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76화
에밀리아 언니 말대로 정보길드에 의뢰를 하기로 했다. 다만 성을 나서는게 꾀나 힘들 것 같아서 문제였지만. 아무래도 내 주변을 지키는 병사들을 따돌리긴 힘들 것 같았다. 아마 이건 셀바르 후작의 견제인 듯 했다. 내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은 거겠지.
“이거 어쩌지? 밀리아 어디 좋은 방법 없을까?”
“흐음... 으음... 시녀로 변장하면... 안되겠군요. 하아~ 공녀님은 너무 아름다우셔서... 분명 나가자 마자 들키거나 혹은 나가더라도 남자들의 추근거림 때문에 제대로 일을 보지 못하실거예요.”
“에에? 나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아~ 정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무슨 페로몬을 뿌리고 다니는 음란한 짐승인줄 알아?!”
“흐응~ 과연 그럴까요? 호호호”
어쩐지 밀리아의 나에대한 생각을 알 수 있었다. 날 음란하기 짝이 없는 암컷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여자가 아닌 암컷...
“으으~ 이게 다 칼 때문에... 역시 칼에게 물든거지? 그런거지 밀리아?”
“우우~ 아무짓도 안했다 뭐~ 미아 나쁘다!”
“이게 진짜~ 밀리아 존댓말은 언제 가르칠 예정이야?! 아무리 어려도 그렇지. 지금부터라도 가르치는게 어때?”
그래도 제법 아는 단어가 많아진 듯 말을 길게 하는 칼이었다. 그 모습에 뿌듯하긴 했지만... 역시 반말 일색이라 거슬리곤 했다. 밀리아에게 그렇게 주의를 줬지만... 과연 내 말에 따를지 모르겠다. 요즘들에 내 약점을 붙잡고 바라는게 많아진 밀리아였기 때문이었다.
“에이~ 아직 아이잖아요. 뭘 몰라서 그러는데 그냥 귀엽게 봐주세요~ 그러는 공녀님은 어떻구요? 어릴 때 막~ 이거 해줘~ 저거해줘~ 하며 절 얼마나 곤란하게 했다구요. 게다가 고위귀족들에게 툭툭 반말을 내뱉을때마다 얼마나 질겁 했다구요!!”
“으윽! 내..내가 그랬어? 호호호. 뭘 그런걸 가지고... 게다가 난 공녀였잖아? 칼과 처지가 달라!”
“공녀라고 다 해결 되는줄 아세요?!”
“아..아니야?”
“네! 하위귀족들이라면 권세로 찍어누를 수 있지만... 역시 고위 귀족은 그게 안되서... 어휴~ 그나마 공녀님이 귀여워서 다행이었죠. 안그랬으면 뺨을 맞아도 할말 없었을 거예요!”
“미..미안...”
어쩐지 또 밀리아의 말에 말려들어간 것 같았다.
“그럼 어쩌지? 으으~ 궁성을 빠져나가야 하는데... 이렇게 감시인원이 많아서야 정문으로 나가는건 힘들 것 같은데...”
“그럼 칼에게 부탁해보는건 어떠세요? 칼은 작고 아무도 신경 안쓰니까. 분명 가능할거예요. 칼 그렇지?”
“응~! 밀리아 좋아~!”
아니... 가부를 말해줘야지. 그저 좋다고 헤죽거리는건 아니잖아!! 게다가 제대로 알아듣긴 한거니?!
“어휴~ 밀리아 넌 저러는 칼을 믿을 수 있겠어?”
“호호호... 못믿죠.”
“그러면서 나에게 칼을 추천해 준거야?!!”
“에이~ 그저 귀여우면 여러모로 쓸모가 많겠죠~”
그냥 되는대로 추천해 준거구나... 귀여우면 다 되는 건 아냐!! 물론 칼은 거의 만능이지만... 그래도 이런 심부름은 힘들 것 같았다.
“아! 칼을 사용할 수 있긴 하겠다. 칼을 타고 창문으로 나가 지붕 위를 이용하면...”
“호오~ 그렇군요. 정말 공녀님치고 제대로 생각이란걸 한 것 같아요.”
“으윽! 밀리아 넌 그동안 나를 어떻게 생각한거야?! 나도 그정도 아이디어는 금방 떠올릴 수 있다구!! 생각 없이 사는건 아냐!!”
누굴 생각도 없는 여자로 몰고 있는건지...
