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 〉123화
“이제 들어가도록. 정말 좋은 시간이었는데 아쉽군. 쩝~”
역시 고분고분했던 게 답이었던 것 같았다. 어쩐지 나 또한 그리워질 것만 같았다. 이러면 안되는데... 마음이 점점 기울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여성의 본능일지도...
“여기가...”
환영의 숲에 들어가게 된 처음 느낌은 별다를 게 없었다. 그저 여느 숲과도 같은 모습. 왜 환영의 숲이라고 하는 걸까? 이름도 듣지 못한 리더 엘프에게 물어봤다면 좋았을 것을... 물론 대답해주지는 않았을거라 생각됐다.
“이제 이곳에서 10년을... 절대 무리야. 1년도 칼이 있어서 겨우 버틴건데... 이런 숲속에서 10년이라니... 곁에 누군가가 있었다면... 정말 좋을텐데... 하아~ 가츠... 정말 보고싶어. 칼도...”
그리 시간이 오래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칼이 보고싶을 지경이었다. 이제 혼자 남아서 숲속생활에 다시 적응해야만 했다. 그나마 전의 경험이 있어 다행이었다. 비록 알몸이라지만... 처음 눈을 뜬 어둠의 숲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잘 적응해서 칼 같은 좋은 수컷도 만나지 않았던가?
“여기서도 좋은 친구를 사귀면 좋을텐데... 아니면 날 좀 더 강해지게 해줄 힘이 있으면 좋겠어.”
벌써부터 다른 남자를 얻을 생각을 하고 있다니... 어쩌면 난 그저 날 지켜줄 남자가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숲속에 들어와보니 더 그런 생각이 강했다. 그저 날 사랑해주고 지켜줄 그런 남자를 말이다.
“하아... 역시 난 너무 이기적이야. 그저 내 만족을 위해서... 가츠를 그리고 칼을 구속하려고 했을 뿐인 것 같아.”
차분히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그저 앞날에 대한 불안감에 쉽사리 날 사랑해주는 남자에게 빠져드는 것 같았다. 방금 전도 그러지 않았던가? 이름도 모르는데 몸을 섞었을 뿐인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다니... 날 괴롭히는 엘프일 뿐인데도 그랬다.
“하아... 그만 생각하고... 숲속을 좀 둘러봐야 겠어.”
일단 중요한건 걸칠 옷이었다. 그리고 식량과 살 곳이 필요 했다. 언제까지 이 숲속에서 지낼 수 있을지 모르지 않는가? 1년이 될수도 그리고 10년이 될수도 있었다. 그 리더 엘프 말대로 100년이 될수도 있는 일이었다.
“100년은... 절대 안돼... 1년. 그래. 오래걸려도 1년안에는 돌아가야해.”
숲속에 들어오고나니 이 숲이 다른 숲과 다르다는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점점 안쪽으로 향할수록 뒤로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어째서일까? 하지만 발길을 멈추지는 못했다.
“저곳에... 무언가 있는 것 같아. 날... 끌어당기는 그 무언가가...”
홀린 듯 숲속으로 점점 발길이 옮겨졌다. 이건 유혹이었다. 날 향한... 아니 숲속에 들어온 이질적인 그 무언가에 대한... 그런 유혹이었다.
“핫?! 무..무슨...”
강력한 유혹이었지만 순간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물론 그건 내가 강인한 정신력을 가져서 그런건 아니었다. 그저 유혹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정말 강력한 유혹이었지만... 그것도 매번 나타나는 일은 아닌 듯 했다.
“강력했어. 정말 가지고 싶은 힘이야.”
정말 너무도 강력한 힘이었다. 거의 마스터나이트에 근접한 날 유혹하지 않았던가? 어떤 종류의 힘인지는 모르지만 그 힘을 가지면 이 숲을 빠져나가는것도 쉬울 것 같았다. 그리고 발자르를 상대하는것도... 하지만 그 힘이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아쉬웠지만... 일단 내 할 일부터 하기로 했다. 어차피 이곳에 살다보면 또다시 그 강력한 힘을 느낄 수 있을테니 말이다.
“좋아 우선 옷부터 다시 마련하는거야.”
