자와 여자가 서로의 순결을 소유하고

서로 사랑한다면 그건 분명 아름다운 일일 겁니다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 우리의 모습을 기억하세요?

당신의 엄마...늙은 과부...당신의 선생...주인집 마님...

그러나 지금 여기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당신의 아내일 뿐입니다

당신 아내로써의 삶이 우리에겐 가장 소중하니까요

당신을 만나 당신을 위해 밥을 짓고 

당신의 아이를 낳고 기르며 열심히 사랑한 세월

그건 신이 우리에게 내려 준 은총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당신... 

이토록 아름다운 우리의 삶 앞에 죽음을 얘기함을 용서하세요

그러나 죽음을 이야기하며 이리 담담할 수 있는 것은

우리는 그것이 끝이 아님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라옵건대 부디 묘비에 이렇게 새겨 주세요 

나 이제 여기서 당신을 기다립니다

살아온 날보다 더 오랜 시간 당신을 기다려야 할지 몰라도

나는 이것을 헤어짐이라 결코 말하지 않겠습니다

억겁의 시간인 들 그게 무어 그리 대수입니까?

당신과 당신의 사랑을 기억하는 내겐 

그것도 오히려 순간일 뿐입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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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한국 서울 그 비극의 시작 : 엄마와 아들의 선을 넘어서...

정말이다! 늘 하던 대로 나는 엄마를 만지고 있었다 

내 나이 이제 14세 

일제시대 징집으로 아버지를 잃고 나는 유복자로 세상에 태어났다

그 때 엄마나이 겨우 17세 홀로되기에는 너무도 어린 나이였다

그러나 어디 그 뿐이랴? 그 저주받을 동족상잔 6.25.....

이북이 고향인 엄마는 피난길에 모두를 잃고 어린 나와 둘이 되었다

그때부터 엄마의 모진 삶이 시작되었다 인간은 먹어야 살 수 있으니까....

하녀....식모 살이... 모진 고생 끝에 작은 의류점을 열 수 있었다

10년... 여자임을 포기한 그 인고의 세월이 준 값진 선물이었다

엄마의 억척으로 나는 학교도 다닐 수 있었다

집주인 아주머니는 6.25당시 지주라는 이유로 남편을 잃은 

후덕한 인상의 40대 과부로 시부모와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같은 과부인 아주머니와 엄마는 서로 잘 통했고 때로는 모녀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서로를 위하고 있었다 

엄마가 아주머니에게 빌린 돈을 다 갚고 집 살 돈이 있어도

이곳을 떠나지 않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 동안 엄마에게 수많은 유혹이 있었지만 엄마는 오직

나를 키우고 장사하는데 모든 정열을 기울이고 있었다

엄마에게 있어 장사보다 중요한 것은 오직 나 하나뿐이었다

유복자로 키우는 것이 못내 가슴이 아프셨을 것이다

하여간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를 만지며 잠이 들었고 그것은 내게 당연한 일이었다

내게 엄마의 몸은 고향이었고 내가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적어도 나에게 엄마의 몸 중 내가 가지 못할 곳은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엄마의 몸은 남편이 있는 여자처럼 나날이 무르익어 갔다 

내가 엄마의 몸을 만지던 그 어느 날부터 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엄마의

몸이 때론 경련을 일으키고 그럴 때면 엄마의 음부가 젖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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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다음회에 모자의 SEX가 시작됩니다

없는 실력에 문학과 ERO를 접목시키려니 힘드네요

적나라한 이야기만 쓰려면 조금은 더 쉽겠지만..... 

다 벗은 여자보다는 보일 듯 말 듯 한 것이 더 즐겁지 않겠습니까?

----ERO사랑 배상----

2000년 현재 이하련의 회상

그렇습니다 아들은 늘 저를 만져야 잠이 들었습니다

1944년 말 일본이 패전의 그림자로 허덕이며 우리 국민들을 징집...

징용...그리고 종군위안부등의 각종 명목으로 그들의 전쟁터로 내몰 때

제 부모님은 저를 서둘러 결혼시켰습니다 그때 제 나이 15세...

2남5녀중 셋째 딸을 시집보내며 어머니는 많이도 우셨습니다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셨던 시아버님댁으로 신의주에서 멀리 개성까지

1남5녀의 2대독자 외아들에게 시집을 온 것입니다

남편은 저보다 4살위로 비교적 저에게 잘 대해주었고 시댁은

제 친정과 비슷한.. 그리 궁핍하지 않은 살림살이였기에 저는

별 어려움없이 그런대로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처음엔 밤이 마냥 고통스럽고 두렵기만 했습니다

아직 채 여물지도 않은 제 작은 가슴을 한 입 가득 베어물고 

그 위 조그만 젖꼭지를 잘근잘근 물어대던 그의 입술... 