“누가 뭐래요. 호호호~”
“으으~ 밀리아 너 정말 그럴거야? 그동안 오냐오냐 하고 봐줬더니! 난 공녀고 넌 시녀라구. 이번에 아주 확실히 교육시켜줄까?”
“그건 좀 봐주세요~ 자자 그렇게 열낼거 없잖아요. 대부분 사실인데...”
“으으. 정말 안되겠어. 이번 일 끝나고 두고봐!”
나중에 밀리아를 혼낼 계획을 세웠다. 감히 공녀인 날 그렇게 물로 보고 있다 그거지? 역시 너무 친해서 그런걸까? 그래도 시녀와 공녀 사이인데... 아마도 밀리아가 내 약점을 모두 알고 있어 그런걸지도 모르겠다. 여차하면 약점 풀겠다 이거겠지.
“그러면 혼내지도 못하잖아!! 으으... 아무튼 두고봐. 우선 이 일부터 끝내겠어. 그럼 칼. 부탁해도 될까?”
“우웅... 좋아. 대신 나중에 또 해줘~”
“으으~ 칼 넌 그런 생각 뿐인거지? 뭐 좋아. 대신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고 성 밖으로 나가야해.”
“응! 문제 없어!”
자신의 가슴을 탕탕 치며 자신감을 내비치는 칼이었다. 문제는 그 모습이 그저 귀엽게만 보여서 조금 그랬지만... 그래도 거대화한 모습의 칼은 멋지지 않던가! 그 모습을 상상하며 위안하기로 했다.
“그럼 창문으로 나가자. 밀리아. 너는 방이나 잘 지켜. 누가 오면 아파서 잔다고 하든가.”
“네에~ 데이트 잘 하고 오세요~ 호호.”
“으윽. 중대한 일이야!! 너무 가볍게 생각하지 말아줘.”
“데이트~ 데이트~ 미아 좋아~”
“으으... 밀리아 너 때문에 칼도 물들었잖아!! 칼 이 일은 중요한 일이야. 그렇게 들떠서 들키면 어쩌려구?”
“안들켜. 걱정마 미아.”
그래. 내가 너에게 더 이상 뭐라고 하겠니. 제발 들키지 않길 신에게라도 빌어야겠다. 정말 가슴이 조마조마할 정도로 긴장되기 시작했다. 과연 제대로 병사들의 감시를 따돌릴 수 있을것인가도... 게다가 정보길드도 잘 찾아 나설 수 있을까? 솔직히 도시를 제대로 돌아다녀 본적도 없는데... 정말 걱정이었다.
“칼 일단 지붕위로 올라가자. 거기서 거대화 한 후에 성벽을 넘으면 될거야.”
“응! 걱정하지마! 미아!”
그래서 더 걱정이라구! 왜 그렇게 자신감에 휩싸여 있는건데? 혹시 그냥 야외를 뛰놀 수 있어 좋아 하는거 아냐? 어쩐지 그런 느낌인데... 내가 칼의 속마음을 알 수 있어야 말이지... 정말 걱정이었다.
“칼! 조심! 조심 해야지! 그러다 들키면...”
칼이 지붕위에서 미끄러지는 건 상관없지만 그로 인해 병사들에게 들키는 건 문제였다. 결국 칼을 안아들고 지붕을 탈 수밖에 없었다.
“으으~ 칼 버둥거리지좀 마.”
“우우~ 나도 잘걸을 수 있어! 흥~ 미아 나빠~!!”
“그러니까 오두방정 좀 떨지 말라고 했잖아. 아무튼 다 왔다. 이제 거대화 하고 등에 태워줘.”
칼을 내려놓고 그렇게 부탁했지만... 역시나 삐쳐서 그런지 들어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서빨리 도시로 나가 정보길드를 찾아 의뢰를 하고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돌아와야 하는데... 이렇게 칼이 내게 협조해주지 않아서야... 조금 힘들지도 모르겠다.
“하아... 칼! 정말 이럴거야?”
“응. 이럴거야. 미아 나빠.”
“으으... 그래 뭘 또 해주면 내 부탁 들어줄거니?”
“처음. 약속. 지켜. 미아.”
“윽.. 그..그건...”
이렇게 나올 줄이야. 처음을 약속한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걸 기억할 줄이야... 하지만 문제였다. 예전에도 말했다싶이 지금 칼의 작은 모습으론 성관계가 힘들었다. 그렇다고 거대화한 짐승 모습인 칼과도 불가능... 그때의 칼의 물건은 너무 컸기 때문이다.