어쩐지 칼과 함께 했던 추억이 떠올랐다. 그땐 정말 좋았는데... 그러고보면 칼과 함께 했던 그 숲속과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근처에 호숫가도 있고 그리고 동굴도 존재했다. 아마도 오우거가 기거하던 동굴 같았다.
“저곳처럼 생긴곳에 살던 오우거에게 위기를 겪었었는데...”
“쿠허엉~!!”
“힉?! 오..오우거? 설마 이곳에도 오우거가 사는건가?!”
환영의 숲이라고 다를건 없어 보였다. 정말 거대한 오우거였다. 어둠의 숲에서 본것과 비슷한 모습을 한 오우거였다. 그 거대함이란 역시나 날 질리게 만들었다. 그에 순식간에 나무를 타고 도주해버리고 말았다.
“역시 무리야. 어둠의 숲에 사는 오우거도 그랬지만... 여기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
순간 오줌을 지려버릴 것만 같았다. 다행이 물을 제대로 마신 적이 없어 지리지는 않았다. 이제 다시 본능과도 같을 삶을 살게 될 것 같았다. 이때 칼과 같은 짐승이라도 있었다면 좋을텐데... 역시 여기서 그런걸 바라는건 힘들 것 같았다.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여긴 칼도 없고... 혼자는 외로운데...”
남자가 있어야만 잠이 오는데 남자도 없었다. 어쩐지 다른쪽으로 위기상황을 겪을것만 같았다.
“으으 이러고 있을게 아니잖아? 우선 살곳부터 찾아. 옷은 그 다음에 구하는거로 하고..”
조금 썰렁했지만 최우선 사항은 몸을 숨길 은신처였다. 옷이야 그때도 한동안 입지 못하고 살지 않았던가? 조금의 불편함정도는 감수 할 수 있었다.
“이곳은...?”
어쩐지 또다시 어디선가 본 적있는 동굴이 보였다. 바위틈새에 존재하던 그런 동굴이었다. 꼭 칼과 나의 보금자리처럼 생긴 그런 은신처였다.
“정말 비슷해... 이런 동굴에서 살았었는데...”
칼의 품에서 잠들던 때가 기억났다. 이러다 정말 우울증에 걸려버릴 것만 같았다. 참아내야 했는데 도저히 참아낼 수가 없었다. 추억처럼 떠오르는 기억들... 정말 칼이 보고싶었다.
“칼... 보고싶어.”
“크르릉.”
“응?! 짐승...? 칼과 같은...?”
짐승의 울부짖음이 동굴 밖에서 들려왔다. 이 울음소리는 정말 칼과 비슷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아마도 이 동굴에 기거하는 짐승이 되돌아 온걸지도 몰랐다. 조금 위기였지만... 나도 꾀나 강력해져서 그다지 어렵지 않게 짐승들을 상대 가능할 것 같았다.
“좋아. 이제 칼도 없으니... 조심해서 상대하는거야. 어차피 내가 좀 더 강할테지만... 무기도 없잖아?”
맨손으로 얼마나 힘을 낼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하지만 마나를 돌리면 강력한 힘을 낼 수 있지 않던가? 어느 정도는 상대 가능할 것 같았다. 상대하다 힘들 것 같으면 나무위를 뛰어 도망치면 됐다.
“아...!”
“크릉?”
예전 칼의 모습이었다.
“그럴 리가 없어... 칼은 에밀리아 언니와 제국쪽에 있는걸...? 게다가 좀 더 작아... 역시 칼이 아냐..”
하지만 날 친근하게 바라보는 시선은 정말 꼭 칼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쩐지 이번에도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내보면 또 어떨지 모르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혼자가 아니라는 게 가장 좋았다.
“나랑... 친구할래?”
“크릉. 컹~”
다행이도 내 말을 알아듣는 짐승이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예전 숲속에서처럼 날 지켜줄 든든한 보호자가 생긴 듯 했다. 물론 힘 자체는 내가 더 강했지만.. 그래도 의지할 존재가 생겼다는게 정말 다행이었다.
“와아~ 정말? 고마워... 이제 우린 친구야. 앞으로도...”
조금 집착하는 성격이 또 나와버린 듯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건 너무도 불안한 현실 때문이었다. 이런 숲속에서 의지할 수 있는 존재를 구하기 얼마나 힘들겠는가? 아니 구하는 자체가 기적이었다. 그런데 이런 친구를 구할 수 있게 되다니... 행운임에 틀림없었다.