덜 자란 음모를 쓰다듬으며 제 자신도 부끄러워 만지기는커녕

제대로 생각도 못하던 저의 음부와 그 내부 질벽을 드나들던

그의 난폭한 손....그리고 그 부끄러운 곳을 찟을 듯 밀고 들어오던 그의 육봉...

제 몸에 겹쳐진 남편의 둔중한 체중은 무겁기만 했고 내 귀를 파고드는

그의 숨결은 한 없이 거칠기만 했습니다

그러다 그의 몸이 경직되며 부르르르... 진저리를 치는 순간이면

제 부끄러운 곳은 온통 남편의 정액으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하룻밤에도 두세번씩 많게는 댓번도 넘게 저는 제 음부를 씻어야 했습니다

그냥 잠들기엔 제 음부에서 느껴지는 불쾌감이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행위가 끝났어도 무언가 제 몸을 가득 채운 듯 한 느낌도 불쾌했지만

뒷물을 할때 제 질벽을 타고 흘러 뚝뚝 떨어지는 밤꽃내음의 하얀 정액은

정말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의 불쾌감을 주었습니다

어서 이 밤이 지나갔으면... 저에게는 불면의 나날이었습니다

그런 나날이 얼마나 지속되었을까요? 족히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밤이란 것이 그리 두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어렴풋이 성의 즐거움을 알아가던 어느 날....

저는 마침내 제 다리로 그의 두 다리를 휘어 감았고 제 팔로는

그의 건장한 등을 꼬옥 부등켜 안았습니다 

그리고 서툰 몸짓으로 남편의 행위에 동조해 제 둔부를 흔들었고

마침내 여자로서의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절정을 느낀거지요

그 순간이 지나자 더 이상은 그의 손길이 싫지 않았고

남편의 둔중한 체중도 저를 감싼 이불처럼 포근하기만 했으며 

남편의 거친 숨소리에 호응해 제 입술에서도 교성이 흘렀습니다

남자의 품이 이렇듯 아늑할 줄이야 어디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렇게 또 하루하루....제 밤은 더 이상 불면의 밤이 아니었습니다

성에 눈뜬 여체는 참으로 무력했습니다

개울에서 빨래하다 동네 아주머니의 가벼운 농담 한 마디에도...

송이 버섯같이 남편의 성기처럼 생긴 것을 볼 때에도...

제 가슴은 쿵쿵...얼굴은 화끈화끈...숨은 한없이 가빠졌습니다

그러던 1945년 4월 생각이 동해 슬며시 나를 쫓아온 남편의 손에 이끌려

못이기는 척 어른들과 주변의 눈을 피해 뒷 산에서 훤한 대낮에

남편의 성기를 받아들인 후 제 몸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임신.....

6월 중순 입 덧으로 제 임신을 시어머니께서 눈치채셨고 남편을 비롯

모든 시댁식구가 기뻐해 주었습니다 내심 학수고대하고 있으셨던 것입니다

저도 그때서야 제가 체한 것이 아니라 임신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온 식구가 기뻐하며 며칠이나 흘렀을까요?

그러나 기쁨은 결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6월17일 아아--- 지금도 그 날은 잊을수 가 없습니다

남편은 자랑스런 천황의 신민이라는 미명으로 급작스레 일본군에 끌려갔고

그 후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해방이 된 후에도.....

무거운 침묵이 집안을 누르고 어두운 탄식만이 집을 메우던 나날들......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가도록 우리 집은 언제나 겨울이었습니다

그리고 겨울이 끝나가던 1946년 3월 1일 저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유복자인 아들의 이름은 철민으로 시아버님께서 지어 주셨습니다

손철민.....

그 것이 손씨가문의 3대 독자인 제 아들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철민이 태어난 후 어둡기만 했던 저희 집안도 서서히 활기를 찾았습니다

시부모님께서도 누워있던 자리를 털고 일어나셨고 시댁의 모든 일들이

철민을 중심으로 시작되었고 철민이를 끝으로 끝났습니다

대를 이은 저에게도 시부모님의 끔찍한 사랑이 쏟아졌습니다

하나하나 손수 챙겨 주시는 너무나 극진한 보살핌에 송구스러웠지만

그것도 철민이를 향해 쏟는 사랑엔 비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자식들과 손주들에게 애정을 줄 땐 두 분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그 반이라도 따르고 있는지 늘 생각합니다

하여간 그런 보살핌속에 철민은 무럭무럭 잘 자라 주었습니다

하지만 시부모님은 철민이와 주무시진 못했습니다

행여 철민이를 데리고 주무시려고 하면 철민이는 자지않고 울었습니다

제 곁에서 제 젖을 물고 제 몸을 만져야 잠이 들었고

자는 도중에도 틈틈이 저를 더듬어 확인을 했습니다

혹 옷이라도 여며 자기 마음대로 만지지 못하면 자다가도 깨어 울었고

시부모님이 깨실까 저어하여 다시 옷을 벗어야 했습니다

처음 철민이의 조그만 발가락이 제 음부에 닿았을 땐 얼마나 놀랬는지...

