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화 〉132화
밀리아의 놀림을 받은지도 며칠이 지났다. 드디어 마물들도 모였고, 우리들의 준비도 대부분 끝난 것 같았다.
“칼. 에밀리아 언니. 이제 발칸제국으로 가자.”
“우우~ 저는요~ 저도 같이 간다구요~! 여기 혼자 남겨두는건 아니겠죠?”
“하아~ 그래. 밀리아 너도...”
결국 밀리아까지 함께 가기로 했다. 뭐 어쩔 수 있겠는가? 밀리아가 우기는데... 고생도 자기 팔자겠지. 분명 가는 길에 또 칭얼거리겠지만 이번엔 정말 단호하게 대해줄 예정이었다. 절대 쉬지 않고 곧바로 이동하면 자기가 뭘 어쩌겠는가?
“미아. 이번엔 꼭 가츠를 되찾도록 하자.”
“응. 이제 누가 오더라도 문제없어. 누구라도 상대 가능할 힘을 가지게 되었으니까. 마물들도 있고 엘프들도 강하니까. 물론 칼도 있고 에밀리아 언니까지 있으니 걱정없을거야. 나도 이 하이엘프의 힘이라면 틀림없이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해.”
“후훗. 나도 있는걸 잊지 말라고.”
“그래 테일런 너도...”
조금 껄끄러운 상대임에 틀림없었지만... 그래도 내게 큰 도움이 되는 엘프인건 확실했다. 그렇게 준비를 확실히 하고 발칸제국으로 향했다. 밀리아는 또 뭐가 그리 부족한지 이것저것 바리바리 짐을 쌌다. 저걸 어떻게 들고 가려는건지... 아마도 역시 칼이나 마물들에게 들게 할 작정이겠지?
“밀리아. 우리 어디 여행가는거 아니거든? 그런 짐 필요 없어.”
“우우~ 그치만. 이건 미아님 옷이고 이건 식기세트 그리고 이건...”
“아아 됐어~! 말해줄필요 없어. 으으~ 맘대로 해. 대신 도와주지 않을거야!”
밀리아의 수다에 질려버리고 말았다. 어차피 옷이야 적당히 입으면 되고 식사도 마찬가지였다. 노숙을 할건데 뭘 그리 많이 바라는걸까? 역시 도시에 살던 밀리아라 그런걸까? 하긴 전투인원이니 그런걸지도...
“에밀리아 언니도 괜찮지?”
“응? 으응. 나야 뭐... 발자르만 상대하면 되니까. 다른 병사들은 마물들이 상대할 예정이잖아?”
“뭐 그래도 마음 단단히 먹길 바래. 또 저번처럼 어물쩍 거리면 안 되잖아?”
“으윽~ 이젠 괜찮다구. 저번 전투로 어느 정도 실전경험도 쌓았는걸?”
뭐 그렇다면야... 나도 별로 할 말은 없었다. 모두들 어느정도 각오는 하고 있는게 확실했다. 하긴 발칸 제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일인데 당연하겠지.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후회할게 분명했다.
“히잉~ 역시 무거워요. 우우~”
“으휴~ 그러게 좀 적당히 챙기랬잖아. 직접 들고가야할것만 남기고 다른건 마물들에게 넘겨.”
“역시 미아님 밖에 없어요~ 제가 미아님 사랑하는거 아시죠? 호호호~”
퍽이나~ 하긴... 육체적으로 마구 사랑하려는건 알 것 같았다. 매번 어찌나 덤벼들던지... 이러다 정말 밀리아에게 어느날 확~ 하고 덮쳐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들 정도였다.
“너무 잘알아서 싫어. 그러니 다가오지 말아줘.”
“우우~ 너무해요~ 히잉~”
이번엔 울어도 소용없었다. 이제 밀리아를 신경쓰는것보다 앞으로 발칸제국을 어떻게 상대해야할지 걱정해야할 때였다. 발칸 제국의 병사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게 분명해 더 문제였다. 마물들은 질서가 없지 않던가? 숲속이라면 모르겠지만 벌판에서 하는 전면전은 조금 힘들 것 같았다.
