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109화
전쟁은 인간을 너무도 피로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나 또한 마찬가지... 게다가 이렇게 대단위 전쟁을 치룬건 처음이라 더 그랬다.
“칼~ 좀 더 쉬자~ 응? 이제 바로 앞이잖아?”
새벽녘 칼의 품에 안겨 그렇게 투정을 부렸다. 그만큼 너무도 피곤하고 지쳐버렸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칼의 품에 안겨있는게 너무도 좋아서 이기도 했다. 이렇게 따뜻한데 품에서 벗어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는가?
“자자. 그러지 말고 거의다 도착했으니 어서 일어나야지.”
“우우~ 칼 너무해~ 이렇게 갸날프고 아름다운 날 괴롭히다니~!!”
“어휴~ 내가 언제? 그러지 말고 어서 가자니까. 가츠 찾지 않을 셈이야?”
“으으 그건 아닌데... 그래도 너무 피곤한걸? 마을에라도 들려 따뜻한 물에 목욕이라도 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잖아? 그러니 숲속에서라도 조금 쉬다 가자니까?”
이번 전투처럼 불리한 경우를 상정해서 마을에 들리는건 최대한 피해야 했다. 하지만 칼은 단호했다. 더는 기다려주지 않겠다는 듯 벌떡 일어나서 옷을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으으~ 정말 그럴 거야?”
“미아도 빨리 가츠를 찾아 다시 되돌아가길 바랬잖아. 그러니 우리 조금만 더 참자. 응?”
“우우... 몰라~!! 안가!! 안갈거야!! 흥~!”
조금 삐쳐버렸다. 그저 내 투정을 살짝 받아주길 원했을 뿐인데... 누가 아예 이곳에서 살림차리고 살자고 한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저 잠시. 아주 잠깐 둘만의 시간을 가지며 즐기자는건데... 그걸 해주지 않는 칼이었다.
“그럼 먼저 간다?”
“으윽! 정말 너무해!!”
결국 먼저 가려는 칼을 보며 서둘러 옷을 챙겨 입을 수밖에 없었다. 이젠 누가 주인이고 누가 펫인지 모를 정도가 되어버렸다. 역시 힘은 강하고 봐야했다. 점점 기어오르는 칼. 하지만 그런 칼을 어쩌지 못한 나였다. 강제 명령을 하면 됐지만... 날 보호해주는 칼이 혹시라도 삐쳐 도망쳐버리기라도 하는 날엔... 더는 버틸 수 없어서 그런 명령은 하지 않았다.
“후훗~ 정말 미아는 요즘들어 투정이 더 심해진 것 같아. 이렇게 일어날거면서...”
“그거야... 요즘 너무 힘든걸? 인간들을 마구 죽이는것도 귀찮고... 발자르도 신경쓰이잖아? 게다가 레온의 일도 남아있으니까...”
“하긴 신경쓰일 것 투성이긴 해. 뭐 레온은 맞겨둬. 발자르는 모르겠네. 으음 또 병사를 끌고 올 것 같긴 한데... 다음번엔 정말 힘든 전투가 될지도 모르겠어.”
“나도 같은 생각이야.”
칼도 발자르가 걱정이긴 한 듯 했다. 둘이 함께라면 어느정도 상대 가능했지만... 발자르가 그렇게 상대 해 줄 리가 없었다. 병사들을 대동하거나 불리하면 도망치는짓도 서슴없이 하지 않던가?
“하아... 마스터 나이트가 한명정도 더 있었으면... 좋으련만.”
에밀리아 언니가 생각났다. 하지만 배신자 이지 않던가? 다만 발자르를 생각한다면 배신자이긴 해도 일단 잡아놓고 설득을 해야할 것 같았다. 그렇게 아르세이아 제국에 거의 도착할 즈음이었다.
“미아...”
“에밀리아 언니...”
“아앗! 공녀님~~ 제가 공녀님을 얼마나 보고싶었는데요~~!!”
“으응. 밀리아도 있었구나. 밀리아 넌... 건강해 보이네.”
“네에~! 에밀리아 황녀님이 잘 대해주시거든요! 사달라는것도 모조리 다 사주시고 호호호~”
여전히 활기찬 밀리아였다. 그런 밀리아의 모습을 보니 어느정도 기분이 풀렸다. 하지만 다시 에밀리아 언니를 생각하니 우울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여기엔 어쩐일이야? 마침 아르세이아 제국을 뒤엎으로 가는길인데...”
“그건... 미안해.”