하지만 어느새 제 자신도 잘때면 벗고 자는 것이 편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다시금 평온을 되찾은 우리앞에 6.25가 터졌습니다

피난길에 시댁 식구들과도 헤어지고 철민이와 둘만 남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아이딸린 어린 처자가 그것도 전쟁직후에

살아 남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함정과 유혹이 제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식모로 들어간 어느 집에선 제가 첩이 되주길 원했고

하녀로 들어간 어떤 집에선 주인어른이 저를 겁탈하려고 했으며

또다른 집에서는 철민이를 아들로 뺏어 가려고도 했습니다

철민을 버리는 것도...제가 팔자를 고치는 것도...목숨을 버리는 것도...

한번도 그런 생각을 안했다면 그건 제 스스로를 속이는 일일 것입니다

하루에도 제 머릿속을 스치는 수 많은 생각... 생각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던 것은 제 시부모님과 철민이 때문이었습니다

차후라도 시부모님을 뵈면 어찌 고개를 들겠습니까?

그리고 철민이는 적어도 저에게 있어 절대 신앙이었습니다

독한 마음을 먹었습니다 어린 아들과 살아야 했으니까요....

살기위해 이리뛰고 저리뛰다보니 점점 돈이 모이더군요

정당하게 돈을 버는 일이라면 안해본 일이 없었습니다

이제 생각하면 그건 살기위한 몸부림이었다기보다는

세상을 향한 나약한 여인의 발악이었다는 생각이듭니다

겨우 서울 하늘에 발 뻗고 누울 방 한 칸 마련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새 철민이가 8살이 되었더군요

학교에 보내야 했습니다 먹고 살다보니 저와 철민이는 호적도 없었습니다

다행히 주인집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철민이만 우선 호적을 만들었습니다

전쟁고아......

그것이 내 아들 철민이 앞에 붙은 이름이었습니다

더욱 이를 악물었습니다 돈이 없어서야...돈이...

6.25때 빨갱이에게 남편을 잃은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철민을 맡기고

나는 더욱 일을 찾아서 온 몸을 던졌습니다 

"벌금을 물어야 한다면 물어주마 반드시 내 호적을 만들어 아들을 찾고

내 아들 앞에 붙은 전쟁고아라는 꼬리를 떼어주마"

두 눈에서 피눈물을 흘려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겁니다

여하튼 그렇게 또 이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제 아들 철민이 나이 10세...

피곤에 지쳐 들어오면 쓰러지던 나날들.....

어느 날 저는 철민의 손 길에서 남성을 느꼈습니다

철민이는 다른 날들과 똑같이 저를 만지고 있을 뿐인데 제 몸이.....

그 날 제 몸에선 요가 흠씬 젖도록 사랑의 물이 흘렀습니다

철민이는 참 짖궂은 아입니다 물이 흐르니 더 열심히 만지며 하는 말....

후후후....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웃음이 납니다

"엄마? 오줌 싸?" 부끄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이렇듯 순수한 아이의 손길에 음란한 생각을 한 제가 싫었습니다

하지만 참고 또 참아도 가끔씩은 아들의 손길에 따라 서서히

엉덩이를 흔드는 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럴때면 으레히

심한 자괴감에 빠져 들었습니다 

그러나 더욱 참기 힘든 것은 제가 쾌감에 빠지는 빈도가

점점 많아지고 빨라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철민이가 더 이상 만지지 못하도록 해보기도 했지만 

아들은 잠을 이루지 못했고 점점 야위어 가기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행여 눈치채일까 요를 움켜 쥐고 입술을 깨무는 방법외엔 도리없었습니다

1960년 서울

그 해 봄 서울의 거리는 온통 엉망이었다

부정선거에 따른 연이은 학생들의 데모...정치 깡패들의 폭력...

경찰은 방관으로 일관했고 때론 매맞은 학생들을 구타하고 있었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와 책가방을 방에 집어던져 버렸다 

"나쁜 놈...."