“너도 칼처럼... 날 사랑해줄거지...?”
조금 너무 이른 고백같았지만... 날 내버려두고 가지 않기를 바라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며 가지 않겠다고 하는 짐승이었다. 정말 꼭 칼 같이 느껴졌다.
“정말 다행이야... 나 사실 너무 불안했거든... 이런 모르는 숲속에... 그리고 알지못하는 힘에 끌리고 오우거까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걱정이었어.”
“컹컹~!”
걱정 말라는 듯 짖어대는 짐승이었다. 이 짐승을 칼이라고 생각해도 될것만 같았다. 아니 내겐 칼이나 다름없었다.
“좋아. 칼에게 미안하지만... 너도 칼이라고 부를게. 넌 이제부터 나의 칼이야. 어때?”
“크릉~ 컹컹~!”
좋다는 듯 짖는 칼이었다. 어쩐지 앞으로 좋은 동반자가 될 것 같았다.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오늘은 늦었으니 같이 자고 내일 옷부터 구하자.”
“크릉~”
아양을 떨 듯 내 몸에 부비대는 칼이었다. 정말 예전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칼과 같이 동굴로 들어갔다. 칼이 동굴바닥에 드리눕자 그 곁에 가서 나 또한 같이 누웠다. 그리고 칼의 품에 안겨 조금 안정감을 느꼈다.
“아아... 그래. 바로 이 느낌이야. 이런 편안한 느낌을 원했어...”
정말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다. 그간 너무 긴장과 남성 엘프들의 시달림에 조금 힘겨웠던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칼의 부드러운 털에 파묻히듯 안기니 마음이 점점 편안해지고 긴장이 풀려가는 것 같았다.
“그럼... 잘자. 칼.”
진짜 칼에게는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분명 진짜 칼도 소중했고 사랑했지만... 내 곁에 있어주는 지금의 칼이 더 좋았다. 예전 숲속에서처럼 날 지켜줄게 분명해서 더 좋았다. 그렇게 칼의 품에 안겨 점점 잠이 들었다. 알몸에 쓸리는 칼의 부드러운 털이 너무도 기분좋았다. 이대로 영영 잠들고 싶을정도로...
“아음~ 흣~ 아아... 응...?”
어쩐지 아침부터 조금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눈을 뜨자 보이는건 칼의 얼굴... 그리고 그얼굴이 내 몸을 쓸 듯이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얼굴만 움직이는게 아니라 칼의 혓바닥도 움직이고 있었다.
“아읏~ 칼? 뭐하는 짓.. 이야!”
벌써부터 이러면 안되는데... 어쩐지 이 녀석도 내 몸이 목적인게 틀림 없었다. 다만 칼과 다르게 조금 혼을 내주자 금세 시무룩해지며 떨어져 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내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는걸까? 그 부분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아침부터 그러면... 조금 싫어. 아직 우린 그정도 사이가 아니잖아?”
“끼잉~”
“호호. 알았어. 대신 조금... 사이가 더 진전되면... 해줄게. 그러니 조금만 참아줘.”
이렇게 달래니 녀석도 좋다고 컹컹 짖기 시작했다. 역시 야생의 짐승이라 본능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런 경험을 처음 당하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예전 어둠의 숲속에서도 이런 기억이 있었다.
“으음... 뭔가 데자뷰같은걸...? 에이~ 기분탓이겠지. 아무튼 오늘은 옷부터 마련해야겠어. 그리고 먹을 것도...”
배속에서 꼬르륵 거리며 밥달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조금 얼굴이 붉어졌지만... 짐승인 칼밖에 없어 더는 창피할 필요도 없었다.
“컹컹~!”
“응? 따라오라구? 아아. 먹을 것...”
짐승이라 그런지 금세 내 의향을 파악하고 날 호숫가로 인도하는 칼 이었다. 정말... 예전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 같았다. 이런 기분을 또다시 만끽할 수 있다니... 차라리 그때 공국으로 향하지 않았다면 좋았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우거가 없는 시간대도... 같네?”
정말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어째선지 점점 어둠의 숲속과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내 기억속에 있는 상황처럼 일이 돌아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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