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첫경험씨리즈 <석류가 터질때>편, 2부
" 뭐라구? 다시 한번 얘기해 봐.. 빨리! "
" 쉬잇! 아빠.. 제발 목소리부터 좀 낮춰요.. 미리 말씀드렸잖아요? 놀라지
마시라구요.. "
" 아이구!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이 놈의 새끼를 내가 당장... "
흥분한 강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는 걸 바지가랭이을 잡은 지혜가 울
쌍을 하고 애원한다.
" 아빠아! 제발.. 흥분한다고 될 일이 아니에요.. 까딱하면 불쌍한 우리 유
라 죽어요...네에? "
" 으으으... 끄응! "
어저께 밤,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채 비틀거리며 들어 온 유라가 방문을 걸
어 잠그고 누구의 얘기도, 방문도 허용안하고 아침까지 버티자, 서강표의
집은 하루아침에 초상집처럼 변해버렸다.
친구들이랑 베낭여행을 떠난 준호만 빼고 남은 식구들은 직장도 팽겨친 채
오전 내 유라를 설득한 끝에 조금전 언니인 지혜만 출입을 허용받아 갔다
온 것이다.
지혜가 방문을 열고 들어가 벽쪽으로 누워있는 유라의 어깨에 손을 집는 순
간, 유라가 퀭한 눈으로 돌아보더니 갑자기 지혜한테로 안겨오며 울음을 터
트렸다. 한참을 서럽게 우는 동생을 따독여 자초지종을 듣고 난 지혜는 까
딱했으면 자기도 혼절을 할 뻔한 충격을 받았다.
TV뉴스나 신문사회면에서나 보았던 성폭행을 어린 동생이 당하다니... 그
것도 계속적인 협박까지 받고 있다고 하니,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언니가 아닌가.. 정신을 차리고 무언가 대책을 세워야만 했
다.
일단 동생을 이젠 아무 일도 없을테니 아무 염려마라고 따독여 주면서 안심
을 시킨 지혜는 유라가 지쳐 잠든 사이 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궁금해하
는 연주에게 별일 아니라고.. 친구들하고 심하게 싸운 모양이라고 둘러대고
는 아빠를 밖에서 불러낸 것이다. 암만 생각해도 이 일은 아빠모르게 수습
할 수는 없다고 판단되었던 것이다.
과연 예상대로 서강표가 길길이 뛰었지만, 지혜는 이미 그런 반응을 예상하
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아빠를 설득해야만 했다.
" 그래 어떤 놈이라구? 다시 한번 이야기해 봐... "
" 그게... 유라도 자세히는 모르는가 봐요... 그냥 비디오방 안에서 처음
봤는데, 처음에는 복면을 쓰고 있다가 나중에 벗은 모양인데 굉장히 험상궂
더래요... 대머리에 한쪽 눈은 거의 감긴 것처럼 붙었고.. 그쪽 눈아래 뺨
이 화상을 입었는지... 온통 우둘우둘한 게 흉칙스럽게 생겼대요.. 나이도
한 40가까이 되어 보이는데 정확히는 모른다고 하구요.. "
" 도대체 그 비디오 방에는 어떻게 가게 된거야? 유라가 그런데 다니는 애
가 아니잖아? "
"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협박받고 갔다고.. "
" 아니.. 협박받기 전에도 갔다며? "
" 네에.. 그건... "
" 이게 보통일이야? 아는대로 전부 이야기 해봐.. 빨리... "
" 이건.. 유라한테는 비밀로 하기로 약속한 건데... 아빠만 알고 계세요...
한 보름전에 미팅에서 소개받은 남학생하고 갔대요.. "
" 그럼 그 남학생하고 먼저 그 비디오방엔가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거야?
"
" 네에.. 아마 그런가 봐요... 그 장면을 촬영해서 협박했는가 봐요.. "
" 아이구.. 이 놈의 자식... 내가 그 동안 너무 믿고 내버려둔 게 잘못이지
... "
" 아빠아.."
