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화 〉108화
발자르의 추적은 집요했다. 일부 마물들을 데리고 물러나면 그대로 따라붙어 나를 압박했다. 이러다 잡히는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지만... 이제 곧 숲속이라 어느정도 숨을 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숲속이라면 발자르의 군대도 상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각 개체별로 따지자면 마물들은 인간병사들 보다 강했다. 그렇기 때문에 숲속이라면 발자르 군을 상대할만 했다. 게릴라전을 유도한다면 분명 수많은 발자르의 군대라도 상대 가능했다.
“미아. 잠시 기다려줘. 내가 녀석들의 숫자를 조금 줄여놓고 올게.”
“읏! 칼... 나도...!!”
“아니... 미아는 약하니까. 여기서 1세대 마물들의 호위를 받으며 기다려. 또 위기에 처하면 안 되잖아?”
조금 울컥해버릴뻔 했다. 나도 강했는데... 하지만 칼 말대로 였다. 내가 나서봤자 병사들 수십정도... 그정도는 마물들을 이끄는 칼에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가만히 숨어 있는게 칼로써도 부담이 덜했던 것이었다.
“으응... 알았어. 칼... 무사히 돌아와줘... 칼마저 없으면 나... 살아가지 못할테니 말야.”
“아아. 걱정마. 저런 병사들에게 죽으려고 지금까지 신체를 강화해 온게 아니니까. 미아가 걱정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거야.”
자신감에 찬 칼의 발언. 하지만 그에 더 불안해졌다. 다만 칼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뿐... 그렇게 칼이 게릴라전을 펼치기 위해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 뒤를 마물들이 따라가 그나마 든든했다. 위기에 처하더라도 마물들을 재물로 빠져나올 수 있을 듯 해서였다.
“칼이라면 괜찮을거야...”
그렇게 몇차례 소리없는 전투가 펼쳐졌다. 칼과 마물들의 은신은 그만큼 뛰어났던것이었다. 은신해서 뒤를 치거나 다가오는 병사들을 사살해 나갔다. 그러자 발자르의 병사들도 이건 아니라는 듯 뒤로 점진적인 후퇴를 게시했다.
“칼~!!”
“아아. 조금 피곤하네. 그치만 어느정도 병사들을 뒤로 물렸어. 이제 조금 쉴 수 있을거야.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니 긴장하도록 해. 미아.”
“으응. 정말 고마워. 그리고 무사해서 다행이야.”
“후훗~ 내가 미아를 놔두고 죽을 수 없지. 이렇게 아름다운 미아와 사랑을 나눌 수 없다니... 절대 그럴 수 없지 않겠어?”
“칼도 참~ 너무 그렇게 띄우지 말아줘.”
“그치만 사실인걸~”
정말 칼도 점점 달콤한 말을 잘 하게 되는 것 같았다. 하긴 그간 인간여자들과 상대한게 얼마던가? 이정도도 못하면 사내구실을 하지 말아야지.
“그나저나... 저들은 언제까지 저렇게 있는걸까? 역시 뭔가 작전을 펼치겠지? 발자르가 바보가 아니라면 말야.”
“그렇겠지. 숲속이니까... 불을 지를지도 몰라.”
“으윽~ 타죽는건 싫은데...”
정말 칼의 말대로 불을 질러버릴지도 몰랐다. 물론 내가 타죽는건 저쪽도 바라지 않아 도망갈 구멍정도는 만들어 놓을 것 같지만... 그 도망갈 구멍도 자신들에게 오는 구멍 뿐일 듯 했다. 결국 숲속 어느정도에 발화저지선을 만들어야만 했다.
“마물들을 이용하니 이럴땐 편하네. 이래서 다들 권력에 목매다나봐.”
“권력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 아닐까? 상위 포식자도 마찬가지니 말야.”
“그런가?”
뭐 인간세상에선 권력자가 상위 포식자나 마찬가지니까 내 말도 칼의 말도 맞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마물들을 이용해 발화저지선을 만들었다.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본 듯 병사들의 움직임도 활발해 졌다.
“이제 마물들도 제법 늘어난 것 같은데... 우리가 먼저 기습을 하는건 어때?”
“흐음... 그것도 좋긴 하겠지만... 역시 조금 더 안전하게 게릴라전으로 병사들을 더 줄이는게 좋을 것 같아.”
“그럼 그건 칼이 알아서 해줘.”