“미안하면 가츠를 되돌려줘... 그럼 용서해줄게...”
가츠만 되찾으면 에밀리아 언니정도는 충분히 용서 가능했다. 물론 잡아가서 노예로 부리며 평생 용서를 빌게 만들작정이었지만... 그래도 용서할 수는 있었다.
“가츠는... 빼앗겼어.”
“그게... 무슨소리야?!!”
“사실... 발자르가 미아 너를 잡는대신 가츠를 넘겨달라고 해서... 어쩔 수 없었어. 나도 그러고싶지 않았지만... 대신들이 모조리 찬성하는 바람에... 그래서...”
“그..그런!! 어째서...!! 으으~!! 발자르... 그래서 다시 만나게 될거라고 한건가? 그때 잡았어야 하는건데...!”
조금 화가나고 분했다.
“그래서 여기 온 이유는 뭐야. 용서를 빌 목적만은 아닌 것 같은데...?”
“사실... 아르세이아 제국은 전쟁준비를 하지 않고 있어... 마물여왕... 그래 미아 너에 대한 대비를 전혀 하지 않아서... 그래서 내가 온거야. 여기서 물러가달라는 의미에서...”
“가츠도 되돌려 받지 못했는데... 내가 그렇게 순순히 물러갈 것 같아?”
“아니겠지... 그래서 온거야. 날... 마음대로 해도 좋아. 대신 제국을 상대로 전쟁만 벌이지 말아줘...”
“흥~! 그럴 작정이었으면 배신을 하지 말았어야지!!!”
“나..난 그럴 목적이... 아니었어. 그저 미아가 도망쳐주길 바랬을 뿐인데... 어쩌다보니 미아의 연인을...”
“시끄럿!! 으으... 용서... 못해!! 가츠가 죽어버렸는데!! 내 곁에 가츠가 없는데 어떻게 에밀리아 언니를 용서해주겠어!!”
물론 용서해줄 생각이었다. 다만... 그렇게 손쉽게 용서를 할 수는 없었다. 내 목적도 달성해야 했고, 마물들도 조금 더 늘려야만 했다. 하지만 숲속에 짐승들은 거의 전멸하다시피해서 더 이상 늘리기 힘들었다. 제국의 도시 하나정도는 몰살 시켜야 발자르를 상대할 마물들이 모여서 였다.
“제발... 날 어떻게 해도 좋아. 그러니... 용서해주지 않을래?”
“공녀님... 절 봐서라도...”
“밀리아 넌 도대체 누구 편이야?!!”
“당연히 공녀님 편이죠. 하지만... 황녀님도 그럴 의도가 아니었어요. 그건 당시 있었던 제가 더 잘 알잖아요!! 발자르가 문제였어요!! 그 남자만 없었어도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었을텐데... 결국 발자르로 인해 그분이 목숨을 잃은거예요!!”
밀리아의 항변이었다. 에밀리아 언니의 눈치를 보니 밀리아의 말도 맞는 것 같았다. 결국 최종 복수 상대는 발자르로 결정난 듯 했다. 레온이야 더 이상 날 쫒아오지 않는다면 딱히 죽일 필요도 없었다. 물론 칼은 다른 생각인 듯 했지만...
“좋아. 밀리아까지 그렇게 말하니 용서해줄게... 하지만 그래도 도시 한두개정도는 뒤집어 엎어야 겠어. 그래야 발자르도 상대 할 수 있으니까.”
“그..그건...”
“싫다면 제국을 칠거야. 어차피 그러는동안 마물들은 늘어나겠지. 그럼 제국도 무사하지만은 않을걸? 어떤걸 선택하든 에밀리아 언니 마음이야. 어때? 제국을 칠까? 아니면 도시 한두개로 만족할까?”
“도시로... 해줘. 제국엔 아버지랑 오빠들 그리고 여동생이... 그러니 제발 도시한두개로 만족해줘...”
“호호호. 언니도 마찬가지네. 역시 인간들은 한결같아.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타인은 어쩌든 상관 없는거지. 그렇게 가츠를...!! 하아... 뭐 좋아. 그럼 따라오도록 해. 밀리아도 따라올거지?”
“당연하죠! 공녀님 곁엔 제가 있어야 한다니까요. 아아 어쩜~ 이렇게 더러워질수 있는지~ 자자. 우선 도시에 들려 몸단장부터 시작해요!”
“으윽... 도시는...”