“걱정인가? 하이엘프의 힘도 있으면서 쓸데없는 걱정인 것 같군.”
“으음. 이 힘이면... 역시 상대하기 편하겠지?”
테일런이 내 불안감을 불식시키듯 그렇게 말했다. 그에 조금 안정될 수 있었다. 테일런도 이렇게 보면 꾀나 멋진 남자임에는 분명했지만... 역시 마음을 주기엔 그간 해왔던 일들이 걸렸다. 게다가 어쨌는 테일런의 동생을 죽게 만든 원흉이지 않던가? 그래서 더 거리를 두려고 하는 중이었다.
“미아. 걱정하지마. 내가 있잖아? 나도 이번엔 더 큰 힘이 될거야.”
“으응. 고마워. 칼. 정말 칼이 있어서 다행이야.”
칼의 위로에 더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다시 발칸제국 근처에 도착하게 되었다. 정말 예전 기억이 새록새록 다시 나는 것 같았다. 여기까지 온건 마찬가지였지만 상황이 조금은 달랐다. 이번엔 마물들의 숫자도 늘었고 테일런이 이끄는 엘프들도 있었다. 이정도 전력으로 발칸제국정도는 충분히 상대 가능할 것 같았다. 물론 전면전으로 들어가면 질게 분명했지만... 그래도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좋아. 이제부터 시작이야. 모두들 준비는 다 됀거지?”
“미아. 걱정하지마. 이번엔 저번과는 다를거야. 미아도 있고. 저 엘프들도 있잖아?”
“저도 있다구요~”
비전투인원주제에 정말 이곳저곳 안나서는 곳이 없는 밀리아였다. 역시 밀리아는 나중에 코페른에 가서 펫으로 만드는게 좋을 것 같았다. 밀리아 본인이 동의하지 않더라도 강제로 할 예정이었다.
“드디어 인간들을 상대 하는건가. 좋아. 이제 복수를 할 수 있겠어.”
“복수... 그래. 이건 복수 일뿐이야.”
테일런의 말대로 였다. 이건 정당한 복수. 엘프들을 그리고 내 가츠를 죽게 만든 원흉인 발칸제국을 향한 복수일 뿐이었다. 물론 진정한 원흉은 발자르였지만 어차피 모두 같은 인간이지 않던가?
“이건 시작에 불과해. 이번 전쟁을 시작으로 모든 인간들을 몰아내도록 하자.”
“으응? 그..그렇게 까지?”
테일런의 그런 복수심에 에밀리아 언니를 힐끗 쳐다보았다. 역시나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에밀리아 언니. 하지만 내게 폐가 될까봐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 설마 여기까지 와서 복수를 그만두겠다는건 아니겠지?”
“아니... 나는 발칸 제국만... 상대하고 가츠만 되찾으면...”
“마음이 약하군. 그래서야 하이엘프라고 할 수 있겠어? 엘프를 부흥하게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잖아?”
“으윽... 그건... 테일런 네가 하면...”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의무를 다시 뒤집어 씌우려 하다니... 결국 날 더 이용할 목적인걸까? 아니면 이렇게 인간들을 상대한다는 마음에 기분이 들떠 그러는걸까? 정말 테일런의 마음은 알 수가 없었다.
“하이엘프는 너잖아? 뭐 거래는 했지만... 역시 여기서 그만 두는건 싫어. 좀 더 많은 인간을 상대하고 그들을 노예로 삼고 싶은 기분이야.”
아마도 그건 인간들을 바라보자 들게 된 생각같았다. 역시 테일런은 인간에게 너무 물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것도 안좋은 쪽으로... 권력에 대한 욕심 그리고 힘에 대한 욕심. 마지막으로 정복욕까지... 정말 인간이나 다름없는 테일런 이었다.
“정말 그렇게 까지 할 셈이야?”
“아아. 이제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 널 좀 이용해서 더 많은 인간들을 상대해야겠어. 그들을 노예로 삼고 부리면 이 마음이 풀릴 것 같아.”
“으으~ 날... 이용하려고? 내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설마 의무를 버리는거야? 하이엘프의 의무를... 그렇다면 그 힘 또한 버려야 할텐데...”