점점 칼에게 의지만 하고야 말았다. 하지만... 전투에 조금 서툴러서 어쩔 수 없었다. 그런것들을 무시할정도로 강력한 힘이 있다면 몰라도... 아직은 사람들을 직접 죽이는건 조금... 꺼려지긴 했다. 물론 칼과 내가 위험에 처하면 단숨에 죽여버릴게 틀림없었지만... 그래도 아직 그럴정도로 위기에 몰리지는 않았다. 그저 마물들의 호위를 받으며 안전하게 나가는게 좋을 것 같았다.
“하하핫. 정말 대단해!! 이렇게 오랜시간 제국의 병사들을 막아서다니!! 역시 마물 여왕 답군. 공녀 어떤가? 이쪽으로 전향하는건... 그렇다면 내가 아주 잘 대해줄 수 있는데. 흐흐~ 공녀도 이제 남자 한둘 정도는 거느리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발자르였다. 아마도 꾀나 초조한 듯 했다. 하긴 자신의 병사들이 줄어갈수록 마물들은 점차 늘어갔다. 그런 모습을 보면 그 누구라도 초조할만 했다. 하지만 저런 저속한 소리에 속을정도로 내 지능이 낮지 않았다. 물론 레온에게는 그렇게 속아버렸지만... 그거야 한때 사랑하던 사람이라서 그랬다. 사랑을 나누는 행위와 내 마음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 상대가 거짓을 말하는지 아니면 진실을 말하는지 알아채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발자르에 대한 내 마음은 한결 같았다. 그저 복수의 대상. 그뿐이었다. 그런데 저런 말에 속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흥~! 다른 여러 남자를 만나더라도 발자르 너따위에게 다릴 벌려주지 않아!!”
상대의 저속한 말에 나 또한 조금 막나가는 듯 말해버렸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저쪽은 나를 마물들에게 다릴 벌려 유혹하는 존재로 알고 있지 않던가? 풀리지 않을 오해를 풀기위해 머릴 싸매고 싶지는 않았다.
“흐흐흐. 지금 잡히는게 좋을텐데? 지금 항복하지 않고 내 손에 잡히면 공녀를 병사들에게 돌리도록 하지. 큭큭큭.”
“이익!! 누가 잡혀주기나 한 대! 어디 한번 잡을 수 있다면 잡아봐!!”
결국 그렇게 다시 전투가 시작 되었다. 다행이도 칼이 제 역할을 다해줘 제국의 병사들이 차츰 줄어들었다. 그로인해 마물들은 늘어나고 결국 마물들의 우세로 전면전을 벌일정도의 양상이 되어갔다.
“칼. 더 이상 시간을 끌 수는 없어. 이정도 마물들이라면 전면전도 가능하지 않을까?”
“난... 조금 더 안전하게 시간을 끌어 우리쪽이 좀 더 유리한 싸움을 하고 싶은데... 뭐 미아가 원한다면 전면전도 상관없어.”
“그럼... 부탁해.”
칼에게 그렇게 부탁했다. 그러자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주며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거대화한 칼. 그리고 수많은 마물들. 그렇게 전투는 장시간 지속되었다.
“호호호~ 발자르 어때? 이래도 날 잡을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크흑.. 대단하군. 역시 마물들은 대단해.”
끝까지 나에대한 소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 발자르였다. 아마도 그건 자존심 때문이겠지.
“자. 용서를 빌면 죽이지 않을 수도 있는데 어때? 내 발아래 무릎꿇고 용서를 비는건?”
“흐흐. 그럴수야 있나. 나 하나 빠져나가는건 지금도 쉽지. 좋아. 이번엔 공녀 네가 이겼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야. 공녀는 필시 다시 나에게로 오게 될 테니 말야. 크크크.”
“누가 빠져나가게 놔둔데!! 칼. 협공하자!”
“큭큭. 협공인가? 하지만 내겐 아직도 이정도 병사들은 남아있지. 뭣들 하느냐!! 내가 빠져나가는 동안 뒤를 막아라!!”
병사들에게 그런 명령을 내리는 발자르였다. 역시나 성격대로 치사하고 이기적인 발자르였다. 결국 그렇게 병사들이 몰려오고 어쩔 수 없이 그병사들을 도륙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동안 발자르는 점점 멀어져만 갔다.