" 그래... 알았어... 그런데 이 녀석이 왜 처음에 협박받았을 때 바로 이야
기 않고.. "
" 저도 그게 화가 나요... 저렇게 애를 망가뜨려 놓고 또 계속 협박이라니
.. 치가 떨려요... 아마 한번만 만나주면 끝날 걸로 알았나 봐요.. 아빠아
어떻게 해요? "
" 끄응... "
" 경찰에 연락하면 되겠지만, 잘못해 소문이라도 나면 우리 유라는.... 흐
윽! "
참고 있던 지혜가 울음을 터트린다.
" 으음... 지혜야.. 울음을 그쳐.. 운다고 될일이 아니잖니.. 니 말대로 냉
정하게 생각 좀 해보자... "
얼마 동안을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던 지혜가 갑자기 눈을 빛내며 고
개를 든다.
" 아빠! "
" 왜? " " 이에는 이라잖아요? 말을 들어보니 흉악한 놈인 것 같은데... 큰
삼촌을 한번 불러 보면... "
" 만기를? 으음... "
" 그래요.. 자꾸 많은 사람이 알게되는 건 좋지 않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삼촌이라면.. "
한 때, 조직폭력단의 행동대원이었던 만기 때문에 골치를 앓았던 강표여서
동생의 좋지 않은 경력을 이용한다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다른
대안이 없다면... 별 도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래.. 다음에 다시 오라는 날짜가 언제라고? "
지혜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은 만기의 눈꼬리가 험악지면서 목소리에 칼날이
선다.
" 이틀 뒤랬으니.. 내일 저녁이에요.. 내일 저녁 8시.. "
" 장소는? "
" 같은 장소래요.. 그 비디오 방 뒤 밀실... "
" 알았어.. 우리 시대엔 그래도 가릴 건 가렸는데... 더러운 놈... 내 이놈
을 그냥... "
" 삼초온.. "
" 왜? "
" 아시겠지만, 제발 뒷탈없이 조용하게 해결해 줘요.. 유라가 이왕 당한 건
되돌릴 수 없잖아요? 더 이상 사태가 악화되어서는 안돼요... 중요한 건 우
리 유라에요... 경찰을 부를 수도 있었지만, 소문안나게 해결하려고 삼촌한
테 연락한거에요... "
" 알았어.. 무슨 말인지 알겠다구.. 내게 맡겨... "
이튿날 아침, 등교길을 지키던 만기는 정희수를 발견하고는 미리 봐둔 학교
강당 뒤 으슥한 골목으로 끌어냈다. 처음에 반항하던 희수는 유라의 이름을
대자, 고분고분 딸려 왔다.
" 니 놈이 한 짓을 모른다곤 않겠지? "
다짜고짜 멱살부터 치켜드니 또래중에서는 그래도 싸움깨나 한다는 희수도
대번에 자신의 적수가 아님을 알고 완력으로 대항할 마음을 버렸다. 나이는
약간 들어보이지만, 180Cm, 78Kg의 당당한 체격에 멱살을 치켜든 오른 팔이
무쇠팔뚝 같았던 것이다.
" 아저씨.. 하지만, 유..유라도 날 좋아 했단 말입니다.. "
" 퍼억!! " 한 주먹에 걸레처럼 나가떨어지는 희수... "
이 자식아! 좋아한다고 이제 여중학생한테 그 짓을 해? 일어나! 새꺄! "
" 아저씨..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할께요.. "
" 뻑!! "
" 엌!! "
옆구리를 채인 희수가 온 몸을 옹그리며 바들바들 떤다. 발길질 한번인데도
마치 차에 받친 것 처럼 숨을 제대로 못 쉴 정도로 앞이 캄캄해 오는 것이
갈빗대가 두어 대 나간 것 같다.
" 일어나! 이 개같은 놈아! "
" 아.. 아저씨... 사..살려주세요.. "
얼굴표정과 목소리를 들어보고 어딘가 다친 것을 육감으로 느낀 만기는 더
패려던 손을 멈추고 바지춤에서 재크나이프를 빼 들었다.
" 철컥! "
" 아.. 아저씨.. "
새파래진 희수의 앞으로 닥아간 만기는 서슴없이 그의 바지혁대를 풀어 빼
내고 지퍼를 내린 다음, 오그리는 희수의 아랫배를 밟고는 나이프로 팬티까
지 찢어버렸다.