“하아~ 잘 안된다는건 칼 너도 알잖아? 칼이 얼른 크면 그래. 그때까지 내가 처음을 간직하고 있으면 해줄게. 그러니 이번만 부탁할게. 응?”
“우우... 좋아. 대신 약속. 안지키면 미아는 내 노예.”
“윽! 밀리아 이것이!! 또 무슨 소리를 칼에게 한거야?!”
정말... 밀리아에게 칼의 교육을 맞겨도 될까 싶었다. 노예는 또 뭔데?! 설마 각종 이상야릇한 성지식을 칼에게 주입시킨걸까? 밀리아라면 납득가기도 했다. 여자들끼리 제대로 성관계를 하려면 뭔가 도구도 필요하고 다양한 컨셉도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밀리아 나중에 두고봐. 잔뜩 괴롭혀줄거야!! 내 칼을 이상한쪽으로 물들이다니... 으으~”
아직까진 칼을 밀리아에게 주기 싫었다. 이렇게 내게 도움이 되는데 왜 밀리아에게 칼을 주겠는가? 그저 내가 잘 사용해야지. 조금 이기적인 모습일지도 몰랐지만... 나는 원래부터 이랬었다. 내게 도움이 되면 자존심쯤 조금 접고라도 비굴하게 살아남아 왔었던 것이다.
“그래서 권력과 힘이 필요해. 이제 남들에게 그런식의 대접을 받기 싫으니까...”
“크릉~”
“아. 거대화 했구나. 좋아. 이제 날 태우고 저 성벽을 넘어줘.”
“컹컹~!”
“조용해! 그러다 들키면 어쩌려고! 어휴~ 진짜 칼 너 때문에 내가 늙는다. 늙어!”
어쩐지 내 목소리가 더 컸던 것 같지만... 그래도 아직은 들키지 않았으니 상관없었다. 그렇게 칼의 등에 올라 성벽을 넘었다. 역시 칼. 그 도약력과 민첩성이란! 성에 들어와서 제대로 몸을 움직여 본적이 드물 텐데도 여전히 대단한 위용을 내보이는 칼이었다.
“후아~ 겨우 성벽은 넘은 것 같아. 이제 정보길드만 찾으면 되는데... 일단 거대화 풀고 수인형으로 돌아와줘.”
“크릉...”
이제 조금 뛸만한데 왜 다시 돌아가야 하냐고 되묻는 칼이었다. 하지만 도시 안에서 칼을 거대화 시킬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필시 내가 바깥에 나온 게 소문이 나 버릴 테니 말이다. 절대 그럴 수는 없었다. 그렇게 겨우 칼을 달래 수인형의 귀여운 아이 모습으로 되돌렸다.
“좋아. 이제 조금 돌아다녀 보자.”
“응. 미아.”
칼을 달래느라 시간을 꾀나 지체해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었다. 서둘러 정보길드를 찾아야 했지만... 정말 막막한 기분만 들었다. 도대체 정보길드가 어디있는지 알아야 말이지. 역시 그간 도시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결과인 듯 했다. 자주 나와 봤어야 했는데...
“와~ 저것 좀 봐. 예쁘다~ 헤헤.”
다만 그래서 그런지 도시안을 구경하는게 정말로 재미있었다. 뭔가 주객전도 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조금 즐기고 싶었다. 답답했던 성 안에서의 생활에 스트레스가 제법 쌓였었기 때문이다.
“미아. 바보.”
“으윽! 내가 왜?! 아! 그렇지. 정보길드... 하지만 좀 더 즐기고 싶은걸? 우리 야시장이란것도 보고 가자!”
“바보.”
어쩐지 칼에게 한심하다는 시선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이왕 나온거 야시장까지 보는게 어때서? 이왕 이렇게 된거 그냥 1박하고 가는건 어떨까? 밀리아를 괴롭혀줄겸 해서 그러는것도 좋을 것 같았다.
“밀리아 고것은 좀 당해봐야 해. 호호~ 생각만 해도 고소한 것 같아!”
“우우 밀리아 괴롭히지 마. 미아 나빠!”
“흥~ 그러거나 말거나~ 아무튼 저것 좀 더 보고 가자.”
그렇게 각종 요상한 물건들을 마구 구경하며 이리저리 쏘다니기 시작했다. 누가 날 지켜보며 뒤따라 오고 있는 것도 모른 채... 그런 걸 알았다면 좀 더 긴장하고 있었을텐데... 구경하느라 그런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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