“하이엘프의 의무... 그걸 꼭 내가 해야하는거야? 게다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잖아!!”
날 압박하는 테일런 이었다. 그런 테일런에게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 거리는 칼 이었다.
“너. 미아를 너무 압박하지 마. 그저 미아를 이용할 목적일거면 이곳에 있을 필요도 없어. 미아를 도우는건 나로도 충분하니까.”
“칼... 고마워 하지만... 역시 저들은 내게 필요해. 그러니 여긴 내게 맡겨줘.”
“하지만...!”
“칼~!!”
“알았어. 대신... 더는 이용당하지 말아줘. 그것만 약속해주면 이번일은 미아 너에게 맡길게.”
“으응. 걱정하지마. 나도 더 이상 남에게 이용당하고 싶지 않아.”
“좋은 충견이군. 후훗. 아무튼 어쩔거지?”
“네. 그런 밑도 끝도 없는 복수에 동참할 생각은 없어. 난 가츠만 되찾으면 그 이후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발칸 제국을 상대해서 가츠를 되찾게 되면 내 마물들의 통제권을 너에게 넘겨줄게. 그정도면 내 힘이 없더라도 상관 없겠지?”
“흐음... 뭐 그 정도라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느정도 말이 통해서... 말도 통하지 않았다면 정말 힘들었을테니 말이다. 그렇게 어느정도 협의를 하고 발칸 제국의 병사들을 상대하기 위해 진형을 이뤘다.
“이제 곧 전쟁이야. 밀리아는 뒤로 물러나 있어. 우리들이 지켜줄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도록 해.”
“우우~ 미아님과 떨어지고 싶지 않은데... 히잉~”
“그러다 죽어서 원망하려고?”
“으읏~ 죽지 않아요!! 우우. 알겠어요. 대신 미아님 꼭 무사하셔야 해요! 절대 피부에 상처하나 나면 안되요!!”
“그건... 힘들지도 모르는데. 알았어. 최대한 조심할게...”
밀리아의 그런 걱정에 마음이 조금 훈훈해지는 것 같았다. 날 걱정해주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지 않던가? 칼이나 에밀리아 언니 말고는 밀리아가 전부였다.
“에밀리아 언니와 칼 그리고 테일런은 나와 함께 발자르를 상대하도록 하자.”
“넷이서 상대해야 할정도로 강한건가? 그런게 아니라면 난 엘프들과 인간들을 도륙하고 싶은데...”
“그건 아니지만... 알았어. 우리 셋이 상대할테니까. 테일런은 마음대로 해.”
더는 테일런에게 권할 수 없었다. 어차피 셋이면 상대 가능하지 않던가? 게다가 내 힘도 꾀나 강력해졌고, 발자르 정도라면 셋으로도 충분했다. 다만 도망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도망치면 또 귀찮고 지루한 전쟁이 장기간 이루어질 게 분명했다.
“이번엔 도망치지 못하게 하자. 에밀리아 언니. 칼 준비됐지?”
“응. 미아. 난 준비됐어.”
“칼은?”
“나야 언제나 준비 완료상태잖아. 후훗~ 오랜만에 피가 끓는 것 같은걸? 인간들을 도륙하고 강력한 적을 죽이는거야 말로 내 즐거움중 하나지.”
아마도 칼의 숨겨진 본능이 발현되는 듯 했다. 하긴 칼은 짐승이지 않던가? 그러니 이렇게 전쟁을 하거나 사냥을 하는게 더 좋은거겠지.
“좋아. 그럼 모두 무사해야해!!”
“미아도 무사해야해. 미아는 가츠를 되찾고 행복해져야 하잖아?”
“으응. 고마워. 에밀리아 언니도 절대 죽거나 다치면 안돼.”
나야 칼도 있고 마물들이 지켜 줄거라 걱정할건 없었지만... 역시 에밀리아 언니가 걱정이었다. 언니를 도울 정도로 전쟁이 쉬울 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 마물이라도 몇몇 붙여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위험에 처하면 에밀리아 언니를 데리고 도망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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