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 고오!! "
" 부장님! 그만 하시지요.. 이거 친선 고스톱인데 너무하시는 것 아닙니까?
"
자신의 앞 담요 위에 달랑 화투 두 장만 갖다 놓은 곽 차장 특유의 엄살
이다.
" 이 사람아! 아무도 날 사람도 없는데.. 이 장면에서 스톱할 사람이 어디
있어? 자넨 양박 에 쓰리고면 볼 것 없이 상한가 구만... "
" 이거 초짠데.... 광박이라도 면하려면 안 먹을 수도 없고... 에라! 개구
리 언덕 뛰어내리 기다. 죽으면 죽고, 살면 살고... "
번지점프대 스타트 직전의 표정을 한 곽차장이 오동광을 때리고는 패를 가
져와서 뒤집는 데... 정작 본인보다 뒤에서 지켜보던 미쓰 황의 탄성이 먼
저 터진다.
" 오모! 또 쌌네.. "
오동피가 하얀 배를 발랑 드러낸 것이다.
" 자..자네 가졌지? "
" 저요? 없어요.. 부장님이 또 가지셨나 본데요.. "
이젠 서명기까지 사색이다.
" 이 사람들이 간도 생기다 말았나... 나도 없으니 겁먹지들 말구 쳐... "
" 여보오! 당신이 치고 받으면 나요.. 피가 다섯장이잖아요? "
아까부터 옆에 무릎을 가지런히 모으고 앉아 남편을 응원하던 서명기의 신
혼아내 현지우의 안타까운 기대다. 입살이 보살이라던가... 명기가 흑싸리
를 먹고 패를 가져와 조심스럽게 훑어내리는데... 먼저 현지우가 자리에서
반쯤 상체를 곧추세우며 환호성을 질렀다.
" 어머나! 여보오! "
연달아 오동피가 올라 왔던 것이다. 아까 죽으면서 오동피를 포개넣은 장대
리가 부장패를 망쳐놨으니 표도 못내고, 날아가는 새 궁디라도 본 것처럼
혼자 흐흐거리고 있다. 극적으로 역전 WIN을 한, 명기 본인보다 오히려 곽
차장의 입이 더 찢어지고.. 주위에서 관전하던 직원들이 모두 자기일처럼
통쾌해하며 왁짜지껄한데.. 정작 억울해 하며 방바닥을 쳐야 할 강동기부장
만은 담담하다. 아니 담담한 게 아니라.. 지금 정신이 딴 곳에 가 있다. 현
지우가 순간적으로 흥분이 되어 얌전하게 옆으로 모으고 있던 한쪽 다리를
세우는 바람에 무릎을 덮는 정도의 홈웨어 치마가 들춰지면서 뽀얗고 토실
한 허벅지 깊숙한 곳이 맞은편에 앉은 강동기의 시야에 들어 와 버렸던 것
이다. 허벅지뿐 아니라 노랑색 삼각팬티까지 눈에 스쳤는데, 얼핏 얇은 팬
티의 도도록한 부분위로 가무잡잡한 음모까지 비쳐졌던 것 같다. 강동기의
열띤 시선을 육감적으로 느낀 현지우가 당황해하며 얼른 다리를 모으는데
... 얼굴이 발그래 진다.
" 허허허... 참! 이래서 고스톱은 일어설 때 봐야 한다니까.. 내가 떴으면
바로 양 대박인 데... 서명기씨 3점 뿐이지? "
강동기도 눈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둘만의 해프닝이었지만, 어색한 순간을
능청으로 얼버무린다.
그날 밤, 눈에 삼삼히 떠오르는 현지우의 고운 허벅지 속살때문에 강동기는
또 잠을 설치고 말았다.
회계학을 전공한 서강표의 이복막내동생 서명기는 졸업하자마자 MG증권회사
에 입사하여 올해로 4년차인데 곧 대리승진을 눈앞에 두고 있다. 거래실적
싸움만 남은 것이다.
입사 당시에는 그런대로 호경기여서 증권회사직원이면 마담뚜 수첩에도 이
름이 올라 갈 정도였지만, 지난 해부터 몰아친 IMF한파로 요즘은 성과수당
은커녕, 감원까지 걱정해야 할 지경이 되었다. 거기에다 대리승진을 위한
피말리는 신규고객 유치 및 거래수수료 실적 싸움으로 하루하루 쌓인 스트
레스가 이젠 밤이면 가위에 짓눌리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러고 있었다.
아내인 현지우 옆으로 가 본지도 벌써 열흘이 지났지만, 다행히 아내도 그
런 쪽으로 보채지는 않아서 명기도 별 부담은 갖고 있지 않았다.
그가 속한 고객관리부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화투판의 멤버 중 최고 상급자
인 강동기 부장이 지휘하고 있는데, 그는 한마디로 사내에서 ' 미친 들
소"라는 별명이 말해 주듯 공포의 대명사였다.
170Cm가 채 안되는 키에 70Kg의 약간 땅딸막한 체구를 가진 강동기는 무엇
이든 한번 마음 먹은 것이면 수단방법가리지 않고 목적달성을 하고 마는,
집념이 강한 42살의 사내로 '들소'라는 별명도 그런 성격탓에 누군가가 붙
였을 것이다.