늘 겪는 일이지만 오늘은 참을 수가 없었다

전쟁고아... 호로자식... 거기까지는 그냥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엄마보고 갈보니 양공주니 놀려대는 민우놈은 용서할 수 없었다

철민에게있어 엄마는 그냥 보통 엄마가 아니었다

세상의 그 누구보다 열심히 자신을 위해 살아 온 삶이 아니었던가?

어린 철민이지만 엄마의 고생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의 성역에 욕을 하다니.....

비록 아직 호적정리는 못했지만 틀림없는 자신의 엄마였다

장사를 하느라고 곱게 차려입은 엄마를 그 놈들이 보고 질투하는걸까?

지금은 한 번 곱씹어 보지만 아까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온 몸의 피가 끓었으니까....

늘 온순하던 철민이 화를 내자 아이들은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그 순간의 철민에겐 살기가 감돌고 있었다 죽여버리겠어...

정말 그 순간 철민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워낙 죽기살기로 달려들자 싸움께나 한다는 민우는 겁에 질려 버렸고

만약 담임인 고숙희 선생님이 말리지 않았다면 민우는 죽지는 않더라도

병신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긴 지금 맞은 것만으로도 며칠은 족히 고생해야겠지만...

괜히 엄마가 있다고 자랑하고 멀리서나마 애들한테 보여준 게 화근이었다

비겁한 민우 자식은 선생님이 말리고 철민을 혼내는 동안 도망쳐버렸다

혼자 마음을 삭힌 철민이 방으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철민이왔구나!" 주인 집 아주머니셨다

시장에 다녀오는지 장바구니를 들고 들어오던 김간난여사는 깜짝 놀랬다

철민의 상태가 엉망이었다 그 착한 철민이가 싸움을 한 것 같았다

언제나 조용하고 성실해 김간난여사도 무척 철민을 아끼고 있었다

"무슨 일이니? 누구하고 싸웠니? 깡패만났어? 데모했니?"

김간난여사는 자신도 모르게 호들갑을 떨며 철민에게 다가갔다

순간 철민은 갑자기 가슴 깊은 곳에서 서러움이 치밀어 올랐다

"아줌마..." 

철민은 눈물을 뿌리며 김간난 여사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참고 또 참았던 서러움이 한 번 터지자 쉽게 멈춰지지 않았다

김간난여사는 가만히 철민의 등을 쓰다듬으며 진정하기를 기다렸다

그 녀의 살아 온 삶이 그녀에게 준 지혜였다

어느 정도 진정한 후 철민의 얘기를 들은 아줌마는 철민을 다독였다

어린 철민의 심정을 다 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충분히 공감이 갔다

그 녀는 철민을 진정시킨 후 씻기고 약을 발라 주었다

그날 밤 하련은 김간난여사에게 전후사정을 다 들었다

가슴이 저미어 왔다 

한 푼만 더... 한 푼만 더...하며 차일피일 시간을 핑계로 미루다가 

아들의 가슴에 지우지 못할 상처를 남긴 것 같았다

"이번 주에 가게를 하루 쉬더라도..."

하련은 눈물을 닦고 마음을 다잡으며 방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철민은 불도 켜지 않은 채 방 한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하련은 다시 눈물이 쏟아지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일부러 쾌활하게 말을 하려고 했다 그 순간....

"엄마... 잘못했어요...' 철민의 젖은 목소리가 어두운 방을 갈랐다

주르르륵... 하련의 눈에선 다시금 눈물이 쏟아졌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잘못... 잘못이라니....

정작 용서를 빌 사람은 자신이었다

"미안하구나..." 하련의 억누른 입술을 비집고 참담한 말이 새어 나왔다

한 참을 그렇게 아무 말없이 모자는 서로의 자리에서 서로를 응시하며

눈도 깜박이지 않은 채 울고만 있었다

어두운 밤에 어두운 방 안에서 무엇이 울고있는 사람눈에 무엇이 보일까마는 

그 순간 적어도 두 사람만은 서로를 볼 수 있었고 느낄수 있었다

어느정도 시간이 흐른 후 하련은 정신을 차렸다

"철민아... 엄마는 참 기쁘구나 우리 아들이 이렇듯 엄마를 위해 싸워주다니...

싸운게 잘한건 아니지만 엄마는 기뻐...어디 우리 아들 좀 안아볼까?"

하련은 다가가 아직도 흐느끼고 있는 철민을 다독거려 주었다

"엄마가 약속하마 조만간에 우리 철민이가 학교에 당당히 갈 수 있도록..."

그러나 하련의 그 말은 영원히 지켜지지 못했다

그날 밤 철민의 어린 성기는 엄마의 만개한 꽃잎속에서 밤새 녹아 내렸고

그 둘은 모자지간으로 여원히 돌아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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