" 제.. 제발 살려주세요.. "
" 살려주지.. 하지만, 네 놈의 물건은 좀 끊어 가야겠다. 그런 물건은 없는
게 나아.. "
" 읔? 아이고.. 아저씨.. 그 것만은... 제발... 한번만.. "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애원하는 손을 걷어 차낸 만기가 한손으로 축 늘어진
희수의 심볼을 잡아들고는 나이프를 갖다 댔다.
" 아이고.. 사람 살려어!! 누구 없어요? 사람 살....읔! "
막다른 골목에 몰린 희수가 비명을 지르다가 다신 한번 턱주가리를 채이고
는 반쯤 세우고 있던 상체가 뒤로 벌러덩 나자빠진다. 다시 나이프를 희수
의 심볼에 댄 만기가 위로 치켜들자, 눈을 까뒤집은 희수가 그대로 혼절을
하는데, 고약한 냄새가 확 풍겨왔다. 생똥을 지린 것이다. 기절한 희수를
잠깐 망설이는 눈으로 쳐다보던 만기는 결심한 듯이 나이프로 내려긋는데,
차마 자르지는 못하고 피부아래 5mm 정도의 자상을 내는 정도로 참고 만다.
" 악! "
찌르는 듯한 통증에 정신이 돌아 온 희수가 피가 번지기 시작하는 물건을
쥐고 신음을 하는 것을 지켜보며, 만기는 싸늘하게 한마디 더 내 뱉았다.
" 이 새꺄! 이 정도로 끝내는 것을 운 좋은 줄로 알어... 청춘이 아까워서
내가 참지만, 만약 앞으로 한번만 더 몽둥이를 잘못 휘두르고 다녔다간 그
땐 진짜 끊어버릴테니 그리 알고 행동 조심해... 개 새끼! "
그리고는 핸드폰을 꺼내들고 119에 지나가던 학생이 다쳐 누워있다고 신고
하고는 그 자리를 떴다.
오후 8시 10분, 비디오방 길건너 골목에서 출입하는 사람들을 30분전부터
지켜보았지만, 지혜가 이야기하던 인상의 사내가 들어가는 것을 보지 못한
만기는 단도직입적으로 쳐들어 갔다. 아직 초저녁이라 손님이 없어 카운터
에서 졸고 있던 파마머리가 우악스레 열리는 문소리에 고개를 들었다가 눈
을 치떤다. 덩치 큰 사내의 눈빛에서 뭔가 심상찮은 기미를 눈치 챈 것이다
. 바로 코 앞까지 닥아간 만기는 다짜고짜 파마머리의 머리채부터 끌어잡았
다.
" 악! 누구..... "
비명을 지르다 말고 파마머리가 숨을 훅 들이킨다. 눈 앞에 시퍼런 나이프
가 번떡인 것이다.
" 조용히 하는 게 신상에 좋아... 그리고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고분고
분 사실대로 말해! 한마디라도 거짓말을 하다간 바로 혀를 뽑아버릴꺼니까
... 알아 들어? 쌍년! ... "
" ...... "
정체모를 사내의 착 가라앉아 쉰듯한 목소리에서 살기를 느낀 파마머리가
공포에 질려 고개만 주억거린다.
" 대머리, 지금 저 안 밀실에 있지? "
" 어..없어요... "
" 가보면 알아.. 거짓말 아니지? "
" 네.. 네에.. 오늘 저녁 8시에 온다고 했는데, 아직 안왔어요.. "
아마 대머리도 조심한다고 유라가 들어오는 모습을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었
던 것 같다.
" 이름은? "
" 이름은 잘 몰라요.. 그냥 멍게라고 불러요.. "
" 그럼.. 지금 불러... 연락처를 모른다고는 않겠지? "
" 뭐.. 뭐라고 해요? "
" 이년아! 그대로 이야기 해! 내가 기다린다고... "
전화기를 끌어주자, 파마머리가 어디론가 연락을 하는데, 짙은 매니큐어를
칠한 손가락이 떨리고 있다. 전화를 놓고 난 파마머리가 겨우 생기를 되찾
으면서 살색이 돌아왔다.