“으으~! 분해!! 거의 다 잡았는데... 도망가 버렸어!! 마스터 나이트라면 당당하게 싸우라고!!!”
“크하하하~!! 공녀와 둘이서 붙을 수 있다면 나야 영광이지. 하지만 수많은 마물에게 둘러쌓여 싸울수야 없지 않겠어? 그럼 다음에 보도록 하지!!”
내 분해 하는 광경을 뒤돌아 본 듯 그렇게 광소하는 발자르였다. 정말... 약을 올려도 유분수지. 날 확실히 물먹이고 도망치는 발자르 였다. 그렇게 전투는 마물들의 승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병사들의 유전자 정보를 잔뜩 수집해 마물들 또한 대번에 대군으로 늘어나버렸다. 이정도면 아르세이아 제국을 상대 할만 했다.
“하아~ 드디어 이겨냈어. 이제... 좀 쉬자.”
“아아. 나도 꾀나 무리한 것 같아. 조금쯤은 쉬어야 겠어.”
정말... 너무도 긴장된 전투였다. 물론 이겨서 기분은 좋았지만... 그래도 너무 무리한 듯 했다. 칼도 게릴라전을 펼치느라 마나를 꾀나 소모한 듯 했고 말이다. 그렇게 한동안 숲속 생활을 하게 되었다. 마음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아르세이아 제국의 에밀리아 언니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다시 이런 위기를 겪지 않기 위해서라도 만반의 준비를 해야했다.
“칼 정말 미안해. 내가 쓸데없는 짓으로 시간만 끌지 않았어도...”
“그렇게 미안해 할 필요 없어. 미아는 그저 레온에게 속았을 뿐이잖아? 잘못은 미아가 아닌 레온에게 있지. 그녀석... 또다시 미아의 마음을 가지고 놀다니... 다음에 만나면 용서하지 않아!!”
“으윽... 우리 그냥... 레온은 봐주면 안될까...?”
“하~!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레온은 미아 널 배신한 녀석일 뿐이잖아?! 설마 그세 반하기라도 한거야?!”
“으윽... 그치만... 미안...”
레온에 대한 마음이 아직 가시지 않은 듯 했다. 그럴 수밖에... 비록 일주일 뿐이라지만... 레온의 사랑은 달콤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 누구보다 더 달콤한 속삭임을 내게 해줘서 더 그랬다. 그저 귀에 발린 말일 뿐인데... 그런게 너무도 좋았다. 결국 마음을 일부 빼앗겨 버린걸지도 모르겠다.
“미아. 망설이면 안돼. 레온도 가츠를 죽게 만든 원흉이야!!”
“으응. 맞아. 맞는데... 으으... 모르겠어. 레온을 어떻게 해야할지...”
“그러니 말했잖아. 미아는 내 뒤에 있어. 레온은 내가 처리할테니까.”
결국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다. 게다가 더 이상 칼을 자극하기도 싫었다. 가츠의 죽음 만큼이나 레온이 죽는걸 바라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칼과 마음상하면서 까지 레온을 보듬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둘중 하나를 포기해야만 했고, 포기해야할 하나는 레온이었을 뿐이었다.
“그럼... 부탁할게... 역시 레온을 직접 대면하면... 마음이 너무 약해지는 것 같아...”
레온에 대한 생각은 이만 접기로 했다. 그것보다 에밀리아 언니에 대해 생각해야했다. 발칸 제국 병사들이야 숲속이라 잘 막아냈지만... 역시 성으로 둘러쌓인 아르세이아 제국은 조금... 힘들지도 몰랐다.
“하아... 걱정이야. 에밀리아 언니를 보기위해 얼마나 많은 인간을 죽여야 하는걸까?”
“인간따위 걱정할 필요 없어. 어차피 죽여도 죽여도 마구 늘어나는 인종들이잖아?”
“그저... 이제 죽이는건 귀찮아서... 이번에 발칸제국 병사들은 너무 많이 죽여서 그런가봐. 먹지도 못하는걸... 쓸데없이 죽이기나 했잖아?”
“하긴... 병사들이 맛은 없더라. 쯧~ 입맛만 버렸다니깐.”
칼도 병사들을 맛본 듯 했다. 물론 나는 어차피 인간을 좋아하지 않아 맛보지는 않았다. 그저 마나가 얼마없는 것들은 대부분 맛이 없어 그렇게 생각 하는 중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