“걱정하지마. 미아. 더는 미아를 곤란하게 하지 않을테니까. 그러니 도시에 들려 조금 씻도록 해. 그동안의 안전은 내가 보장할게.”
에밀리아 언니마저 그렇게 말하니 어쩔 수 없었다. 이제 용서해주기로 한 이상 어느정도 존중해주긴 해야할 것 같아서였다.
“뭐... 좋아. 마침 나도 조금 씻고 싶었으니까. 역시 숲속생활은 마음이 편해서 좋은데 조금 불편해. 특히 씻고 자는게 문제야.”
“미아가 그렇다면야... 그럼 에밀리아는 용서해주는거고 다음은 레온과 발자르인데... 역시 레온부터 죽이는게 좋겠지?”
“으윽... 그건...”
에밀리아 언니에 대한 문제가 쉽게 해결되고나니 레온에 대한 문제가 급 부상해버렸다. 하지만 아직도 마음이 좀 그랬다. 레온에 대한 마음이 여전히 남아있어서였다.
“아직이야..? 그럼 조금 쉬고 다시 이야기 하자. 미아도 조금 진정하고나면 생각이 달라질거야.”
“으응. 그래야겠어.”
“자. 그럼 따라오도록 해. 미아.”
에밀리아 언니가 앞장서며 걷자 그 뒤를 따르는 일행들이었다. 아직 모든걸 믿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설마 에밀리아 언니가 또다시 날 배신하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밀리아의 증언도 있지 않는가? 밀리아를 저렇게 잘 보살펴줬으니 한번쯤 더 믿어줄만 했다.
“그럼 부탁할게. 대신... 다시 내 믿음을 배신하면... 가만두지 않을거야. 제국이든 에밀리아 언니든 간에...”
“으응. 걱정하지 말아줘. 나 더는... 배신같은거 하지 않아. 이이상 미아를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지금은... 그걸로 좋아. 다만... 나중에 제 부탁을 들어주시면 좋겠어.”
“무슨 부탁?”
“일단 약속부터 해줘. 제국에 피해가 가는일은 아니니까.”
“뭐... 좋아. 미아의 부탁이라면 흔쾌히 들어줄게~!”
그렇게 모든일이 일단락되는 듯 했다. 그렇게 에밀리아 언니와 도착한 도시는 약간 작은 편에 속했지만... 나름대로 괜찮았다. 쉴만한 여관도 있었고, 조금 지저분해진 옷을 바꿀만한 의상실도 여럿 있었다. 이정도라면 한동안 쉬며 전쟁을 준비할 정도의 도시는 될 것 같았다.
“이곳으로 정한거야?”
“응? 설마 이 도시를... 아니 여긴 쉴려고 온거야. 내가... 마물들이 공격할 도시를 정해줄테니까. 제발 그런 무서운 소린 하지 말아줘.”
“응. 알았어. 대신 빨리 정해주길 바랄게. 아무리 쉬려고 온거지만... 준비는 빨리 해놓을수록 좋으니까.”
기겁하는 에밀리아 언니였다.
“어머머~ 공녀님 안본사이에 너무~ 무서워진 것 같아요! 자자. 여자라면 너무 기가 세게 나가면 남자들에게 이쁨받지 못해요! 그러니 얼굴부터 풀고 웃어보세요~ 스마일~”
“으윽... 밀리아 넌 분위기 보는 법부터 생각하는게 좋겠어. 하아~ 매번 이런식이라니깐...”
“그렇지만 이왕 쉴거 조금 즐거우면 좋잖아요! 자자 그러지 마시고 일단 씻고 옷부터 보러가요. 이게 뭐예요!! 역시 제가 신경써드려야 했는데...”
“그래. 알겠어. 그러니 제발... 그 수다좀 멈춰줘~!!”
“아~ 근데 옆에 멋진... 응? 혹시 칼?! 와아~ 칼 엄청 멋져진 것 같아. 게다가 엄청 컷잖아?”
“으윽... 밀리아. 이제 눈치챈거야? 하아~ 아무튼... 좀 떨어져 주지 않을래?”
“호호호~ 어쩜~ 말도 잘하게 됬잖아~”
호들갑이란 호들갑은 다 떠는 밀리아였다. 하지만 칼은 밀리아가 조금 싫은 듯 거리감을 뒀다. 아마도 그건 밀리아에게 시달림을 받고싶지 않아서 인 듯 했다. 하긴 예전 목욕할 때 어지간히 시달림을 받지 않았던가? 그래서 물을 싫어하기까지 했고... 결국 밀리아가 자초한 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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