( 네 놈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이제 볼장 다 봤어.. 간 크게 연락하라구? 여
기가 어딘줄 알 고... 어디서 빌어먹던 촌놈이... )
사실, 이 비디오방은 몇 안되는 조폭 직영가게였다. 수입은 크게 신통찮아
도 가끔 밀실도 이용하고 라이브포르노 테잎도 조달할 목적으로 운영하는,
강남고속터미널을 무대로 한 '승냥이'파의 비밀아지트중 한 곳이었던 것이
다. 파마머리도 젊었을 적, 포주노릇을 하다가 정부의 매춘 일제소탕으로
근거를 잃고 잠시 이 곳에 의탁하고 있었다.
" 손님 들어 있어? "
" 방.. 두 개..요.. "
" 내 보내...좋게 말해서... "
파마머리도 그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안내를 하고나자, 잠시 후 연인인듯
한 두 쌍이 두 사람을 힐끗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이어 얼마 안가 문이 열
리는데, 먼저 스포츠머리에 잠바를 걸치고 몸매가 날렵해보이는 20대 후반
정도의 두 사내가 들어오고 그 뒤를 땅딸막한 대머리가 따라 들어오는데 한
쪽 얼굴이 온통 찌그러진 것이 첫 눈에 문제의 사내가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자, 만기의 눈에서 불꽃이 번쩍 튄다. 대머리가 앞으로 나서지도 않고 양
쪽으로 갈라선 두 사내의 반 걸음쯤 뒤에 버티고 선채 먼저 입을 열었다.
" 날 보자는 친구가 자넨가? "
" ...... "
" 용건부터 말해... 넌 누구야? "
" 날 알 필요는 없고, 우선 네 놈이 가진 테잎부터 내 놔... 오늘 불러 낸
아이꺼 말이야.. 계산은 뒤에 하고... "
" 흐흥! 역시 오면서 짐작했던 대로군... 네가 오랜만에 날 즐겁게 했던,
예쁘고 싱싱한 그 애의 애비냐? "
" 이 자식이? "
흥분한 만기가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쥐자 앞선 두 사내의 무릎이 순간적으
로 살짝 내려앉는데, 동물적인 움직임이다. 만기도 속으로 만만치 않다는
느낌이 들면서 기회를 보아 선수를 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좋아.. 좋아.. 두세번 더 재미보고 거래를 하려 했는데... 이왕 보호자가
납셨으니, 아쉽지만 거래에 응하지... 내 놔... "
만기가 보복을 염두에 두고 한 '계산'이라 한 말을 거래로 짐작한 모양이다
. 일이 돌아가는 꼴이 예상밖으로 흐르자, 속전속결을 속으로 다짐한 만기
가 기회를 엿보기 시작했다.
" 돈이라면 없어... 좋게 말할 때 그냥 내 놔... 테잎말이야... "
" 얘들아! 들었니? 돈이 없으니 그냥 달래... 이거 좀 돈 친구아냐? 골통에
바람든 놈은 몽둥이 찜질이 특효지... 이거 봐 친구... 오늘은 인사만 좀
받구.. 내일 이 시간까지 큰 거 한 장 현찰로 가지고 와! 안 가져오면 모래
아침엔 확 뿌려버릴테니까... "
대머리가 한 발 뒤로 물러나자, 스포츠머리 둘이 얕보는 동작으로 한 발을
내 딛는 순간, 만기의 몸이 제자리에서 위로 잠깐 솟는가 싶더니 어느새 두
발이 앞으로 쭈욱 뻗으면서 두 놈의 턱을 위로 차 올렸다. 왕년에 패싸움에
서 명성을 날린 '흑표'의 두발차기가 오랜만에 위력을 뿜은 것이다. 뒤이어
,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미처 상황파악도 안된 대머리의 눈 앞이 '번쩍'하
더니 천장이 빙글 돌면서 테잎진열장 구석에 꼬꾸라져 버렸다.
아까부터 카운터에 턱을 받치고 촌놈의 비굴하게 비는 모습을 기대하며 흥
미진진하게 관전하고 있던 파마머리의 기억으로는 세 사람이 나가떨어지는
데 불과 2초정도 밖에 걸리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도 놀라운 것은 제자리로
돌아 온 낯선 사내의 얼굴에 전혀 힘든 동작을 한 표정이 없는 것이다. 숨
소리도 크게 쉬지 않는다. 스포츠머리 둘중 하나는 이미 뻗어버렸고, 남은
하나가 비틀거리며 일어나다 만기의 앞발질 한번에 다시 길게 드러누워버렸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