검붉은 얼굴바탕에 송충이같이 짙고 굵은 눈썹, 부리부리한 눈, 그리고 큼
직한 코가 강인한 인상을 풍겨서 누구든지 처음 마주하면 왠지 주눅이 드는
그런 인물이었다. 마음에 드는 여자를 손아귀에 넣는데도 일가견이 있었고,
그런가 하면 부동산졸부같은 알짜배기 고객도 어떤 수단을 부려서든지 유치
해내는 재주가 비상해서 회사내에서도 일찍 인정받아 지금의 지위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런 강동기부장에게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상당히 오래 된 속앓이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자신이 데리고 있는 부하, 서명기의 아내
현지우였다. 강부장의 기억으로 결혼당시 23살이었으니 지금은 25살일 터이
다.
중키에 평범한 외모인 서명기가 마누라복은 있었는지, 2년전 결혼식장에서
신부를 처음 본 순간, 강부장을 비롯한 하객들은 하나같이 입을 다물지 못
했다.
약간 타원형의 동그란 얼굴에 겁을 먹고 있는 듯한 흑진주같은 눈동자, 적
당히 오똑한 콧날에 조그맣고 선이 뚜렷한 윤기나는 입술, 거기다 보호해주
고 싶을 정도의 갸날픈 목과 허리, 투명하여 그대로 핏줄이 들어날 것 같은
고운 피부....
키는 요즘 신부로서는 약간 작은 편인, 160Cm가 조금 넘었을까 싶었지만 오
히려 품안에 쏘옥 들어올 것 같은 아담한 체구여서 예쁜 신부를 많이 봐 왔
던 강부장이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을 정도로 현지우의 청순하고 고혹적
인 자태는 식장에 참석한 뭇 남성들의 설레임과 선망의 시선을 모으기에 충
분했다.
강부장의 옆에서 두 남자가 수군수군하는 소리가 들렸다.
" 야! 저 신부 죽이는데.... "
" 가만... 탤런트 최지우를 빼 닮았네.... "
" 그러게.... 최지우보다 키만 좀 작았지... 얼굴이나 몸매는 붕어빵이야
.... "
" 명기자식.... 어디서 저런 미인을 낚았지.... 복도 많은 놈.... "
서명기는 고교시절부터 클래식기타에 심취하여 대학에 들어가서도 클래식동
아리 활동을 해 왔는데, 명기가 4학년이 되어 동아리회장을 맡아 있을적에
현지우가 동아리새내기로 들어왔었다. 지우의 빼어난 미모를 본 명기가 재
빨리 찜을 놓았고, 지우도 명기의 유창한 화술과 섬세한 클래식 연주에 매
료되어 자연스러운 커플로 이어져 3년의 열애 끝에 지우가 졸업반이 되자마
자 결혼을 서둘렀던 것이다.
현지우정도의 특출한 미모라면 보다 더 나은 신랑감도 많으련만, 여자란 무
드나 분위기에 약한건지 수수한 용모에 가진 것도 별로 없는 명기였지만,
성품이 착한데다 낮게 깐 목소리로 흥얼거리며 클래식기타를 튕기는 모습에
반한 지우는 청혼을 두말없이 승낙하고 말았다.
결혼 후 한달쯤 뒤, 서명기의 신혼인사겸 집들이에 초대된 강부장은 그녀의
모습을 자신도 모르게 점점 더 깊이 가슴속에 새겨가고 있었다.
고운 한복차림에 앞치마를 두르고 까아만 생머리를 어깨너머로 찰랑거리며
음식을 나르는 모습은 그대로 천사가 잠시 지상에 머무른 듯 싶었고, 제일
상석에 앉은 강부장에게 - 물론 남편의 직장상사에 대한 순수한 호의였겠지
만 - 생글 생글 눈웃음을 지으며 구슬이 구르는 듯한 목소리로
" 부장님! 차린 것은 없지만, 많이 드셔요.. "
하며 다정한 눈빛을 보낼 때는 그만 간장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그 뒤로도 서너번, 회식후 2차나 명절 뒤 후렴잔치로 쳐들어가 어울리면서
그녀의 동작 하나하나에 강부장의 속앓이가 깊어만 가는 것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직장내 여직원이래도 어려운 상대인데.. 하물며 부
하직원의 신혼아내를 무슨 수로... 어떻게... 만약 무턱대고 대시하다 일이
성사되든 안되든, 들통이라도 나는 날에는 파렴치한에다 어렵게 쌓아올린
자신의 지위마져 하루아침에 허물어질 위험부담이 큰 상대인 것이다.
한마디로 벼랑위에 핀 꽃이었다. 따고는 싶은데.. 모든 것을 건 모험을 해
야 하는...
답답한 마음에 단골 바나 안마시술소의 꽤 반반한 여자를 품어도 보았지만,
이상하게도 전처럼 신명이 나지 않는 거였다. 때로는 다른 여자위에서 현지
우를 상상해야만 사정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